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오늘도 군대다
Posted 2007. 6. 27. 10:13< 주적(主敵)이 없어 슬픈 군대 - 기사보기(클릭) >
요즘 기자들 참 편해졌다는 느낌도 가끔 든다. 사진은 제공해 주고 기사만 쓰면 되니 말이다.(사진찍는 기자는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소리인가? -_-)
군대에 군기가 빠졌다는 소리는 참 여러번, 오래, 많이 듣는다. 군대 동기들 또는 남자들끼리, 여자가 있더라도, 술을 마시러 가면 꼭 나오는 얘기가, '요즘 군대는....' 이거나, '내가 군대 있을 때...' 하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한산도 달 밖은 밤에 벙커에 쪼그려 앉아 레이션 박스 까던 이야기.
동아일보의 저 기자는 그 시절이 그리워 진걸까.
군대의 군기가 얼마나, 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시대가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며 개념이 변한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한참 발전할 길이 요원하던 그 때는 파쇼적인 군대문화가 필요해 우리는 벅벅 기어다녔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군사정권의 암흑기를 지내온 우리 사회는 군대문화의 오랜 장점도 물려받았을지 모르나, 그 문화에 쪄들어 버린 험악한 파시즘이 곳곳에 파고들어버린 병영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이 유린되고 침해당했는지는 왜 동아일보 기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 외환위기 직전에 대학을 들어갔다고 했으니 기껏해야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한두어살 아래인 이 기자는 자신이 당했던 비인권적인 군대문화가 지금의 사병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까?
우리나라 군대문화가 파쇼적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는, 군대가 불필요한 집단이거나, 군인들이 썩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군인은 사회의 다른 집단보다 사망율, 사고율, 자살율도 적고 다른 공무원 집단에 비해 비리도 적다(병역비리와 같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런 병역비리도 싸이의 경우와 같이 병무행정의 비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대문화가 파쇼적인 것은, 군을 떠난 무리들이 남겨진 군인을 보며 느끼려 하는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제로섬(Zero Sum)의식 때문이다.
내가 당한만큼 너도 당해봐라.
나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왜 너는 힘들지 않은가
이런 복수심에 불타는(정작 그 대상은 자신을 괴롭힌 그 대상이 아닌 상속된 또다른 피해자들 뿐이다) 보상심리가 우리 사회의 파시즘을 양산하고 있다.
그들을 더 괴롭히고 굴린다고 해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돌아오는 것이 있다면,
타인을 괴롭히면서 얻어내는 악마적, 변태적인 Sadism 밖에는 없다.
군대가 편해지는 것은 사회가 발전하고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가 다양해 지면서, 군대가 해야할 그 사명, 군대가 수호하여야 할 그 가치와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진화다.
군대에 비데가 놓여지고, 방독면을 벗는 법 보다는 방독면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그것이 군대가 수호하여야 할 가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모두의 합의로, 또는 그 합의를 넘어서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보호해 주어야할 가치를 이제 겨우 하나씩 챙겨가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의 모습인 것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군대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이 말을, 군대가 유지되고 그 군대가 민주주의 수호에 적절히 활용되기 위해서는 군인의 인권은 무시되고 폄하되더라도 군기를 날이선 칼끝 처럼 유지해야 된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자.
이 말의 진정한 현대적 의미는, 군대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군인의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것이 우리가 군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을지는 몰라도, 거기에도 역시 인간이 있다.
군대가 편해진 것이 아니라, 군대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
한가지 더 첨언 하자면,
군대의 군기가 빠진(그 기자가 보기에) 것은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군대의 주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젊은 사병들의 편의와 인권을 돌보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또는 합의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價値)이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주적'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 스스로도 주적의 존재여부와 이 국기강의 해이(?)는 전혀 관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제목을 붙이는 경우,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낚시"
좀 더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언론의 공공성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한다.
또 한가지 더 꼬리를 붙이자면,
"군기가 빠질대로 빠진" 저 사병들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기자의 폭력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사병들은 저 기사에 얼굴이 등장하였다는 이유만으로(자신들은 그 사진이 어떻게 쓰일지도 전혀 모른채) "군기는 빠지고 개념은 없는 당나라군대(중국을 비하하는 의미는 없다 -_-)의 쫄따구"가 되어버렸다.
