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2일 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정부이송과 대통령 공포만을 남겨두고 있다.
12월에 공포가 된다면 아마도 내년 6월경부터 적용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형법개정은 아마도 다른 법률들, 특히 이른바 택시법이라고 불리는 "대중교통의 욱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그리고
12월에 있을 대선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매우
형법개정사적으로는 중요한 개정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은 최근의 송폭력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움직임이나 여론에 너무 쉽사리 진행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지만.
이번 형법 개정에서 눈에 띄게 변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 강간죄 등 일부 범죄에 대하여 친고죄 조항이 삭제되었다.
- 성폭력범죄의 대상(범죄의 객체)가 부녀(여자)에서 "사람"으로 변경되었다.
- 강간죄 이외에 유사강간죄를 신설
- 혼인빙자간음죄의 폐지
당연하다고 보여지는 것들도 있지만, 좀 의아한 것도 있는 듯해서 기록으로 남겨본다.
1. 친고죄 삭제
이번에 친고죄가 삭제된 범죄는 다음과 같다.
- 강간죄 및 그 미수범
- 강제추행죄 및 그 미수범
- 준강강, 준강제추행죄 및 그 미수범
- 추행, 간음 목적의 약취, 유인죄
- 추행, 간음 목적으로 약취, 유인, 매매, 이송된 자의 수수 또는 은닉죄 및 그 상습범
- 결혼 목적의 약취, 유인죄 및 그 미수범
다른 성범죄(강간치상, 강간치사, 미성년자 강제추행, 미성년자 의제강간 등)의 경우에는 어짜피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 이를 삭제하지 않은 것.
성범죄의 처벌에 있어서 거의 모든 성범죄에 적용되었던 친고죄를 삭재함으로서, 성범죄의 처벌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일응 인정할만하고,
피해자에 대한 합의 기타 방법에 의해서 처벌의 기회를 놓치게 되는 불합리성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입법적 조치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문제는 처벌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 가능성의 문제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입법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점은 좀 이른 감이 있다고 본다.
지난 다른 포스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우리나라 성범죄에 대한 대책의 대부분이 주로 재발방지와 강력한 처벌을 위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 맥을 같이 한다고 할 것이다.
사건의 발생을 아주 방지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정책이겠으되, 위화적으로 형벌을 강화하여 그저 처벌 위주로만 가는 방식의 위험성 말이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결코 자신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잡힐 거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처벌로 인해 범행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고,
결국 범죄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처벌의 강화도 중요하지만 그 외에 예방적 차원의 일을 더 벌리는게 좋지 않을까.
물론, 친고죄 조항의 삭제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그런 면에서 이번 조치는 비판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무부나 여성부 등 관련부처의 예방적 노력이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처벌이 가장 강력할지는 모르지만 가장 간편한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또
성범죄가 지금까지 친고죄였던 이유는
피해자인 여성의 인격권을 존중하여 그 사건의 공개와 공개재판주의에 따른 신상공개 등을 방지하여 여성의 성적 수치심을 보호하기 위함에 있다.
그런데 공개재판이나 수사에 있어서의 피해자 보호에 좀 더 중점을 두고 그에 따른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형법을 개정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다.
물론 이미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여러 조치들이 마련되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판, 수사과정에서의 피해자 인권보호도 아직은 미진한데,
피해자의 의사와 반대되는 재판의 진행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피해자의 수치심은 어떻게 덮어줄지도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성폭력피해자의 사회복귀와 정신적 치료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는 있으나,
수사, 재판과정에서의 인권보호를 위한 조치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릴 피해자(원하지 안는데도 말이다)를 보호하기 위하여
각종의 조치들이 마련되지 않은 형법 개정이라는 점은 아쉬움을 버릴 수 없다.
2. 성폭력 객체의 변화와 유사강간죄 신설
매우 중대한 변화다.
우리나라 형법은 그간 강간죄 등의 객체에 대해서, "부녀"로 한정하여 남자에 대한 강간이 인정되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아직 주민등록 정정신청을 완료하지 않은) 강간의 가능성이 이야기 되면서
이를 단순히 강제추행으로밖에 처벌할 수 없는 형법의 태도가문제되기도 하였다.
