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민노씨가 고소를 당했다.



민노씨는 자신이 법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지만, 법없이도 살 사람은 무법자고 -_- 내가 아는 민노씨는 법없이 살 사람은 아니고 그냥 법을 대충 잘 지키는 사람중에 하나다. 내가 민노씨를 알게된건 순전히 블로그를 통해서이고, 한번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나 역시 상지대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에 그가 고소를 당했다고 하니, 그동안 미뤘던(사실 게을러서 망설이던) 상지대에 대한 얘기를 쓰려고 하던 중에 마침 민노씨가 고소를 당했다니 나도 상지대 사태에 대해 좀 생각해 봐야겠다(이런 면에서는 민노씨의 고소를 반가워 해야 하는건가 -_-;;)

상지대 사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딴지일보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으니 그걸 참고하도록 하자.
(그거 안 읽고 보면 대책 없이 그냥 뭔 소린지 모를테니 제발 좀 읽자. 상지대 사태에 대해 읽지도 않고 관심이 없다는 둥 뭐시기 하다는 둥 내 일이 아니니까 무관심한거 자랑 아니니 이런 것 좀 알고 다니자. 니들이 대학을 아직 안갔건 이미 졸업했건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나중에 니들 세금 가지고 엄한데 썼는데 나하고 상관 없다는 소리 좀 제발 그만하자. 그런게 무식이고 무식이 용맹이란 소리 듣는 짓이다)

상지대 사태의 본질은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설립자의 권한 등등 여러가지 문제인데, 이 것들이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가면 사유재산제도와 민주주의 어쩌고 하는 문제까지 들어간다. 중요한건, 그것들이 우리와 전혀 상관 없다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우리가 대학을 가거나(난 이미 졸업 했지롱) 니들의 애들이 커서 대학갈 때 등록금이 많아서 대학을 가네 못가네 하는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진 않고...


 

 내가 진짜 관심을 가진 부분은 대법원의 2007년 판례에서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의 견해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임시이사-정식이사의 체제에서의 차이점과 그 문제의 해결을 바라보는 대법원의 두 가지 시선을 비교하니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다19054 판결에서 다투고 있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였다.

  1. 구 사립학교법상의 절차에 따라 선임된 임시이사들이 그 선임사유가 종료한 때에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결의를 한 경우, 임시이사들이 선임되기 전에 적법하게 선임되었다가 퇴임한 최후의 정식이사들에게 위 이사회결의의 하자를 다툴 소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
  2. 구 사립학교법상의 임시이사에게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

이 문제에서 위 1번은, 소송을 제기한 김문기 측에게 과연 이런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였고,
두번째 문제는 이 소송의 본래의 목적으로 임시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이 정당한 행위였는가의 문제다.

먼저 1번의 문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투지는 않은 것 같다. 1번이 OK니까 2번 문제를 심판한 것 아니겠나? (보통 1번 문제와 같은 소송의 자격에 관한 문제에서 자격이 없다라고 결론이 나는 경우 2번 문제는 검토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소수의견은 이에 대해 반대하고 종전의 이사들이 임시이사의 권한을 따지는 이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이해관계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소송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부분에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며 찬성하긴 하지만 다수, 소수 모두 2번 문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은 듯 하다.


먼저 다수의견.

다수의견은 임시이사들에게 정식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는 것과 종전이사들이 이러한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있는가의 문제를 판단하면서, 매우 중요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헌법 제31조 제4항에 따라 인정되는 학교법인의 설립자 및 학교법인 그리고 그 운영주체인 이사들의 사학의 자유, 즉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를 두텁게 보장하려는 취지"

"사립학교는 설립자의 의사와 재산으로 독자적인 교육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되는 것이므로 사립학교 설립의 자유와 운영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본질적 요체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헌법 정신은 학교법인과 관련된 법률을 해석할 때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다.........헌법 정신에 충실하자면 학교법인의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 자주성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법인은 사립학교를 설치·경영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의 일종으로서 그 운영시 설립 당시의 설립자의 의사, 즉 설립목적을 존중함이 마땅하고, 이러한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은 그 의사결정기관 및 의사집행기관을 구성하는 자연인인 이사들에 의하여 실현되는 것이므로, 설립자가 최초의 이사들을, 그 다음에는 그 이사들이 후임이사들을, 또 그 다음에는 그 후임이사들이 자신의 후임이사들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이사를 선임함으로써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이 영속성 있게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학교법인의 이사 제도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임시이사에게 정식이사와 다름없는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한다면, ................ 단순히 학교 경영을 정상화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학교법인을 운영할 권한과 임무가 손쉽게 제3자에게 넘어가게 되어 학교법인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 오게 되고, 그것은 학교법인의 설립목적 및 이념의 변질로 이어져 독립된 법인격체로서의 학교법인 등에게 보장된 헌법상의 기본권으로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해소된 경우 그 임시이사들이 독자적으로 정식이사 전원을 선임하는 내용의 이사회결의를 하였다면 이러한 이사회결의에 의한 정식이사 체제로의 전환은 임시이사가 선임됨으로써 한시적·잠정적으로 제한되었던 학교법인의 사학 운영의 자유가 영구적·확정적으로 제한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므로 비례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임시이사에 의한 정식이사의 선임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 의한 임시이사의 선임과 같은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것이다."


뭐 길게 썼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 사립학교의 독립성, 그리고 그 재산을 형성한 설립자의 의사의 최대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
  2. 이사들의 임무는 설립자의 설립취지를 연속적으로 계승 발전이다.
  3. 사학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은 설립자에 의한 학교의 설립목적 및 이념의 자율적 구현이다

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반해서 소수의견의 주장은


"이미 오래전 정식이사의 직에서 퇴임함으로써 학교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할 지위를 상실하였다........이들을 학교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임무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는 자라고 볼 근거가 없고 따라서 이 사건 이사회결의에 대하여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

"설립자는 학교법인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그 설립목적을 담은 정관에 의하여 사학의 설립 및 운영의 자유 등을 실현하는 것이지 그 외의 다른 방법으로 학교법인 및 이를 운영하는 주체인 이사의 업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고, 이사 역시 학교법인에 대한 관계에서 관계 법령과 위와 같이 설립자의 설립목적이 화체된 정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써 업무를 처리하면 될 뿐 그 권한을 설립자로부터 위임받거나 설립자를 위하여 업무를 처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법인은 기본적으로 민법상 재단법인에 해당하는 것이고, 다만 그 조직·운영에 관하여 법적 규제와 행정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사학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이라는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운영되는 특수법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학교법인에 대하여는 사립학교법이 우선 적용되나 그 외 사립학교법에 규정되지 않은 사항에 관하여는 민법의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민법 제63조에 의하여 법원이 선임한 임시이사는 일반 이사와 동일한 결의권이 있다는 것이므로( 대법원 1963. 3. 21. 선고 62다800 판결 등 참조), 비록 그 선임 주체가 다르다 하더라도 사립학교법 소정의 임시이사들 역시 정식이사와 동일한 권한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야 하고 따라서 임시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정식이사를 선임한 이 사건 이사회결의를 무효라고 볼 수 없다."

