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Posted 2009. 6. 11. 17:06


2009년 대한민국의 광장 민주주의에 대한 몇가지 단상.

어제는 6.10 항쟁 22주년 기념일이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당겨진 불씨는 6월10일의 넥타이부대의 등장과 이한열 열사의 사망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최대 정점을 이루었던 그날.

2년전 20주년에 심상정 前의원은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었으나 경제적 민주주의의 달성은 아직 멀었다고 술회했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렇게 이루었던 정치적 민주주의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2009년의 여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처럼 갑작스레 찾아왔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하지만, 우리도 몰랐다. 그 피가 바로 우리 전직 대통령의 피일줄은.
노무현의 죽음으로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그가 재직했던 그 기간동안의 우리 민주주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하는 시도가 촉발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일컬어지는 이명박 정부의 현재에 비추어 많은 시사점을 가짐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란, 단지 적법한 시민권을 가진 시민에 대하여 평등한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넓게는 국가 또는 그 유사한 조직의 주권(主權)이 그 정당한 구성원(국민)에게 있고 그것을 행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즉각적인 민의의 발현과 반영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규정짓는 척도라고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정부와 국회 역시 민의(民意)의 발현으로서의 선거를 통하여 구성된, 이른바 민주적 정부다. 하지만, 그것이 곧 현재의 민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에게 과연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부가 존재하는가의 의문에 다다르게 한다.

좀 더 정리된 용어로 표현하자면,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했으되,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과연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가의 의문점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주권자로서의 국민의 의사의 출발은 선거이고, 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들이 그들을 선출한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목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룩된 국민의 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된 사회로의 진입과 유지라고 한다면, 우리는 겨우 민주주의의 시작을 가진, 매우 비민주적인 사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서울광장의 예에서도 보듯이,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의 비민주적 행위에 대해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여야 하는 가는 자명하다.

하지만, 현실계에서 그들은 여전히 권력자(주권자는 아닐지 모르겠으나)이며 공권력(역시 주권의 표현형태로서의 공권력이 아닌)의 주체이고, 시민은 그 객체로서 존재할 뿐이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구성된 민주정부를 가진지 겨우 십수년이 흐른 지금(개인적인 평가이긴 하나, 나는 김대중정부부터를 민주정부로 본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 후술하기로) 이 정도의 민주주의도 어느 측면에서는 과분하다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불과 2년전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이룩한 민주적 절차아 현실에 비해 현저하게 후퇴한 작금의 상황은 과연 현재의 정부가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은 갖추었으되, 과연 그러한 능력이나 의지가 있다고 봐야 하는지 의심스럽다.


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은 그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는 후불제라고.
우리는 우리의 민주적 절차를 통한 비민주적 선택에 철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