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문국현'

4 POSTS

  1. 2008.12.18 재미로 보는 2008년의 정치, 2009년의 정치 -3 1
  2. 2007.12.18 정치적으로 울다 1
  3. 2007.12.18 노빠가 문국현님에게 보내는 변명. 27
  4. 2007.11.26 내일부터 시작이다. 1

오늘도 이어지는 2008년의 정치계 이모저모

어제 1,2,3번의 사건들이 현제 기득권층의 집권에 따른 권력기반 조성에 관한 사건들이었다면, 오늘 이어질 이야기는 그에 대항하는 反정권적 사건들이 주를 이룰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 총선 이야기는 하고 지나가야겠지.

누구나 이번 한해의 최고의 국내 사건으로는 (정치적으로마 본다면) 촛불집회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번해에 있었던 총선의 결과는 정말 많은 시사점을 준다.


4. 제18대 총선 - 한나라당의 승리.

4월에 있었던 18대 총선은 매우 기형적인 총선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여러가지 변수가 많이 있었는데, 여러명의 대선 탈락자-이인제, 권영길, 문국현, 손학규, 박근혜, 이회창, 등등-의 출마도 마찬가지였고, 민노당에서 갈려 나온 진보신당의 원내진출이 가능할지에 대한 여러가지 전망이 나왔다. 무엇보다,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전국구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원내진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또한 이른바 대운하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물론, 이재오 등 친이명박 계열의 심판은 물론 박근혜의 친박연대라는 희안한 정당의 출연 또한 엄청난 변수로 작용했다.

18대 총선 결과

결과적으로는, 민노당의 반토막, 한나라당의 완승(압승까지는 아니었다고 해도), 민주당의 턱걸이, 진보신당의 참패, 자유선진당의 선전, 친박연대의 반란으로 정리된 총선결과는 매우 암울한 것이었으나, 이방호, 이재오의 낙선과 진보신당이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점, 친박연대와 창조한국당의 선거자금관련 비리 등의 문제를 안고 출범한 18대 국회는 개원 초부터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한선교 등 탈당파와 친박연대는 일괄적인 한나라당 복귀를 꿈꾸었고, 당선자 숫자에서 압승이 아닌 완승으로 만족해야 하는 한나라당 역시 그들을 함부로 내 칠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양정례 등 일부 당선자들의 비리까지 안고 가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다는 사실 때문에 아직도 이들의 원만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상컨대는, 18대 총선선거사범에 대한 사법처리가 완결되는 2009년 1월에는 어느정도 정리된 상태에서 일괄적인 타협이나 정계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총선의 큰 의미는, '돈선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전의 선거에서와 같이, 후보자가 뿌리는 그런 돈선거가 아닌, 다른 의미에서 돈선거의 의미가 컸다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를 중심으로 나타난 이른바 뉴타운 선거이다. 이 뉴타운 선거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노원구의 경우, 정치 신인인 홍정욱씨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 외에도 최대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동작구에서 정몽준이 손학규를 낙선시켰고, 서울 이외의 지방에서는 대운하 공약이 어느정도 먹혀들어간 선거라고 생각된다(특히 영남지역의 대운하 후보지에서 더욱 그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어느정도 세계적 경제불황이 점쳐지고, 서브프라임 이후 발생한 이른바 일본 엔화의 엔케리는 경제적 부담감을 증폭시켰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도 점차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해졌다. 이에 역대 정부는 겉으로는 부동산 거품의 제거나 부동산값 안정을 항상 경제목표로 제시하여왔으나, 이명박정부는 노골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세의 진정, 그리고 나아가 부동산 경기부양을 통한 경제 성장을 내세웠다. 비록 정책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외연상으로도 확연히 역대 정권과는 반대로 부동산 가격의 거품제거를 위한 노력은 없어졌다.

이러한 경제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믿고 있는 국민들 역시 민주화의 여부나 국가사회의 진보적 가치창출보다는 부동산이나 주식투자 등등의 재테크를 통해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욕망이 충만했고, 이러한 결과로 18대 총선은 돈선거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결과적으로는 모두 부동산과 주가에 선거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정도로 집값상승을 주도할 수 있는 후보가 어디서나 유리한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도 계속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위헌론이 급부상했으며, 이에 따라 정책 선거가 아닌 부동산 선거로 전락해 버렸다.