"다수의견이 강조하는 학교법인의 자주성 외에 공공성 역시 매우 중요한 법리일 뿐 아니라 사립학교법의 주된 입법 취지 역시 사학의 공공성 확보에 있는바, 구 사립학교법상 임시이사들에게 정식이사와 다름없는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하면 학교법인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 오게 되고 그것은 학교법인의 설립목적 및 이념의 변질로 이어져 그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수의견의 견해는 학교법인의 자주성에 지나치게 경도된 견해로서 임시이사 제도를 비롯한 학교법인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각종 제도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 귀착될 염려가 있다"

 
여기도 간단히 요약하면,

  1. 이사에서 잘린지 오래된 사람들이 이제와서 왜 관여함? 말도 안됨
  2. 설립자는 설립하고 정관을 만들어 그 건학이념을 만드는 사람인데, 법인으로 독립한 학교운영 지맘대로 하는 건 안됨 이사가 니 꼬붕은 아님.
  3. 임시이사의 권한에 대해 사립학교법 규정 없으니 민법에 따라야 함. 근데 민법에서 할 수 있다고 했음.
  4. 사립학교의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공공성도 중요.

이 정도 되겠다.
즉, 이 사건에서 다수와 소수의견의 주요 견해 차이는

사립학교의 자율성 vs. 사립학교의 공공성
에 대한 의견 차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사유재산제도는 자본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로 작용하고 있고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유재산제도는 자본주의의 폐혜 또한 가져왔고 이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적절한 제한과 규제가 자본주의의 순수한 발전력을 유지시켜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수정자본주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사유재산과 사적자치가 더욱 강조되어 무한경쟁의 시대에 돌입하고, 이에 따라 경제주체간 양극화의 심화를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적 측면이 무한하게 강조딘 것이 사유재산의 보호 그리고 사적 자치의 보장이다.
보통 흔히 말하는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 그래"의 완벽한 제도적 구현이 바로 사유재산제도인 것이다.

사립학교에 대한 이 판결의 견해차이도 이러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임시이사는 설립자의 의사에 다라 설립된 학교법인의 뇌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인데 학교법인의 이념과 설립취지를 계승, 발전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하는 것이니 만큼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그 연속성이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견해, 즉 설립자의 이념과 사상이 온전히 구현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학교가 사회에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다수의견의 핵심이다.

반면 소수의견의 핵심은 학교의 사유재산적, 그리고 사적자치(대학의 자율성이라 말하는)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그 공공적 성격을 무시할 수 없고, 그러한 공공성에서 이탈하여 학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주무관청이 선임한 임시이사는 일탈하고 있는 학교를 정상화 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며 그러한 정상화와 함께 정식이사를 선임하여 학교의 공공적 성격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견해인 것이다.

어떤 견해가 옳으냐의 문제는 결국 판사들의 가치적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의 문제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사립학교의 설립자의 의사가 매우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러한 다수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

첫째, 사립학교를 법인인 학교법인만이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설립자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로 하여금 학교를 운영하게 함으로서 학교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님을 천명하려 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설립자의 설립취지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학교의 유일한 설립취지가 되어서는 아니되며, 법에서 인정되는 교육의 중추를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반드시 교육의 공공적 이념과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교육의 권리와 의무를 실현하는데 충실하여야 함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며,

둘째, 학교법인의 이사는 그 설립자의 의사를 구현하는 수명자가 아니고, 그 학교의 정관과 또한 그 정관에 비록 표현되어있지 아니하더라도 공공적 기관인 학교가 구현해야 하는 헌법적 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선량한 관리자로서 학교를 운영하여야 하는 주체임은 말할 것도 없다. 다라서 설립자의 의사 또는 그 설립취지가 헌법에서 정한 교육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그 공공성을 우선하여 설립자의의사에 반하는 운영의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할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시이사 체제는 학교운영의 비합리적, 비헌법적, 불법적인 현실의 타파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며 이러한 임시이사의 선임사실은 설립자의 건학이념의 훼손을 수반하는 경우도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학교가 가지는 공공적 성격과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하여 볼 때 임시이사의 선임으로 해임되거나 그 임기가 다한 정식이사는 교육의 공공성을 해하였었다는 것 또한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종전이사들이 학교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선임된 임시이사들의 권한을 다툴 권한이 있는지 여부에 있어서 그들이 이를 통하여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불법적 학교운영의 반성에서 나온 학교 정상화의 의지인지, 아니면 단순한 사유재산으로서의 학교재단의 탈취에 있는지 분명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셋째, 임시이사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비정상적인 학교의 운영을 정상화 하고 이를 통하여 학교의 공공성을 회복함은 물론, 학교의 정관에서 설명하고 있는 설립당시의 건학 취지와 이념을 구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그 권한의 행사 역시 이러한 전제하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를 위반한 임시이사 권한의 행사는 관리감독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의 몫으로 두어야 할 것이며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또한 개별적인 사례에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 또한 부적절하다. 따라서 그 임시이사가 정식이사를 선임함으로 인하여 학교의 연속성과 설립취지의훼손이라는 다수의견의 견해는 일응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볼 여지는 있으나 임시이사의 섬임의 취지나 학교의 공공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미 불법적 운영으로 인하여 훼손된 그 설립취지의 연속성이 깨진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고, 임시이사가 설립취지에 반하는 결정을 하여 정식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행정청이 이를 심사하여 판단할 문제이며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그러므로 임시이사가 정식이사의 선임권한이 있는가의 문제를 학교의 연속적 운영에 대한 단절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기존의 임시이사 체제가 학교의 자율성을 박탈한다는 일방적 견해로 보아 부정할 것이 아니라, 학교의 불법적 운영에 따른 이사회와 학교법인의 정상화를 통한 학교 설립이념 및 공공성의 정상화 과정으로 본다면 정식이사 선임권한을 배제할 이유도 없다.


이 판결에서 매우 고무적인 것은, 
소수의견을 낸 판사인 이홍훈 판사의 견해다.

학교의 공공성에 초점을 두고 판단한 이홍훈 판사의 견해와 시선에 매우 찬성하는 바다. 이홍훈 판사의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7. 대법관 이홍훈의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대법관 이홍훈은 다음과 같이 반대의견을 보충하고자 한다.

