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패착

Posted 2009. 6. 12. 13:06


나경원의원실에서 어느 네티즌에게 정중히(?) 경고를 했다는 기사가 오늘 아침 뉴스에 떴다.

얼마전 어느 잡지에 실린 그녀의 화보(? 뭐 겨우 한장 가지고 화보라고 하기도 그렇다. 그냥 사진이 한장 실린거지 뭐)에 대한 몇몇 네티즌의 비판 내지는 비난에 대해 해명하고 이에 대한 그녀의 입장을 알린 것이라고 할 것인데, 당해 블로거가 밝힌 것과 같이, 참, 불필요한 짓을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미국에서 오래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국내 최고 학부의 법학과를 나와 판사까지 역임한 나경원 의원이 모르는 일은 아니리라 믿는다)
어떤 유명한 목사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쓴 어느 졸렬한 포르노 잡지의 발행인께서(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영화로도 제작된 허슬러 잡지의 래리 플린트였거나 플레이보이의 휴 헤프너였던 것 같다)[각주:1] 자세한 내용은 두고, 간단히 말하자면, 목사의 첫경험이 바로 술취해서 저지른 근친상간이었다는 발칙한 내용의 글을 쓰고 조그만 글씨로 '이 광고는 픽션입니다'라고 친절(?)하게 덧붙인 글에 대해 이것이 명예훼손이냐 여부에 대해 법정사움까지 번진 것이다. (물론 그 목사는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중 한명이 근친상간이라니)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은 래리 플린트의 손을 들어주며 이렇게 판시했다.
저명 인사(유명인)는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패러디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것이 그런 패러디를 만든 사람들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다. 그런 논리로 팔웰의 정신적 고통은 보상을 받을 수가 없다.(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9300019 에서 인용)
언론 출판의 자유에 있어서 매우 유명한, 이른바, 천사와 악마 판결이라고 까지 불렸던 이 사건에서 승자는 래리 플린트였다.
 



포르노人이었지만, 그도 역시 언론人이었다.

이 판결의 핵심은 이렇다. 유명인(공인(公人)이 아닌 유명인이라는 점이 특이하다)의 명예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는 유명인으로서 일정 부분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를 비판, 비난하거나 그를 패러디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언론인, 또는 출판인에 의한 명예훼손의 위험성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유명인의 명예가 한없이 더러워지고 폄하되는 것은 부정하여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의 명예는 그가 가지는 유명세에 비례하여 그가 감수하여야 할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희생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유명인이자 공인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놈현으로 불렸음에도 참았던 이유가 이것이고, 지금의 최고의 유명인이신 이명박 대통령에게 우리가 쥐새끼라고 해도 그가 참아줘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좋건 싫건, 나경원 의원은 유명인이다. 지난 대선 기간 중에 이명박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내며 이른바 '주어 실종 사건(?)' 덕분에도, 그리고 정치 입문 당시 뛰어나 미모의(? 이건 객관적으로 우리 와이프 정도는 되어야 '뛰어난'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경원 의원은 좀....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물음표다) 소유자의 정계 입문이라는 사건 때문에도 어찌되었건 유명인이다. 게다가 공인이기까지 하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돈을 벌면서 '공인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가짜 공인인 연예인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아 생활하고, 국회의원이 된, 진정한 의미의 공인(公人)이다.

나경원 의원이 그런 화보 때문에 네티즌이건 누구이건 욕먹는 이유는, 그 때, 그 사진이 실릴 그 때 또 다른 젊은 의원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때문에 단식하며 투쟁하다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던 사실 때문이다. 시민과 함께 길거리, 광장에서 싸우다 폭행당해 병원에 실려간 가녀린 여성 정치인과, 선전과 잡지 판매량의 증가를 위해 섭외된 사진 작가 앞에 고가(나경원 의원이 입은 옷이 얼마짜린지는 모르겠다. 그런 건 안 나와 있으니.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정희 의원이 병원에 실려가며 입고 있었던 저 민주노동당 마크가 찍힌 잠바보다는 훨씬 비쌌을 것이다)의 옷을 입고 요염한 포즈로 화보를 찍고 있는 집권 여당의 여성 정치인에 대해 시민과 국민이 가지는 시각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값은 싸지만, 더 가치있는 옷이겠지



나경원 의원실에서는 두 의원의 의정활동을 비판하는 블로거에 대해 "인터넷에서 근거없이 특정인을 비난하거나 상황을 왜곡, 과장하여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뿐아니라 당사자의 인격과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논리를 들어 언젠가는 '나도 피해자였다' 하며 사이버 명예훼손이라는 악법을 들고 나타날 것이란 예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것은,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자유라고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그녀가, 왜, 자신이 그 국회의원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인격적 비판과 비난의 허용범위가 나같은 필부의 그것에 비해 희생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왜 간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느냔 말이다.