이재오와 이방호



18대 총선결과에서 진보 계열의 참패에 대해서는,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진 역대정권에서의 실정을 그 원인으로 찾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우세했다. 10년간의 진보의 집권기동안의 정치실험에서 국민이 만족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우경화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하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진보진영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민주화가 진전되고 인권 자유 등의 문제가 많이 해결되면서 유권자들의 관심이 실생활과 관련된 사항으로 옮아간 것이지 국민 대다수가 보수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10년동안의 정치실험에서도 바꾸지 못한 보수진영의 확고한 기득권지향성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들의 생존력의 결과였다고 본다. 또한 앞서 계속 설명한 바와 같이, 남들 집값은 다 떨어져도 내 집값은 올라야 한다는 개인적인 욕망의 분출이 낳은 기형적인 총선결과였다.


5. 촛불문화제에서 촛불집회로, 그리고 촛불시위로.

2008년 대한민국의 최대 사건은 역시 5월과 6월로 이어지는 촛불집회였다. 특히 6월 10일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에서 발생한 6.10항쟁 기념일의 촛불집회는 연인원 10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참여하며 최대의 정치세력으로서의 시민의 재탄생을 가져오는 성과를 낳았다.

5월 초, 몇명의 여고생들이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진 촛불집회는 이른바 광우병 쇠고기 수입 결정에 따른 반발에 따라 일어났다.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30개월이상의 미국산 소를 수입하기로 미국측과 합의하면서,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광우병에 걸렸을 수 있는 위험한 쇠고기를 국민에게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이 결정되자,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 분야의 반박이 이어졌고, 이에 대선에서는 선거권 조차 없었던 어린 학생들을 중심으로 청계천에서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게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초기에는 어린 고등학생이나 청년을 중심으로 시작된 촛불집히는 날이 거듭될수록 많은 인원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경찰은 강경진압을 통해 이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이미 새로운 시위아닌 시위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21세기형 web2.0세대인 젊은 학

6월10일 등장한 "명박산성"

생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제적인 동원이나 선동이 아닌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촛불 시위대는 그 중심세력이나 배후 조종 단체 없이 움직인 것이었으므로 경찰의 입장에서는 매우 통제하기 어려운 세력이었다. 더군다나, 쇠고기 이후 얻어진 힘을 바탕으로 시민들은 각 분야에 대한 새로운 이슈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정부조직개편이나 인권위원회의 축소 등 정부변혁에 대한 불만은 물론, 대운하와 747 및 FTA 등 대통령의 핵심 선거공약에 대한 반대의견이 자유롭게 쏟아져 나왔고, 결찰의 강경한 반인권적 시위진압에 관한 불만도 함께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첨단의 인터넷 환경은 시위현장을 생중계로 전국에 내보내며 생생한 목소리를 주류언론이 아닌 개인언론의 힘을 빌어 전달하기 시작했고, 각종 포털 사이트는 이들의 토론장으로 변해갔다. 이러한 와중에 특히 다음의 아고라는 이른바 토론의 성지로 급부상했고, 급기야는 국회 청문회자리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류 토론장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대선 당시 네이버는 평정되었다는 한나라당의 발언 영향도 있었던 만큼, 이번에는 다음이 네이버를 누르고 인터넷 토론 메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촛불집회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아고라의 미네르바가 등장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촛불집회는 비록 가시적인 성과(쇠고기 수입저지)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나,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것이다.

첫째, 선거권이 없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어린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하여 시작되고,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알려진 이른바 아줌마 부대와 각종 쓰레기들의 집합처라고만 인식되어져 왔던 네티즌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어 시민으로부터의 계몽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기존의 시위와 20여년 전의 6월 항쟁은 일부의 엘리트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여러 무리들이 시민의 침묵과 지지 속에 이루어낸 민주화라면, 2008