가. 우리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라고 규정하고, 교육기본법 제5조 제1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을 보장하여야 하며, 지역의 실정에 맞는 교육의 실시를 위한 시책을 수립·실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는 한편, 사립학교법 제1조는 “이 법은 사립학교의 특수성에 비추어 그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사립학교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여, 교육의 자주성이 보장됨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앞서 본 바와 같이 헌법 제31조 제4항은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교육기본법 제5조 제2항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존중되며, 교직원·학생·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은 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대학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 보장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교육의 자주성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 보장의 원칙은 이른바 교육자치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인데, 위 헌법 및 법률의 관련 규정을 종합하면, 교육자치란 교육공동체인 학교에서 교육 및 학교생활에 관련된 사항이 교육의 주체인 교직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의 참여하에 외부의 부당한 간섭이 없이 자치적으로 결정되고 수행되도록 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헌법은 제3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3항, 제5항, 제6항에서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하며, 교육기본법 제9조 제2항은 학교는 공공성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11조 제1항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게 학교를 설립·경영할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사립학교법 제1조는 사립학교의 공공성을 앙양함으로써 그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들을 통하여 우리 헌법 및 법률은 국민에게는 천부적으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위하여 교육제도를 운영할 책임이 있으며, 교육에는 공공성이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교육 및 사립학교 관계 법령은, 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지향하는 사립학교의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사립학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위임을 받아 공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으로서 공공성이 있으므로 그 운영 주체에 대하여 교육목적에 적합하게 사립학교를 설치·경영할 의무를 부과하고 그에 따라 엄격한 통제를 하고 있다. 정규의 사립학교는 원칙적으로 학교법인만이 설치·경영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사립학교법 제3조) 사립학교와 그 설립자의 연관성을 단절시킴으로써 사립학교가 사적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학교법인의 설치·운영에 있어 민법상의 재단법인보다 높은 공익적 통제를 가하여 학교교육이라는 그 본래의 설립목적에 적합한 형태로 운영되는 것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학교법인의 이사는 엄격한 자격요건을 구비하여야 하고, 이사의 취임에는 민법상 재단법인의 이사취임과 달리 관할청의 취임승인이 필요하며 취임승인을 받은 이후라도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관할청이 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는 학교법인의 이사에게 국가공무원에 준하는 청렴성과 함께 관련 법률과 정관에서 정한 의무의 준수를 요구하고, 그러한 의무를 준수하지 아니할 경우 엄격한 통제를 가하여 학교법인이 설립목적에 적합하게 운영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의 자주성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교육의 공공성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도 내에서만 존중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 학교법인은 정관을 가진 독립된 재단법인이다.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의 자주성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교육의 주체인 교직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이 같이 참여하여 그 학교법인의 정관에 담겨 있는 설립목적과 교육 이념 및 목적의 취지에 맞게 학교법인을 운영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지, 설립자나 그의 영향력하에 임명된 이사가 학교법인의 운영에 참여할 것을 보장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설립자나 그의 영향력하에 임명된 이사가 순차적으로 후임이사들을 선임하여 나아가야만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이 영속성 있게 실현되는 것이며, 그것이 학교법인의 이사 제도의 본질인 것이자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의 자주성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개인이 직접 정규의 사립학교를 설립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학교법인을 별도로 두어 그 정관에 정해진 교육 이념과 목적에 따른 교육이 실시되도록 하여 사립학교와 그 설립자의 연관성을 단절시킴으로써 사립학교가 사적인 인적 지배나 재산권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교직원, 학생, 학부모 및 지역주민 등이 법령에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 및 전문성을 보장하고 아울러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우리 헌법의 정신을 무시하는 위헌적인 해석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라. 학교법인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써 학교법인의 정관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여야 하는 수임자의 지위에 있는 것이고,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의 자주성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그 이사들이 정관의 취지에 따라 자주적이고 자율적으로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함으로써 달성되는 법리인 것이다.

마. 우리의 법제는, 공익법인에 관하여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별도로 두어 재단법인 또는 사단법인에 관한 민법의 규정을 보완하도록 함으로써 그 공익성을 유지하며 건전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한편(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 공익법인 중 학교법인에 관하여는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하여 그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기 위하여 사립학교법에 더 엄격한 규정들을 두고 있다( 사립학교법 제1조).
그런데 우리 헌법과 구 사립학교법뿐만 아니라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의 그 어디에도 구 사립학교법 제25조 제1항에 의하여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선임한 임시이사의 권한을 정식이사의 권한보다 제한하는 규정은 전혀 두고 있지 아니하다. 그러므로 법의 일반 원칙에 따라서 구 사립학교법상의 임시이사는 민법상의 임시이사와 마찬가지로 정식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진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해석은 사립학교의 공공성 및 그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기 위한 사립학교법의 입법목적과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의 자주성 및 학교운영의 자율성에도 맞는다고 할 것이다. 구 사립학교법상의 임시이사는 정식이사와 완전히 동일한 권한을 가지게 됨으로써 학교법인의 정관 및 그 교육 이념과 목적에 따라 더 자주적이고 자율적으로 사립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 우리 법제는 사립학교에 관하여 위와 같이 엄격한 규정들을 두고 있으므로 만약 사립학교의 임시이사의 권한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면 그에 관한 명시적인 규정을 두었을 것이다.
다수의견은, 사립학교의 임시이사 선임사유가 해소된 경우의 정상화 방법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던 구 사립학교법하에서는 민법의 일반 원칙으로 돌아와 해결함이 상당할 것이라고 한다. 민법 제63조는, “이사가 없거나 결원이 있는 경우에 이로 인하여 손해가 생길 염려 있는 때에는 법원은 이해관계인이나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임시이사를 선임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다수의견은 이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해결하자는 취지로 보여진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민법 제63조에 의하여 법원이 임시이사를 선임하면 그 임시이사는 정식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임시이사가 되므로 그들로 하여금 정식이사를 선임하도록 하여 사립학교를 정상화시키자는 견해로 보인다.
그러나 구 사립학교법 제27조 본문은 “ 민법 제59조 제2항ㆍ 제61조ㆍ 제62조ㆍ 제64조 및 제65조의 규정은 학교법인의 이사장과 이사에게 이를 준용한다.”라고 규정하여, 민법 제63조를 준용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으므로, 다수의견과 같은 해석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다.
구 사립학교법 제25조에 의하면, 임시이사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다수의견과 같이 보게 되면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있던 임시이사 선임 권한이 일부 법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비추어 볼 때 명시적인 입법적 근거도 없이 이러한 해석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나아가 구 사립학교법 제20조 제2항은 “임원은 관할청의 승인을 얻어 취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바, 민법 제63조에 의하여 법원이 임시이사를 선임한 경우에도, 다시 구 사립학교법에 의하여 관할청의 승인을 얻어야만 취임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 사립학교법상 관할청은 교육인적자원부장관 또는 교육감이다( 구 사립학교법 제4조). 만약, 관할청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해석론을 취하게 되면, 다수의견과 같이 민법 제63조에 의하여 법원이 임시이사를 선임하더라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취임할 수 있다는 결과가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만 취임할 수 있는데, 그 임시이사가 처음부터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 의하여 선임된 임시이사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할 것이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민법 제63조에 의하여 법원이 선임한 임시이사가 후임 이사를 선임하면 학교법인의 정체성과 자주성이 유지될 수 있고, 구 사립학교법에 의하여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이 선임한 임시이사가 후임 이사를 선임하면 위 정체성과 자주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보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견해에 합리적인 근거나 법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또한,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데, 학교법인의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육의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위반될 우려도 있다).