물론, 나경원 의원은 그것이 4월에 이미 촬영된 것이고, 그 수익금의 20%가 좋은 곳에 쓰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의도는 좋았겠지만, 방법과 시기가 틀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그녀 자신은 허구헌날 술자리 안주감이 되어야 하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하는 슬픈 정치인이며, 공인이고, 유명인이라는 사실을 왜 간과하고 있는 걸까.

래리플린트의 그 유명한 판결에서 보듯이,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누군가는 특히, 게다가 공인이기까지 한 그녀는, 우리한테 월급 받아먹고 살고 있는 그녀는, 그녀에게 주어진 사회적 임무가 끝나는 그 날까지 우리한테 욕 좀 먹어도 되고, 비난 좀 받아도 된다. '너 좋은 옷 입고 유명한 사진 작가 앞에서 이쁘게 화장하고 파워 우먼이라는 소리 들으며 사진찍으니 좋더냐?'하는 비난, '그렇게 이쁜 당신의 사진이 대형서점에 갈릴 때, 누군가는 겨우 잠바때기 하나입고 공권력의 발에 짓밟혀 쓰러지는 사진이 인터넷에 깔려야 했다'는 비난, '정치인이 하라는 정치는 안하고 한가하게 사진이나 찍으면서 알량하게 수익금 기부했다고 변명이나 하고 있다는 비난'. 그런거 들어도 된다. 들어야 한다.
그것이 필요한 것이 민주주의사회고, 언론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소중한, 잃어버릴 것 같아 더욱 소중한 국민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작은 언론으로서의 블로거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의 나경원 의원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모른다. 만나 본 적도 없고 그저 먼 발치에서 지나가는 것을 몇 번 보았을 뿐이다. 그녀가 좋은 인격의 사람인지, 내 가슴에 그려진 이미지 처럼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인지, 끝끝내 알 수 없을 수도 있고 사실은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유명인이고, 우리사회의 "2009년 파워우먼"으로서 그리고 집권 여당의 한명의 국회의원으로서 나는 그녀에서 어떠한 인격을 가지라고 요구할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하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그녀의 행위와 작태에 대해서는 비난은 물론 패러디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녀의 인격이 얼마간 무시되고 명예가 훼손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가능성 역시 그녀의 보좌진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나경원 의원의 명예와 인격을 침해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더 큰 민주주의의 대의를 위하여 그녀는 그것을 감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그녀를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정치인으로서 인정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다. 그녀에게 민의를 대변하여 대한민국의 법률을 만드는 국회로 보낸 이유는 그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와 의무를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힘은 양날의 검이고, 표현의 자유 역시 합리적 범위 내에서 법률에 의하여 제한되어야 함은 인정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개별적 사안에 있어서 어떤 것을 제한함으로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역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합의에 의하여 그 범위와 한계가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정권과 권력자(주권자가 아닌)의 주관에 의해서 움직이던 것이 바로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국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아닌 그녀가 기분 나빴다는 인격적 모독행위라고 생각되시는 부분에 대해 문제가 된다면, 그것 역시 인터넷이라고 하는 술집에서 블로그라는 이름의 막걸리판을 뒤집는 막걸리 형법이 될 뿐이다.

우리의 사회적 합의는, 공인의 사생활과 사회활동에 대하여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사회의 공기로서의 언로(言路)는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상스러운 욕설이 될지라도, 그녀의 인격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아닌이상, 그녀는 유명인이자 공인으로서 그것을 감내하여 우리의 언론환경과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야할, 노무현이 뇌무현, 놈현이라고 불리워지면서도 감내한 그 권력의 핵심에 발담근 자로서의 의무인 것이다.


나경원 의원이 섯부르게 그 블로거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의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글을 올린 나 역시, 그녀가 문제삼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언론에 이러면 안된다는 소상한 근거자료로서 제시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책의 입안자요, 법률의 제.개정에 직접 관여하는 정치인으로서의 그녀의 한심한 대응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제한하는 또 하나의 양날의 검으로 우리에게 겨눠질지 모른다는 걱정은 아니할 수가 없다.


