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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3개의 권력기관으로 분리된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
이중 행정부와 입법부는 생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즉, 정치적 목적이 부합하는 관계자간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입법과 그 집행이 이루어진다. 입법부와 행정부는 비교적 그 이동이 자유로우며 도한 직접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우도 많다. 또한 동일인이 양 部의 주요 직책을 겸임하는 경우도 많다.(전통적인 대통령제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는 상호배타적 조직구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 양 권력조직의 직책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각책임제이거나, 우리와 같은 변형된 대통령제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사법부의 경우 그 성격상 헌법에 의한 정당한 권력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엘리트 집단에 의한 조직구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양 부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행정-입법부와 사법부의 가장 큰 차이는 이른바 '정치적 정당성'의 확보방안이다. 행정-입법부의 조직구성은 선거를 통한 간접 민주주의방식을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이다. 국민 총의에 따라 국회와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서 그 정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이를 근거로 국민에 대하여 권력을 행사/집행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사법부의 경우 이러한 선거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미국 기타 외국의 경우 선거에 의하여 판사 등을 선출하는 경우도 있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헌법에 따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이른바 2중의 민주적/정치적 정당성 확보방안을 거쳐야 하는데, 즉, 정치적으로 충분한 정당성을 확보한 대통령과 국회가 상호 합의하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장은 국민에 대하여 직접 책임을 질 필요는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또, 대통령이나 국회에 의하여 임용된 이후에는 임기가 보장되고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음으로서 행정부나 입법부에 대하여 독립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법부의 구성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사법부를 구성하기 위한 행정부/입법부의 구성 자체가 전혀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다. 쿠데타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에 의해 정권을 잡은 경우, 예컨대 쿠데타를 통하여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의 경우, 국회의 동의만 있다면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다른 측면으로 이 문제를 살펴본다면, 이렇게 임명된 대법원장을 정당한 대법원장으로 볼 수 있는가의 문제로 해석될 수도 있다.) 나아가 좀 더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하자면, 이렇게 수립된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민은 복종하여야 할 의무가 있느냐 까지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인혁당 사건에서 피고들의 혐의는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및 형법상의 내란·음모 등이다. 사법부(정확하게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모든 재심의 대상이 된 사안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재판과 병합되어 유죄가 확정된 경우에는 이번 재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함) 인혁당 사건과 같이 수사기관에 의하여 증거가 조작되거나 피고인이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되었다고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자백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러한 것들이 증거로서 채택되어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는 아주 단순한 이론을 반영한 것에 불과 하다.
문제는 이러한 단수한 사실을 왜 32년 전에는 당연하게 말하지 못했는가에 있다. 이 사건은 사법살인이라고 불릴 만큼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사법사(司法史)에 가장 큰 잘못으로 지적되고 있다. 심지어 사형이 집행된 195년 4월 9일은 국제법학자협회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사법살인이라고 불릴 만큼의 중대한 착오가 있었다는 판결이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당시 판결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은 동 판결의 전문을 32년만에 공개하도록 했다. (
판결문 전문 보기)
판결문의 내용을 보면 증거 채택의 부당함에 대한 모든 피고의 진술은 기각되고, 헌법상 성문화되지 않은 저항권의 존재에 대한 부정, 또한 사법절차의 미진함을 회피하기 위한 불필요한 첨언(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식의..)의 반복적 기재가 보인다. 이러한 판결문의 행태는 사법절차의 착오 내지는 오류에 대해 대법원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사료된다.
따라서 이러한 잘못된 판결에 대해서 늦었지만, 사법부가 직접 그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할 수 있으며 나 역시 환영하는 바. 하지만, 박근혜씨의 위 기사와 같은 반응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위의 인혁당사건의 판결문 원문 가장 하단에는 이런 기재가 있다.
대법원판사 민복기(재판장) 대법원판사 홍순엽 이영섭 주재황 김영세 민문기 양병호 이병호 한환진 임항준 안병수 김윤행 이일규
이 판결에 참여한 대법원 판사들이다.
판사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법원이 일반 국민에 대해 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음에 따라 이러한 정치적 정당성을 판사로서 이름을 걸고 공표하게 함으로서 법 집행의 지엄함을 알리고 판결에 따른 책임을 지우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판사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을 자신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하는 것은 (물론 시기적으로 매우 가슴 아픈 일이겠지만,) 정권에 대한 피해의식과 수구적 반공의식에 기인한 피해의식이라고 본다. 기존의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껏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위의 발표와 관련,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근거없는 모함”이라고 평가해 왔으며 여전히 그러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즉, 이른바 '잘못된 법'의 논리로 여전히 박정희 정권 당시의 긴급조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
정치공세일 수 있다. 부인할 수는 없다. 이렇게 중요한 판결이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나왔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불리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정치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지금가지 표현한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용어 등에서 보이는 '정치적'이라는 용어와 지금 사용한 '정치적'이라는 용어의 정의는 다르다) 또한 법원의 판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더군다나 그로인한 축복을 한 몸에 받은 장본인으로서) 법원의 판결과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폄하하는 행위가 과연 지도급 인사가 해야할 것인지는 매우 의문이다.
법원의 행위는 국회의 행위와 동등한 지위로서 대접받아야 할 것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로 법원이 지난 날 스스로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인 이상, 국회와 정치권 역시 역사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릴 시기라고 본다.
도대체 언제까지 역사에 맡길 것인가?
역사를 통해 해결되지 못한 우리의 과거 처럼, 그리고 일제 치하의 아픔 처럼, 도대체 언제까지 역사라고 하는 무책임한 他者에게 책임을 미룰 것인가?
역사는 우리가 만들어간다. 박근혜 또한 역사, 인혁당 또한 역사다. 역사는 우리에게 절대 면죄부를 주지 못한다. 역사를 이끄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직도 역사인 사람으로서 박근혜씨의 정치적으로 정당한 논평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