법은 정의에 대한 의지이고 정의에 봉사하기 위한 질서와 규칙이다. 법의 이념은 정의 이외의 다른 것이 될 수 없고, 모름지기 법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내용에 담긴 정의의 이념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만 한다. 우리 교육기본법은 교육의 이념을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교육기본법 제2조). 이와 같은 교육의 이념, 그리고 앞서 본 교육의 공공성과 아울러 정의로운 법해석에 의한 법적 안정성 및 법적 정당성의 보장은 우리가 추구하여야 할 궁극적 가치 내지 정신이라는 점 등을 종합하여 생각하여 보면, 비영리 공익법인이면서 공법관계와 사법관계가 혼합되어 적용되는 특수법인인 학교법인의 임시이사에 대한 지위와 권한을 명시적인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해석에 의하여 제한하는 것은 법 해석의 한계를 일탈한 위법한 해석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 앞서 본 법리와 같이 학교법인의 임시이사들은 법령상의 제한이 없는 한 정식이사와 완전히 동일한 권한을 가지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서 피고 학원의 임시이사들이 피고 학원의 정상화를 위하여 정식이사들을 선임한 이사회결의는 적법하여 그 효력이 있다고 보아야만 한다.
아. 이상과 같은 이유로, 법적인 근거도 없이 구 사립학교법상 임시이사들의 권한을 제한하여 해석하려는 다수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너무 길다고 여겨지만 위의 "다." 부분과 마지막의 푸른 글씨만 봐도 충분하다.


이번 상지대 사건에서 법원의 판단에는 매우 섭섭함을 금할 수 없으나, 교육과학기술부의, 그리고 위원회의 적절한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육의 이념에 구현을 위하여 학교가 하여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이며 여기서 교육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학교가 길러내야 하는 인간이 학교의 설립이념과 취지를 온전히 구현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사회와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여 인류발전에 이바지 하는 인간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가 충돌할 때 이야기다. 두 개가 같으면 상관없다)

사유재산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유재산의 보호는 그 사유재산이 정당하고 올바르게 모아지고 사용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 법이 학교의 설립을 법인으로 제한하고 있음은 설립자와 학교를 분리하여 학교가 설립자의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배를 채우게 하기 위한 여러 조치들 중에 하나다. 설립자는 학교를 세워 사회에 봉사한 인재를 키우는 것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지만, 그를 통해 자신에게 봉사할 인력을 키우는 것이 허락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상지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설립이념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찬탈된 설립자의 지위에 있는 모리배가 낄 자리를 주는 것은 결코 우리 헌법에서 말하는 사학의 자율성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탈법과 불법을 위한 훈육집단에 불과하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사분위의 현명한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민노씨가 수감되면(?) 나는 사식을 넣어줄 것이다. 사비로.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신문에 약간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을 보면 마치 촛불정국에서 발생한 사건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단순 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불법 연행과 이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이 법조계에서는 별다른 내용은 아니다. 이와 관련한 법조문을 보면,

형법
제145조 (도주, 집합명령위반) ①법률에 의하여 체포 또는 구금된 자가 도주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전항의 구금된 자가 천재, 사변 기타 법령에 의하여 잠시해금된 경우에 정당한 이유없이 그 집합명령에 위반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긴급체포) ①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판사의 체포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유를 알리고 영장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이 경우 긴급을 요한다 함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등과 같이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때를 말한다.
1.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2.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는 때
②사법경찰관이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피의자를 체포한 경우에는 즉시 검사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피의자를 체포한 경우에는 즉시 긴급체포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④제3항의 규정에 의한 긴급체포서에는 범죄사실의 요지, 긴급체포의 사유등을 기재하여야 한다.

헌법
제12조 ①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②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장소가 지체없이 통지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할 권리를 가진다.
⑦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제37조 ①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다른 규정들도 관련된 것이 있긴 하나, 넘어가도 될 사항이니 넘어가기로 하자.

형법에서는 단순도주를 처벌하고 있으되, 1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징역형을 정하고 있다. 이렇게 짧은 기간을 정한 이유는, 그 도주행위가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체포, 구금이라는 행위는 당연히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 뿐만 아니라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이며, 이러한 자유의 제한에 대하여 대응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라는 점이다. 체포된 자가, 도망가고 싶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 때문에, 이렇게 약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당한 폭력이나 상해행위가 있다면 별론이겠으나, 단순하게 도주만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를 처벌할 만한 여지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내용은 그것이 "법률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요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된 헌법 제37조(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근거규정이 되는 조문으로 헌법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알고 있으면 매우 도움이 된다)제2항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신체의 자유는 헌법 제12조에 규정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이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야 한다. 물론, 그 법률은 당연히 헌법에 반하여서는 안되는데, 그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가 여부가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형법에서도 체포와 구금이 '법률에 의하여' 정당하게 이루어졌음을 전제로 그 단순한 도주를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그 체포, 구금 행위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단순 도주죄의 구성요건인 '법률에 의하여'이라는 부분이 조각(阻却 - 물리치거나 방해한다는 뜻으로서,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흔히 해석된다)된다. 다라서 이 경우에 다른 모든 해우이적 구성요건이 충족된다고 해도(체포 또는 구금 행위가 있고, 이에 대항하여 도주한다고 해도) 형법학에서는 이를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고 하고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위 사건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는 것이, 도주에 대해서 이렇게 구성요건 해당성이 없다고 할것인데, 그 사람(피의자)의 폭력행위를 왜 처벌하지 않는가의 문제는 남게 된다. (어쩌면 위 사건의 경우 도주는 발생하지 않은 것이니 뭐 위의 문제는 깊이 따질 것도 없다)

솜털이 보송한 이 초등학생은 3년 이상의 죄를 범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체포와 구금은 법률에 의하여 행하여 져야 한다. 법률은 그에 대하여 체포 구금의 경우 법률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하는 영장을 가지고 하도록 되어있으며 이는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러한 예외중의 하나가 바로 위 형사소송법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긴급체포의 경우다. 요즘 촛불시위 등과 관련하여 강제구인되는 대부분의 연행 사태는 위의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긴급체포의 경우에 대하여 피의가의 도주우려나 증거인멸 등 법관의 영장을 기다렸다가는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는 때로 한정하고 있다. 이러한 형사소송법의 태도는 이론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은 이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몇가지 요건을 더 요구하고 있다.
먼저,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이상의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 그리고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 등 영장을 발부받을 수 잇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때가 바로 그것이다.

