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신문에 매우 흥미있는 기사가 하나 떴다. 구글이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며 한국에서의 동영상 업로드를 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

구글이 유튜브를 16억달러나 들여 인수한 것은 지난 2006년 10월 9일. 한 작은 창고에서 장난삼아 만들어진 유튜브는 지금까지 수억명의 네티즌이 동영상을 보기 위해 접속한, 동영상 커뮤니티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구글의 레이철 웨트스톤 부사장은, 유튜브의 이번 조치에 대하여 장문의 글을 써서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는 그 글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강한 신념을 피력하며 한국에서의 동영상 업로드시 개인확인을 요한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구글의 이러한 조치로, 전세계에서 (구글 유튜브에 접속이 가능한 모든 나라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동영상의 업로드가 불가능한 국가가 되었다(물론,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른 방법으로 우회적인 동영상의 업로드는 가능하다. 이번 조치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인 조치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상의 익명성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안인, 제한적 본인확인제나, 실명제 등이 왜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심각한 "민주적 절차의 부재"로 인식되는 것일까?

인터넷 실명제란, 인터넷을 사용함에 있어 실존하는 본인의 명의로 이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원칙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명제는 지난 1일부터 구글에 대하여 시행되었고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오늘의 조치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과연 인터넷에서 실명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또한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일까.

히 실명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무분별한 악플과 무책임한 소문의 확대 재생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무분별한 악플과 주민등록번호의 도용을 통해 인터넷이 더렵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예인의 자살 등 사회문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터넷을 실명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서 인터넷상에서의 개인책임에 대한 의식을 고취하고 사후 추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실명제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른바 포털에서 제한적본인확인제라는 것을 시행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악플은 줄어들고 있지 않고 인터넷 역시 그대로라는 점은 실명제가 과연 정답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오히려, 인터넷 사용자에 대한 홍보와 교육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인성교육의 확대가 인터넷 정화에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준다. 악플에 의한 자살이 문제라면, 악플 따위는 없었던 지난 시절에 발생한 자살은 어떤 이유였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인터넷 악플로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가 과연 악플이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역시 남는다. 정확하게는 악플 따위에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여 자살에 이르는 것이 과연 건전한 사회의 건전한 공적 인물(공인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公的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므로, 연예인 등에는 부적합한 말이 된다. 연예인은 유명인이나 널리 알려져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라는 뜻을 지닌 용어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공공의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인물이라는 뜻으로 공적 인물이라 칭하기로 한다)인가의 문제에서 더 중요한 해결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본다.

익명성이라 함은, 거대한 군중의 일원으로서 개인의 특성은 감추어진 채 이루어지는 일련의 집단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익명성은 도시화의 발달과 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어떠한 구심점 없이 존재하는 대중의 몰인격적 표현방식의 하나이다. 익명성의 소중함은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와 결과로서의 무책임성이 아니라, 사태나 현상에 대한 개인의 능동적이지 않은 소극적 대처에 대한 대중이라고 하는 울타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보호를 의미한다.  즉, 익명성은 우리를 무책임한 무법자로 만들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안전한 사회의 소극적 구성원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도구다.

물론 익명성은 감추어짐의 특성에 따라 무책임한 탈법적인 소수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강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자로부터 약하지만 다수의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구글의 부사장이 밝히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보호장치로서의 익명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익명성의 보호막은, 우리로 하여금 대중의 목소리에 한 축을 담당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안전하게 발설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안전하게 자신의 의견을 대중의 힘을 빌어 표현한다는 것이 21세기에 필요한 표현의 자유의 민주적 정의라고 한다면, 익명성을 고수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익명성에 따른 폐혜를 무시할 수 많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익명성의 내제된 속성에서 나온 악한 습성이 아니라, 사회적 미성숙의 결과물일 뿐이며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제도적 한계가 가진 속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주민등록번호는 정부의 행정상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사용되고 있고, 초딩이라고 표현되는 어린 아이들의 인격형성 기능의 부재는 이미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구글의 이번 조치는 매우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웨트스톤 부사장의 표현의 자유를 향한 구글의 작은 한 걸음에 관한 글이 우리 정부에게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칙과 진로를 설명해 주는 계기가 되길 빌어보................................................지만,






MB 정부가 언제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있었는가.

그저 유튜브에 뿌려진 수많은 포르노를 보며 흥분이나 하지 않았으면.


자넷 리의 가슴이 부러우신 국회의원님들. 인터넷의 사용 용도가 이러한 자들이 만드는 법률이 우리의 인터넷을 깨끗하게 하신단다. 왼쪽부터 한선교(한나라당), 이한구(한나라당 대구수성갑) 의원, 엄호성(한나라당 최고위원)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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