덧붙여, 나경원 의원은 이 사진들이 4월 30일에 촬영된 것이라고 했다.
그 날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던, 집권 여당과 검찰이 직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방아쇠를 당긴 치욕적인 날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하고 끝내는 자살을 해야만 했던 단초가 되었던 그날, 나경원 의원은 영광스럽게도 아이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태어나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보를 찍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4월 30일은 그 전날인 29일의 재보선 참패로 인한 문책론이 제기되었던, 한나라당으로서도 힘겨운 때였다. 좋건 싫건 당의 지도부(공식적인 지도부는 아닐지라도)중의 한 명인(중구의 당협위원장이다) 나경원 의원이 당의 중진들이 괴로워 머리 싸매고 있을 시간에 사진이나 촬영하고 있었다니 하니 참.. 물론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사진이 촬영된 것은 4월 30일이지만, 그 이전에 약속이 잡힌 것이었다고 해명할터이다. 그 이전에 잡혔어도, 당일 날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면, 좀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또 덧붙이자면, 노무현을 추모한건지, 싸이질 거리 남긴건지 모르겠는 광고성 짙은 아래의 사진들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다. 사진으로 한번 화를 당하고선 또 그 짓을 했다는 것이, 더 밉다. "싸이 허세녀"라고 놀림 받았던 그 때에는 왜 잠자코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래, 내가 썼다.

  1. 지금 검색해 보니 역시 래리 플린트가 맞다. 그 목사는 이른바 '도덕 부활 운동'을 이끌던 제임스 팔웰 목사. [본문으로]
오늘자 신문에 매우 흥미있는 기사가 하나 떴다. 구글이 인터넷 실명제에 반대하며 한국에서의 동영상 업로드를 거부하기로 했다는 기사

구글이 유튜브를 16억달러나 들여 인수한 것은 지난 2006년 10월 9일. 한 작은 창고에서 장난삼아 만들어진 유튜브는 지금까지 수억명의 네티즌이 동영상을 보기 위해 접속한, 동영상 커뮤니티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구글의 레이철 웨트스톤 부사장은, 유튜브의 이번 조치에 대하여 장문의 글을 써서 그 배경을 설명했다. 그녀는 그 글에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강한 신념을 피력하며 한국에서의 동영상 업로드시 개인확인을 요한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구글의 이러한 조치로, 전세계에서 (구글 유튜브에 접속이 가능한 모든 나라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만이 동영상의 업로드가 불가능한 국가가 되었다(물론,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른 방법으로 우회적인 동영상의 업로드는 가능하다. 이번 조치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인 조치라고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상의 익명성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안인, 제한적 본인확인제나, 실명제 등이 왜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심각한 "민주적 절차의 부재"로 인식되는 것일까?

인터넷 실명제란, 인터넷을 사용함에 있어 실존하는 본인의 명의로 이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 원칙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명제는 지난 1일부터 구글에 대하여 시행되었고 이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오늘의 조치와 같은 결과를 낳았다.

과연 인터넷에서 실명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며 또한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일까.

히 실명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무분별한 악플과 무책임한 소문의 확대 재생산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무분별한 악플과 주민등록번호의 도용을 통해 인터넷이 더렵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예인의 자살 등 사회문제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인터넷을 실명으로 사용하게 함으로서 인터넷상에서의 개인책임에 대한 의식을 고취하고 사후 추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실명제를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른바 포털에서 제한적본인확인제라는 것을 시행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악플은 줄어들고 있지 않고 인터넷 역시 그대로라는 점은 실명제가 과연 정답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오히려, 인터넷 사용자에 대한 홍보와 교육 그리고 어린이들에 대한 인성교육의 확대가 인터넷 정화에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준다. 악플에 의한 자살이 문제라면, 악플 따위는 없었던 지난 시절에 발생한 자살은 어떤 이유였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으며, 인터넷 악플로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가 과연 악플이 아니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역시 남는다. 정확하게는 악플 따위에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여 자살에 이르는 것이 과연 건전한 사회의 건전한 공적 인물(공인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公的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므로, 연예인 등에는 부적합한 말이 된다. 연예인은 유명인이나 널리 알려져 사회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라는 뜻을 지닌 용어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공공의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인물이라는 뜻으로 공적 인물이라 칭하기로 한다)인가의 문제에서 더 중요한 해결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본다.

익명성이라 함은, 거대한 군중의 일원으로서 개인의 특성은 감추어진 채 이루어지는 일련의 집단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익명성은 도시화의 발달과 인터넷 등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어떠한 구심점 없이 존재하는 대중의 몰인격적 표현방식의 하나이다. 익명성의 소중함은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와 결과로서의 무책임성이 아니라, 사태나 현상에 대한 개인의 능동적이지 않은 소극적 대처에 대한 대중이라고 하는 울타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보호를 의미한다.  즉, 익명성은 우리를 무책임한 무법자로 만들어주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안전한 사회의 소극적 구성원으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도구다.

