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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광화문 사거리에는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대형컨테이너 20개가 길을 막고 있다. 나 역시 오늘 아침에 출근 중에 보고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면서, 정부종합청사와 미국대사관이 있는 이 길에 저렇게 큰 대형컨테이너가 20개나 들어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저 컨테이너의 용도가 '국민의 진입을 막기위함'이라는 사실은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명박 정부 100일. 그 100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행동하며, 부르짖기 때문에,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웬만하면 이명박 정부의 현재와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성, 그리고 전망에 대한 이야기나 정부를 성토하는 질타성 글을 올리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똑같이 정부를 욕하는 목소리 하나 더 보태는 것 보다는 행동하고 인식하며 기다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단순 논리였다. 하지만, 오늘의 사태를 보면서는 (이 정도 가지고 사태라고 할만 하겠냐마는, 이건 사태다.) 침묵하는 다수니 하는 웃기는 소리 보다는 한 마디라도 더 보태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와 언론의 달라진 현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인터넷의 힘을 간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터넷에 퍼지는 말들, 그것이 괴담이건 아니건, 그것을 control 하거나 monitoring할 수 있는 어떠한 힘이나 조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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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못잡는 시중씨



(사실 이 말은 모 기관장이 퇴임 후 어느 강연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 흔한 괴담들을 말하는 것이라 치부하며 우습게 볼지는 몰라도, 이제 이 것이 이명박 정부의 현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가지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 부터 언론에 대한 장악을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설정했다. 이는 방통위원장으로 최시중이라는 최측근을 전면 배치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시중이 어떤 인물이고,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냐를 판단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명박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 또는 어떠한 영향을 받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열쇠였으니, 이러한 이명박정부에 대한 언론관의 평가는 과히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는 평정, 다음은 폭탄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내부의 은밀한 목소리가 밖으로 퍼지기는 했지만, 인터넷에 대한 심각한 개입을 시사하기는 했지만, 너무 많이 중심의 인터넷과는 괴리되어버렸다.
 
이 점에서 전에 썼던 글에서 한 내용을 인용해 보자.

< 투옥된 블로거, 최장기 투옥 언론인으로 신기록 수립할 예정 >

Josh Wolf라는 블로거가 샌프란시스코의 경찰차가 불이 붙는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의심되는(실제 촬영이 되었는지는 기사만으로는 알 길이 없다) 필름을 연방검사에게 제출하지 않고, 연방대배심에도 협력하지 않은 죄목으로 법정 모독이 인정되어 투옥. 미국 역대 최장수의 투옥 언론인으로 기록될 수 있다고 한다.

얼핏 전혀 연관이 없는 이 두 가지 사실은 2007년, 아니 그 이전부터의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된다.
먼저, '전통적' 언론인이 아닌 블로거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되었다는 것. 즉 개인 미디어의 언론화를 뜻한다. 제도권에서도 진정한 언론으로서 개인 미디어가 자리잡은 것.

참고할만한 글 - < 블로거에 언론의 지위를 허하라 - John Conyers(美, 민주당 하원의원) >

- 개인의 공공화, 공공의 개인화. 그리고 개인미디어로서의 블로그 (2007.2.8 작성)-

지금 이명박 정부는 언론을 잡기 위해 조중동과 경향, 한겨레로 대표되는 좌우 양익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고, 인터넷에 대해서는 네이버와 다음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포털을 어떻게 콘트롤 할 것인가에 역량을 집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전통적 시각의 언론관이 이미 용도폐기된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의 블로거 뉴스에서 보는 바와 같이,이미 신문 언론 권력은 인터넷 언론과 지상(紙上)언론으로 양분되었고, 방송언론 역시 MBC, KBS가 아닌 인터넷방송으로 일부 권력이 이동되었다. 인터넷 포털 역시 지금까지 인식되어오던 뉴스 전달자의 개념을 탈피하여 적극적인 Gate Keeper로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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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 말해놓고도 뭔가 뿌듯한 두언씨

위에 인용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외국이나 일반적인 우리 사회 Net People의 입장에서는 이미 블로거는 언론인이며 그 하나하나의 정보는 언론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고, 또한 자격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명박 정부는 게시판에서 노는 실업자나 할일 없어 돈만 쥐어주면 되는 애들로 치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어떤 언론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조중동이나 경향, 한겨레, MBC, 또는 KBS에서 성공하더라도 이는 반쪽짜리의 성공에 불과하다. 훨씬 더 많은 언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권의 성패는 어쩌면 언론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언론이 여론을 만들어내었다가 지난 노무현 정권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운 바다. 이명박 정부의 전통적이고 전근대적인 언론관의 개혁은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은 소문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소문을 증폭할 수는 있고, 괴담도 우표할지 모르지만, 그 괴담을 현실화 할 가상 현실도 가지고 있다. 그저 괴담의 유포자를 잡아넣었다고 해서 언론에 대한 할 바를 다했다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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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박았다!


