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디어법의 통과를 두고 할말 안할 말을 오프라인에서 다 떠들어댔더니, 사실 온라인에 쓸 말이 그다지 많지가 않다. 게다가 준엄하신 저작권법님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눈깔 덕분에 할 말도 다 해선 안되는 것이겠거니 하는 마음도 있고.

최근 미디어법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MB정권이 출현한 이후,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여기저기에서 있어왔다. 나 역시 이런 선거의 실패(? 실패는 무슨.. 모두가 뜻한바 대로 투표해 놓고는 말이다)가 왜 우리를 옭죄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아니한 바는 아니다. 이 문제의 결론을 부동산에 투표한 대한국민들이라고 조소했던 나로서는 계속 이런 망연자실한 실소로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마는, 어찌되었건, 우리의 치질과 변비는 우리를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의 정확한 파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몇가지 알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우리 회사에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꽤 잘 완비되어있을 정도의 좋은 회사에 다니니 이걸 감사해야 할까? -_-
우리 회사 화장실에는 비데도 설치되어 있다. 사원 복지가 회사의 매출이나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 같은 단순한 사회민주주의 내지는 복지우선론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물론 우리회사가 처음부터 모든 변기에 비데를 설치한 것은 아니었다. 3칸의 해방공간(?)중에 먼저 각 1칸(층별로)에 훌륭한 비데가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사이에서는 불길한 파라독스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비데의 설치로 인하여 변비와 치질 환자는 증가한다.

는, 실로 현대의학과 생활상식을 뛰어넘는 궤변이 등장한 것이다. 일견 말도 안되는 헛소리인 것 같은 이 논리가 점차 퍼지면서 그 논리적 뒷받침이 될 근거들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


3개중 1개의 변기에 대한 비데의 설치 --> 비데 사용자의 증가(최소한 화장실 이용자의 1/3(화장실 가서 똥은 안싸고 오줌을 누거나 딴 짓을 하는 자식들은 제외한다. -_- 다만, 여자는 제외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본지가 30여년이 넘다보니 여성들의 화장실 이용행태는 모르겠다 -_-) --> 非비데 설치 화장실의 기피현상 발생 --> 모두가 비데 똥간으로! --> 비데화장실의 수요증가와 함께 변기 입구 병목현상 발생 --> 비데가 아니면 쌀 수 없는  신인류 탄생 --> 신인류, 비데 병목현상으로 인한 변비 증상 심화 --> 신인류중 각성자 일부, 기존의 휴지 화장실로 퇴출 --> 비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청량함의 상실을 우려하며 지나친 청결화작업으로 항문 마찰 증가 --> 치질 증세 등장 및 심화.....


유치한 논리적 전개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이유로 3개의 변기에 1개의 비데만을 설치했을 때,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는 오히려 복지수준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이 냄새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여기 두 가지의 해결방안이 경영진에게 주어졌다.


하나는, 예산을 좀 더 투입하여 나머지 2개의 변기에도 비데를 설치하는 것이다. 물론 예산의 투입이라는 난제가 있으나, 회사 전체의 생산성 향상과 사원 복지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이 정도 투자라면 충분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회사의 입장에서 비데설치에 따른 추가 투자는 그다지 큰 손실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비데가 없는 화장실에서의 배변을 촉구하는 것이다. 약간의 홍보로 가능하며 추가적인 금전의 투입은 없다. 기존의 변기에서 상당기간동안 잘 싸왔던 우리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의 도래로 배변활동의 민주화를 이룩하였으되, 기존의 휴지와의 마찰을 통한 배변 사후처리시대에도 충분한 위생환경을 이룩해 살던 사람들에게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데로 인해 창달했던 위생수준의 획기적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아니, 상식적인 회사라면, 비데 구입과 설치를 위한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두 번째 방식을 잠정적으로 시행하고 비데 예산의 확보와 함께 회사의 모든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는 수준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웬만큼 큰 회사라면, 비데 예산 정도의 확보가 어려운 문제는 아니므로 곧바로 첫번째 방식의 솔루션이 시행될 터다.


하지만, 여기까지.

우리 MB 정부의 문제해결방식은 그렇지 못하고 있고,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끝없는 변비와 치질의 고통을 배가 시킨다.
MB 정부의 최대 문제중에 하나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시작한다.

