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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06 사형제도의 완전한 폐지를 위하여 102
< 잘 좀 죽여주시지 그러셨어요 >

사람이 사람을 공식적으로 살해 할 수 있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사형이 선고되고 확정된 범죄자를 죽이는 것과 전쟁이다(사실은 사형이나 전쟁은 어느 법에서도 살인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른바 형법상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

전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평시에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할' 정당한(?) 행위는 사형수를 사형집행관이 살해하는 행위다.


사형제도는 과연 필요할까.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측의 견해를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국민의 법감정은 사형제도의 존치를 원한다는 점
  • 사형을 통한 범죄 억제 효과
  • 살인 등 흉악범위 영구적 격리 등

    그런데 사실 이러한 이유들이 사형제도를 유지하여야 하는 정당한 이유인가에 관한 점에서는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전혀 미흡하다. 이러한 이유라면 당장 사형을 폐지하여도 좋을지 모른다.

    사형제도에 관해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는 1996년에 합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왜 이런 급진적인 헌법 해석론의 발전이 필요한 시기에 헌재는 삽질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군 가산점 문제도 그렇고, 행정수도도 그렇고..) (1996년의 판결이 있기 전인 1993년에도 이에 관한 헌법소원이 있었으나, 청구기간이 경과하였다는 이유로 부적법 각하하였었다)

    헌재의 이야기를 보자.

    (가) 生命權 역시 憲法 제37조 제2항에 의한 일반적 법률유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나, 生命權에 대한 제한은 곧 生命權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한다 할 것이므로, 死刑이 比例의 원칙에 따라서 최소한 동등한 가치가 있는 다른 생명 또는 그에 못지 아니한 公共의 利益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성이 충족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한, 그것이 비록 생명을 빼앗는 刑罰이라 하더라도 憲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나) 모든 인간의 생명은 자연적 존재로서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할 것이나 그 동등한 가치가 서로 충돌하게 되거나 생명의 침해에 못지 아니한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는 등의 경우에는 국민의 생명·재산 등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국가는 어떠한 생명 또는 법익이 보호되어야 할 것인지 그 규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등의 범죄행위에 대한 불법적 효과로서 지극히 한정적인 경우에만 부과되는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따라서 사형은 이러한 측면에서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할 것이고, 적어도 우리의 현행 헌법이 스스로 예상하고 있는 형벌의 한 종류이기도 하므로 아직은 우리의 헌법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아니한다.
    2. 刑法 제250조 제1항이 규정하고 있는 殺人의 罪는 인간생명을 부정하는 犯罪행위의 전형이고, 이러한 犯罪에는 그 행위의 태양이나 결과의 중대성으로 미루어 보아 反人倫的 犯罪라고 규정지워질 수 있는 極惡한 유형의 것들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死刑을 刑罰의 한 종류로서 合憲이라고 보는 한 그와 같이 他人의 生命을 부정하는 犯罪行爲에 대하여 행위자의 生命을 부정하는 死刑을 그 불법효과의 하나로서 규정한 것은 행위자의 生命과 그 가치가 동일한 하나의 혹은 다수의 生命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의 선택이라고 볼 수 밖에 없으므로 이를 가리켜 比例의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어 憲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해서, 헌재의 공식적인 의견에는 특이하게도 반대의견이 달려있다. 일부의 헌법재판에 있어서 소수의 의견이지만 귀기울일 필요가 있는 가치있는 사건에 한하여 이렇게 소수의견을 병기하는 경우가 있다.

    재판관 김진우의 반대의견
    1. 憲法 제10조에 규정된 인간의 尊嚴性에 대한 존중과 보호의 요청은 刑事立法, 刑事法의 적용과 집행의 모든 영역에서 지도적 원리로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刑事法의 영역에서 立法者가 인간의 尊嚴性을 유린하는 惡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의 生命과 自由를 박탈 내지 제한하는 것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刑罰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憲法 제10조에 반한다. 死刑제도는 나아가 良心에 반하여 법규정에 의하여 死刑을 언도해야 하는 법관은 물론, 또 그 良心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수 없이 死刑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良心의 自由와 인간으로서의 尊嚴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刑罰제도이기도 하다.

