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냐 넌? >

아침부터 중앙일보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고 하길래 가 봤더니 이 기사다. 태아를 어느 시점부터 사람으로 볼 것 이며, 어느 시점부터 태아인가의 문제.

사실, 이 문제가 최근에 문제된 것은 아니다. 이미 로마시대부터 이 문제는 법학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우리 민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랜 논의가 있었는데, 현대의 법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각국의 사회문화적 성격에 따라 대부분 정리가 되었고 이에 따라 각국은 확립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국마다 그 기준은 다르지만 충분한 논의가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각국의 다수설과 판례는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 민법에서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제3조)고 정하여 출생과 사망이 사람의 시기(始期)와 종기(終期)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문제는, 그 출생이라는 사실을 어느 시점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이며, 언제부터가 사람이 '죽었다'라고 할 수 있는 시점인가이다.(주의할 점은 사람의 권리의무는 출생신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주어진다)


기사에서 보다시피, 우리나라는 진통설(분만개시설)이다?

정확하게는 주기진통설이다. 출산을 위한 '주기적인' 진통이 있는 그 순간부터 태아가 아닌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옳을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법조계에서는 거의 논란도 없는(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쓴 기자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또 다시 이로인해 불궈질 오해를 염려함이다.

법원이, 대법원이 사람이 무엇인지 여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견해를 밝힌다고 해서 그 사람의 또는 태아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저 사법 정책상의 문제에 불과하니, 그로 인해 인명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서는 안될 것이다.


▶ 사람이냐? 아니냐?

태아와 사람을 구분짖는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시점에 관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정자와 난자의 수정시기 - 수정설
  2. 수정난의 자궁 착상시기 - 착상설
  3. 착상 태아의 심장 박동시기 - 박동설
  4. 태아의 독립적 운동 시작시기 - 운동설
  5. 신체기관 형성의 완료시기 - 형성설
  6. 출산 전, 부정기적인 진통의 시작시기 - 부정기진통설
  7. 출산전, 주기적인 진통의 시작시기 - 주기진통설
  8. 출산을 위하여 자궁경부의 확장시기 - 출산개시설
  9. 출산 시작 후 태아의 신체 일부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 - 일부노출설
  10. 태아가 산모의 몸 밖으로 완전히 나온 시기 - 전부노출설
  11. 산모 밖으로 적출된 태아가 독립적으로 호흡을 시작하는 시기 - 독립호흡설

이 외에도 세분하면 더 많이 분류될 수 있다.(그건 만들기 나름 아닌가?)

일반적으로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기)진통설이 다수설이며 통설이며 판례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은 형법에서만 적용된다.
다시 말하면, 형사사건에서는 진통설을 기준으로 태아와 사람을 구분하지만, 다른 분야, 즉 민사사건에서는 다른 기준으로 이를 결정한다. 그것은 전부노출설이다. 이는 일본의 견해와 우리의 견해가 일치한다.

형법에서 태아완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중요성을 가지는 것은, 낙태죄와 살인죄의 구별 실익이 있기 때문이다. 태아를 죽이면 낙태, 사람을 죽이면 살인이 되는데, 태아이냐 사람이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른바 죄형법정주의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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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인용된 사진



▶ 왜 하필 진통설?

민법에 비하여 좀더 앞선 시점을 사람으로 보는 형법의 태도는 불필요한 낙태를 회피하고, 태아의 생명을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필요에 의한 해석이다. 민법의 경우에서와 같이 전부노출설을 취할 경우 출산중인 태아(산모의 몸 밖으로 일부 노출된 태아)를 상해 또는 살해하는 경우 이는 낙태로 보아야 하고, 낙태죄의 경우에는 과실에 의한 낙태죄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태아의 보호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민법에서 인정하는 범위보다 '적당히'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고, 이러한 것의 대략적인 사회적 합의를 주기적 진통이라고 보는 것이다.

민법의 경우에는 권리의무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시작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부노출설을 취한다. 일반적으로 태아의 신체가 산모의 몸 밖에서 완전히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점이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의무의 주체로 보는 것이 구별의 편이를 위해 좋기 때문이다. 민법에서 사람의 시기와 종기가 중요한 것은 상속(태중에 있을 때 부친이 사망하는 경우) 또는 손해배상(태중에 타인의 상해로 인하여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다루지는 않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루기로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법률 관계를 열거하여 이에 대해서만 출생한 것으로 간주하는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

 
▶ 종교계의 주장은 무시된 걸까?


앞서도 밝힌 바와 같이, 대법원이 사람이 언제부터다 라고 한다고 해서 그 생명의 소중함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과학적인 상태 또는 지위가 변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해석은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여 국민으로 하여금 행위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법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러한 사람의 시작과 마지막을 나누는 것이 종교계가 말하는 것처럼 생명을 경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덧붙여, "가톨릭의대 이동익(신부) 교수는 "나라마다 배아 혹은 태아를 생명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다르지만 '태아는 사람이 아니다'고 단정짓지는 않는다"며 "충격적인 판결"이라고 밝혔다. "고 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태아는 법률적으로는 사람이 아니다. 태아를 뜻하는 embryo, fetus 등의 단어는 분명히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는모든 나라의 판례는 태아가 사람이 아니므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되지 않는 다고 하고 있다.(독일, 일본, 프랑스 등이 우리와 같은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

의학계와 종교계에서는 어떻게 이를 해석하는지 자세한 기사는 나오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대법원의 태도는 법조계에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일반적인 것이다.

종교계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보호의 대상에 대한 착각이라고 본다. 법률은 보호의 대상이 사람과 태아를 모두 보호하도록 하고 있는 현재의 태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형법과 민법은 태아와 사람을 동일하게 보호한다. 하지만 형법의 입법목적상,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신중할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양자에 대한 평가를 달리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구별은 보호의 수준을 달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자에 대한 대우를 달리하겠다는 것이다. 피의자 처우에 관한 것과 피해(예정)자에 대한 보호수준의 차이로 이를 나눌 것은 아니다.

▶ 사족

중앙일보의 이 기사는 법학에서 논의되던 것을 판례의 예를 통해 밝힌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민사와 형사의 다른 관점에 대한 소개가 없어 아쉽다. 또 종교계의 이러한 반발과 법학계의 주장 등 상호간의 평가에 대한 논쟁은 도외시하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단순한 한두번의 인터뷰로만 기사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기자가 쓴 내용의 대부분은 이제 갖 법대에 입학한 신입생도 쓸 수 있는 내용이다(태아의 법적지위는 민법총칙에서 배우고, 민법총칙은 법학통론 또는 법학일반론 이후에 가장 먼저 또는 그와 함께 배우는 첫 법학과목이다).

간만에 눈에 띠는 기사가 이토록 부실한 것이 안타까울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