물론 익명성은 감추어짐의 특성에 따라 무책임한 탈법적인 소수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강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자로부터 약하지만 다수의 시민을 보호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구글의 부사장이 밝히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관한 보호장치로서의 익명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익명성의 보호막은, 우리로 하여금 대중의 목소리에 한 축을 담당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안전하게 발설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한다. 안전하게 자신의 의견을 대중의 힘을 빌어 표현한다는 것이 21세기에 필요한 표현의 자유의 민주적 정의라고 한다면, 익명성을 고수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익명성에 따른 폐혜를 무시할 수 많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익명성의 내제된 속성에서 나온 악한 습성이 아니라, 사회적 미성숙의 결과물일 뿐이며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제도적 한계가 가진 속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주민등록번호는 정부의 행정상의 필요에 의해 탄생한 것이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 사용되고 있고, 초딩이라고 표현되는 어린 아이들의 인격형성 기능의 부재는 이미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자리잡았다.

구글의 이번 조치는 매우 사소한 문제일 수 있지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웨트스톤 부사장의 표현의 자유를 향한 구글의 작은 한 걸음에 관한 글이 우리 정부에게 이러한 민주주의의 원칙과 진로를 설명해 주는 계기가 되길 빌어보................................................지만,






MB 정부가 언제 민주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있었는가.

그저 유튜브에 뿌려진 수많은 포르노를 보며 흥분이나 하지 않았으면.


자넷 리의 가슴이 부러우신 국회의원님들. 인터넷의 사용 용도가 이러한 자들이 만드는 법률이 우리의 인터넷을 깨끗하게 하신단다. 왼쪽부터 한선교(한나라당), 이한구(한나라당 대구수성갑) 의원, 엄호성(한나라당 최고위원) 전 의원

미네르바 테스트

Posted 2009. 1. 13. 08:55


이명박은 나쁜 놈이다.


잡혀가거나, 그렇지 않거나.

혹은,

허위사실유포이거나, 국가기밀 누설이거나.





2009년 대한민국을 사는 네티즌을 위한 미네르바 테스트.



< 인터넷 괴담 >

얼마전, 모 클럽의 사이트에 토마토와 관련된 글을 간단하게 하나 올린 적이 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토마토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라고 한다. 이는 미국 법정에서 그렇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는 내용으로 떠돌고 있는 잘못된 상식에 대해 쓴 글이었다.


괴담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인터넷에 한두개가 떠도는 정도가 아니다.

심각하게는 누가 누구를 상대로 범죄행위를 했는데, 경찰이 조직적으로 그를 비호하고 있다거나 하는 정도로 범죄 수준의 소설에 가까운 낚시글들이 떠다니기도 하고, 러시아어로 인사말 이라면서 이 개새끼야 하는 욕설 수준의 질 낮은 농담이 떠 다니기도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거 만든 놈이 개새끼다 -_-

문제는 이 처럼 농담으로나 떠도는 이야기라면 별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이 러시아어에 관한 내용은 꽤 퍼진 편인데, 사실 이런 농담도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 사람이 이런 글을 보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소중한 자기 나라의 언어가 한 개념없는 외국인에 의해서 우스운 장난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러면서 우리는 외국의 농담에는 흥분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의 범죄를 조장하는 내용이거나 타인의 금전을 갈취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경우(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인터넷 앵벌이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또는 타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터넷의 특성상 그 전파성은 오프라인과 비교하여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한번 유포되기 시작하면 확산은 아무도 더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에 이라크에서 사망한 故 김선일씨의 살해장면을 정보통신부가 국내 유입을 차단하려 무던한 애를 섰는데도 끝내는 2시간여 만에 포기한 사례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인터넷의 특성은 격지자(隔地者)의 거리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는 정도의 마술같은 능력에 있다. 과거에 기차라고 하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도 인간의 이동거리의 혀경을 불러왔고, 전화가 보급되며 대화자의 거리를 혁신적으로 단축하였지만, 이제 인터넷은 장소, 시간 모두를 순식간에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을 떠도는 괴소문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의 더 심각한 문제는 인간에 의해 유형화된 물건으로 전하여 짐에도 불구하고 그 수정과 확대 재생산이 무척이나 간편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 있다. 심지어는 이런 현상은 현직 기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겨우 지금 쌀밥을 먹었을지 몰라도 한두 단계만 벗어나면 진수성찬에 레드 랍스터를 뜯었거나 기아에 허덕여 식당의 버려진 밥을 집어먹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개작과 가필이 이루어지지만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고 결국은 아무런 대응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힘. 그것이 인터넷에게는 있다.

이러한 인터넷의 힘을 익명성의 차단이라는 것으로 막아보려는 시도도 있으나, 인터넷은 익명의 힘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것일 뿐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대선 시즌을 맞이하여 각종 포털에서 시도하고 있는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악플은 쉬지않고 재생산되는 것도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다.