이번 개정으로 이제 남자에 대한 강간이 인정될 수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에 대한 강간이 인정되기 위한 당연한 변화로서, 강간의 의미가 변경되었는데,
기존의 형법에서는 이른바 "성기에의 삽입"을 기준으로 하여 강간의 성립여부와 기수시기를 결정하였는데,
개정형법에서는 "신체에의 삽입"으로 이를 변경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른바 "유사강간"이라는 범죄를 신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간이라는 범죄의 객체를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경하였다는 것은 여성의 성기에 대한 남성의 성기 삽입행위로 일어나는 범죄인데 반하여
유사강간은 사람의 성기를 제외한 구강, 항문에 성기 또는 다른 신체의 일부 또는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 또는 성기에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삽입하는 행위로 정의하여
이를 처벌하고 있다.
즉, 강간은 아니지만 강간과 유사한 행위로서 강제추행에 비해 그 가벌성이 증가된 강간과 같이 처벌할 필요가 있는 행위를 규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에 대한 강간이 성립하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할까?
남자의 성기에 대한 남자 또는 여자의 성기를 삽입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남자의 성기는 이른바 외성기이고 여자의 성기는 내성기이기 때문에 여성의 남자에 대한 강감은 결코 성립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남자의 성기를 다른 남자의 성기에 삽입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은 남자에 대한 가혹한 강제추행 또는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강간행위에 대한 가벌성을 찾아이를 명확하게 하여 처벌하는 것이 좋다고 보여지는데,
왜 부녀가 아닌 사람에 대한 범죄로 이를 확대하는 것인지는 이해할 수 없다.
법의 개정이유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른바 "신체에의 삽입"을 처벌하기 위함이라면 여전히,
남자는 그 객체가 될 수 없다.
(혹시 요도에 무엇인가를 삽입한다면. 이는 대단하기도 하고 또 달리 생각해볼 문제이지만)
남자의 성기에의 삽입이라는 단어가 성립할 수도 없고,
여성의 성기를 삽입한다는 단어 역시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유사강간을 좀 더 상세히 규정하고 강간죄의 객체는 그냥 부녀로 한정하였어도 큰 문제는 없지 않았을까.
단지 여론의 동향만을 살핀 쓸데없는 개정은 아니었나, 아니면 마치 개정을 통해 보호를 넓힌 듯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재미있을지 모르는(?) 예를 들자면, 최근에 해외의 사례에서 남자를 감금하여 성적 노리개로 사았다는 기사가 간혹 보이는데, 이 경우에도
남자의 성기를 강제로 자신의 성기에 삽입하도록 하는 행위는 여전히 우리법상 강제추행이다.
강간이나 유사강간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유사강간에
"당사자의 항거불능 상태 또는 심신상실 등의 상태에서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적인 성행위 또는 유사성행위"로 정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에 의한 남성의 강간행위가 인정되는데 좀더 논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3. 혼인빙자간음죄의 폐지
제304조(혼인빙자등에 의한 간음)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2009년에 이미 위헌이 된 조항이기도 한데,
이번에 삭제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은 "혼인을 빙자하여"라는 부분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다른 기망을 통해
(예를 들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거나 등등)
간음을 하는 경우에는 여전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헌재의 태도였는데 이를 홀랑 삭제해 버렸다.
물론 이를 처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왜 삭제해버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혼인을 빙자하는 것은 위계의 한 예시에 불과한 것이므로,
기실 형법 제304조는 ‘위계에 의한 간음죄’를 규정한 것이고,
이때의 ‘위계(僞計)’란 사람을 적극적으로 기망하여 착오를 일으키게 하고 그를 이용하여 범행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가리킨다.
(헌재의 판결문에 이렇게 되어있다)
그런데, 그 대표가 혼인을 빙자한 것인데,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진 성관계를 역시 처벌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물론, 그런 경우는 가벌성이 없을 수도 있다.
혼인을 빙자하는 것 이외에 다른 위계나 기망행위가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사실 그것까지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다.
이번 형법의 개저오가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기타의 위계는 가벌성으 부인한 것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헌재의 태도는
"성관계에 관하여 위계, 기망, 편취의 자유를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며, 이것이 부당함은 명백하다."고 이미 판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겠지만,
좀 고민해볼 문제다.
형법 개정안에대해서 살펴봤지만,
여전히 드는 의문은 이게 과연 우리 성범죄방지를 위한 것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성범죄 처벌에만 그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처벌을 강화할 필요도 있지만,
이로서 국회가 자기할 일 다했다고 생각할 것인지,
예방대책이 없이 이루어지는 처벌강화가 얼마나 약발이 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참고로,
개정된 법안과
위의 헌재 판결문을 첨부한다.
1902751_법제사법위원회_위원회제출안.pdf
2008헌바58_20091126_22999.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