첫번째 조건은, 피의자가 심각한 사회의 위해를 가할 수있는 자이거나, 이미 그러한 행위를 한 자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가벼운 죄질의 범죄까지 모두 긴급체포를 하는 경우 국민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죄라도 긴급체포를 하는 것이 사회의 안녕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사태의 판단기준이 "의심할만한 상당한 사유"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의심된다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 긴급체포를 남발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형사소송법의 안전장치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두번째 조건은 이른바 '긴급을 요한다'의 판단기준이다. 긴급하게 체포해야 하는 경우 그 '긴급'이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떤 내용의 긴급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형사소송법은 긴급의 문제를 '영장을 받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로 한정하고 있다. 즉, 그 판단 기준에 대해서도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또 한가지의 제한은, 이 두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가지로서는 부족하고, 두 조건 모두가 충족되어야지만 긴급체포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제한장치들을 통해서 형사소송법은 국민의 신체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법으로서 엄격히 한정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로 작동한다.

긴급체포의 요건이 이럴진데, 그렇다면, 긴급체포를 당할 때 이러한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뻔하다. 그것이 바로 불법 체표와 구금이 되는 것이다. 불법적인 체포와 구금은, 형법에서 말하는 감금죄, 체포죄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다.

제276조 (체포, 감금, 존속체포, 존속감금) ①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제1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24조 (불법체포, 불법감금) ①재판, 검찰, 경찰 기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보조하는 자가 그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②전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공무원이 이런 행위를 한 경우(경찰을 포함하여) 위의 제124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더 중하게 처벌한다. 
그렇다면, 불법체포, 감금을 당한 경우에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가의 분제가 발생한다. 위의 기사에서 나온 사례에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이러한 불법적 행위에 대한 방어수단이 무엇이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민법에서는 범죄행위로 인하여 또는 범죄는 아닐지라도 불법행위를 당한 경우 이에 대한 손해 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원상복구이나, 대부분의 경우 원상복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불법 체포와 감금도 마찬가지다) 거의 100%정도는 금전으로 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각주:1] 그렇지만, 금전 배상의 경우 원상복구가 불가능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이미 발생했다면 어절 수없는 것 아니겠는가? 이럴 경우 해결의 문제는 쉽지 않다. 따라서 법률에서는 이런 손해가 발생하기 이전에 미리 이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손해 발생 이전에 미리 피해자가(또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자가) 취할 수 있는 예방행위에 대하여도 형법은 몇가지를 나열하고 있다.


제20조 (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1조 (정당방위)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2조 (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③전조 제2항과 제3항의 규정은 본조에 준용한다.

제23조 (자구행위) ①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전항의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이러한 행위들을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한다. 이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사람들이지만, 그 행위가 불법을 피하기 위하여서이거나, 심각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행위임이 인정되기 때문에 위법한

얼마전 긴급체포되었던 고대녀

행위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사례에서 적용된 규정은 제21조의 정당방위로, 위법한 체포 행위에 대해서 신체의 구속이라고 하는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하여 행한 다소간의 폭력의 행사는 그 처벌이 면제되게 된다. 그 사람의 행위가 비록 폭행죄에 해당하는 행위이지만, 불법적인 체포에 의한 상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폭력의 행사는 불가피할 것이므로 이는 무죄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지나친 폭력으로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제2항에 따라 처벌이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적당한 경우에는 이는 무죄라는 것이다.


정당방위에 대한 이 간단한 판례, 너무나 당연한 이 판결이 뭐 그리 새로운 내용도 아닌 이 판결이 오늘따라 눈에들어온 것은, 최근의 촛불정국과 관련하여 경찰이 그리고 그 경찰의 불법적인 체포, 구금행위에 의하여 피해받는 시민들에게 보내는 법원의 소장파 법관들의 메세지가 아닐까 싶어서이다. 어쩌면, 당연한 판결을 한 법관이 아닌, 기사를 써내려간 기자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느낌에서도.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주는 안도감이랄까.

정당한 권리의 행사를 위하여 부당한 힘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불가피한 폭력은, 우리 사회 전체의 질서와 정의를 위해 안타깝게도 반드시 필요할지 모른다. 물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비열한 논법으로 비하되어 공격받게될지 모르는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원칙이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작은 정의를 살리기 위한, 그리고 나 스스로 나를 지킬 수 있도록 해 주는 큰 권리이다.

촛불집회건, 그것이 불법시위건 경찰의 폭력에 대항하는 우리 사회의 정의의 아주 작은 안전장치라도 좋으니 이러한 법원의 판단이 계속되어졌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몇가지 조문을 보자.


제22조 (벌칙) ①제3조제1항(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또는 제2항(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나 질서유지인의 이 법의 규정에 따른 임무 수행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군인·검사 또는 경찰관이 제3조제1항 또는 제2항을 위반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제5조제1항(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 또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또는 제6조제1항(집회의 신고-미신고집회)을 위반하거나 제8조에 따라 금지를 통고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제5조제2항(제1항에 따라 금지된 집회 또는 시위를 할 것을 선전하거나 선동) 또는 제16조제4항(총포, 폭발물, 도검(도검), 철봉, 곤봉, 돌덩이 등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신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구(기구)를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행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이를 휴대하게 하거나 사용하게 하는 행위,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 신고한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을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④그 사실을 알면서 제5조제1항을 위반한 집회 또는 시위에 참가한 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제23조 (벌칙) 제10조(옥외시위 금지 시간) 본문 또는 제11조(옥외시위 금지장소)를 위반한 자, 제12조에 따른 금지(교통을 위한 시위 금지사항)를 위반한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주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
2. 질서유지인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
3. 그 사실을 알면서 참가한 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

제24조 (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1. 제4조에 따라 주최자 또는 질서유지인이 참가를 배제했는데도 그 집회 또는 시위에 참가한 사람
2. 제6조제1항에 따른 신고를 거짓으로 하고 집회 또는 시위를 개최한 사람
3. 제13조에 따라 설정한 질서유지선을 경찰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상당 시간 침범하거나 손괴·은닉·이동 또는 제거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친 자
4. 제14조제2항에 따른 명령을 위반하거나 필요한 조치를 거부·방해한 자
5. 제16조제5항, 제17조제2항, 제18조제2항 또는 제20조제2항을 위반한 자

위의 법률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명 집시법의 내용이다. 집시법에서 법원의 영장없이 긴급체포를 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한 자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나 질서유지인의 집시법의 규정에 따른 임무 수행을 방해한 자

이러한 행위를 한 자들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기 때문에 영장없이 긴급체포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한 법을

군인·검사 또는 경찰관이 위반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지금 경찰의 행위에 대해 묻고 싶다.