    재판관 조승형의 반대의견
    1. 死刑제도는 生命權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生命權의 제한이므로 憲法 제37조 제2항 단서에 위반된다. 가사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상의 生命權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刑罰의 목적은 應報·犯罪의 일반예방·犯罪人의 개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刑罰로서의 死刑은 이와 같은 목적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生命權을 제한하는 것으로 目的의 正當性, 그 수단으로서의 適正性·피해의 最小性 등 제원칙에 반한다.
    (출처는 모두 형법 제250조 등 위헌소원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특이한 것은, 이 판결에서는 두 재판관의 위헌의견이 다수의견인 합헌 의견보다 더 상세하게 기술되어있다는 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두 재판관의 위헌 의견에 동의하며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형제도는 강력범죄의 감소에 효과적인가?
         (사형을 없애면 강력범죄가 늘어난다?)

    결론만 말하면, 아니다.
    한겨레21의 기사 등 여러 발표에 따르면 사형제도의 폐지는 범죄율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직전인 1975년 10만 명당 3.09명이었던 캐나다의 살인 범죄율이 사형 폐지 뒤 오히려 줄어들어 2003년에는 10만 명당 1.73명으로 떨어졌다.” (한겨레 21기사중 발췌)


    이러한 현상은 단지 캐나다의 특수성이 아니다. 유럽의 사형폐지국에서도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사형폐지가 범죄율의 증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 다는 것은 확실하다.

    “범죄예방과 응보라는 이유로 세계 80여개국에서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사형제도를 폐지한 뒤 범죄율이 낮아지는 경우가 더 많다”(경향신문 기사)


    이러한 사실은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히 알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사형에 해당될 만큼 중대한 범죄를 일으키려고 하는 경우, '나는 체포되어 사형당할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하게 된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될까?

    상식적으로는 그렇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아니다. 그렇지 안다.

    이미 범죄의 의사가 형성된 후라면, 체포를 우려하여 범죄의 실행을 그만두는 자는 사형이 아니라 단순 징역이라도 범죄의 실행을 포기한다.
    하지만, 역시 더 중요한 사실은, 범죄의사가 확고한 자는 자신의 체포가능성을 무시하거나 0%로 보거나, 아니면 체포되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용인하고 받아들인다. 즉, 사형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사형은 그런 생각을 하는 예비 범죄자에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사형제도를 유지한다고 해서 강력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사형제도를 폐지한다고 해서 강력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 사형제도는 범죄예방적 효과가 있는가?

    형벌의 목적은, 범죄자로 하여금 이를 반성케 하고, 재사회화 하여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간으로 교화시켜 사회에 복귀시키는데 있다. 그러나 범죄자를 영원히 사회에 복귀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생명의 박탈행위는 부당하다.

    형벌이 가지는 예방적 효가는 두 가지로 나뉜다. 이른바, 특별예방적 효과와 일반예방적 효과이다.

    특별예방적 효과란, 범죄자에 대하여 형벌을 과한 뒤, 이를 통하여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형벌의 부담을 지워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효과이다.
    일반예방적 효과는 범죄자에 대하여 형벌을 과하는 것을 공표함으로써 범죄자 이외의 일반 사람들이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하는 효과를 말한다.

    그런데, 형법학에서는 이러한 일반예방적 효과는 거의 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른 사람이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되는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범죄후 체포를 예상하거나 체포를 준비하는 범죄자는 없다. 일반예방은 체포예상을 전제로 하는데, 그런 인식이 없는 범죄자의 인식체계상 일반예방이 전혀 효과가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사형 역시 일반예방적 효과는 없다. 사형에 해당할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자가 체포를 예상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특별예방적 효과에 있어서 사형이 특별예방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설득력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사형은 재범의 기회는 커녕 삶을 완전히 박탈하기 때문에 사형수에게 특별예방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은 헌재 판결에서 청구인의 청구취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사형의 범죄에 대한 일반예방적 효과는 학문적 가설일 뿐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고, 형벌의 본질이 응보에서 교육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임을 감안할 때 사형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범죄인의 사회복귀를 위한 교화와 개선의 노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42)

    따라서 사형제도는 범죄의 예방적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


    ▣ 사형을 통해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옳은가?

    일종의 윤리적 차원의 문제이다.
    법의 이름으로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옳은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이 명확한 답을 내 주고 있다.