광화문에 운집한 시민들

년 촛불집회는 다수 민중의 각성에서 부터 시작된 이른바 "생활정치"로서의 민주화에 대한 시발점을 형성했다. 정치권의 행동이나 정권의 변화가 가져오는 생활의 변화에 둔감했던 것이 20여년 전의 민중이었다면, 쇠고기로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는 그러한 작은 사건에 대한 민중 스스로의 자각과 반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노무현정권에서부터 학습된 정권에 대한 반대 진영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실생활에서 적용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자발적인 정화의 시도였다. 기존의 시위에서 탈피하여 수십개의 구심점이 존재한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민중이 스스로 자성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더 한층 성숙된 정치의식가 함께 자정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는 끊임없는 토론이 이루어지며 스스로 그목소리의 방향성과 행동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이를 위하여 자제와 협력을 통한 공공선(共同善)의 구현을 위한 양보화 타협이 이루어졌다. 첫번째의 성과가 시민적 합의의 도출방식으로서의 하부계몽과 상향식의 의견표출이었다면, 이 두번째의 성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과는 그러한 공동선의 실현에서의 샐활로서의 민주주의의 현실화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구심점이나 중심된 조직은 없었다고 하나, 이러한 점이 민주적 합의와 행동의 다양화를 가속시키는 촉발제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나름대로의 판단과 논리로 무장한 시민세력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며 계속된 마찰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조화를 이끌어내며 상생의 길을 찾아갔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인터넷에서 두드러졌다. 촛불집회 어디에서건 "토론의 성지 아고라"의 깃발이 나부끼며 사람들을 인도했고, 아고라를 비롯한 인터넷은 토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이 와중에 많은 악플이나 악의적 글들도 올라왔으나, 시민사회의 주류는 이러한 악플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정화하며 민주주의의 참 가치를 실현하는데 주력했다.
세번째로는 언론 운동의 새로운 변화다. 촛불집회의 막바지에 나타난 조중동 등 기존의 보수언론에 반대하는 시민세력은 스스로 언론이 되어 블로그를 통한 사실의 추적과 분석을 효과적으로 이룩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미니홈피와 블로그는 더 이상 개인적인 일기장이나 고백의 공간이 아닌 개인을 중심으로한 독립언론의 형태로 발전하며 기존 언론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다음의 블로거 뉴스나 올블로그, 블로그코리아 등 메타들로그를 통하여 새로운 언론으로서의 개인언론이 탄생하고 기존의 언론이 하지 못한 언론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 이외에도 많은 이슈들이 촛불집회를 통해서 토론되며 이룩되어졌고 이러한 현상은 2008년의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촛불집회의 가장 큰 성과는, 첫째, 아래로부터의 자각과, 둘째, 생활정치인의 등장, 셋째는 21세기형 언론기능의 완성이었다.

정치적으로 울다

Posted 2007. 12. 18. 18:56


30년 넘게 살면서 정치적으로 울었다고 할만한 것이 모두 3번이다.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철없는 대학 졸업반인 나는,

맥주잔 높이 치켜들며 울먹였다.

김대중이 죽일 놈이건 살릴 놈이건, 수십년 이어져온 민주화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수없이 들었던 광주의 불편한 진실이 정의로 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혈기 왕성하고 정의가 아닌 것에 분노할 줄 알았던 20대의 나는 김대중의 당선으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울먹였다.




2002년.
대선에 노무현이 나왔다.
바보 노무현.
군복을 입고 있던 나는 그의 당선을 보며 또 울먹였다. 김대중이 못한 짓을 그 놈이 하게 될것이라고, 진짜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이불 뒤집어 쓰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했던 군인은 또 그렇게 울먹였다. 20대의 마지막 선거에서 나의, 그리고 노무현의 승리를 보며 나는 믿었다. 이젠 울지 않을 것이라고.


2004년.
바보 노무현이 또 바보같이 일을 저질렀다. 탄핵.
이제 30이 되어버린 나는 또 울었다.
소주잔 아래로 향해 그 잔 위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아직도, 이 열정이 남았구나 하면서 촛불을 들 수 없었던 나는 울었다.
국민이 아닌 민중이 되기 위해 울었다.




2007년
내일

또 한번 울게 될지 모르겠다.

왜인지 모르겠다.
왜 내가 또 '정치적으로 울어야 하는지.

또 한명의 바보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인지, 아니면......


문국현은 2007년의 노무현이다.

물론,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2002년에 노무현이 있었다면, 2007년에는 문국현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사람도 많지 않으리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었고, 누구도 당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고(문국현의 경우에는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또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희망은 준 사람. 그 사람은 문국현이고 그런 사람을 우리는 2002년에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눈물 흘리는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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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 우리는 노무현을 욕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때의 승리를 기억하며 그 때의 환희를 기억한다. 더욱이, 나는 아직도 그의 눈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또 기억한다.
수많은 그의 고뇌와 선택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왔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5년 후.

우리 앞에 문국현이 나타났다. 연봉을 10억이나 받는 유한킴벌리의 사장 그리고 킴벌리 클락이라는 거대자본의 동아시아 회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아직도 때묻지 않은 사람, 그리고 사람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그 사람 문국현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희망.....이었을까.

문국현이 보여준 희망 속에서 나는 노무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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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합당 발표 당시의 노무현


"나는 반대합니다."

김영삼과 노태우의 3당 야합에 맞서 홀로 손을 치켜들고 나는 반대합니다. 나는 반대합니다. 이렇게 외쳤던 노무현의 저 굳게 닫은 입술 처럼,

나는 노무현 속에서 문국현을 보았고, 문국현이 노무현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 처럼, 문국현은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것이라고 믿기도 했고, 현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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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실험, 그리고 정화되어가는 그 길의 한 복판에 노무현과 문국현이, 나란히, 함께 서 있다고 믿었다.