(내가 장담하건대, 사진을 찍은 기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사병들에게 몇가지 포즈를 부탁했음이 틀림없다)
요즘 기자들 참 편해졌다는 느낌도 가끔 든다. 사진은 제공해 주고 기사만 쓰면 되니 말이다.(사진찍는 기자는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소리인가? -_-)
군대에 군기가 빠졌다는 소리는 참 여러번, 오래, 많이 듣는다. 군대 동기들 또는 남자들끼리, 여자가 있더라도, 술을 마시러 가면 꼭 나오는 얘기가, '요즘 군대는....' 이거나, '내가 군대 있을 때...' 하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한산도 달 밖은 밤에 벙커에 쪼그려 앉아 레이션 박스 까던 이야기.
동아일보의 저 기자는 그 시절이 그리워 진걸까.
군대의 군기가 얼마나, 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시대가 변하면 사회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며 개념이 변한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가 한참 발전할 길이 요원하던 그 때는 파쇼적인 군대문화가 필요해 우리는 벅벅 기어다녔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군사정권의 암흑기를 지내온 우리 사회는 군대문화의 오랜 장점도 물려받았을지 모르나, 그 문화에 쪄들어 버린 험악한 파시즘이 곳곳에 파고들어버린 병영사회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권이 유린되고 침해당했는지는 왜 동아일보 기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스스로 외환위기 직전에 대학을 들어갔다고 했으니 기껏해야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한두어살 아래인 이 기자는 자신이 당했던 비인권적인 군대문화가 지금의 사병들에게도 필요하다고 느끼는 걸까?
우리나라 군대문화가 파쇼적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는, 군대가 불필요한 집단이거나, 군인들이 썩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군인은 사회의 다른 집단보다 사망율, 사고율, 자살율도 적고 다른 공무원 집단에 비해 비리도 적다(병역비리와 같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런 병역비리도 싸이의 경우와 같이 병무행정의 비리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대문화가 파쇼적인 것은, 군을 떠난 무리들이 남겨진 군인을 보며 느끼려 하는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제로섬(Zero Sum)의식 때문이다.
내가 당한만큼 너도 당해봐라.
나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왜 너는 힘들지 않은가
이런 복수심에 불타는(정작 그 대상은 자신을 괴롭힌 그 대상이 아닌 상속된 또다른 피해자들 뿐이다) 보상심리가 우리 사회의 파시즘을 양산하고 있다.
그들을 더 괴롭히고 굴린다고 해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돌아오는 것이 있다면,
타인을 괴롭히면서 얻어내는 악마적, 변태적인 Sadism 밖에는 없다.
군대가 편해지는 것은 사회가 발전하고 우리가 지켜야할 가치가 다양해 지면서, 군대가 해야할 그 사명, 군대가 수호하여야 할 그 가치와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진화다.
군대에 비데가 놓여지고, 방독면을 벗는 법 보다는 방독면을 잘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그것이 군대가 수호하여야 할 가치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모두의 합의로, 또는 그 합의를 넘어서 군대임에도 불구하고 보호해 주어야할 가치를 이제 겨우 하나씩 챙겨가는 민주주의의 수호자의 모습인 것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군대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이 말을, 군대가 유지되고 그 군대가 민주주의 수호에 적절히 활용되기 위해서는 군인의 인권은 무시되고 폄하되더라도 군기를 날이선 칼끝 처럼 유지해야 된다는 말로 오해하지 말자.
이 말의 진정한 현대적 의미는, 군대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군인의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으며, 이 것이 우리가 군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군대에는 민주주의가 없을지는 몰라도, 거기에도 역시 인간이 있다.
군대가 편해진 것이 아니라, 군대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
한가지 더 첨언 하자면,
군대의 군기가 빠진(그 기자가 보기에) 것은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군대의 주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젊은 사병들의 편의와 인권을 돌보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또는 합의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價値)이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주적'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기자 스스로도 주적의 존재여부와 이 국기강의 해이(?)는 전혀 관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제목을 붙이는 경우,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낚시"
좀 더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언론의 공공성을 남용하는 행위"라고 한다.
또 한가지 더 꼬리를 붙이자면,
"군기가 빠질대로 빠진" 저 사병들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기자의 폭력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사병들은 저 기사에 얼굴이 등장하였다는 이유만으로(자신들은 그 사진이 어떻게 쓰일지도 전혀 모른채) "군기는 빠지고 개념은 없는 당나라군대(중국을 비하하는 의미는 없다 -_-)의 쫄따구"가 되어버렸다.
(내가 장담하건대, 사진을 찍은 기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사병들에게 몇가지 포즈를 부탁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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