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 프라이버시 침해하는 병원 >


지난 2월, 행정자치부의 CCTV관련한 2007년 업무보고를 비판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의 조속한 입법을 추진하라고 촉구한 적이 있다.<관련 포스트 클릭>

중간에 쉴틈 없이 터졌었고 이번에 또 터졌다. 개인정보 유출 사건.

내가 분명히 말했던 것은, 행자부의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노력 회피로 인하여 다른 부처의 소관분야 개인정보보호는 물건너갈 것이라는 취지로 글을 썼다. 이번 사건 역시 동일한 취지로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의료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제19조 (비밀 누설 금지) 의료인은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발표하지 못한다.


이 외에도, 의료기사에 관한 법률 등 의료관련 법령에는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밀누설 금지조항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깝다.

의료, 조산, 간호를 하면서 알게된 다른 사람의 비밀이라는 잣대는 결코 우리의 privacy를 위해서는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 예컨대 타인이 알고 사용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는 전화번호이거나, 타인이 알고 불러주기 위한 이름 등등의 개인정보는 비밀에 속하지 않고 이러한 것을 발표한다거나 누설하는 것은 전혀 "치료를 하는 중 알게된 비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건과 같이 치료전, 치료후의 모습의 경우 "치료를 하면서 알게된 비밀"이 아니라, 치료를 한 결과로 발생한 치료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비밀 누설 금지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물론 이 것은 해석의 관점에 따라 바뀔 수는 있다)

개인정보의 보호는 개인정보를 이용한 금전적 이익을 control해야 한다거나 정보주체에게 수치감을 주거나 불측의 손해를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이미 보호받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개인정보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privacy는 "그냥 아무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그것이 가치가 있다거나, 아니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놓아두는 것으로서 그의 자유를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단계 더 나아간 개인정보는 포기할 수 있는 부분도 포함하는 개인에 관한 모든 정보를 말하며, 그 처분 역시 자유로운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이 직접 그 모든 권리를 포기하더라도 국가는 이를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그러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현행법상 거의 없다.
단지,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일부 영역에 관한 개인정보보호만을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의 보호에 관한 기관으로서 각 분야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관계 법령의 개정 또는 제정을 촉구하여야 하고 이에 따라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여러 법령의 개정이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런 법령은 없다.

심지어는 사생활이라고 번역되는 privacy에 관한 규정도 겨우 122개 조문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미 1974년에 Privact Act를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세계최초의 개인정보 관련 법률은 스웨덴의 Data Act(원어로는 Datala라고 한다. 1973년에 제정되었으며, 현재는 1998년에 Personuppgiftslag(Personal Data Act 1998:204)로 개정되었다)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행정자치부는 제발 딴 짓거리 하지말고 이 문제 부터 해결하기 바란다.

행자부가 올해 개정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CCTV관련 규정을 찾아보면 조악하기 그지 없다.

개정된 내용에서 CCTV관련 규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4조의2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등) ①공공기관의 장은 범죄예방 및 교통단속 등 공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행정절차법」 제2조제6호에 따른 공청회(이하 "공청회"라 한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를 거쳐 관련 전문가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수렴한 후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할 수 있다.
  ②설치된 폐쇄회로 텔레비전은 설치목적 범위를 넘어 카메라를 임의로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어서는 아니 되며, 녹음기능은 사용할 수 없다.
  ③공공기관의 장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하는 경우 정보주체가 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기재한 안내판을 설치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1. 설치목적 및 장소
  2. 촬영범위 및 시간
  3. 관리책임자 및 연락처
  ④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국가중요시설 중 원자력발전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에 대하여는 제3항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⑤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안내판 설치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제4조의3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및 관리에 대한 위탁) ①공공기관의 장은 폐쇄회로 텔레비전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사무를 위탁할 수 있다.
  ②제1항에 따른 수탁기관의 자격요건, 위탁절차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부칙

제2조 (폐쇄회로 텔레비전 설치에 관한 경과조치) 이 법 시행 당시 이미 공공기관이 설치한 폐쇄회로 텔레비전은 이 법에 따라 적법하게 설치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설치·운영 및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장은 제4조의2제3항의 개정규정에 따른 안내판을 이 법 시행일부터 3개월 이내에 설치하여야 한다.

이건 가히 눈가리고 아웅하겠다는 것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행정절차법에 의한 공청회를 실시하는 것은 좋다. 앞으로 그리하겠지.
그렇다면 물어보자.

  1. 이미 설치된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2. 설치된 CCTV를 이전하여 설치하는 경우에 관한 규정은 왜 없는가?
  3. 6개월의 경과조치 후에 시행하는 이번 개정에서 유독 CCTV만을 3개월 더 유예기간을 두어 자그마치 9개월의 경과조치를 두는 합당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회의록에도 명확한 이유는 없어보인다. 물롯 소위원회 회의록에도 별다른 소리 없다. 뭐 그 다음의 전체회의는 말할 것도 없고.

설치 라는 단어를 "설치 또는 이전"이라고 고치는게 그리 머리써야 하는 것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이미 7만개나 달아놓고는 겨우 1%도 안되는 4000개의 범죄예방용 CCTV때문에, 그 실효성도 의심되는 범죄예방용 때문에 뭔 헛짓거리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은 나머지 6만개가 훨씬 넘는 공공기관의 CCTV는 예비적 범죄자인 국민 감시용 이외의 용도는 없는 것인가? 4,000개의 범죄예방만이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면, 나머지는 나를 범죄 또는 못된짓을 벌이고 있는 미래의 나쁜 놈으로 이미 의제하고 있다는 소리인가?

이전관련규정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아무도 지나지 않는 산꼭대기에 CCTV를 설치하고, 2~3개월 후에 적당히 쓸만한 곳으로, 반발이 없을만한 곳으로 이전하여 스리슬쩍 운영하면 된다는 소리다.

위탁관리는 더 웃기다. 공무원 의제규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공공기관으로부터 CCTV의 위탁을 받은 자와 그 종업원에 대한 공공기관의 감시 감독규정은 두고 있지도 않다. 벌칙규정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작태도 웃기지만, 이거 하나 추가해 놓고 박수치는 행자위 국회의원들도 불쌍하기는 매한가지.


개인정보보호라는 말은 많이 듣고, 떠들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는 아직도 멀었다.

일의 앞뒤도 못 맞추면서 무슨 짓인가.

벌써 2004년부터 '각 분야별 개인정보보호법제 정립'이 필요하다고 소리질렀던 나는 병신인가?

90년대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하라고 소리치던 그 많은 시민단체들은 지금 뭐하나?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제 6월 13일은,  (1) 2007.06.14
알박기 하는 시민단체?  (2) 2007.06.13
1987년 6월 10일. 6.10 민주항쟁  (3) 2007.06.08
선거법 위반한 대통령  (0) 2007.06.08
술 좀 깨자  (2) 2007.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