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가산점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2 군가산점이 과연 불평등한 제도인가?
Posted 2007. 7. 4. 16:31어제 올렸던 포스트에서는 헌재의 판결이 치명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비록, 퇴근의 압박에 시달려 좀 흐지브지 끝났지만)
2007/07/03 군 가산점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1 (헌재 판결의 모순)
어제의 글을 요약해 드리자면 이렇다.
헌법재판소는 틀.렸.다.
재판의 판결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특히 양당사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왜 헌재의 이 판결은 이런 결론이 나온걸까.
이에 관해서 시사토론의 스타 전원책 변호사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한 것이 있다.
즉, 헌재는 정치적 기관이며, 그 판단은 대법원의 판결과 달리 정치 형성의 과정이라는 말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기관이기 때문에 헌법 이외의 다른 법령에는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굳이 법률적인 검토만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헌재의 판단은 헌법과 현행 법의 법률적인 판단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법적 판단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의 자유가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고 할 수 있다. 전 변호사도 말했지만, 헌재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은 당시 IMF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의 판단을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판결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진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1점도 아까운 많은 여성/면제자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자도 그렇지 않았냐고? 남자들은 군대로 '도망(!!!???)' 갈 수 있었지 않은가?
자,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상황을 인정하고, IMF라고 하는 특수상황을 벗어난 헌재가 어떤 판단을 하여야 할까에 관한 방향을 잡아보자.
신성한 의무로서의 군대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의 가치까지 깍아내릴 수는 없다. 국방의 의무라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는 것은 인정하고 변하지 않는 정리로서 남겨 두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두고,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군대가 신성한 의무라면, 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영광된 자리(-_-)에 국민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성한 의무이며 자주국방의 기틀로서의 국방의 의무가 가지는 가치를 보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러한 신성한 의무의 존재를 두고 그러한 의무의 이행에 따른 대가를 무임승차하거나 부당하게 일방적 수혜자가 되는 사람이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방의 의무에 대한 그 보상 또는 특혜(?)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느 단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징병제나 모병제를 불문하고 모든 경우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추상적 국방의 의무와 구체적 국방의 의무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의하여 "모든 국민"이 부담한다. 남자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진다.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바으이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신체가 건강한 남성만이 군대를 갈까?
국방의 의무는 추상적 의무와 구체적 의무로 나눌 수 있다. 추상적 의무는 우리나라 국방력의 향상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국방에 소요되는 세금을 납부하거나 민방위 훈련이 있는 경우 그 훈련과정에 협조하거나, 국방관련 기술의 개발 등등 일체의 행위를 말하며 좀 더 추상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가 안보질서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 또한 국방의 의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국방력의 향상이나 군대의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간접적으로 이러한 직접적인 국방력 행상에 도움이 되는 일체의 행위가 바로 추상적 국방의의무이다.
반면 구체적 국방의 의무는 직접적인 병력 형성의 의무를 말한다. 즉, 군대에 가는 것이다.
헌법상의 국방의 의무는 남녀,건강의차이 등등을 불문하고 모두 지는 것이 맞으나, 그 구성요소인 구체적 국방의 의무는 남자만이 부담한다. 이를 실현한 것이 병역법이다.
문제는 구체적 국방의 의무를 남자에게만 부여함으로써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를 비롯한 병역면제자들은 추상적 국방의 의무만을 이행하지만, 신체가 건강한 남자는 추상적 국방의 의무는 물론 구체적 국방의 의무까지 부담하며 질적, 양적인 불평등이 발생한다.
물론,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도 있다.
이것 역시 더 나은 동등한 대우를 위한 산술적 평등이 아닌 법적 평등을 위한 국가의 조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국방의 의무는 별개의 문제이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면제자는 장애인이 아니기도 하고 여자가 아니기도 하다. 또한 국방의 의무가 가지는 신성성은 이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국방이 무너져 타국의 속국이 되어버린다면, 여성과 모성,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는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다. 비록 무관하다고 하긴 했지만, 이러한 국가의 의무와 국민의 권리는 국방의 의무가 성실히 수행되어 국가가 그만한 능력, 자국민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한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군대의 형성이라고 하는 구체적 의무를 2년여간 신체건강한 남자들이 이행함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이 군 가산점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군면제자들의 국방과 안보에 대한 무임승차나 일방적 수혜자로서의 지위를 향상시켜 군필자들과 동등한 국방의 신성성과 유사한 지위를 누리게 하는 방안.
이것이 군가산점 문제를 풀어내는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또 다시말하면, 군가산점은 군필자를 위한 혜택일뿐만 아니라, 군면제자들을 위한 혜택이기도 한 것이다.
군 가산점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군대를 가지 못했다면 그 2년여의 기간동안 다른 일을 준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군대를 가게 되면,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군대는, 헌재의 표현대로 특별한 희생은 아닐지 몰라도, 희생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개별적 보상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모르나, 가산점이라는 제도가 면제자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제도가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고,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은 군바리라고 놀림받고 천대받는 사회에서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가산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2년여의 별수롭지 않은 희생이 사회의 어느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2년이 썩어문드러진 젊은 날의 초상으로 쓸쓸히 위축되는 것은 이 나라와 면제자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가슴에 언젠가는 칼이 될 것이다.
나는 전거성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원책 변호사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전원책이라고 하는 저 사람을 믿지도 않는다. 대표적인 보수적 포퓰리스트다. 과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관한 법워의 판결에 대한 100분 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가관이다. 혼자 흥분하고 쌩쑈한다. 난 이 사람 별로다.
(비록, 퇴근의 압박에 시달려 좀 흐지브지 끝났지만)
2007/07/03 군 가산점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1 (헌재 판결의 모순)
어제의 글을 요약해 드리자면 이렇다.
