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가 정답일까?

Posted 2010. 7. 8. 16:54


최근에 연이어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력 사건 때문에 이른바 화학적 거세라는 새로운 조치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얼마전 국회에선 이른바  "화학적 거세 법안"이 통과되었다고도 한다.


화학적 거세(化學的 去勢) 법안

- 일반적으로 화학적 거세법안이라고 불리우나, 정식 명칭은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로, 한나라당의 박민식 의원의 대표발의로 2010년 6월29일  국회 제291회 제8차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률안은,(이하 내용은 법안 제안이유임)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성폭력범 중 특히 13세 미만의 아동 성폭력범에 대하여 강력한 처벌이 여러 특별법에서 시행 중이지만, 1년 이내 재범율이 40%에 이르는 등 재범방지에는 한계가 있어, 아동에 대한 성폭력범은 성인에 대한 성폭력범과는 다른 정신적·사회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므로 강력한 처벌로 일관하는 것보다는 범죄자 특성에 맞추어 처우를 달리하자는 것임.
잠재적인 피해자인 우리 어린이들을 두텁게 보호하기 위하여 아동 성폭력범에게는 “처벌보다는 치료”를 해주거나 양자를 병행하는 것이 재범율을 낮추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여러 선진국의 연구결과이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97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에게 성욕을 조절할 수 있는 호르몬 주사를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약물치료요법(일명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을 심리치료와 병행하고 있는데 아동 성폭력범의 재범율을 낮추는데 현저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어, 이와 같은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에게 재범율을 낮추기 위하여 심리치료 등과 더불어 약물 치료요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실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성범죄자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통한 대처에 관해서는 일응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이나 그 사회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나 검토가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느정도이며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어느 수준인지의 문제는 좀 더 깊이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여담으로, 이런 점에 있어서 법안의 발의한 박민규의원실에서 관련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는 사실은 매우 환영할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해당 연구보고서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서는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부분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입법활동으로 이어져 실제 법안이 국회를 통화했다는 사실은 향후 입법과정에서 매우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학적 거세법에서는 아동성범죄자에 대하여 화학적인 방법으로 성충동을 억제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대하여 단순한 처벌이 아닌 다른 방법을 모색하겠다는 자세는 매우 환영할만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분명히 그 한계와 처우의 문제에 있어서 몇가지 검토하여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화학적 거세는 결코 처벌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학적 거세는 법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일종의 "치료 요법"이다.
화학적 거세는 처벌이 아니며 치료의 한 방법이므로, 당사자에 대하여 강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대상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알려진 약물의 주사 이외에 심리치료를 병행하도록 하고 있다. 법안에서는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을 시행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다음 과 같은 조건을 열거하고 있다.


  1. 대상자의 동의가 있을 것
  2. 대상자의 비정상적 성적 충동과 관련된 것으로서 대상자의 심각한 질병, 정신적 장애 또는 고통을 방지·치료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써 의학적으로 알려진 것일 것
  3. 대상자는 25세 이상이어야 할 것
  4. 과도한 신체적·정신적 부작용을 초래하지 아니할 것
  5. 의학적으로 알려진 바대로 시행되어야 할 것

이러한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사자가 거부하거나, 당사자에게 질병 기타 다른 이유로 이 시술을 하기 곤란한 경우엔 적합하지 않다. 또한 화학적 거세 치료대상자가 그 치료에 관한 사항을 거부 또는 게을리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등 처벌을 수반하기 때문에 시행이 어려운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화학적 거세는 분명히 처벌이 아니라 치료행위다. 우리 형법에서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형벌의 종류를 9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제41조(형의 종류) 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사형
2. 징역
3. 금고
4. 자격상실
5. 자격정지
6. 벌금
7. 구류
8. 과료
9. 몰수

치료행위에 불과한 화학적 거세는 대상자의 동의를 요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신체적 기능의 저하를 가져오는 의학적 행위라는 점에서 그것이 치료행위인가의 여부에 대해서도 의문은 있다. (이른바 치료행위라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치료행위로 인하여 신체적 기능의 향상을 가져오는 결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비용을 위한 성형수술이 치료행위가 아니고 그에 따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당사자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고 그저 당사자의 의사에 맡겨져야 한다. 이를 강제하기 위한 행위는 또다른 인권 침해행위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한계의 극복을 위해서는 다른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

분명히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를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모색은 매우 환영할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과연 정신적 질환 또는 신체적 질환에 의한 범죄인가 하는 것이다.

화학적 거세를 인정하고 이를 시행한다는 것은 그 행위가 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일종의 병질적 반응이라는 것인데, 이렇게 된다면 그 행위의 가벌성이 문제된다. 병에 의하여 하게 된 피할 수 없는 행위가 어떻게 처벌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법률에 의하여 치료의 대상으로 인정된 행위를 처벌의 대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음주운전과 같이 그 원인행위를 스스로 유발한 경우 그 가벌성을 원인행위에서 찾는 것은 문제가 없을지라도 스스로 그 병적인 상태를 유발하였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없는 미성년자 대상의 성범죄자가 가벌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한다.

다시말하면, 그 행위를 정신병 또는 기타 치료의 대상이 되는 병질에 의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형법상 책임조각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번에 통과된 법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형법 제10조에서 정한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검사가 치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여 심신미약에 의한 가벌성이 면제되는 경우를 미리 예상한 듯한 조문까지 마련되어있다.

화학적 거세를 도입하는 것은 분명히 형사적 대응이 아닌 의학적 대응이 필요한 성범죄자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분명 진일보한 점은 있다. 하지만, 화학적 거세를 인정한다는 것이 불러올 수 있는 질병에 의하지 않은 정상적인(?) 성범죄자의 심신미약 주장에 대하여 관대해 질 수 밖에 없는 길을 열어두엇다는 것도 피할 수 없는 비판이기도 하다.

생각건대, 화학적 거세를 논하기 전에 성범죄자 또는 그 외의 누범에 대한 교정행정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법무부의 무능 탓인지, 그것이 아직 우리 사회의 한계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일지는 모르나, 지금까지 밝혀진 교정행정의 수 많은 실패사례 중에서 단연 으뜸이 되는 것은 미성년 대상의 성범죄자의 누범화이다. 성범죄의 재범화에 대한 비난 보다는 교정행정의 철저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해결에 한 발짝 더 다가서는 길이 아닐까?



얼마전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택시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단행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이 조치를 보면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첫째, 수 많은 선량한 택시운전기사들을 예비적 범죄자로 몰아간다는 직업적 차별행위와, 두번째로, 처벌로 인하여 그 사람의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을 끝마치고 사회가 그들 역시 포용하여야 한다는 교정행정의 제1원칙의 위배와 일사부재리의 원칙의 위배, 그리고 전과자의 사회복귀를 저해하는 행정청의 무책임함 때문이었다.

화학적 거세의 도입에 대해 논하기 전에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가 만연하게 된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자 하는 행정기관과 정책결정권자들의 진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