  1. 형사소송과 관련된 법률에서는 형법상 범죄의 경우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른바 '형사배상명령'이라는 제도를 두고 불법행위에 대하여 직접 피의자로 하여금 피해자에게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본문으로]


1. 헌법재판소가 종합부동산세의 세대별 합산산정방식이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종합부동산세는 유명무실해졌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에 관해 여러 각계의 의견을 보면,
"헌재의 재판관이 모두 종부세 대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연한 강부자 판결이었다" 라는 점에서 종부세 찬성론자들의 의견이 좁아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번 판결의 의미는 다른 맥락에서 살펴 보아야 한다고 본다.

법의 그림자에 숨어버린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법률적 해석을 하는 기관이 아니다.
간통죄가 합헌인가의 여부나, 국민에 대한 개병제를 취하고 있으며 군경력자에 대해 가산점을 줄 것 인가의 여부는 어찌보면, (다른 의미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우리의 일반 상식과 다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우리의 삶과 괴리된 헌법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 진다.

헌법은 정치적 산물이다.

우리의 지금 헌법은 이른바 87년 6월 항쟁의 결과였다. 이는 당연한 국민의 정치적 행위에 따른 당시 정치적 결정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우리의 헌법이다.
헌법은 20여년간 변한 것이 없고, 우리의 삶이 변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그 헌법아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헌법은 단지 그 글자만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문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력을 지닌 강령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헌법재판소의 역할은 그 헌법을 우리의 시대정신으로서 계속된 재해석을 해 나가는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헌법이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는 우리가 그 헌법의 올바른 가치를 현대 국민의 다수가, 그리고 고통받는 소수가 어떠한 기준과 지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헌법을 해석하고 그 가치를 반영하여야 한다.
그것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단지 법논리적으로 세대별 합산과세가 어떠하다는 의견으로 말아야 할 내용이 아니라, 그 헌법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가 어떠한 관점에서 우리의 헌법이 정한 질서를 해석해서 내어놓는가에 대한 기준이 되었어야 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법뒤로 숨어버린 비겁한 모습이다. 법이라는 형식논리에 치우쳐, 우리의 현실, 우리 상황을 직시하지 못한 비겁한 발상일 뿐이다.


2.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절필선언을 했다.

어제 인터넷에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한 예측과 전망 그리고 비판을 해오던 미네르바가 절필을 선언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이제부터는 내 마음 속에서  " 한국" 을 지운다." 라는 다소 충격적인 말로 글의 첫머리를 대신했다.

조국이 그에게 원한 것은 다름아닌 침묵이었다고.
그의 글을 보며 많은 인터넷의 한국인이 우리의 현실을 보았다.

침묵하는 자에게는 어떠한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배웠지만, 우리는 그저 침묵만을 강요당할 뿐 어떠한 권리도, 어떠한 자유도 얻지 못하는 것이 2008년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권의 이 땅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눈이 없다


나는 미네르바를 알지 못한다. 경제 상황에 무지한 탓도 있지만, 그의 글이 정확한 분석인지 여부에도 그다지 신뢰하지 못했고, 많이 읽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비판을 차치하더라도 그가 경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글을 썼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그가 투자의 목적이건, 투기의 목적이건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입에 재갈을 물려 이제 눈의 양 옆을 가린채 경쟁으로만 치닫는 경제동물로서의 속성을 부여받았다.

앞으로느 사이버 모욕죄도 신설될 듯이 보인다.

분명한 것은 사이버 모욕죄는 우리를 사이버에서 목을 조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와 현피를 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이버 모욕죄는 우리를 악플로 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허황된 믿음을 주고는 우리를 비판과 견제가 없는 세상으로 몰아갈 것이다.

미네르바의 주장에 온전히 동조하지 못하지만, 어떤 전 시대를 살았으나 더 자유로왔던 사람의 글귀가 생각난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  볼테르 -



3. 시사투나잇이 어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시사투나잇이 막을 내렸다.
지난 5년간 가장 명쾌하진 않을지라도 꾸준하게, 그리고 가장 화려하진 않을지라도 정확하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던 왜곡되지 않은 창이 하나 사라졌다.
KBS에서는 시사투나잇이 '생방송 시사 360’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프로그램의 제목이 바뀌고 그 성격이 바뀌면 그것은 분명히 다른 프로그램이다. 시사잡지 시사IN 의 한 기사에서도 나와있듯이,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잘되고 있는 프로그램의 제목을 바꾸는 것은 방송상식에 벗어나는 것이며 이러한 행태는 기존의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것과 같다.

흔히 정치권에서는 공영방송인 KBS가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보다는 정부의 정책의 방향을 국민에게 홍보하고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채널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권의 방송이 아닌 지금 KBS의 타이틀 처럼, "국민의 방송"이다. 정권에 협력하고 정권의 나팔수가 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의 홍보기능만으로도 충분히 족하다.

"끝"


우리가 원했던 것은 정치적으로 점철된 방송사의 쇳소리가 아닌, 우리의 삶을 닮고 있는 한개의 언론을 필요로 했을 뿐이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요구였다.

어제
인터넷에서는 미네르바가,
TV에서는 시사투나잇이 사망했다.

더불어 언론과 여론과 비판도 사망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30일 탤런트 옥소리씨 사건을 맡은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형법 제241조에 대해 낸 위헌제청사건(2008헌가7) 등에서 재판관 4(합헌):4(위헌):1(헌법불합치)로 위헌결정에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최종적으로 합헌결정을 선고했다.

형법 제241조는 간통죄로, 이 사건은 옥소리, 박철 사건으로도 유명한 사건이다.

간통죄는 위헌인가? 아니면 합헌인가?


먼저, 확인하고 갈 것은, 내가 어떠한 결론을 내리건, 내가 어떤 판단을 하건, 변하지 않는 사실은,
"간통은 나쁜 것이며,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사실이다.
또, "나는 간통을 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안할 것"이라는 것 또한 확실히 해 두고 가자.

