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질들이 석방된 지금, 물론, 그 전에도 전두환의 아프가니스탄 행은 반드시 국운을 걸고! 막아야 한다.


우리는 기억한다.
전두환이 어떤 사람인지를.



전두환은 분명 "정의 사회 구현"을 모토로 하여 혼란에 빠진 국가의 정권을 휘어잡았다.
그가 정권을 잡을 당시 우리나라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나라인 미국은 침묵했고, 그의 광주에 대한 살육을 눈감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절대 우리는 그를 보낼 수 없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어떠한가?

정부는 힘을 잃고 헤매고 있으며,
미군의 점령과 외국군의 주둔으로 온 국민이 상처받고 있다.

어떤가?

1970년대말과 1980년의 우리와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특수훈련을 받고 정치자금이 마르지 않는 29만원짜리 통장을 가지고 있는 그가 아프간에 간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가공할만한 충정훈련의 결과로 이어질 아프간정권 장악과 이에 반대하는 아프간 국민의 대량학살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결정적으로 미군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그의 또 한번의 홀로코스트를 묵인할 것이다.

탈레반은 반정부 테러단체이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아프간 정부는, 그리고 아프간의 죄없는 국민들은 어쩔텐가?


우리는 세계평화를 위해서 우리 손으로 전두환을 거시기 해야 한다.

아프간에 보낼 수 없다!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제2의 광주로 만드는 것에 결사 반대한다!

전두환은 우리 손으로!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Posted 2007. 7. 26. 11:06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3-44)
어쩌면, 우리나라 기독교의 성경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글귀이면서도,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여전히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구절이 저것이 아닐까. 몇십년이 지났지만, 한국의 기독교인, 특히 이북 출신의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소위 북한의 "빨갱이"와 "공산 괴뢰군"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맞이하는 한국의 기독교가 가져야 할 자세가 저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9)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잠언 25:21)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잠언 24:17)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국 기독교가 평양대부흥 100년을 맞이하는 해 2007년.
지금 기독교계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한 축에는 이랜드가 있고, 다른 한 축에는 샘물교회가 있다.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으로 불리운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이 두가지 사건을 계기로 한국 기독교는 지금 거의 지금 빈사상태다.

왜, 이 나라에서는 기독교가 고 따위의 대접을 받고 있으며,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1. 이랜드 사태.

이랜드 사태는 어쩌면, 아니 확실히 예견된 것이었다. 그 문제야 당연히 현행 노동법의 지리멸렬한 타협의 산물도 못되는 한심한 작태라는 것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번엔 이랜드지만, 다음엔 어디가 될지 모르는 현실일 뿐이다.

근데 왜 이랜드이고, 왜 기독교일까?

이랜드는 창업초기부터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경영을 모토로 시작된 기업이다. 탈세를 하지 않고, 아침마다 기도회가 열리는 그런 기업이었고, 초기에만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몰렸던 이른바 '건전한' 기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신원에벤에셀과 함께 가장 성공한 기독교 기업으로 인정받아왔다.

의류업에서 시작해서, 의류업의 위기를 유통업으로 돌려 뉴코아와 홈에버, 아웃렛과 김스클럽(이걸 왜 킴스클럽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까지 장악해서 유통관련 자회사가 오히려 더 탄탄해진 회사다.

이랜드는 창업초기부터 사원에 대한 은근하고 강압적인 기독교 전도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이런 회사 분위기는 회사의 창업이념 자체가 기독교 정신이었다는 점에서 거의 문제되지 않았고, 그 안에서 부터 속이 썩어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차라리 이랜드가 기독교 정신을 표방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회사의 이념이 나눔과 바름, 자람과 섬김이라고는 하지만, 나눔은 있으되 밖과 나누지 않고, 바름은 있으되 자신에 대해서만 바르며, 자람은 있으되 같이 성장하지 못하고, 섬김은 있으되 그것은 복종과 굴욕으로 표현되고 말았다. 가난한 자들과 나누고, 어려운 자들과 나누는 이랜드는 없고, 바르지 못함을 바름으로 정의해 버린 편협한 기독교적이지 못한 바름만이 있고, 자라다 못해 웃자라 버린 천민자본주의적인 성장만이 존재한다. 섬김은 계층간의 복종과 지배로만 나타날 뿐 그것이 섬김이라고 할 만한 아무 것도 없다.

예수는 위에 있는 자들, 지도자들의 섬김을 강조했다.
예수 스스로가 자신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고 선언 했으며, 교회 지도자의 사회 지도자의 섬김을 강조했지만, 이랜드는 자신의 가족들 마저도 섬기지 못하는 반쪽짜리 기독교 회사로 전락해 버렸다.



2. 샘물교회 사태

샘물 교회는, 이전까지는 가장 대표적인 한국교회의 청사진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사실이다.
한국 교회중에서 가장 존경받는 교회인 서울영동교회의 담임목사를 역임했던 박은조 목사가, 신도가 증가하면 성장을 위한 교회확장이 아닌 분리 개척한다는 서울영동교회의 정책에 따라 1998년에 설립된 교회다.

샘물교회는 교회비리에 관한 시사 프로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의 한국교회로 서울영동교회와 함께 소개되던 가장 건실한 교회였고, 이러한 사실은 지금도 변함 없이 사실이다.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교회이지만, 세금을 내고 있는 몇 되지 않는 교회이며,

교회를 크게 짖는 것 보다는 교인의 수를 줄여 분리 독립 시켜 작은 교회를 지향하고,
한국 교회가 겨우 3%의 수입을 구제를 위해 사용할 때 절반이 넘는 수익을 구제를 위해 사용하는 교회이고
담임목사는 물론이요, 교회의 청소를 담당하는 분까지 모든 교직자의 임금을 단일화 하여 가족 수에 따른 추가수당만을 받는 교회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려신학회 소속으로 일제시대때는 교리에 따라 신사참배를 거부한 유일한 교단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러한 샘물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마의 자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샘물교회가 물러서면, 더 이상 한국에서 기독교가 설자리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물론, 그들의 신앙에 따라 그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을 탓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문제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평양대부흥 100년을 맞이하는 이 때에 이렇게 한국 교회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가 크다.


그동안의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연말에 당연하게도 대선과 연결될 것임이 뻔하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는 불교와 천주교에 밀려 사그러질 위험에 있다.




어쩌면,

그래도 희망적인 무교회주의의 부활을 꿈꿔야 할 지도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