인터넷에 의한 이야기의 확대 재생산이 하루이틀 이루어져 온 것도 아니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네티즌이 어쩌면 더 문제랄 수도 있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확대된다. 그것이 어쩌면 이야기의 본질이기도 하다. 우리의 구전 설화들이 그래왔고, 모든 이야기들은 장터나, 작은 모임을 통해 확대되고 소문은 현실로 굳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야기라고 하는 무기물의 생명력이나 다름없다.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의 생명은 퍼짐이라고 하는 확산운동이다. 끊임없이 확산되고 널리 퍼진다. 마치 단군이 그랬던 것처럼 홍익긴간 처럼 널리 사람에게 퍼지지 않는 인터넷은 생명이 없다.

인터넷과 이야기가 만나게 되면, 확대되어 재생산되고 그것이 빠른 속도로 퍼지는 것은 당연한 원리다.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위해 인터넷을 접하는 것이다. 보도의 일상화, 사건의 정형화, 그리고 확대의 보편화는 인터넷에서 확산이라는 모터를 달고 당연한 원리로 우리의 생활 곳곳에 파고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확인도, 생각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확대하여 다시 사실인양 보도하거나 믿어버리는 것은 순전히 인간의 탓이다.

이러한 인간의 탓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제하는 불상사에 대해 하는 말이다.

공직선거법에 의한 선거전 180일 규정이 직접적인 효력을 발휘한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네티즌들의 질타에 괴로워 하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선관위의 게시판에는 선거와 관련된 모든 언로를 차단당한 네티즌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선관위는 여전히 변명하는데 급급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데, 경찰청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사이버수사대를 동원한 단속을 하겠다고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가 이해 안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선관위와 경찰청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좀 더 이성적으로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어떻게 이 사태를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진짜 그 누구도 158일간 어떤 후보도 지지할 수 없는 걸까?


1. 선관위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재미있는(?) 공지사항이 팝업을 통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바 180일 규정에 관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관위 팝업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볼 때마다 열 받는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하게 보자.

현재 180일 규정은 공직선거법 제93조를 말한다.


좀 더 냉정하게 보기  위해서 이 법의 연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적용받는 제93조제1항의 규정은 97년, 98년,02년,04년,05년에 개정되었다. 이 정도면 매번 선거가 있을 때마다 고쳤다는 말이 된다. 법이 자주 개정된다는 것은
첫째, 내용상 잘못된 법이거나(즉, 위헌적이거나, 문구가 애매하거나)
둘째, 내용상으로는 잘못이 없으나 운용상에 문제가 있는 경우이거나,
셋째, 적용환경이 자주 바뀌거나(사회와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규율 불가능한 경우가 생기거나)
넷째, 입법자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규율되거나 적용되는 경우 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직선거법의 경우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 중에 하나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렇게 법 자체가 많이 개정된다는 것은 위의 4가지 경우가 모두 적용되는 사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법의 운용과 규정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졌는가를 살피기 위해 이 법의 연혁을 살펴보기로 하자.(개정내용을 붉은색 밑줄로 표시. 클릭해서 보자)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거법의 수 많은 개정연혁에서도 제93조의 내용은 거의 개정되지 않고 약간의 내용만이 개정된 것을 알 수 있다.

97년 개정에선 '상영'의 방법을 금지행위의 유형으로 포함시켰고, 98년개정은 2항과 3항의 편이적 규정을 위한 단순 개정에 불과하다.
02년 부터의 3차례 개정에서는 본문의 내용은 변함 없이 후보자 또는 예비후보자와 그 선거운동원 등의 행위에 대한 허용 범위에 관한 규정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상한 점이 있다.

제93조의 180일 규정은 공직선거법이 공직선거및부정선거방지법 이라는 이름으로 1994년 제정된 이래, 이 규정의 내용은 거의 아무런 변화 없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한번도 인터넷 게시판 또는 개인 홈페이지에 대한 단속이 없다가, 이번 대선에서 최초로 이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자문서의 형태로 존재하는 인터넷상의 게시물이 선거법에서 말하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 도화 인쇄물 녹음, 녹화테이프 또는 이와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와 유사한 것'을 확대해석 한다면 전자문서인 인터넷 게시물이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광고도 아니고, 인쇄물은 더더욱 아니고, 벽보는 말되 안되며, 인사장도 아니고, 사진도 아니며, 녹음 녹화 테이프도 아닌 인터넷 게시물은 문서로서의 성격이 인정될 경우에만 이를 문제 삼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 법률에서 전자문서의 문서성을 인정한 것은 전자거래기본법이 읶다. 전자거래기본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제4조 (전자문서의 효력) ①전자문서는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로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아니한다.
선거법에는 당연히 전자문서에 관한 규정이 없으므로, 전자거래기본법에 의해 인터넷 상의 게시물도 문서성을 인정받으며, 이에 따라 선거법 제93조의 적용을 받는다.
전자거래기본법은 1999년에 제정되었으므로, 99년 이전의 선거법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선거행위는 단속이 불가능하였다.