간혹, 이런 글이 올라오면, '간통죄 없어지면 마음껏 간통을 하려는게냐?' '너 간통했지?'하는 비난부터 꺼내는 사람들을 막기 위함이고,
그런 무개념의 비판에 무반응하기 위함이다.

형법 제241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제241조 (간통) ①배우자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
②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논한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한 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간통은 "배우자가 있는자"가 저지를 수 있는 죄이며, 이렇게 일정한 신분을 가진 자만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를 신분범(身分犯)이라고 한다. 다만, 그아 상간한 자(相姦, 간통의 상대방)의 결혼여부는 문제삼지 않는다.

또 간통은 제2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소가 있어야 논할 수 있는 이른바 친고죄이다. 즉,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재판을 하고 간통죄로서 처벌할 수 있다. 종용과 유서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종용(慫慂)을 그것을 하도록 배우자가 시키는 것으로 간통의 사전(事前)에 이를 용인해 주는 것을 말하며 유서(宥恕)란, 용서와 같은 뜻으로 사후(事後)에 이를 용인하는 것을 말한다.(특히 종용의 경우, 이른바 배우자 스와핑에 있어서 간통죄 처벌 불가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합헌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 사건 법률조항은 국가와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가족생활의 초석인 혼인관계를 보호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혼인관계에 파괴적 영향을 미치는 간통 및 상간행위는 법이 개입할 수 없는 순수한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형벌의 제재를 동원한 행위금지를 선택한 것은 입법목적 달성을 위한 적절한 수단이다. 다만 ‘형벌’의 제재 규정이 지나친 것인지 문제되나, 이는 기본적으로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입법형성의 자유에 속한다. 간통이 사회질서를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우리의 법의식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혼인과 가족생활의 해체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 간통 및 상간행위에 대한 사전예방의 강한 요청에 비추어 간통 및 상간행위를 형사처벌하기로 한 입법자의 판단이 자의적인 것이라 할 수 없다. 나아가 이 사건 법률조항으로 인하여 침해되는 사익은 법률혼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동안 간통할 수 없고, 법률상 배우자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상간할 수 없다는 특정한 관계에서의 성행위 제한으로 비교적 경미함에 비하여 달성되는 공익은 선량한 성도덕의 수호 및 혼인과 가족제도 보장으로 높은 중요성이 있어 법익균형성 역시 인정되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이 사건 법률조항은 법정형으로 징역형만을 규정하고 있으나, 그 상한이 높지 않고, 죄질이 가벼운 경우 선고유예까지 선고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과중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대하여 위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중 3인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일부일처제에 터잡은 혼인제도와 부부간 성적 성실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개인의 성적(性的)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오늘날 성(性)에 대한 국민 일반의 법감정이 변하고 있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위 모두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하며, 세계적으로도 간통죄를 폐지하는 추세이고, 간통 및 상간행위의 형사처벌이 일부일처제와 가정보호․부부간의 성적 성실의무 보호․여성의 보호에 실효적인 기능을 하지도 못한다. 나아가 간통죄의 예방적 기능에도 의문이 있고 오히려 다른 목적을 위하여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수단의 적절성 및 피해의 최소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여 법익균형성을 상실한 것이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아직 헌재의 판결문 전문을 입수하지 못해 그 결정에 대한 세부 내용을 확인할 수 는 없으나, 이번 판결에서 아쉬운 부분은, 여전히 합헌이라는 재판부의 의견 보다는 여전히 같은 논리, 같은 의견으로 일관하고 있는 재판부의 태도다.
나는 기본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나라가 간통죄를 폐지하였고, 성적 문란함의 문제가 아닌 가족제도의 보호를 위하여 간통죄를 유지한다는 것은 논리에도 맞지 않는 부분이 많고, 헌재에서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일방예방주의에 대해서도 답답할 따름이다.

간통의 범죄화와 그 처벌은 어떤 의미에서는 법정책적인 판단에 맞겨져야 할 부분이다. 형법이 일반 시민의 법의식 또는 법감정이라고 하는 것을 따라가야 할 이유도 충분치 않고(이런 의미에서의 법에서의 일반 국민의 법감정이 중요하다면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과 한화의 김승연 회장에 대한 재판은 왜 그렇게 결론지어졌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 형법학자의 대다수가 형법 제241조를 위헌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을 굳이 따라가야 할 이유도 없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1990년부터 이어져온 동일한 판결문을 반복해서 읽어오고 있을 뿐, 그다지 나아진 점이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간통이 나쁜 짓이라는 행위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일이 없다. 그것은 간통이 죄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나서 판단되어야 한다. 간통이 형법상의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짓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로 인해서 간통죄의 피해자인 배우자가 이혼을 못할 이유도, 또한 이혼시의 위자료에 관해서도 불이익을 받을 이유도 없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우리 민법에서는 배우자의 부정행위로 인한 이혼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위자료라 불리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등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20여년간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사회통념이니 일반인의 범감정과 같은 동어반복을 되풀이 해가며, 또 이미 현대 형법학에서는 과거의 무의미한 논쟁으로 치부되는 일반예방주의에 대한 논리의 차용을 언제까지 이어갈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선다.

나는 간통죄를 폐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폐지하여야 한다가 아니라 이제는 폐지해도 될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배우자를 강제로 이혼하게 하고, 사회경제적인 비용만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 이러한 형사소송이 얼마나 이어져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이 다만 이로인해 회자될 술자리 안주 수준의 두려움 때문에 간통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소송경제적으로 매우 옳지 못하다.

배우자의 부정행위에 대한 비난은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를 처벌하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헌재가 2008년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도 90년의 판결을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다는 사싱리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번 재판의 전제가 되었던 옥소리 사건에서 담당판사는 '인간의 성생활은 사생활 중에서 가장 은밀하고 원초적인 것일 뿐 아니라 강제하거나 금지할 수 없는 감정의 발로에 기인한 것으로 국가가 이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겸과 함께 '혼인관계가 한 쪽의 의사만으로 쉽게 청산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간통죄가 혼인제도의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 기혼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전면적으로 희생한다는 의심이 든다'는 이유로 이를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확실한 사실은 이러한 의견이 헌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문과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이러한 주장에 맞서 헌재의 논리 역시 계속 이어져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제 헌재의 결론은, 조선시대에도 써먹었고, 앞으로 200년은 더 써먹을 수 있는 낡았지만 그저그런 논리일 뿐이다. 이미 수 많은 헌법 및 형법학자들에 의하여 난자된 오래된 옷을 입고 나와서 무슨 시대정신을 논하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간통죄의 최대 피해자는 부부 중 상대방이 아니라 어쩌면 사랑에 실패한 모든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을 국가가 위로할 수 있는 것은 또 한명의 피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건전한 성문화와 보편적 가족의 건전한 결합과 유지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디 다음번의 위헌법률심판에서는 간통죄를 비롯한 불합리한 법률들의 실질적 개선이 이루어지길 빈다.

