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놈들은 투덜대기만 한다 >

왜 우리는 조선일보를 욕하고 기만적이라 욕하는가.

조선일보의 행태에 대해서는 굳이 여러번 떠들 것도 없이, 지난5,6공을 거치면서 권력에 유착해서 얻어냈던 그 화려한 영광을 보면 알 수 있다. 79년만 해도 중앙일보는 물론 한국일보에도 뒤지던 매출액이 어떻게 전두환과 노태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언론기관으로 부상했던가(당시 동아일보는 석간신문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매출액이 적었다)

오늘 저 위의 기사를 보면서도 이놈들이 확실히 이면박을 밀어 한나라당 집권에 일조하고 또 예전처럼 권력과 함께 나라 망쳐먹으려 작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 또 조갑제가 있다.


얼마전 조갑제는 허무맹랑한 논리로 우리를 경악시키며 또 다시 보수 꼴통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한편, 공개적, 공식적으로 이명박을 확실히 지지하는 듯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 글이 바로 내 블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 왜 부자가 가난한 자보다 더 도덕적인가 > 라는 글이다.

이 글을 처음 볼 때만 해도, 조갑제의 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바보였다. 왜? 부자가 도덕적인 것은,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조선일보가 뛰면 다르다. 왜? 조선일보니까.

조선일보는 글부터 대략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위의 기사를 내 보냈다. 조선일보의 큰형님인 조갑제의 논리를 뒷받침 하기 위한 그리고 나아가 이명박의 깨끗한 부자로서의 삶을 부각시켜 부정부패와 부정축재를 옹호하여 도덕교사가 아닌 대통령을 뽑기 위함이라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키워가려는 것이다(오히려 도덕교사는 좀 부도덕해도 된다 요즘엔 대학 잘보내는 교사면 장땡이다. 영어교사건, 도덕교사건 그것은 상관 없다)

조선일보에 나온 그림부터 웃기고 기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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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보고서

도대체 이게 뭐하자는 것인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이라니.
부자가 아닌사람 = 투덜대기만 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 = 투덜대기만 하는 사람 = 나쁜 사람의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자 = 착한 사람이 되겠지.

조갑제는 그의 청부론에서 이와 같이 밝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富者는 대체로 가난한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다. 부자는 우선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신뢰성이 강하므로 부자가 되었다. 즉 도덕적이기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속임수와 뇌물로 부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가난한 사람은 신체부자유자나 특별한 가정사정을 제외하면 대체로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신용이 떨어진다.
  부자는 남을 돕는다. 기업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월급을 준다. 가난한 사람은 남을 도울 수가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부자가 더 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조갑제 논리의 가장 큰 오류는 동일선상에서의 비교가 아닌, 차별화된 비교와 비약의 논리라는 점이다. 부자는 남을 돕는다의 반대는 남을 돕지 않는다 또는 돕지 못한다가 되어야 함에도, 더 나아가, 민폐를 끼치게 된다는 비약을 한다. 속임수와 뇌물로 부자가 된 자의 문제는 겨우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는 언급에 머문다.

이러한 조갑제의 논리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비판해 왔으니 더 비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 글에 대해서는 솔직히 어떤 사람도 사족을 달지 못할 정도로 명백한 아전인수격의 황당한 소리였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시 조선이 들고 나왔다는 것이 문제다. 이 조갑제의 발언 만으로는 어떤 힘도 생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결국 우리는 세뇌될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이유는 조선이 우리에게 소리치는 얄팍하지만 깊은 충고가 있기 때문이다.

투덜대는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없다.



최근의 이러한 부자와 부자론에 관한 글과 기사를 보면, 한 가지 의문나는 점이 생긴다. 우리는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왜 부자가 되어야 할 것이며, 부자가 되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지금의 부자와 부자 아빠들은 침묵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부자가 될 것이며, 어떤 방법으로 부자가 될 것인가 그리고 부자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무도 이러한 문제에는 답을 하지 않는다. 단지, 당신은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권할 뿐이다.

우연히 지인에게 [한국의 젊은 부자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얻어 읽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부자라 일컬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에 관한 책이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돈을 벌었던 방식은 매우 간단 했다.
불법 도박
알박기
해외(특히 시장자본주의가 이제 겨우 성장하기 시작한 중국과 동남아) 부동산 투기
국내 부동산 투기
골프장 건설

심지어는 친절하게도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이 책에 관한 서평이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공염불이었다. 왜 부자가 되어야 하고 부자 이후의 문제는 침묵했다.
오늘 조선일보의 기사도 또한 같다.

조선일보의 부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옛날엔 우리 집도 부자였는데
2. 전엔 저 땅 다 뽕밭이었는데
3. 회사가 강북이어서
4. 빚도 없이 열심히 모았는데
5. 주가 부동산 폭락해라

이 제목만 봐도 모르겠는가? 조선일보는 투기를 해서라도 돈을 벌라고 하고 있다.
뽕밭이건 뭐건, 농사를 지을 것은 아니지만, 돈이 된다면 밭이건 논이건 사두라는 소리고, 어떤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건 관심없이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보라고 권유하고 있는 것이 조선일보다.

위의 기사를 잘 읽어보면, 돈을 못버는 당신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고,
투자 시각도 없이 세상돌아가는 물정에 어둡거나,
현실에 안주하기만 하는 게으름뱅이이고,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투자하지 못하는 소심쟁이에,
주가와 부동산가가 떨어져도 사 둘 수 없는 가난뱅이에 불과하다.

이 모든 논리가, 조갑제의 글에 일치하는 도덕적 부자론이다.
조갑제는 가난이 곧 부도덕이라고 했지만, 조선일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난은 곧 무능이며 투덜이에 신세한탄이나 하는 병신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역시 조선일보는 왜 부자가 되어야 하고, 부자들이 이 사회에서 감당해야할 몫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들이 그렇게 더럽고 치졸한 방식으로 축재 해 왔기 때문에 어떠한 답도 낼 수 없는 더러운 인생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조선일보의 말대로, 투자와 투기를 넘나드는 빠릿빠릿한 인생을 살면 분명히 부자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그 부자로서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 말이다.

그 따위로 부자가 되어 자신과 함께 이 사회를 주무르는 기득권이 되고자 함인가?




조선일보는 절대 아마추어가 아니다. 조갑제 하나만으로는 그들은 힘이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언론이 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기만하고 세뇌한다.

그것이 우리가 조선일보를 저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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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왕




조아세

라는 단체가 있다.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시민 모임"이다.

조. 아. 세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새상에 살고 싶다. http://www.joas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