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나

Posted 2010. 6. 3. 15:20

6월2일 지방선거가 끝났다.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가 한나라당의 참패, 그리고 민주당의 약진, 그리고 또한 친노세력의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럴까

그 수 많은 설화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풍(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에 오세훈과 김문수가 재선되었다.
혹자는 그것을 진보신당의 패착이라고 하고, 혹자는 서울 시민의 준엄한 선택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할까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의 가장 큰 발견은
강남불패의 확고한 재발견으로 규정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기존의 강남불패와 비교하여 더욱 놀라워진 것은 단순한 강남 불패의 신화가 아니라,
강남의 확대와 재조정이라는 역학적 강남구조의 변경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초구 일부의 이탈과 강남구의 재결집
그리고 강남의 아류로 불리웠던 지역들의 강남화 열망의 정치적 발현

이러한 구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강남구와 서초구의 구청장 선거가 아닐까.

강남구는 기존의 구청장을 배제하고 강북구 부구청장 출신의 여성을 후보자로 내세웠다.
강남구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의 무모한 공천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현구청장인 맹정주 후보의 경우, 이렇다할 비리도, 실정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받지 못했다.
과거 강남의 지형적 조건이 한나라당에서 깃발만 꼽으면 된다는 정서에 힘입어 그동안 전혀 이렇다할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한 구청장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논리가 가능할지 모르나, 이는 강남구민의 needs가 무엇인지 모르는 처사다.
강남구의 구청장에 대한 구민들의 요구는 매우 간단하다. Let it be.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충분한 재정과, 충분한 지지를 보내줄 터이니, 아무것도 하지만고, 그저 심심풀이 놀이 하듯 그 돈 가지고 알짱거리되 방해하지 않는 구청장을 원한 것 뿐이다.

강남이 지하철을 원하는가? 아니다.
강남이 특목고를 원하는가? 아니다.
강남이 격차해소를 원하는가? 아니다.

충분한 재정을 쥐어주니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는 것 외에는 없다.
이런 실정에 맹정주 전 구청장이 한 일이라고는 이렇다할 치적이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이건 내가 강남구에만 20년 넘게 살아온 경험이다)
결국 엉뚱하게도, 이 지역의 공천은 강북구 부구청장 출신의 신연희 후보가 받아버렸다.

실제 강남의 정서상, 강북구에서 훌륭한 일 많이 한 사람의 출마는 한나라당의 엄청난 패착이다.
강북에서 하던 짓 하면?
강북에서 ㅅ하던 것처럼 주민들 대하면?
강남은 그런거 못참는다.
아무리 혁신하고 개혁해도 싫은 건 어쩔수 없다는 것이 강남구다.
지금 불편해 보여도 그건 니들이 차가 없어서 불편한 거고,
아무리 없어보여도 여기 땅 한평이 니들 땅 100평보다 비싼 건데,
그 윗동네에서 한 경험은 물로보인다.

그런데 당선되었다. 신연희 후보가.
공약은 과연 주효했을까?
(나 조차 보지 않은 공약을 무슨 검증....)
아니다 뻔한 공약이었다. 뻔한.

1. 교육명문구의 위상을 더욱 높이겠습니다.
-> 사교육 만세 삼창을 하시겠다는 거다. 묻지말자.

2. 강남구의 자존심, 행복 복지로 돌려드리겠습니다.
-> 어짜피 관심 없다. 이미 잘 살고 있으니까내 복지는 내가 한다.

3.  강남구 주거환경 개선 사업, 주민의 의사를 존중한 주민참여 방향으로 풀겠습니다.
-> 재개발 만세

4. 강남이 서울의 경제를 강력히 견인하고 문화관광의 중심지로서 실질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미래 도시기반을 조성하겠습니다.
-> 관심 없다.

여기저기 노후화된 부자 아파트 재개발 할 수 있게 하고, 집값을 지켜주어 다른 동네 애들이 부러워 하도록 만듦과 동시에,
개포동 학원가의 활성화를 통한 명문대 입시 성공을 이룩하고 남는 돈으로는 남들 다 하는 복지와 경제개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땡큐.

그런데 당선이다.

1. 재건축 마무리를 통한 명품도시로의 재탄생 
2. 최고인재를 키우고 평생학습의 장이 펼쳐지는 대한민국 제1교육도시 강남 
3. 재래산업과 미래 지식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강남 실현
4. 아름다움과 쾌적함이 함께 하는 제1 웰빙도시 건설
5. 보육과 경로시설이 풍부하고 안전한 도시, 강남 실현

위의 신연희 당선자 공약을 좀 더 노골적으로 풀어보았다.....가 아니라 맹정주 후보의 공약이다.
재건축이라는, 교육도시라는, 좀 더 노골화된 표현 이외에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게 그거라는 소리다. 
게다가 맹정주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며,
당선 후 주민들이 원하는 당으로 가겠다는 웃긴 공약까지 내세웠다.

그럼에도 그의 공천탈락이나 낙선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신연희 후보가 강남 주민들의 정서나 정치적 관심에 그다지 부합하는 후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강남에서는 개가 아니라 무엇을 가져다 놔도 한나라당이 당선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효과는 서울 시장 후보의 표 쏠림에서도 드러난다.
무상 급식 따위가 표를 좌우할 정도의 관심을 끌 수도 없는 것이고,
(이 동네는 너가 굶는 건 관심도 없다. 무상 급식 그거 얼마나 든다고. 그거 하면 되는 거다. 서울시와 상관 없이 강남구는 그냥 하면 된다)


아무튼, 전체적인 표의 향방과는 관계없이 강남의 극소수 존재한다고 알려진 좌파들은 뻥한 가슴 부여잡고 4년 더 살면 될까
아니
우리는 그냥 살면 된다.
어짜피 새 구청장도 별로 할일 없다는거 알고 있으니까.
다만, 서울 시장의 향방을 우리가 갈랐다는 사실에 위로 내지 비난 받으며 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집값은 국내 최상위권을 유지할테니 말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에서 계획된 
수많은 건설붐은 강남에서 역시 꽃피울 것이고,
신연희 구청장은 손안대고 코풀기 식으로 그냥 남은 돈으로 심시티 하듯, 위룰 하듯 놀다 가시면 그만인 것이다.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더 의미가 놀랍도록 확실하다.
엎치락 뒤치락 하는 선거 판세를 비웃기나 하듯, 전체 평균에 비해 엄청난 표차의 강남선거 결과를 보라.
< 개표 결과 보기 >

물론 35% 정도의 한명숙 득표는 엄청난 결과다.
하지만, 전체 표차를 확고하게 뒤집어버린 그들의 힘은 여전하다.
이전 공정택의 당선에서 보았듯이, 강남이 이미 서울을 지배한다.
무상급식이니 하는 따위의 아랫것들이나 도와주자는 공약가지고는, 노무현 향수와 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건
들리지 않는 공허한 외침일뿐.

아무것도 해 놓은 거 없는 오세훈이 당선되는 것을 보면, 역시 강남이다 싶을 정도다.

진보신당이건, 민주당이건
다 놀아났다는 것 밖에는 없다.
유권자 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수 많은 자본주의에 특화된 레세뻬族들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서울에서의 승산은 없다.
서울에서 승산이 없으면 경기에서 승산이 없고
나아가 대한민국은 변하지 않는다.


진보의 가치가 얼마나 옳은 것인가를 주장할 시기가 아니라,
보수의 가치가 얼마나 확고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선거가 되었길 빈다.

이번 선거의 패배자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강남이 아닌 그 모든 자들이다.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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