(불행하게도, 우리 형법학계에서는 전자문서의 위/변조에 관한 형법의 대응에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있지만, 전자적 게시물의 문서성과 이를 통한 범죄행위에 관해서는 그다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 의한 명예훼손에 관한 연구는 많으나, 인터넷을 통한 행위의 오프라인 행위와의 동일성에 관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명예훼손과 동일한 법리로서는 이 문제 해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 이후의 선거에서는 한 번도 문제삼지 않다가 이제와서 문제삼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전에는 거의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인터넷에 의한 지지의사의 표현이나 반대 운동을 중요시 하게 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며, 이 힘을 처음 깨달은 노무현 당선 사건(?)이후 한나라당이나 선관위도 중요시했음은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인터넷보다는 광화문의 촛불 집회가 더 무서웠던 지난 총선이나, 지역별 구도가 강해서 인터넷을 굳이 살필 필요가 없었던 지방선거와 이번의 선거는 질적으로 많이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특히 문제삼는 것도 알겠다.

문제는 이 선거법 규정이 옳은가 하는 문제이다.

선거법에 의한 인터넷의 금지사항은 '문서'를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중에서

배부(출판물이나 서류 따위를 나누어 줌)
첩부(발라서 붙임)
살포(금품, 전단 따위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줌)
상영(극장 따위에서 영화를 영사(映寫)하여 공개함)

등의  행위는 도대체 인터넷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행위임이 확실 하다. 따라서 선거법에 의한 금지대상은 '문서의 게시' 행위를 말한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통해 지지/반대하는 의견을 게진하는 것은 '문서의 게시'로서 처벌할 수 있는가?

형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다 시피,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다. 
죄형법정주의란, 범죄와 형벌은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법률에 의하여야 한다는 근대 형법의 대원칙으로, 우리 헌법에서는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제12조 ①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②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③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④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⑤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장소가 지체없이 통지되어야 한다.
⑥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⑦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제13조
①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죄형법정주의의 파생원칙은 크게 5개이며, 그 5개는 이른바 4개의 객관적 원칙과 1개의 주관적 원칙으로 분류된다.
4개의 객관적 원칙은,

  1. 관습형법금지의 원칙
  2. 소급효 금지의 원칙
  3. 유추해석의 금지
  4. 명확성의 원칙

이며,
주관적 원칙은 적정성의 원칙이다.

주관적 원칙인 적정성의 원칙은,
단순한 형식적 의미의 죄형법정주의를 넘어서 법형식 뿐만 아니라 그 법률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인권보장에 합당하는 정당한 법일것을 요구하는 실질적 죄형법정주의 사상을 말하며 현대적 의미의 죄형법정주의라고도 한다.
이 원칙은 2차대정 당시 유태인의 학살을 인정한 독일의 형법이 형식적으로는 죄형법정주의의 외관을 갖추었으나, 법률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소수인의 인권보장에 합당하는 정당한 법이 아니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의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점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적정성의 원칙은, 헌법에서도 그 실질적인 내용을 찾을 수 있는데,

제37조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가 그것이다.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24조의내용은 선거권과 피선거권 이외에도 당연히 선거운동의 권리가 포함되며, 자신이 지지/반대하는 후보자 또는 후보가 되려는 자를 적시하는 행위는 이른바 표현의 자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 그리고 참정권을 제한하기 위하여서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면에서는 위 선거법 제93조의 규정은 형식적인 (객관적인) 기본권 제한의 조건은 충족하고 있으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선거에 있어서의 표현의 자유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의사표시를 그 근본적인 내용으로 한다. 물론, 그들이 제안하는 정책공약에 대한 평가 또는 비판을 포함하지만, 단순한 지지 또는 반대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소박한 법의식에서 볼 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정책에 대한 단순한 소개 또는 열거는 국민의 선거에 관한 의사의 형성 기타 지지 또는 반대의의사표시를 내면적으로 형성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그 내용이 곧바로 선거에 있어서의 자유로 연결되지는 아니하며, 선거에 관한 내용을 내면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를 외부로 표출하는 것이 바로 선거에 관한 자유의 실질적 내용을 이룬다. 이것이 정치적인 표현의 자유를 이루는 핵심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현행 선거법은 이에 관하여 내면적 의사의 형성을 금지하고 있지는 아니하나 그를 외부로 표출하는 대화 이외의 모든 방법을 제한하고 있으며 제한적으로 후보자 또는 배우자(또는 친족중 1인)에게만 허용하고 있다. 후보자와 그 배우자의 경우 선거에 관하여 다른 의사표시를 형성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옳지 아니하며 이를 제한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거법은 후보자 이외의 모든 자로 하여금 일체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제한함으로서 이른바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이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에 관한 지지/반대라고 하는 선거관련 의사표시의 본질적 내용에 대하여 대화 이외의 어떠한 방법에 의하더라도 이는 제93조 위반이 된다(문서의 범위는 그 문서의 요식성, 형식성, 형태, 기타등등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매우 범위가 넓다).