    조승형 재판관의 소수의견을 보자

    나. 인간의 생명권은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이를 박탈할 수는 없다.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도 부정적으로 사회과학적·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하여, 헌법상 기본권인 인간의 생명권으로서 법률상의 의미를 조영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권은 사람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 그리고 고유한 존재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이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는 모든 기본권이 생명이 있음을 전제로 하여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모든 기본권의 근원이 되는 최고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어떠한 법률이나 제도에 의하여서도 박탈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37~572,557-557)

    사람이 타인을 살해하는 것이 잘못된 행위라면, 그것을 심판하여 사법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법의 이름으로 사람의 생명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박탈한 권한이 인간에게 있는가.
    다시 헌재 판결의 청구취지를 보자

    결국 사형은 그 자체가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또 다른 살인행위일 뿐 아니라 국민의 응보적 법감정을 순화시키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을 황폐화시킬 뿐이며, 국가가 살인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스스로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이를 정당화시키는 모순에 빠진다.
    사형으로 응징될 만한 범죄의 경우는 그 범인 개개인의 인격이나 성향보다 그와 같은 범죄로 몰고간 우리 국가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에서 오히려 더 강한 비난의 요소가 있다고 보여지는 경우가 많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범인 개개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이에 대처하려고 하는 형사정책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42)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면서 국가가 누군가를 죽인다는 모순. 그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자기 모순이 아닐까?


    ▣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형이 필요할까?

    피해의 복구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이 민사이건, 형사이건 피해의 구제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원상회복'이다. 우리 법체계 역시 원상회복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원상회복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금전적인 배상'을 통해 피해 구제에 상당한 수준을 배상받을 수 있다.

    사형은 과연 피해자의 구제에 필요한 방법인가?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사형시킴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리적 안정감이 생명의 박탈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사람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개개인의 원한에 대하여 국가가 나서서 복수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피해자 내지 그 가족 또는 사회의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반인륜적이다.

    국가의 사법제도는 개개인의 복수를 위해 사용될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이 권력의 집중, 독재의 가장 말단에 있는 가장 위험한 사상이다. 다수의 폭력으로 살해하는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피해자를 위해서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논리는 뭔가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는 말이다.
    피해자의 구제 또는 보호, 인권과 피의자의 인권은 zero sum 게임이 아니다.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인권이 무시되고 구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누구보다 인권이 무시될 수 있는 위험에 처했기 때문인 것이다.

    피의자 인권의 보호로 인해 피해자의 인권이가 구제가 도외시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 죽여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헌재 판결의 김진우재판관 반대의견을 보자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는 악법의 제정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박탈 내지 제한하는 것이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형벌제도를 채택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반한다. 이는, 극악한 범죄를 범함으로써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 자라도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고 있는 인간존재인 한, 그에 대하여도 피해자 내지 그 가족 또는 사회의 보복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유사 범죄의 일반적 예방이라는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비인간적인 형벌을 적용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형벌로서의 사형은 자유형과는 달리 사형선고를 받은 자에게 개과천선할 수 있는 도덕적 자유조차 남겨주지 아니하는 형벌제도로서 개인을 전적으로 국가 또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단순한 수단 내지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서 사형수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형제도는 나아가 양심에 반하여 법규정에 의하여 사형을 언도해야 #08하는 법관은 물론, 또 그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자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제도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50-551)

    "죽어 마땅한" 인간이 있을까?
    "죽여버려야 할" 인간이 있을까?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 오판의 가능성

    다시 한번 보자.

    아무리 훌륭한 법관이라 하더라도 인간이 하는 재판인 한 오판이 있을 수 있고 그 경우 집행을 마친 후에 있어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원상회복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사형제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인 범인의 영구적 격리나 범죄의 일반예방이라는 공익은 무기징역에 의하여도 달성될 수 있는 것인데도 국민의 기본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의미를 갖는 기본권인 생명권(인간의 생명은 그 개개인에 있어서는 하나의 우주이고, 지구보다 무거운 것이다)을 완전히 최종적으로 박탈하는 사형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규정은 피해의 최소성원칙에 반하여 기본권제한에 있어서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고, 위와 같은 가장 중요한 기본권인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헌법 제37조 제2항에 반할 뿐만 아니라(이 점에 관해서는 조승형 재판관의 반대의견에서 상세한 설명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위 가.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제10조에서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제도로서의 사형제도는 아무런 정당성도 합리성도 없는 것이어서 사형제도 및 이를 규정한 법률규정은 적법절차에 반하는 형벌 및 법률규정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헌법 제12조 제1항이 사형제도의 합헌론의 근거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52)