문국현 같은 사람이 1000명, 아니 10명만 있어도 우리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

그렇게 믿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불행하게도 나는 정동영을 지지하기로 했고, 그것이 부패와 반부패, 거짓과 진실의 싸움을 위해 내가 선택한 차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누가 나에게 왜 문국현을 바라보며 정동영을 지지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부끄럽게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싸움이 정의를 위한 싸움이라면, 나는 문국현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없이는 정의도 없다."


우리에겐 노무현이 두명, 아니 문국현이 두명이나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우리에겐 한나라당과 이회창, 그리고 이명박이라는 재앙도 주어졌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정의겠지만, 우리에게 정의는 너무 작다. 그들은 너무 강하다.

우리는 정의 이전에 진실로만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 서 있다.
문국현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과 수십년간의 천민자본주의 속에,
"경제"에 파 묻혀 버린 수단으로 전락했다. 경제에도 정의는 없고 힘만이 존재한다.

문국현님,

우리 시대가 낳은 불우한 영웅.

조조에 대해 누군가, "亂世의 奸雄이요, 治世의 能臣"이라 했던가.
우리 역사의 불행이 도 하나 있다면, 문국현이라는 사람을 치세에 만나지 못한 것이리라. 아니, 어쩌면 치세 였다면, 우리는 문국현의 존재를 끝까지 알지 못하는 불행한 역사를 짊어져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문국현의 미래에서 우리는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보았고, 그가 보여준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진실하긴 쉬울지 몰라도, 우리에게 아직 정의로움은 버거운 걸까.

정호승 시인은 그렇게 썼고, 김광석은 죽기전, 이렇게 노래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대한민국이라는 큰 산을 입에 물고 나는 작은 새, 문국현.

당신의 눈물 이제 강물 되고,

당신의 사랑 이제 노래가 됩니다.

꽃잎처럼, 뒤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사람이 희망이라는 그 말씀.

이 땅에서 이루시기를.



정의롭지 못했던 정동영 후보 지지자에게도 문국현은 희망이다.
나에게 정의가 있다면, 그리고 이명박이 저 편에 서있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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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너무나도 잘어울리는 사람,

문국현.

내일부터 시작이다.

Posted 2007. 11. 26. 15:53
공직선거법

제58조 (정의 등) ①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개정 2000.2.16>
1.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2.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3.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4. 통상적인 정당활동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59조 (선거운동기간) 선거운동은 후보자등록마감일의 다음날부터 선거일전일까지에 한하여 이를 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04.3.12, 2005.8.4>
1. 제60조의3(예비후보자 등의 선거운동)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예비후보자 등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2. 삭제 <2005.8.4>
3. 후보자,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가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드디어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른다. 드디어 내일, 공직선거법 제58조에 의한 각종의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 공직선거법에 의한 선거운동은 오늘 밤 24시 즉, 내일 0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드디어,

공직선거법 제93조에 의해 막혀있던 블로거들의 모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불법적인 선거운동이라고 인정된 행위가 모두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김연수씨가 올린 "대통령 이명박 과연 괜찮은가?"라는 글도 마음대로 올릴 수도, 퍼나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을 싫어하고 그를 낙선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봤을만한 자료이긴 하지만.

아무튼, 드디어 귀머거리,벙어리, 장님이었던 며느리 시대는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한편, 지금 이 시간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에는 11명의 후보가 후보자로 등록했고, 곧 2명의 후보자가 더 등록할 예정이다.

등록한 후보는,

(1)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2) 한나라당 이명박
(3) 민주노동당 권영길
(4) 민주당 이인제
(5) 국민중심당 심대평
(6) 참주인연합 정근모
(7) 창조한국당 문국현(이상 국회 의석수 순. 단, 참사람연합과 창조한국당은 의석수 1개로 동률로 가나다 순)
(8) 경제공화당 허경영
(9)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10) 한국사회당 금민(이상 정당명 가나다 순)
(12) 무소속 이회창

등이며

추가적으로

(11) 화합과 도약의 국민연대 이수성
(13) 무소속 황종국

후보가 등록할 예정이다.(앞의 숫자는 후보자 기호-예상)

이로서 모두 13명의 후보가 이번 대선에 참여할 예정이며, 23일간의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참고로 대통령 선거의 기탁금은 5억.
선거비용 상한액은 우리나라 인구 1인당 950원씩을 사용할 수 있으며 100만원 이하 단위는 100만원으로 올려 계산한다(공직선거법 제121조).

현재 선관위 홈페이지에 의한 우리나라 인구수는 49,198,310명이며 이중 유권자는 37,672,121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선거비용은 46,738,394,500원이며 100만원 이하 단위를 올리면 46,739,000,000원.

467억 39백만원이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