이 언론을 장악 하겠다고 하는 정부의 시각이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실패한 정부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언론에 대한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통제적 권력의 실천에 있다. 그들이 정권의 나팔수 라고 폄하했던 국정홍보처를 폐지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면서도 언론을 장악해서 그 상부구조를 뒤흔들어 통제하겠다는 생각은 결국 진시황과 호해에게 있어서의 환관 조고의 방법만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00만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것 보다, 당연히 이명박 한 명의 귀와 눈을 가리는 것이 쉽다. 언론이 5,000만이 되어버린 오늘의 블로그 시대에 언론의 입을 막고, 국민의 귀를 막는 것은 북한식의 5호담당제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감시체제다. 결국 막을 필요가 있는 언론의 길은 이명박으로 통하는 그 한개의 길이다.

어쩌면 이명박이 아직까지 정신 못차리고 헛소리해대는 것은 이렇게 뚫어져 버린 언론의 방파제를 내버려둔 채 이명박으로 통하는 한개의 작은 샘물만을 남겨둔, 정두언의원의 지적이 옳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발언의 의도는 그리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이 절대로 뇌 용량이 2MB밖에 안되는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기는 치지도 못했고, 그 많은 재산이 아직 남아있을리도 없다) 하지만 제한된 조건하에서 누구든지 제한된 판단 밖에는 내릴 수 없다. 그 길이 차단된 것이다. 성냥개비 두개만 들고는 아무도 담배를 태울 수 없다. 담배가 없으니까.

최소한 인터넷만 봐도 이러지는 않는다 라는 말이 너무나 실감나는 요즘

또 하나의 언론, 그리고 이른바 대안언론으로서 이제 블로그가 일어나거나, 이명박이 그리로 내려올 때다.


레고 쌓듯이 컨테이너 몇 개 쌓아올린다고 그 물결이 멈출 것이라 생각한다면, 조중동만을 너무 열독한 결과라고 밖에 몰 수 없다.

이미 언론을 장악하려는 이명박은 실패했다. 아니, 이명박을 얼굴로 내세운 극우 보수주의자들이나 친미 사대주의자들은 이미 20세기에 멈춘 세계관 속에 도태되어버렸다.

이명박,

언론의 소리를 들으라.

오늘 그 언론이 광화문 컨테이너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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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Daily 2008/06/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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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선거의 결과를 과연 민주주의의 선택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젠 의심스럽다.

뽑기는 우리가 뽑았으되, 우리를 다시 돌아봐 주지 않는 이 정부가 우리에게 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고, 그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의미는 그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한 공허한 외침이었는가.

단지,

전경들의 잃어버린 단잠을 위해 누군가 피흘리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그것은 우리에겐 무엇인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하였는데,
우리는 왜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지 못한가.


6월
민주주의의 영혼들이 숨쉬는 이 때,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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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켜다

Daily 2008/05/2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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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켜다.

회사의 눈치를 보느라, 말로만 광우병 소를 반대하는 소심한 30대는 그저 이렇게 마음으로만 응원할 뿐.



하지만, 언젠가,

10대, 20대가 지치면

그때는 우리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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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없는 하늘아래

Daily 2008/05/24 05:37
이 새벽에 들어와 뭐하는 짓이냐겠지만..

사람 살아가는데 이만한 피곤함에 이 정도의 이웃이라면,




세상 참 아름답다고 할만하다.


(디씨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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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유빈이는 제법 의젓해졌다.





유현이는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떠주는걸 좋아한다.











유정이 가족은 보증금 없는 월세 15만원짜리 옛날식 집에 산다.



















유정이에겐 어린 동생들 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슬퍼 할 시간도 없었다.





유빈이와 유현이는 정부보조로 어린이 집에 다닌다.





어린이집 차가 오는 마을 입구까지 20분을 걸어 나가야한다.





유정이와 동생들이 하루 중 유일하게 떨어져 있는 시간이다.





동생들을 보낸 후 유정이의 하루도 시작된다.




그시각,




아빠는 매일 새벽 인력사무실에 나와 일감을 받아 가는 일용노동자다.





















작년 9월 엄마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넷째를 낳은 후 발생한 뇌출혈이 원인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아이들은 엄마 손을 놓쳤다.