    인혁당 사건은, 명백한 사법살인 이었다.
    이제 와서 진실이 밝혀졌다고는 하나, 이제 와서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을 죽여놓고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헌재도 사형제가 '제도살인'의 성격이 있어 위헌과 합헌 논의를 떠나 존치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우리는 형벌로서의 사형이 우리의 문화수준이나 사회현실에 미루어 보아 지금 곧 이를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아니하므로 아직은 우리의 현행 헌법질서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는 바이지만, 사형이란 형벌이 무엇보다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빼앗는 일종의 "제도살인(制度殺人)"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우리의 형사관계법령에 폭넓게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들 법률조항들이 과연 행위의 불법과의 간에 적정한 비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를 개별적으로 따져야 할 것임은 물론 나아가 비록 법정형으로서의 사형이 적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선고함에 있어서는 특히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48)


    헌법이 수호하여야 할 마지막 가치는 바로 인간의 생명이다. 사형을 통해 사람의 목숨을 박탈하는 행위는 완벽한 모순이다.
    게다가 그것을 판단하는 것 엿기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사형을 찬성할 수는 없다.



    ▣ 국민 감정이 사형을 원한다.

    가장 가슴아픈 현실이 바로 이것이다. 국민이 살인을 원한다라는 폭력적 사상.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1945년(46년인지..) 일본의 형법 개정시에,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당시 일반적인 시민의식은 간통을 범죄로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약 80% 였지만, 폐지했다. 당시 한 형법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법, 특히 형법은, 반드시 평균화된 일반적인 국민의 법의식과 동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국민의식과 사회의 합의된 법의식의 발전이 더디거나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선도하여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능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일본은 간통죄를 폐지하였다.

    사형에 대해 그것이 필요하다는 국민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살해하도록 허락하는 우리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몇십년간 보아온 국민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사형을 없애고 형법이 국민의식수준을 선도한다면, 사형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일보의 이 기사가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마치며.

    우리나라에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수가 자그마치 89개라고 한다. 지나치게 많다. 군사범죄를 제외하더라도, 41개다. 너무 많다. (그나마도 통계를 위해 줄인 것이 저 정도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살인을 부른다.
    어쩌면 가장 제도화된 살인인 사형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사형제를 공식 폐지한 나라는 1977년 16개국에서 2005년 현재 86개국으로 크게 늘었고 10년 동안 한 번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사실상의 폐지국'까지 합하면 128개국에 이른다.
    사형제도가 폐지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하여 헌재 조승형 재판관의 의견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고금을 통하여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쟁이 이어져 오는 동안 오늘에 이르러서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제도를 폐지한 국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사형존치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드물며, 다만 정치·사회·문화적 여건으로 보아 사형폐지는 시기상조라고 하거나 단계적인 폐지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사형폐지의 당위성만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독재와 독선으로 일관하였던 헌정사를 마감하고 이른바 문민정치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으며, 남녀고용평등, 노사공존, 각종 복지제도를 과감하게 실시하여 적절한 소득의 재분배, 빈부격차와 계층간 위화의 해소 등 국민총화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각 종교와 자선단체의 노력으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형수의 사면을 원하는 등 가해자를 용서하는 피해자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등 귀감이 되어 국민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시민적·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협약(제6조 참조), 유럽인권협정인 인권및기본적자유보장을위한협정(제1조 참조)에서 사형제도의 폐지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들 협정에 가입한 국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아직도 존치론이나 시기상조론 및 단계적 폐지론을 고집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 우리 헌법재판관은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여 과감하게 사형제도가 위헌임을 선언함으로써 사회개혁에 선도적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으로 믿는다.

    (헌법재판소 1996.11.28, 95헌바1, 판례집 제8권 2집 , 564-565)



    분명히 이 글을 올리면, 너도 당해봐라라거나, 당하면 저런 소리 못한다라는 저주에 가까운 말이 들리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침묵할 수도 없잖은가?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사형의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에게 우선적인 지지를 보낸다.

    민주노동당의 노회찬의원은 공식적으로 사형에 반대하며, 다른 대선 주자들은 아직 이에 관하여 구체적 언급은 거의 없다.

    민주노동당은 사형제도의 폐지를 당론으로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12월에 유인태 의원의 대표발의로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을 제출했으나, 지금까지 의결은 커녕 공식적인 심의 조차 한번 열린 적이 없다.

    한나라당의 big 2 대선 주자는, 이명박씨는 공식적으로 존치 의견이며 박근혜씨는 마지노선, 상징적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역시 존치론. 지금은 탈당해서 범여권이지만 손학규씨는 시기상조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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