따라서 이 조항은 본질적 내용을 제한할 수 없도록한 헌법에 위반된다.



공직선거법 제 58조에는 선거운동의 정의를 규정하고 있다

제58조 (정의 등) ①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1.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2.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3.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4. 통상적인 정당활동
②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에 따르면,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하는 것은 선거운동이 아니다.

그러나 선거법 제93조제1항은 단순히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에 관한 인쇄물 기타 모든 형태의 유형적 의사표시를 제한하고 있다.

이는 선거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으며, 부당한 선거운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거운동의 범위를 규정한 선거법 자체의 규정에도 모순되는 규정이다. 즉 부당한 선거운동 뿐만이 아니라 일체의 선거관련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93조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에 의하여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된다.(참조 - 제프리의 여의도1번지 - 클릭)

그러나, 현행 선거법에서는 대통령의 후보가 될 수 있는 자를 선거일 현재 만 40세 이상인 자에 한하고 있다. 따라서 만 19에 이상 39세 이하의 자는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없다. 최근 2명의 대선 예비후보가 그 등록이 무효화 되었다. 이 사람 역시 어떠한 형태건, 선거에 관한 의사표시는 불가능 하다.

선거법 제93조는 모든 사람에게 선거관련한 의사표시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헌법 제24조 및 제21조의 언론의 자유에 위반되며, 만 40세 이하의 자에 대하여 피선거권 이외에 모든 대통령 선거관련 의사표시를 제한 함으로서 부당하게 40세 이하 연소자의 선거관련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선거법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의 형식을 빌어 그 근본적인 내용까지 심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며 아울러 선거의 자유, 평등권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으므로 위헌이다.


선관위의 팝업을 보며, 선관위가 현재 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는 내용이 있어 찾아보았지만 개정의견을 국회는 공개하지 않고 있는 듯하며, 개정의견을 제출하였다는 것은 선관위 역시 이러한 조항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수많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중에서 이 93조를 개정하겠다고 하는 내용의 개정안은 거의 없다(20여개 정도 찾아보다가 힘들어서 못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를 더 제한하겠다는 개정안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른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법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의 제시한 바 있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가 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직무유기적인 발언이며 이에 따라 집행을 하겠다는 것 역시 매우 무책임한 행위이다.

잘못된 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강제하겠다는 것인가?

우리에게는 헌법 전문에도 뚜렷하게 나와있듯이 4.19등 국가의 압제와 폭력에 대항한 훌륭한 저항권의 역사가 있다.

그것은 법이 잘못되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해 왔다.

선관위가 이 따위로 잘못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악법에 대한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나서서 그렇게 만들어야 할 권리와 의무가 국민에게는 있다.

선관위에 부여한 그 권력과 주권은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준 것이다.
선관위의 기만적이고 무책임한 선거법 준수 강요는

우리가 그들에게 준 권한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다.

집을 지키기 위해 키운 개가 주인을 물려고 할 때에, 우리는 개를 잡는다.
다행히도 복날이 얼마 안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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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의원의 법률자문 관련 글 : http://www.skn.or.kr/shin/column/board_content.asp?id=227&page=1

한명숙 전총리의 글 : http://www.happyhan.kr/tt/news/64
< 대선 전 180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오는 22일.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반대의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제93조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①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보궐선거 등에 있어서는 그 선거의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창당준비위원회와 정당의 정강·정책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 다만, 선거운동기간 중 후보자가 제60조의3(예비후보자 등의 선거운동)제1항제2호의 규정에 따른 명함을 직접 주거나 후보자가 그와 함께 다니는 자 중에서 지정한 1인과 후보자의 배우자(배우자 대신 후보자가 그의 직계존·비속 중에서 신고한 1인을 포함한다)가 그 명함을 직접주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255조 (부정선거운동죄)
②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5. 제93조(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제1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문서·도화 등을 배부·첩부·살포·게시·상영하거나 하게 한 자, 같은 조제2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광고 또는 출연을 하거나 하게 한 자 또는 제3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신분증명서·문서 기타 인쇄물을 발급·배부 또는 징구하거나 하게 한 자

이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문제는 이 규정의 유효성이 아니라, 이 규정의 합리성이 문제다. 선거의 후보자 중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자는 대략적인 선거운동이 가능하지만,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내가 누구를 지지하는가에 관하여 공개된 방법으로 이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으므로 공직선거법에 의한 방법의 지지 또는 반대의 의사표시는 가능하다. 그렇다면, 내가 이 블로그에서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지지/반대는 무엇이 있을까?