자식을 두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형벌같다.




젖먹이만 아니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던 막내.








지난달에 들여 놓은 연탄이 바닥이 났다.




설상가상,쌀마저 바닥을 드러 냈다.




해줄 수 있는 반찬이라야 계란후라이에 김치찌개가 전부.







차비라도 아껴볼려고 인력사무실까지 1시간을 걸어 다닌다.







일이 들어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간 사람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더 많다.






오늘도 헛탕이다.









한 달에 3번정도 공장문을 두드려 보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급한건 돈인데 아이들 때문에 또 망설여진다.






아이들은 낡은 재래식 화장실 가기를 꺼려한다.








오늘일까,내일일까..가슴 졸이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전기세 12만원을 내지 못하는 처지...


















단전만은 막아야 하기에 고향친구를 찾았다.








엄마 잃은 상처를 안고 사는 자식들에게


아빠 마저 잃는 상처를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아빠의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유정이는 아빠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만 가로 저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전기세를 내고 가장 먼저 해결한 것이


유정이의 소풍비였다.














일단 사장면접에는 성공했다.




(집도 가깝고 딱이다.제발...!!!!)







아빠는 이번만은 취직에 꼭 성공하고 싶다.






유진이가 처음으로 집에 왔다.












그들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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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속한 동호회인 엔포를 보면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사태의 내막을 보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다지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인데, 그것을 처리해 나가는 것은 왜 저렇게 하느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답답하다.

이른바 일꾼이라고 하는 동호회의 운영진이 있는데, 이 중에서 소위 "작은 일꾼"이라는 일반적으로는 회계업무를 보는 운영진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의 작은 일꾼이 사의를 표한 것이 발단 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지만 개인사정으로 인해 작은 일꾼을 더 할 수 없게 된 것.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개인 사정으로 인한 사퇴를 말릴 명분도 강제성도 없는 것이 동호회이다 보니 그것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쉬워 할테고 중요한 회계의 업무이다보니 약간은 긴장된 상황이었을지는 몰라도 평양감사도 제가 싫으면 안한다는데 그것이 흠잡을 만한 일은 아닐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공석이 되어버릴 작은 일꾼의 자리에 누구를 후임으로 둘 것인가의 문제였다.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었다면 현재 엔포의 회칙에는 갑작스런 결원에 대한 보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엔포의 운영진은, 이러한 작은일꾼의 공석에 대해 새로우 작은 일꾼을 선출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를 저질렀다. 궐위시의 재선출에 관한 규정이 없는 경우 당연히 일반적 선출 방식을 준용하여 선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꾼단에게 위임되어있는 일꾼 선발 방식에 대한 결정도 하지 않은 채, 현재 오프라인일꾼이 겸임할 수 있다는 말에 그냥 덜컥 선임을 한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일꾼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물론 잘 하겠지 동호회 운영경비의 횡령이나 유용과 같은 비상사태가 생길 염려도 없고 사실 그 운영비용이라는 것이 고액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 회원은 운영에 있어서 그 운영의 내용과 과정에 대해 알아야 하고 알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운영진 게시판(이 운영진 게시판에는 일반회원의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 원칙적으로는 운영진 게시판이 아니라 홈페이지 관리자들의 홈페이지 변경이력을 기록하기 위한 게시판이었으나 어느 때 부터인가 운영진 게시판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에서 이루어진 그들만의 대화를 통해 결정한 것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엔포의 기본적인 원칙과 운영방식에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모든 사람이 운영에 참여하고 일꾼 기타 운영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운영에 참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밀실행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더 웃긴 것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 까칠하다는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는 일부 회원과 일꾼들이다. 까칠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실수하고 잘못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한 채 까칠하다는 소리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까칠하게 말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발언이 까칠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칙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과연 사람을 지키기 위해 원칙을 저버렸는가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 말도 안되는 소리만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 답답하기까지 하다. 원칙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대신 선택하기 위한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얼렁뚱땅 넘어가서 사람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산이며 한심한 작태에 불과하다.

1,000명이 넘는 동호회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고 여러 성격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운영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운영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정형화 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회칙이고 규칙이다. 그것이 맘에 안들거나 더 이상 많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 규정이라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규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수정해야 한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보충해야 한다.
이렇게 정형화 된 규칙을 만든 이유를 망각한 채 사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비공개적으로 운영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여 통보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용납할 수 없다.

규정을 몰랐다거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는 변명은 그들을 선출해 준 회원들에 대한 배신일 수 있다. 모르면 연구하고 생각해서 좀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제대로 된 운영이 아니다.


