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가 평양대부흥 100년을 맞이하는 해 2007년.
지금 기독교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한 축에는 이랜드가 있고, 다른 한 축에는 샘물교회가 있다.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으로 불리운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 두가지 사건을 계기로 한국 기독교는 지금 거의 지금 빈사상태다.

왜, 이 나라에서는 기독교가 고 따위의 대접을 받고 있으며,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1. 이랜드 사태.

이랜드 사태는 어쩌면, 아니 확실히 예견된 것이었다. 그 문제야 당연히 현행 노동법의 지리멸렬한 타협의 산물도 못되는 한심한 작태라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번엔 이랜드지만, 다음엔 어디가 될지 모르는 현실일 뿐이다.

근데 왜 이랜드이고, 왜 기독교일까?

이랜드는 창업초기부터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경영을 모토로 시작된 기업이다. 탈세를 하지 않고, 아침마다 기도회가 열리는 그런 기업이었고, 초기에만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몰렸던 이른바 '건전한' 기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신원에벤에셀과 함께 가장 성공한 기독교 기업으로 인정받아왔다.

의류업에서 시작해서, 의류업의 위기를 유통업으로 돌려 뉴코아와 홈에버, 아웃렛과 김스클럽(이걸 왜 킴스클럽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까지 장악해서 유통관련 자회사가 오히려 더 탄탄해진 회사다.

이랜드는 창업초기부터 사원에 대한 은근하고 강압적인 기독교 전도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회사 분위기는 회사의 창업이념 자체가 기독교 정신이었다는 점에서 거의 문제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부터 속이 썩어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이랜드가 기독교 정신을 표방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회사의 이념이 나눔과 바름, 자람과 섬김이라고는 하지만, 나눔은 있으되 밖과 나누지 않고, 바름은 있으되 자신에 대해서만 바르며, 자람은 있으되 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섬김은 있으되 그것은 복종과 굴욕으로 표현되고 말았다. 가난한 자들과 나누고, 어려운 자들과 나누는 이랜드는 없고, 바르지 못함을 바름으로 정의해 버린 편협한 기독교적이지 못한 바름만이 있고, 자라다 못해 웃자라 버린 천민자본주의적인 성장만이 존재한다. 섬김은 계층간의 복종과 지배로만 나타날 뿐 그것이 섬김이라고 할 만한 아무 것도 없다.

예수는 위에 있는 자들, 지도자들의 섬김을 강조했다.
예수 스스로가 자신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선언 했으며, 교회 지도자의 사회 지도자의 섬김을 강조했지만, 이랜드는 자신의 가족들 마저도 섬기지 못하는 반쪽짜리 기독교 회사로 전락해 버렸다.



2. 샘물교회 사태

샘물 교회는, 이전까지는 가장 대표적인 한국교회의 청사진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사실이다.
한국 교회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회인 서울영동교회의 담임목사를 역임했던 박은조 목사가, 신도가 증가하면 성장을 위한 교회확장이 아닌 분리 개척한다는 서울영동교회의 정책에 따라 1998년에 설립된 교회다.

샘물교회는 교회비리에 관한 시사 프로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한국교회로 서울영동교회와 함께 소개되던 가장 건실한 교회였고, 이러한 사실은 지금도 변함 없이 사실이다.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교회이지만, 세금을 내고 있는 몇 되지 않는 교회이며,

교회를 크게 짖는 것 보다는 교인의 수를 줄여 분리 독립 시켜 작은 교회를 지향하고,
한국 교회가 겨우 3%의 수입을 구제를 위해 사용할 때 절반이 넘는 수익을 구제를 위해 사용하는 교회이고
담임목사는 물론이요, 교회의 청소를 담당하는 분까지 모든 교직자의 임금을 단일화 하여 가족 수에 따른 추가수당만을 받는 교회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려신학회 소속으로 일제시대때는 교리에 따라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일한 교단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러한 샘물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마의 자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샘물교회가 물러서면, 더 이상 한국에서 기독교가 설자리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그들의 신앙에 따라 그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을 탓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문제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평양대부흥 100년을 맞이하는 이 때에 이렇게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크다.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연말에 당연하게도 대선과 연결될 것임이 뻔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는 불교와 천주교에 밀려 사그러질 위험에 있다.




어쩌면,

그래도 희망적인 무교회주의의 부활을 꿈꿔야 할 지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