미디어법의 이번 날치기 무효통과(뭔가 용어가 매우 거시기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이번 법 개정을 인정안하기로 했고, 따라서 그거 무효라는 말이니까 그냥 넘어가자)에서 보는 것과 같이, MB 정부는 미디어법의 개정이유는 그저 일자리 창출에 있다. 미디어가 가지는 의미와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따지기 보다는 그들은 일자리 2만개 창출할 수 없는 미디어법의 민생적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최대 신문 그래서 최악 신문 조선일보의 시장점유율이 10%대를 겨우 넘는 상황에 20%의 제한을 두고는 제한을 뒀으니 괜찮다고 하는 수준이니 뭐 이상할 것도 없지만(이건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에 3학년들 모아두고  100m 달리기 해서 세계신기록 내는 놈은 과자 사준다고 하는 꼴이다) 미디어와 신문 그리고 방송이 왜 우리 사회에 존재하여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거나 자칫하면 속내를 들킬까봐 애써 외면하고 있는 꼴이다.


비데를 안써서 치질이 우려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기의 민주적 비데통일 장착이다. 하지만, 비데를 설치했더니 치질과 변비환자가 증가하여 민생을 위해 비데를 치워버리는 것이 사원 복지에 최전선이라고 주장하시는 우리 싸장님 MB.

딱 그꼴인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저작권법을 피해 한 블로거가 쓴 글을 소개한다. 아돌군님의 글을 보자.
장애인은 낙태해도 된다고 하시던 MB의 정부께서 낙태되지 못하고 이 땅에 태어난 장애인들을 다루는 솜씨를 보라.


할말은 많은데, 할 말이 없을 정도인 우리 대통령.
젠장, 정말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

시사투나잇이 사라진 자리에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왔다. 이름은 시사360.

시사투나잇의 아쉬운 종영에 이어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솔직히 말하면, 너무 졸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그램 소개만 봐도 그렇다.

시사360

시사투나잇



왼쪽이 시사360의 프로그램 소개. 오른쪽의 시사투나잇의 프로그램 소개와 비교해 보면 졸속이 아닐 수 없다. 저 정도의 프로그램 기획의도와 개요 정도의 설명은 일반 회사라면 포스트잇 한장에 적어 보고할 때 간략 브리핑 해 주는 메모 정도에 지나지 않는 정도의 메모일 뿐이다. 뭘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게 하겠다는 건지 모를 정도니 이 정도면 "아직 어떻게 할지 몰라서 이 정도만 알려드릴께요. 프로그램 성격은 상황봐서 분위기 봐서 대충 만들어갈 계획입니다~" 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특히 첫 방송에서 미네르바 신드룸이라는 소제목으로 방영한 내용은 웃기는 짬뽕 수준이다.
오죽하면, 신문에서까지(일반적으로 상호간 비판은 그다지 심하게 하지 않았던) 그 내용을 비판하고 있으니 할 말 없을 정도다.
미네르바의 발언에 대한 신뢰성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전형적인 언론의 횡포다. 제대로 된 미네르바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 상황에서 미네르바가 옳으니 아니니 하는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네르바는 "주장"을 말하는 "논객"일 뿐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 자기 블로그에 글을쓰고 있는 모든 사람이 논객이다. 그런 그에게 국가는 침묵할 것을 명령했다(명령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상상해 보자.

우리 모두에게 "블로그에는 각자 개인적인 이야기만 쓰는 것을 허용한다" 라고 한다면, 그 누가 참겠는가?
미네르바가 자신의 말을 하건, 말건, 쓰건, 씨부리건 그것은 그의 자유다.
그의 말을 듣고, 읽고, 믿고, 신봉하는 것도 그 글을 말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의 자유다.

시사360은 미네르바의 전망과 논평이 얼마나 정확한가에 우선 중점을 두고, 기획재정부의 반발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경제에 대한 비관적 평가를 했다는 이유다. 왜 그는 비판을 했는가가 중요한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 늙은 인간. 시민, 그리고 국민, 더 나아가서 언젠간 내가 될 수 있는 그 사람이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는 사실이다. 미네르바가 어떻게 우리를 홀렸는가에 우리는 관심없다.(실제로 나 조차도 미네르바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다. 그의 발언을 담은 글을 PDF 파일로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누군가가 개소리 잡소리 헛소리를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대한 판단을 하기 전엔 그것을 들어주진 못하더라도, 그것을 못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시사 360의 어제 방송은 그런 면에서 확실하게 시사투나잇과 차별화를 만들어냈다. 마이너들의 목소리를 밤 늦은 시간에 나즈막히 읊조리던 시사투나잇과 달리, 시사360은 정부를 비판하되, 정부가 원하는 비판을 해줬다. 즉, 메이저의 비판이다. 어찌보면 이제 관영방송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KBS는, 이런 식의 정부의 자기반성 대행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시사360의 급조된 웹사이트는, 시사투나잇의 귤색 메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급하게 만드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줬을뿐.

급하긴 급했나보다.



360도를 돌면 바로 그자리다.


하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완전히 돌았다"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