공직선거법은 제7장 선거운동 에서 제58조부터 제118조까지 선거운동의 방법과 제한 사항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여기서 그 내용을 다 볼 수 는 없으니 간단하게 제목만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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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72개의 조문중 삭제 조문 6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금지, 제한 행위다. 후보자의 선거운동행위 이외의 대부분은 금지와 제한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후보자 및 그 배우자 또는 등록된 선거사무장, 선거연락소장, 선거사무원 또는 회계책임자 이외에는 할 수 없는 행위들이 열거되다 보니 결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공직선거법 제58조에는 이렇게 규정되어 있다.

제58조 (정의 등) ①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1.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2
.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3.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4. 통상적인 정당활동
②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렇게만 보면, 다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내일부터 시작되는 180일 금지규정에 따라, 법률의 규정에 따르지 않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이용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는 금지된다. "이와 유사한 것"에는 물론, 인터넷상의 게시물이 포함된다.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글도 쓰지말고, 그림도 그리지 말고,  말을 녹음하지도 말고, 사진도 안되며, 인터넷에서 떠드는 것도 안되지만, 모든 것을 다 해라라는 것이다.

이게 과연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정치적 자유, 선거의 자유일까?

인터넷을 통하여 특정의 후보를 근거없이 비난하거나 허위의 내용을 이용하여 특정인의 선거운동에 영향을 주는 등의 행위는 물론 방지하여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하고 예방하기 위하여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180일간 제한하는 조치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비밀을 말하자면, 이러한 강력한 규정의 탄생은 노사모라는 게릴라 조직에 의해 정권을 찬탈(?)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꾸준한 투쟁과 그 역사를 같이 해 왔다.
인터넷에서 야동만 보던 키보드 워리어에 의해 당한 선비들이 만든 혼탁한 선거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불행하게도 인터넷에서 활동하던 수 많은 재야인사들의 입과 마우스까지 막아버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선거법은 우리에게 무한한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또 이러한 선거운동의 자유는 선거법의 테두리에서만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합리적인 선거문화의 개선 방법에 사용한 칼이,

과일을 깎기 위해 뽑아온 그 칼이,

조선시대 사또 앞에서 휘달리던 망나니칼이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를 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서는 안된다.

또 여전히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공직선거법이라는 작두를 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허용된 것이다.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는 되지만, 그 후보의 당선이나 낙선을 위한 행위는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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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의 달인(達人). 출처는 뉴시스(최영장군당굿-장군(작두)거리 재현 기사)



법은, 우리가 해서는 안될 일과 해야 할일을 명확히 가려 알려주어야 하는가?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법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밝혀 주는 것만으로도 족할지 모른다. 그것이 우리에게 법이 이야기하는 최소금지의 원칙일 것이다. 우리가 왜 이 길로 나아가야하는지, 그리고 그 길을 통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아웃라인의 제시만으로도 법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법이 지향하는 바이고, 그에따라 과잉한 금지규정인 이러한 규정은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와 실질적 법치주의를 바라는 나에겐 욕심일까?


법이 선거에 부당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 금지를 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부당하다는 전제 하에서는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나서서 금지해야됨이 맞다. 그러나, 과연 그 부당성의 정도와 범위를 어디에서 누가 판단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법이 모든 범죄를, 모든 부당한 행위를 금지하고 예방하여야 하는가?
법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살인사건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까?
법이 해야 하는 일은 선거에 부당하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는 것일까?

나는 단호하게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법이 해야 하는, 법이 할 수 있는 그 것은,
살인행위이건, 부당한 선거 개입 가능성이 있는 행위이건,

그것의 발생과 처리를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이하로 끌어내리는 것으로 족하다. 완전한 예방과 방지는 결국 법의 부재를 불러올 뿐이며, 완전한 예방은 완전한 탈법을 가져온다.

또 그러한 행위들의 처리를 통하여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법치사회에서의 법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선거법의 역사는 여당과 야당의 투쟁과 타협의 역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제도권의 정치인과 인터넷에서 열심히 1인 언론으로 성장하는 Net-politician의 투쟁의 역사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선거에 대한 부당할지 모르는 일련의 행위(부당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부당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품어버린,)를 허할 때가 왔다.

인터넷에 올라온 특정 후보의 지지글에 바싹 얼어 초가삼간은 물론이요, 이 넓은 인터넷을 모두 태워 버리려는 선거법에 내제된 저 기득권 세력의 피해의식을 어이할꼬.

나는 소망한다,

선거법이 내게 금지한 180일간의 그 부정선거행위를.



*** 우리 모두를 위한 알짜 팁;

-------------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든지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 비판 하는 것을 할 수 있다."
------------- 세상 참 불공평하다. 오늘 드디어 대통령이 헌법소원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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