작은 조직에서 별걸 다 찾는다고 하며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도 있다.
작은 일에도, 큰 일에도 분노할 수 없는 사회적 무뇌아들이나 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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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제는 이 그림과 마크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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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 정말 광우병 때문에 시끄럽다. 언론과 정부는 아니라고 하고, 국민은 분노한다. 그리고 소리친다. 살고 싶다고. 정부는 여전히 안전함만 말하고, 언론은 여전히 배후만 캐고 있다. 국민은 이제 스스로 언론이 되어야 하고 투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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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최근 며칠간의 정국과 문화와 사회는 광우병 열병을 앓았다. 지금도 역시 광우병은 우리 사회 최고의 이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아니, 사실은 이 광우병 사태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있어 그 수많은 일들 사이에 우리가 이 정권하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 걱정이다.

광우병때문에 구멍이 송송 나 버린 뇌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파렴치한 사찰과 감시와 통제와 공안정국 그리고 소외된 자들의 계속적인 소외와 죽어가는 자들의 날카로운 외침이다.


전에 쓴 글에서도 이미 말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미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정권을 탄핵이니 하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종료시킬 수 있는 의지도, 능력도 없다. 자신들은 계속 군림하며 나아갈 것이 확실하다.

이명박정부가 노무현 정권과 다른 점이 분명 많이 존재하지만, 노와 이의 가장 극명한 차이는 "소통의 회복"방식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노무현은 대화가 단절되고 communication의 필요가 극에 달하면 정공법을 택했다. 검사와의 토론, FTA관련 토론. 등등 스스로 언론의 힘을 빌려 그들과 소소통하기 위해 직접 나섰다. 물론 그것이 모두 옳은 방법이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진시황이 스스로를 '짐(朕)'이라 칭하며 장막 뒤에서 신하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어느정도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위해 거리로 나오는 것은 반대이니, 노무현의 방식이 신선하고 직접적이며 정공법이라고 하지만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튼, 노무현은 직접 대화를 시도함으로서 그의 할 말을 하고자 했고 그렇게 우리는 노통과 소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어떤가? 이명박 정부의 소통방식은 수족을 부려 그들의 말에 강제로 끼어든다. 촛불문화제를 기획하는 학생을 직접 찾아가 강제로 듣고, 조사하고, 감시하고 검열한다. 문제는 이러한 검열과 감시가 강압적 고압적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 위에서 소통하려고 한다. 노통이 그 위치가 위건, 아래건 소통의 상대방이 있던 곳 까지 내려와 소통하고자 하는 것에 반해 그들은 확실하게 위에 있고, 그곳에서 소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상대방을 자신의 위치까지 끌어올려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소리치라 한다. 들리지 않는 그곳까지 소리치게 한다. 이는 소리치지 않게 함과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소리를 듣게 되면 이 소리침의 행위가 그 능력에ㅔ서 벗어난 행위임을 들어 그들을 외면한다. 즉,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면 듣지 못하니 외면하고 듣게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임을 인정치 않으니 결국은 듣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은 경찰과 감시, 검열이라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소리치며 일방적 소통을 시도한다.

우리가 이제 겨우 10년간의 진보적(진보가 아닌 진보적인) 정권에서 이룩한,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한 그 수 많은 민주주의의 희망은 소통이다. 위와 아래가 자유롭게 소통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자는 소통하고, 왼쪽과 오른쪽이 소통하고, 위와 아래가 소통한다. 민주주의는 communication이다.
수 없이 많은 열사들이 피흘렸던 것은 소통이었다. 나의 뜻을, 나의 이상을 그들에게, 누구에게든 말하고 설득하며 소통함이 바로 우리가 얻어냈던 민주주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에서는 어떤가. 우리는 소통하고자 한다. 촛불로서, 시위로서, 문화제로서 그리고 인터넷으로, 덧글로, 블로그로, 통하고자 한다. 대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미 소통의 다른 방법, 다른 방식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은 선전과 차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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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랑 한판 벌인 경찰서



그들은 일방적으로 소리치고, 일방적으로 말하지만, 우리의 입은 차단하고 우리의 소리에는 그들의 귀를 차단한다. 이명박 탄핵의 소리는 들었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만을 본다. 보긴 보았으되, 듣지는 않는다. 미친소 물러가라는 소리는 듣지않고, 그들의 소리치는 목소리를 대중에게 선전해 줄 자들의 목구멍에 기름을 빼 주기 위해 바베큐 파티를 연다. 목소리를 내는 자들의 목소리는 애써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하고, 심지어는 국민과의 소통은 포기한채 소와의 소통을 시도하기 까지 한다. 모든 소통을 거부하며 일방적 소통, 아니 호통만을 원한다.


