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림씨

Posted 2007. 5. 10. 10:11
< 30억 대박이 두번 >

얼마전 우연히 TV를 보다 알게된 남대문의 안경점 주인 아저씨.
이남림 아저씨라고 한다.

30억도 30억이지만, 그런 기부를 잘 받아들이는 아들을 키운 사람이라는 점이 더 보기 좋다.
전에 TV에 두 아들이 잠깐 나온 적이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아버지 돈을 아버지가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 없이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참, 잘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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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기만하는가

Posted 2007. 5. 7. 14:14
< 공짜 휴대폰의 전성기 >

조선일보의 기사.
요약하자면,
이동통신 3사는, 영상통화가 되지 않는 구형(?) 핸드폰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더 확대하여 이른바 더 많은 종류의 공짜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 공짜폰은 없다? >

MBC의 기사

공짜폰의 경제학에는 경제 따위는 없고 폭리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남용행위와, 불법보조금만 난무하는 이전투구의 현장이라는 것.


보조금이고 뭐고 그런건 알지도, 알 필요도 없거나, 나처럼 이미 보조금 써 먹은 사람이 더 많은 현실에서는
어떤 기사를 읽고 믿어야 하는지 난감할 뿐.


일반적으로,

MBC와 같은 기사를 쓰여진 기사라고 하고, 조선일보의 기사와 같은 기사를 홍보자료 옮긴기사라고 부르기도 한다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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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맹세

Posted 2007. 5. 3. 16:15
< 국기에 대한 맹세? >
< 대한민국국기법 전문 >
<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입법예고 >

올해 1월,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규정이 이번에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기존에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대통령령 17770호)(이하 국기규정)이 있었으나, 이를 법률의 지위로 격상함과 동시에 사회의 변화에 따른 여러가지 관리 및 예우에 관한 사항을 정비하기 위하여 대한민국국기법(이하, 국기법)이 제정된 것이다.

국기법의 제정 이유를 보면,
국기는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 및 국권·국위·존엄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으로서, 주요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국기에 관한 사항을 헌법에 명문화하거나 혹은 단일 법률로 제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수권법률 없이 대통령령(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 및 이상이 담겨져 있는 국기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국민들의 자긍심과 인식을 제고시키고 나아가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하려는 것임.
이라고 하고 있다(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인용).

국기에 관한 법률이 필요한가의 문제는 한 국가의 정통성과 관려난 문제이니만큼, 그다지 논의의 실익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기가 어느정도의 지위로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니, 늦었지만 국기법의 제정은 환영할만하다.
국기법에서는 국기에 대한 예우의 표현 방식에 관한 사항이 잘 정리되어 있다. 즉, 국기의 제작 방법(괘의 모양 또는 태극의 위치, 크기 및 비율 등), 게양방법, 활용방법 등에 관한 사항이 규정되어 있다.

문제는 현행(현재 국기법은 1월 26일 공표되어 6월의 유예기간을 두고 7월 26일부터 시행된다. 따라서 현행 법령은 국기규정이다.) 국기규정 제3조의 국기에 대한 맹세 관련 규정의 처리에 관한 사항이다.

대한민국국기규정
제3조 (국기에 대한 맹세)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에는 다음의 맹세문을 낭송하여야 한다. 다만, 국기에 대한 경례중 애국가를 주악하는 경우에는 이를 낭송하지 아니한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유신 독재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와 관련하여 자세한 사항은 이미 한겨레 21에서 집중 보도된 바 있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기사는 바로 이것 과 이것. 그리고 이것 - 로그인 필요)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해 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이것이 명백한 파시즘의 산물이며,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또한 민주적이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맹목적인 국기에 대한 맹세를 강요 받아왔다. 국가의 잘잘못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게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강요받아왔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굳게' 다짐해야만 했다. 왜? 난 아직도 왜 그래햐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과연 국가에 대해 충성해야 하는가? 아니면 안되는가? 어찌보면 선문답 같은 이 질문에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약간 다른 시각에서 보자.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봐라는 케네디의 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인가? 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사회계약론이 나온 이후 서양은 물론 동양에서도 철학과 사상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러한 많은 정치철학에서 내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파시즘. 이른바 전체주의 또는 국수주의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전체를 위한 희생. 그리고 권위에 대한 맹목적 복종, 정치엘리트에 의한 지배, 독재 등으로 특징지워진다.

