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거의 대부분의 신문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새해에 바뀌는 제도"에 관한 것으로, 어떤 항목에서 세금혜택이 생긴다거나 없어진다는, 또는 물가는 어떻게 오르내리고,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많은 이슈들에 대해 새해 들어서 변화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생할 섹션의 기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그런 기사가 눈에 띄질 않는다. 그다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때문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폭설이나 김혜수-유혜진(내가 무척 싫어하는 류의 기사긴 하지만)의 연애에 관한 뉴스 또는 그 외의 많은 이슈들이 있어서 밀려난 것인지 모르지만, 신문 한 구석에라도 실렸을 기사가 없어진 것은 좀 이상하다.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 나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좀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일일히 찾아봐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으니 말이다(물론 어느 신문에선가는 기사가 나왔겠지만, 내가 못봤으니 중요하진 않다. -_-;;)

새해가 밝으면서 바뀐 것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여러 사람의 관심사이지만 많이 오르내리지 못했고, 덩달아, 나와는 거의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묻혀버린 듯해 안타까운 내용이 있었다. 바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기사였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이 2011년부터 적용되는 것이니 2010년에 바뀌는 제도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2011년부터 적용될 문제니 얼마 안남은 문제이기도 하고, 한번 바뀌고 매년 바뀌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교육대책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고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정권말 까지 이 제도가 이어질 것이 분명할 것이므로 2010년 벽두에 화두가 될만한 문제임에도 그다지 오르내리지 않으니 의아할 뿐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12월 17일에 개정된 것으로 벌써 20여일이 지났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평가가 이루어졌는데도 내가 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그다지 신문에 많은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이슈에 밀려 홀대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종시나 용산참사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다가 최근에 원전 수주에 관한 문제까지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니 국민의 대다수가 목을 메고 있는 교육문제도 그냥 그저그런 문제로 밀렸을 것이니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닐 수 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항은 국사 과목이 선택과목화 된다는 것었다. (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그 외에도 도덕과목이나 기술 과목도 선택이 되었다. 굳이 말 안해도 모두 알만한 사항이지만, 국사가 선택과목이 된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놀라고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사설에서도 국사과목의 선택과목으로의 추락을 걱정하고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사설1, 사설2)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나,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가볍게 비웃어주시는 우리 대통령께서, 그리고 그 심복들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면 그다지 이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도덕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외줄타기로 힘겹게 버티시는 여러 고관대작들과 그 자제분들을 위해 도덕과목도 같이 추락했다는 것이고, 이해하기 진짜 어려운 문제는 지방대 나오면 기술이나 배우시라는 대통령님의 교시가 있었음에도 기술과목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라간 것이다.

나름 보수적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스스로는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실제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이명박정부가 국사교육을 국영수나 그 외의 다른 필수과목과는 다른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점이 현 정부의 행태에 비춰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했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각의 보수주의자들의 침묵이다. 전후 수십년간 보수주의적 정권이 유지되어왔고 소위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집권기 동안 국가의 정체성논란에 심혈을 기울였던 뉴라이트와 그 유사세력이 왜 이번 국사교육 추락사건(내가 이름 붙이지만 잘 붙였다. 추락. 추락한다고 해서 꼭 날개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는 좀 이해할 수 없다. 언젠가 어떤 신문의 만평에서 다른 일에 대해 논평한 것처럼, 얻어먹었거나 얻어맞았다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해 보인다.

보수주의의 사전적 정의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고 한다면 이해가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저자가 쓴 설명대로, "종교나 문화 및 민족의 기존 가치관 유지를 주장하는 정치이념"이라고 한다면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국사교육이란 민족의 기존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지키는 가장 유용하고 효율적인, 그리고 기본적인 수단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 어느 누구도 국사 교육의 추락을 논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가지로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실제로는 보수주의자가 아니거나.

국사 교육이 선택과목으로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내 입장에서나 진보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별로 탓할 것은 아니로되, 이명박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글이나 다른 글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이명박 정부가 그다지 반길 일은 아닐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몰라주길 바랄 뿐이리라. 하지만, 그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다면 그 보수주의자라 참칭하는 세력의 정체성은 갑자기 보호해 질 뿐이다. 보수주의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니 보수주의라 할 수 없고 백번양보해서 우파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우파의 정신적, 사상적 기초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정체성 논란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보수주의는 없고 그냥 우익 수구세력(이라고 쓰고 그냥 기득권 세력이라고 읽는다)만 존재한다고 본다면 구갓 교육 따위야 어떻게 되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내 후손이 그저 첨예한 경쟁속에서도 살아남는 서바이벌 마스터로 성장해 주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재산상, 권력상의 이득으로 작용하기만 한다면 별 문제는 없다. 게다가 멜서스의 「인구론」 처럼 말하지 못하는 내심의 폭언을 기쁘게 그러나 불가피하게 주장하는 내용의 한 발현이라고 본다면 국사교육 추락사건은 반가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별 근거없는 과거의 호주제도나, 경제발전을 위한 민주주의의 유예라고 하는 한국 보수주의의 논쟁이 필요없는 가치들에 대하여 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끊임없이 제기되는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은 물론이요, 친일파니 미군정이니 하는 껄끄러운 문제나 임시정부와 광복 혹은 건국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 떳떳하지 못한 한국의 기득권세력이 국사교육에 그다지 열성적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E.H. Carr는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대화 없는 과거의 사실의 전달에만 치우칠 보수주의자들의 국사교육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한편으로는 국사교육을 바로잡는다는 미명하에 국사교과서의 대안교과서까지 편찬한 자들이 책값 떨어지게 뭐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다)

이미 어쩔 수 없이 (물론 개선의 여지는 있지만) 국사과목의 선택ㄱ과목화는 피할 수 없어보인다. 교육부가 그다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애써 끊으려 한다는 점도 그렇고(이상하게도 논평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단순히 국사교과를 선택화 한다고 해서 부수주의자들의 안심(역사적 정통성과 정당성에 대한 피하고 싶은 논쟁들)을 가져오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내가 국사교육의 이런 추락에도 별로 당황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고등학교는 쉬운(상대적으로) 국사 시간을 줄이지도, 없애지도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있고, 지속적으로 국사교육은 그래도 이뤄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박근혜를 비롯한 소위 정통보수라는 자들은 언젠간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국사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말했듯이 보수라는 글자는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그리고 국가의 정통성을 논해야지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건 실질적이건 아니, 완전 형해화되더라도 국사교을 포기할 수 없다. 자신들이 목숨바쳐서 지켜왔다는 바로 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말하는데 국사교육이 빠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도 박정희가 누구인지 말하기 위해 영어교과서 둘러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것이냐는 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국사가 없어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말이 이리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좀 많이 뻘 소리 같이 글을썼지만,


그다지 걱정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덥잖은 정책이나 시행하고 그 시행착오를 바로잡기 위해(게다가 눈에 보이는 뻔한 시행착오) 공무원들 월급이니, 귀중한 시간 빼앗기는게 좀 안타깝긴 하다.

교육부가 무슨 죄겠냐.

그냥 눈빛 보며 발맞춰 가려는 영혼 없는 관료들이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