이렇게 헌재의 판결을 분석해 본다면,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1. 진정한 법적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가른 것은 다르게' 이다.
2. 헌재의 논리에 따를 경우의 문제는,
가산점을 주면 여성과 장애인 등 군미필자를 차별하는 것이지만,
가산점을 안주면 군필자를 차별하는 웃기는 결론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틀.렸.다.
재판의 판결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특히 양당사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왜 헌재의 이 판결은 이런 결론이 나온걸까.
이에 관해서 시사토론의 스타 전원책 변호사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한 것이 있다.
즉, 헌재는 정치적 기관이며, 그 판단은 대법원의 판결과 달리 정치 형성의 과정이라는 말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기관이기 때문에 헌법 이외의 다른 법령에는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굳이 법률적인 검토만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헌재의 판단은 헌법과 현행 법의 법률적인 판단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법적 판단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의 자유가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고 할 수 있다. 전 변호사도 말했지만, 헌재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은 당시 IMF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의 판단을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판결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진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1점도 아까운 많은 여성/면제자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자도 그렇지 않았냐고? 남자들은 군대로 '도망(!!!???)' 갈 수 있었지 않은가?
자,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상황을 인정하고, IMF라고 하는 특수상황을 벗어난 헌재가 어떤 판단을 하여야 할까에 관한 방향을 잡아보자.
신성한 의무로서의 군대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의 가치까지 깍아내릴 수는 없다. 국방의 의무라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는 것은 인정하고 변하지 않는 정리로서 남겨 두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두고,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군대가 신성한 의무라면, 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영광된 자리(-_-)에 국민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성한 의무이며 자주국방의 기틀로서의 국방의 의무가 가지는 가치를 보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러한 신성한 의무의 존재를 두고 그러한 의무의 이행에 따른 대가를 무임승차하거나 부당하게 일방적 수혜자가 되는 사람이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방의 의무에 대한 그 보상 또는 특혜(?)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느 단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징병제나 모병제를 불문하고 모든 경우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추상적 국방의 의무와 구체적 국방의 의무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의하여 "모든 국민"이 부담한다. 남자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진다.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바으이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신체가 건강한 남성만이 군대를 갈까?
국방의 의무는 추상적 의무와 구체적 의무로 나눌 수 있다. 추상적 의무는 우리나라 국방력의 향상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국방에 소요되는 세금을 납부하거나 민방위 훈련이 있는 경우 그 훈련과정에 협조하거나, 국방관련 기술의 개발 등등 일체의 행위를 말하며 좀 더 추상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가 안보질서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 또한 국방의 의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국방력의 향상이나 군대의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간접적으로 이러한 직접적인 국방력 행상에 도움이 되는 일체의 행위가 바로 추상적 국방의의무이다.
반면 구체적 국방의 의무는 직접적인 병력 형성의 의무를 말한다. 즉, 군대에 가는 것이다.
헌법상의 국방의 의무는 남녀,건강의차이 등등을 불문하고 모두 지는 것이 맞으나, 그 구성요소인 구체적 국방의 의무는 남자만이 부담한다. 이를 실현한 것이 병역법이다.
문제는 구체적 국방의 의무를 남자에게만 부여함으로써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를 비롯한 병역면제자들은 추상적 국방의 의무만을 이행하지만, 신체가 건강한 남자는 추상적 국방의 의무는 물론 구체적 국방의 의무까지 부담하며 질적, 양적인 불평등이 발생한다.
물론,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도 있다.
물론, 여자와 장애인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모성은 보호되어야 한다.제34조 ①②(생략)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생략)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제36조 ①(생략)
②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것 역시 더 나은 동등한 대우를 위한 산술적 평등이 아닌 법적 평등을 위한 국가의 조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국방의 의무는 별개의 문제이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면제자는 장애인이 아니기도 하고 여자가 아니기도 하다. 또한 국방의 의무가 가지는 신성성은 이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국방이 무너져 타국의 속국이 되어버린다면, 여성과 모성,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는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다. 비록 무관하다고 하긴 했지만, 이러한 국가의 의무와 국민의 권리는 국방의 의무가 성실히 수행되어 국가가 그만한 능력, 자국민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한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군대의 형성이라고 하는 구체적 의무를 2년여간 신체건강한 남자들이 이행함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이 군 가산점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군면제자들의 국방과 안보에 대한 무임승차나 일방적 수혜자로서의 지위를 향상시켜 군필자들과 동등한 국방의 신성성과 유사한 지위를 누리게 하는 방안.
이것이 군가산점 문제를 풀어내는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또 다시말하면, 군가산점은 군필자를 위한 혜택일뿐만 아니라, 군면제자들을 위한 혜택이기도 한 것이다.
군 가산점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군대를 가지 못했다면 그 2년여의 기간동안 다른 일을 준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군대를 가게 되면,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군대는, 헌재의 표현대로 특별한 희생은 아닐지 몰라도, 희생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개별적 보상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모르나, 가산점이라는 제도가 면제자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제도가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고,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은 군바리라고 놀림받고 천대받는 사회에서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가산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2년여의 별수롭지 않은 희생이 사회의 어느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2년이 썩어문드러진 젊은 날의 초상으로 쓸쓸히 위축되는 것은 이 나라와 면제자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가슴에 언젠가는 칼이 될 것이다.
나는 전거성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원책 변호사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전원책이라고 하는 저 사람을 믿지도 않는다. 대표적인 보수적 포퓰리스트다. 과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관한 법워의 판결에 대한 100분 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가관이다. 혼자 흥분하고 쌩쑈한다. 난 이 사람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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