에리히 프롬은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만큼 언어가 진리를 은폐하기 위해서 오용되고 있는 때는 없었다. 동맹의 배신이 유화宥和로 찬미되고 군사적 침략은 공격에 대한 방어로 위장되며 약소민족의 정복이 우호조약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전체 이민들을 잔인하게 압박하는 것을 국가사회주의라는 이념으로 범해지고 있다. 민주주의, 자유 그리고 개인주의란 말 또한 남용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파시즘간의 진정한 차이는 의마가 무엇을 정의하는가에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충분한 발전을 위한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조건을 창조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파시즘은 어떠한 명칭하에서든지 개인을 외적인 목적에 종속시키고 또한 진정한 개성의 발전을 약화시키는 제도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보고 있자면, 명백한 파시즘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몸과 마음을 바쳐, 굳게 다짐.

그 누구도 우리에게 애국자가 되길 강요할 수는 없으며 반대로 매국노가 되도록 강요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자유라면, 우리에게는 국가에 대한 어떠한 태도를 가질 것인가에 관한 자유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최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국가관을 확립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그대로 원용한다면, 국가가 그 방향성을 잃고 방황할 때에도, 명백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국가를 보면서도 충성을 굳게 다짐할 뿐 우리에게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도 사라져 버린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곳에는 충성만 있을 뿐 어떠한 선택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배운 바와 같이, 4.19과, 6월 항쟁에서 보듯이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위하여 감히 권력의 상층부에 일어선 경험이 있다. 바로 저항권이다. 비록 그것이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며, 진정 우리에게 주권이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 왔다. 저항권은 강학상, 또는 판례로 이루어진 권리가 아니며 우리에겐 역사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실존하는 권리다.
이 저항권의 실체적 실현을 위하여 방해가 된다면, 우리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있어서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양심의 자유는 곧 표현의 자유와 연결된다. 양심의 자유가 내적인 부분이라면 그것을 외부로 표출하게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이다.

나의 국가에 대한 충성여부와는 상관없이, 내 내면의 자유와는 상관없이(비록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모두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입으로 말을 하며 선서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역시 맹세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국가에 충성을 의심할 수 있는 양심과 그것을 내가 의도한 것과 반대로 외부에 표출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을 침해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옳지 않다.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도 있다.
물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또한 그 맹세를 번복할 권리 역시 가지고 있으며,
내 본심과는 다른 말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내 본심을 당신에게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나는 국가의 잘못된 결정과 행동에 국가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무한한 저항을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조국찬가.

첫 곡은 고구려밴드가 월드컵 응원가로 바꾼 것.
원래의 조국찬가는 군부독재시절 건전가요라는 미명하에 어쩌면 애국가보다 많이 불렀던,
우리의 암흑기를 덮고 있던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 참고 - 한겨레 21을 보다가 찾게 된 판례. 아마 유사한 사례가 또 발생한다면 판례는 뒤집힐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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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Day

Posted 2007. 5. 2. 01:35

1890  제1회 메이데이

- 워커스데이(Workers' Day)라고도 한다.

- 1869년 필라델피아. 노동기사단 결성
- 1886년 미국 노동총연맹 결성
- 1886년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이 8시간 근로제를 위한 총파업 돌입
   . 경찰의 발포. 어린 소녀를 포함한 노동자 6명 사망
   . 다음날 노동자 30만 명이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헤이마켓 광장에서 집회
   . 집회중 폭탄 테러로 집회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이 폭동죄로 체포
   .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헤이마켓사건)

- 1889년 7월 파리 제2인터내셔널 설립대회에서 1890년 5월 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함
- 8시간 노동쟁취를 위해 세계적인 시위를 결의



1900  이탈리아의 작가 실로네 태어남
    "사람들은 독재 정치 밑에서도 자유인일 수는 있다.
     그것은 독재에 저항하면 충분하다.
     ... 올바르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자유인이다."
    "You can be a free man under a dictatorship.
     It is sufficient if you struggle against it.
     ... He who struggles for what he believes to be right is a fre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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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향 - 시간

Posted 2007. 5. 1.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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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

Posted 2007. 4. 30. 17:05
< 듣고 싶었는가? >

자, 이젠, 남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실까?
남녀관계가 여성중심의 대화로 기울어지는 현상이 방송에 점점 더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른바 듣기도 싫은 '된장녀 논쟁'의 책임은 80%가 언론에 있다는 사실.

그 수 많은 드라마와 왜곡된 연예인들의 한심한 사생활 스토리가 만들어낸 천민 자본주의의 산물일 뿐.
옳은 것이 뭔지 모르는 사회.


사실, 우리도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못하는 것이고,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며,
그런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배운 적이 없을 뿐이다.

세대를 뛰어넘어 상전벽해를 이룰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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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면 다 되는 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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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향기

Posted 2007. 4. 25. 11:19





정말 최고의 장면이었지.

