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명숙 전 총리의 블로그에는 실망스런(?) 글이 하나 올라왔고, 많은 블로거들이 이 글을 보고 추천했다.
올블로그에서만도 여러 사람이 이 글을 추천했고, 관련된 글들도 하나 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 전 총리의 말에 따르면, "한나라당 법안소위 의원들의 반대로 인터넷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행자위원회 전체회의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무산"되었으며, "공직선거법 관련법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 정개특위에서 논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제부터 한 전 총리는, 내일 드디어 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글을 올렸었다.
나는 믿지 않는다.
한명숙 전 총리는, 벌써 총리시절을 잊었단 말인가? 아니면, 국회의원으로서 적절한 입법절차와 그 기간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부터, 그 보좌진, 특히 한 전 총리를 대신해서(직접 올리지는 않을 것 아닌가? 혹시라도 직접 올리는 글이라면, 제발 빨간 이탤릭체의 글씨들은 좀 치워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글을 올리는 보좌진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보고는 있는지 제발 좀 물어보고 싶다.
이번에 한 전 총리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하는 그 공직선거법은 열린우리당 강창일의원의 대표발의로 상정된 법안이다( 의안 원문 보기 - 한글version | PDF version ). 이미 2007년 2월 28일 강창일 의원 등 20인(의원명단 - 클릭)의 의원이 발의한 것인데, 그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발췌
3줄로 요약해 드리자면,
1. 인터넷상의 선거운동은 항시 허용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광고는 현행과 같이 제한하고,
3. 인터넷 선거운동이 가능함에 따른 개인 실명 확인 절차를 도입
이렇게 요약된다.
내용이야, 우리가 익히 원하던 바로 그 것이니, 따로 설명을 하지는 않겠다만,
내가 한 전 총리의 순진한 노력에 별로 기대도 안할뿐더러, 그다지 눈물겨워 보이지도 않는 이유는,
한 전 총리는 과연 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오늘 법안심사소위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국회를 오래 떠나 국무총리로 일하는 동안에 국회의 모든 시스템은 잊었단 말인가?
한 전 총리와 네티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 법안이 처음으로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된 4월 18일의 행자위 회의록을 보자.
<
회의록 보기 - 클릭 >
회의록에서 강창일의원의 선거법 개정안은 45페이지 우측단 중간쯤 부터 겨우 1/4 페이지로만 소개되어 있고, 대부분은 국민투표법(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 헌법 개정 이외에는 해 본적도 없는)의 개정에 관한 토론으로 일간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한 전 총리의 말대로, "행정자치위원회의 의원들조차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히 몰랐다는" 것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날 행자위에서 논의된 공직선거법 개정안만 모두 3건이다. (노현송의원대표발의, 김기춘의원대표발의)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의하면, 이날 이 3개의 선거법에 대해 "상정/제안설명/검토보고/대체토론/소위회부"가 이루어졌다고 하고, 이중 노현송의원대표발의안에 대해서는 지난 6월 15일 법안심사소위에서 원안이 가결되었다.(당시 회의록에 의하면, 노현송의원안은, 제주특별자치구 관련 내용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내용일뿐 별다른 내용이 없는 법안이었다.(
회의록 보기) 노현송의원안이 처리된 후 회의는 산회되었다.)
한 전 총리의 말 그대로, 인터넷 선거운동에 관해서는 '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문제시 하거나 질의를 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혹시 보기는 하셨는지 모르겠다. 오늘, 법안심사소위가 있기전 지난 2차례의 회의에서 행자위에서 법안심사소위로 위임한 55개의 법안 중에서 이들이 몇개나 심사했는지 혹시 아시는 지가 궁금하다.
2일간의 법안심사 소위를 진행하고, 소위원장인 박기춘의원의 말에 의하면, "오늘 도저히 회의 진행할 수 없어서 더 이상 진행 못 하겠"을 정도로 심사하신게 몇개였는지 말이다.
18개다. 공교롭게도 십팔개 다. 십팔.
게다가 3개의 공직선거법 중 노현송의원안의 경우 회의록에도 나와있다시피, "이것을 안 해 주면 선거를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개의 법안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할까.
노현송의원안이 통과될 때까지 기다리는게 맞다.
동시에 1개의 법안을 2~3개의 법안으로 여러번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조합하여 상호 모순이 있는 경우의 법안을 조정하고, 상이한 내용을 통일시키며, 더 적절한 방안을 검토해서 개정하는 이른바 '위원회 대안'이 만들어지거나, 아니면, 이와 같이 한개의 법안이 통과될 경우에는 다른 법안은 기다리는게 원칙이다.