노무현은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후퇴를 암시하는 말을 했었다. 그것이 어떤 뜻이었는지 우리는 이제 알 수 있다. 우리는 소통의 상대방이라는 지위를 빼앗겨 이제 선전과 광고 그리고 계몽과 계도의 대상으로 객체로 전락해 이 사회의, 그리고 이 나라의 주인의 자리에서 밀려났다. 한국은 여전히 헌법에 의해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그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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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예전처럼 내가 국민이기 때문에 주권을 가지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주권을 가지는지 여부에 따라 국민인가 여부에 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소통이 없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은 것이고, 그러한 소통의 부재로 우리가 주권이 상실되었다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빠져들게 된다.

이명박정부는 우리와의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소통의 방식은 정확한 의미의 소통이 아니다. 그것은 소통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소통, communication이 아니다. 그것은 일방적 외침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러한 소통이 없다. 이명박 정권의 속에서는 말이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 그리고 그가 구성한 내각과 한나라당이라고 하는 총선에서 승리한 여당을 믿고 맡기자는 주장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와 그 가치를 수호할 때만 유효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지킬 권력을 주었지만, 그것을 훼손할 권력을 쥐어준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나라당을 찍었건, 이명박을 찍었건, 그것은 ㅜㅇ요하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여당을 이명박과 한나라당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대화와 소통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소통이 없는 한국을 만들라고 그들에게 권력을 준 것이 아니라 비록 그것이 부동산값이나 올리라는 소리라도, 그것이 우리의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의 지위가 아닌 소비자로서, 투자자로서의 지위를 요구하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것을 위한 소통이다.


소통이 없는 정부는 우리에게 주권이 있음을 확인시켜주지 못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그 순간 이후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다. 국민은 더이상 자신의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부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이 국민소통능력이 떨어진다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많이 기대는 안하지만, 이본에는 제발 자신의 말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이 자리에 있던 소울 드레서의 광고는 소울드레서 관계자님의 부탁으로 잠시 내렸습니다.>
< 소울 드레서 광고가 정식으로 개제 되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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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될 것이라고 한다.
광우병위험물질도 함께 수입될 것이라고 한다.
값싼 쇠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사람은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고 한다.
미국의 교포들도 꾸준히 먹고 있는 미국소라고 한다.


나는 과연 광우병에 걸리게 될까

아마도, 나는 광우병엔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확률로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 친척들도 아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미국산 소고기는 처음부터 별로 문제가 없는 것이었든지.

미친 소가 들어온다는 문제에 대해 경제적 관점과 국민보건의 관점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번 한미FTA에 있어서 중요한 선결문제중의 하나인,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문제(사실 광우병에 걸린게 확실한 소를 팔겠다고 하기전 까지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에 있어서, 나는 찬성이다 반대다 하는 이렇다할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의 고민처럼, FTA를 안하고 그 많은 개방압력을 우리가 견딜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일본만큼의 자급적 경제력 또는 미국외적(美國外的) 경제력이 충분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대외의존도의 상당부분이 미국으로 집중된 상황에서 한미FTA를 어디까지 거부하고 어디부터 막아내며 방어할 것인가의 문제는 좀처럼 답을 내기 어려운 문제다. 일본은 거부했다지만, 어떤 나라도 거부했다지만, 우리와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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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본질적인 고민은 이 한미 FTA를 해야 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가 아닌, 어디부터 어떻게 그들의 요구와 우리의 희망을 조정하고 협의하여 양쪽이 다 만족할 수 있는 협상의 결과를 양측 국민들에게 제시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이것이 오히려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비효율적인 논의를 계속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이런 부분에서, 나는 온전한 진보주의자가 아닌, 어느정도는 온건 중도의 진보계열이라 할만하다. FTA가 나와야 하는 현상황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입장이니, 원칙적으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현 시점 이전의 잘못에 대한 비판과 질타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현실에선 현재의 FTA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묻히게 마련이니 어쩌면 나도 진보가 아닌 보수로 분류될지 모른다).


FTA문제는 접어두고, 이번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관련 문제에 대해서만 살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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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미국산 쇠고기를 항구적 또는 광우병에 관한 모든 위험이 사라진 후에 수입한다라는 가장 극단적 폐쇄성에 입각한 주장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광우병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항구적인 광우병 위험의 제거는 아직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위험을 제거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