알 파치노의 저 상기된 표정.
<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

난 우리나라의 어떤 보수주의 단체도
이라크의 민간인 사망자 65만명에 대해 어떠한 애도를 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 오버하지 말자 >


미국에서 일어난 미국 사회의 문제를 우리의 죄책감으로 포장하지 말아야 할 것.

미국의 총기 정책과 사회의 현대사회의 정신병적 아웃사이더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며, 한국과 한국인의 문제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진짜 한국과 한국인의 문제라면 이런 것이겠지.

< 필리핀 유학생의 화려한 생활 >



미국은 그들의 머리에 이미 오래 전부터 방아쇠를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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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달러 노트북의 행복

Posted 2007. 4. 13. 15:59
< 100달러 노트북, 아프리카에 배포 >

사용자 삽입 이미지

MIT의 교수이며, 미디어랩 소장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에 의해 계획되었던 이른바 100달러 노트북이 드디어 아프리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가 창설한 OLPC는 나이지리아에 드.디.어. 노트북이 전달되었다.

이른바 정보격차의 해소는 어떤 나라나 정보사회의 발전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역시 몇년 전에 이미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 법률에 의해서 정보문화진흥원도 설립되어 있다.

노트북의 제작이 100달러에 가능한가의 문제는 이미 네그로폰테 교수의 실험으로 인해 성공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성능이나 효율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미 세상에 사생아처럼 태어나버100린 달러 노트북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2차대전 당시 처칠이 들었던 바로 그 말 처럼,
"아기는 훌륭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단순한 계산만으로 될 문제는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듣기로, 쌀 한주먹씩 100번 주는 집 보다 쌀 한말 듬뿍 한번 쥐어주는 집에 구걸을 가는게 더 좋다고 한다. 이쑤시게로 100번 찔러봤자 코끼리는 죽지 않는 것처럼.

교육 받지 못하고 당장 내일의 양식을 걱정해야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 100달러밖에 안하는 노트북을 선물한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IT의 혜택을 어려서부터 받도록 하여 나이지리아의 미래에 투자하는 발상은 매우 신선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100달러 노트북을 만드는 것 보다 100달러 노트북 1000개를 가지고, 100,000달러의 현실 투자가 더 필요한 곳이 저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모쪼록 아이들이 좀더 아름다운 환경과 보살핌 속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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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사형

Posted 2007. 4. 12. 23:11
< 연쇄살인범 사형 확정 >

개인적으로 사형제도 자체의 폐지를 주장한다.
따라서 연쇄살인범인 정남규의 사형도 반대한다.

News N Joy

Posted 2007. 4. 12. 13:45
http://www.newsnjoy.co.kr/

기독교 계열의 인터넷 언론 유스앤조이

좋건 싫건 이 바닥에서 30년을 넘게 산 나에겐 교회와 기독교 전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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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좀 이르긴 하지만 광주

Posted 2007. 4. 9. 17:47



최소한,

우리 세대만이라도,
평생 짊어져야 할 숙제.
그리고 부담.
그리고 역사.
그리고
우리 세대에서만큼은 모든 것을 밝혀 부끄럽지 않아야 할 광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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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로서 산다는 기쁨

Posted 2007. 4. 8. 19:11
< 소수의견, 외로운 싸움 >

언젠가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옳다고 믿는 것은 신념이 아니다.
옳은 행동을 하는 것이 신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식적으로 '나는 당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가 저런 말을 했다고 해서 내가 항상 옳은(또는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한다고는 말할 정도는 아니다. 나 역시 누구나 처럼 적당히 비굴하기도 하고, 적당히 타협해 나가기도 하고 하니.

그렇기 때문에 옳다고 하는 또는 옳다고 믿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위의 링크 기사에 나온 변정수 前재판관은 나에게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 사람이다.

변정수 前재판관은,
겨우 중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지낸인물이다. 그는 "나는 한번도 머리로 재판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가슴으로 재판했었다"는 명언을 남기고 헌재 재판관직을 수행한 훌륭한 재판관이었다.
법의 논리보다는 법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밝혀 헌법의 최후 수호자(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임을 증명해 내야 하는 헌법재판소에 있어서는 보석같은 존재였던 사람. 또한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서 기억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소수자들을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도 그들 처럼 옳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확인하며
굽히지 않는 물줄기처럼 뻗어나갈 수 있을까.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노력할 숙제다.





* 사족
개인적으로 권성 재판관의 소수자적 지위는 그다지 옳은 견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 전두환/노태우의 재판에서 "항장은 불살이요, 공화를 위하여 감일등하지 않을 수 없다"는 법외적(法外的)판단으로 전두환의 형을 감해준 이가 바로 권성.