물론 이번과 같이 초미의 관심사의 경우이며 촉박하게 해결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즉, 이 3개의 법안 또는 노현송의원안을 제외한 2개의법안을 조정하여 위원회 대안을 만들고 그에 따라 의결한 뒤에 위원회의 대안으로 전체회의에 상정하여야 한다. 결국, 25일부터 겨우 선거법 개정협조해 달라고 한 전 총리가 아무리 전화 돌리고 핸드폰 때리고 문자보내고 "신명나는 로비" 해 봤자, 오늘 된다 안된다고 미리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말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정당한 절차대로라면, "공직선거법 관련법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되면 정개특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더 정당하고 옳은 일이 맞다. 단순히 지금 네티즌이 요구한다고 해서, 급하게 통과시킬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캐나다 선거법과 같이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위하여 투표일 당일에는 인터넷을 통한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방안(캐나다 선거법 제323조에 따르면 투표당일 인터넷을 통하여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정보가 제공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음)을 입법정책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쉽게 통과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게다가, 행자위에만 올라가면 법이 만들어지는가?
행자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더라도, 그 다음에는 법제사법위원회가 기다리고 있다.
체제,자구 심사를 거친 후에 간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또 법안심사소위를 거칠것인데, 과연 이번에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렇게 보면 한 전 총리가 진짜 순진해 보인다.
소박한 것인지....
자, 법사위를 지나면 드디어 간다.
어디로? 국회 본회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얼마나 잘 통과될까?
설사 이번주말에 총알 같이 법사위를 거쳐 통과되어 본회의까지 간다고 치자.
이번 국회 회기 만료일은 7월3일 화요일이다.
행여나, 한나라당이나 지금 저 따위로 이합집산 거듭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에서 열심히 땅땅땅 의사봉 두드리면서 법안 통과 시키겠구나. 대통령이 국민 담화를 발표해도 눈하나 깜짝 안하는 국회가, 그 선거법에 얼마나 열심히 매달리는지는 안봐도 눈에 선하다. 물론 그것이 표와 직접 연결이 되는 경우는 다르겠지.
이런 식으로 잘 통과만 된다면 다음 달 초에는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안된다고 확신했다. 왜?
지금 국회에 계류중인 공직선거법은 모두 몇개?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의하면, 2005년 8월 5일 부터, 93개 법안이 상정되었고, 이 중에서 5개만이 원안가결 또는 대안 폐기 등등 어떠한 방식으로든 "처리" 되었다.
(만약 이 시스템에서 검색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숫자가 잘못되었다면, 부디 한 전 총리는 국회사무처장부터 조져 버리시기 바란다)
아직 88개나 있는 이 법안들은 다 어떻게 할 건지? 내년 총선이 시작되면 이 모든 법안들은 임기만료로 인하여 폐기된다. 그만큼 우리 세금은 또 낭비되는 것들이겠지.
제대로 된 법안심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파행만 거듭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가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나 역시 한나라당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는 이번 한 전 총리의 노력은 성과는 없을게 뻔 했지만 일견 필요한 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그래도 쇼였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국회가 저렇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 열린우리당이나 한 전 총리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선거법은 분명 개정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혹시 개정된다면, 7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요구한 것 처럼) 임시국회가 열려 거기서 처리될 수 있을지 모르고, 아니면 보통 처럼 8월 중순 이후에나 있을 임시회에서 또는 9월 정기회에서 통과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인터넷에 만연된 네티즌들의 선거법 위반사례(?)는 온 인터넷을 뒤덮을 것이고 선관위의 속수무책 속에 선거법의 개정따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 뻔하다.
선거법이 개정된다해도, 그다지 바뀔 것은 없다.
선관위가 뭐라 하건, 그것은 이미 아무것도 아니다.
한 전 총리의 노력을 싸잡아 비난하거나 비판할 것은 아니지만,
어짜피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가 네티즌 표 몇장 얻어볼 것이라고 한 파렴치한 show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거니와, 현실적으로 개정이 어려운 일을 마치 한 전 총리가 노력만 좀 하면 다 될 것 같이 말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어쩌면 대책없이 인터넷에서 떠드니까 같이 부화뇌동한 보좌진의 의견에는 좀 귀기울이지 않을 필요도 있다고 충고하고 싶다.
마치 또 낚인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