대법원에서는, 이회창씨 역시 소수자로서 이름이 높다. 그러나 이회창씨의 판결은 대부분 소수자를 위한 소수의견이 아닌 기득권을 위한 소수의견이 많았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가 많은 부분에서 옳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득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철저한 이론은 결코 정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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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에게 바침

Posted 2007. 4. 6. 18:24
< 로봇 윤리 헌장 >

고등학교~대학때 잠깐 SF 소설에 살짝 빠졌던 적이 있다. 지금도 대부분 그러하지만, 우리나라에서 SF소설이나 그 계열(영화라거나, 만ㅘ, 에니메이션 같은 장르 모두)은 전통적으로 '애들 보는 것들'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생각이 나에게도 물론 많았던 것은 사실인데, 이런 생각을 깨게 해 준 것이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

아이작 아시모프에 대해 알아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1.2~1992.4.6)

러시아 페트로비치 출신의 미국 과학자이면서,
당대 최고의 SF 소설가.
전공은 생화학이었지만, 천문학, 물리학, 화악 생물학 등 과학의 전 분야에 걸친 뛰어난 해설가로 유명.

주요 저서로는,

《파운데이션(Foundation)》
《우주기류(The Currents of Space)》
《강철도시(The Caves of Steel)》
《벌거숭이 태양(The Naked Sun)》
《행복의 별 및 소행성(小行星)의 약탈자 (Lucky Stars and the Pirates of the Asteroids)》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로봇(I, Robot)》(우리나라에서 로봇이라는 제목으로 출시.이해가 안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가장 아시모프 박사의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이 '로봇이라는 책은 그의 주요저서 취급을 못 받는다는 것. 알수가 없어 -_-...)

여기서 그는 이른바 "로봇공학 3원칙" 이라는 것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위의 기사에서 보는 것과 같은 로봇 윤리헌장과 비슷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로봇공학 3원칙
Three Laws of Robotics
  • Law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고, 게으름으로 인하여 인간에게 해가 되어 돌아와서도 안 된다.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 Law 2. 첫 번째 법칙과 상충되는 명령을 제외하고는 로봇은 인간에 의해 주어진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a higher order law.)
  • Law 3. 로봇은 첫째 법칙과 둘째 법칙에 상충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자신의 존재를 보호할 수 있다.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a higher order law.)

이후에 제로법칙이라는 것이 추가되었다고.

  • Law 0. 로봇은 인간성을 다치게 하거나, 게으름으로 인하여 인간성에 해가 되어 돌아와서도 안 된다.  (A robot may not injure humanity, or, through inaction, allow humanity to come to harm.)

    (http://evolution.tistory.com/23 , 에서 재인용)

    * 주) 위의 인용한 블로그에서는 "inaction" 을, "게으름"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法學에서는 "부작위(不作爲)"라고 하고,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 것' 이라고 해석한다.
           문맥상, 부작위가 더 옳은 표현이라고 본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이런 윤리+공학의 융합은 이제 우리 실제 생활에서도 적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지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이라는 소설에 보면,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악(惡)을 없애는 것, 악을 응징하는 것도 옳은 일일지 모르지만,
     그 악을 선(善)으로 바꾸는 것이 더 옳은 것이다.'


    이 말은 로봇이 한 말이다.

    로봇은 언젠간 인간 보다 더 인간적인 무엇인가가 되어버릴지도.


    21세기의 로봇과 철학.

    아이작 아시모프에게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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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ven seas of Rhye

    Posted 2007. 4. 6. 15:58


    Seven seas of Rhye

    최고로 멋진 Freddie Merc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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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Posted 2007. 4. 4. 09:24
    < 일어나라, 임수혁 >

    돌아오지 않는 2루주자 임수혁.

    마림포 임수혁.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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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말할 수 있다

    Posted 2007. 3. 30. 17:27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추적 60분을 보다가 생각난, 다시 해 주었으면 하는 프로그램 1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잠시 짬이 나서 추적 60분을 보다가 생각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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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전쟁 4주기

    Posted 2007. 3. 20. 11:08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한국인 사망자 2인

    김선일
    윤장호 하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쟁은 답이 아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모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또한,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고 죽어간 모든 전쟁터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의 명복을
    http://windshoes.new21.org/gallery-wa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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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사(?) 삼국지

    Posted 2007. 3. 16. 18:22
    < 원본 삼국지 >

    최근에 다시 보고 있는 삼국지.
    (다시 보고 있다기 보다, 새로 보고 있는 것. 황석영 님의 삼국지는 이번이 처음. 또 만화가 최훈 작가의 삼국전투기를 보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정사란 무엇인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촉에 정통성을 부여한 것이라면, 이른바 원본 삼국지는 조조에게 무게를 두었다는 소리인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가의 시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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