간통죄와 관련한 내 의견은,
2007/09/10 - [Daily] - 간통죄, 아직도 그대로네?
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읽기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몇 줄 요약


우리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을 국민의 기본권의 하나로서 보호하고 있다. 헌법 제17조에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사생활 보호가 국가의 의무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형법은 지극히 사생활의 문제에 속하는 개인의 성생활에 대해서 이를 문제삼아 처벌하고 있다.

인간의 성행활은 사생활의 비밀에 속하는 대표적인 사례로서 국가는 그러한 사생활의 영역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부당히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함과 동시에 국가 스스로도 그 분야에 대한 간섭과 규제를 최대한으로 자제하여야 하며, 같은 이유에서 사생활 분야에 대한 국가의 형벌권의 발동도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고 할 것이다.

사생활의 비밀에 속하는 행위에 대한 공권력에 의한 규제는 적을수록 좋고, 특히 형벌로서 이를 규제하는 경우에는 그것으로 보호되는 공공의 법익이 침해되는 법익보다 확실히 큰 경우에 한여야 한다. (이러한 주장을 헌재의 김양균 재판관은 사생활 비밀 우선의 원칙이라고 부르고 있다)

간통죄는 그것이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이른바 보호법익)의보호를 넘어서 부당하게 이것이 남용될 우려가 많은 형벌조항이다. 일반적으로 이혼소송과 함께 진행되는 간통죄의 재판을 통해서 배우자는 더 많은 위자료를 받기 위하여 심리적, 형벌적 제재수단을 동원하여 심리적 협박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간통에 의한 이혼 소송을 진행하면서 간통죄에 대한 처벌을 근거로 하여 상대방에 대한 협박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이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부당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혼소송이 성공적으로(?) 종료되는 경우 고소 취하는 거의 일반화된 절차로서 진행되고 그 결과 1심 재판에서 간통죄의 유죄 판결율은 겨우 6%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를 확증하고 있다.

또 일반적으로 여성계와 간통죄의 존치론에서 주장되는 바, 간통죄의 폐지로 인해 간통의 피해자인 부녀가 이혼의 어려움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 간통죄의 존치 여부와는 관계없이 민법에서는 상대방의 부정( 不貞)을 이혼사유로 정하고 있다. 결국 이혼을 위해 형법상의 간통죄가 존재하여야 하느냐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라는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된다고 해서 이혼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워 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범죄를 비범죄화 하는 경우 그 범죄가 발생이 증가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다.  나쁜 짓은 여전히 나쁜 짓으로서 비난을 받을 것이며 이로 인하여 간통죄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이는 간통죄를 폐지한 다른 나라에서도 정설로서 받아들여지고 있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간통죄가 죄가 아닌 것으로 된다면 바로 간통을 하기 위해 팬티를 벗어버릴 사람들이다.  간통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간통죄의 존치 여부와는 관계없이 간통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건전한 성도덕이다.

어제 올렸던 포스트에서는 헌재의 판결이 치명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비록, 퇴근의 압박에 시달려 좀 흐지브지 끝났지만)

2007/07/03   군 가산점 문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1 (헌재 판결의 모순)

어제의 글을 요약해 드리자면 이렇다.
1. 진정한 법적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가른 것은 다르게' 이다.
2. 헌재의 논리에 따를 경우의 문제는,
        가산점을 주면 여성과 장애인 등 군미필자를 차별하는 것이지만,
        가산점을 안주면 군필자를 차별하는 웃기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헌재의 판결을 분석해 본다면, 헌법재판소의 결론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틀.렸.다.

재판의 판결은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특히 양당사자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결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왜 헌재의 이 판결은 이런 결론이 나온걸까.
이에 관해서 시사토론의 스타 전원책 변호사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한 것이 있다.
즉, 헌재는 정치적 기관이며, 그 판단은 대법원의 판결과 달리 정치 형성의 과정이라는 말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기관이기 때문에 헌법 이외의 다른 법령에는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굳이 법률적인 검토만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헌재의 판단은 헌법과 현행 법의 법률적인 판단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법적 판단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적,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의 자유가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고 할 수 있다. 전 변호사도 말했지만, 헌재가 이런 판단을 한 것은 당시 IMF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의 판단을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판결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을 인정하진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1점도 아까운 많은 여성/면제자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남자도 그렇지 않았냐고? 남자들은 군대로 '도망(!!!???)' 갈 수 있었지 않은가?

자,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상황을 인정하고, IMF라고 하는 특수상황을 벗어난 헌재가 어떤 판단을 하여야 할까에 관한 방향을 잡아보자.


신성한 의무로서의 군대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의 가치까지 깍아내릴 수는 없다. 국방의 의무라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는 것은 인정하고 변하지 않는 정리로서 남겨 두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두고,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결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군대가 신성한 의무라면, 이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영광된 자리(-_-)에 국민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신성한 의무이며 자주국방의 기틀로서의 국방의 의무가 가지는 가치를 보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러한 신성한 의무의 존재를 두고 그러한 의무의 이행에 따른 대가를 무임승차하거나 부당하게 일방적 수혜자가 되는 사람이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방의 의무에 대한 그 보상 또는 특혜(?)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느 단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징병제나 모병제를 불문하고 모든 경우에 포함된다고 할 것이다.


추상적 국방의 의무와 구체적 국방의 의무

국방의 의무는 헌법에 의하여 "모든 국민"이 부담한다. 남자가 아니라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진다.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바으이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신체가 건강한 남성만이 군대를 갈까?
국방의 의무는 추상적 의무와 구체적 의무로 나눌 수 있다. 추상적 의무는 우리나라 국방력의 향상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예컨대 국방에 소요되는 세금을 납부하거나 민방위 훈련이 있는 경우 그 훈련과정에 협조하거나, 국방관련 기술의 개발 등등 일체의 행위를 말하며 좀 더 추상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여 국가 안보질서의 유지에 기여하는 것 또한 국방의 의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국방력의 향상이나 군대의 구성에는 참여하지 않으나 간접적으로 이러한 직접적인 국방력 행상에 도움이 되는 일체의 행위가 바로 추상적 국방의의무이다.
반면 구체적 국방의 의무는 직접적인 병력 형성의 의무를 말한다. 즉, 군대에 가는 것이다.

헌법상의 국방의 의무는 남녀,건강의차이 등등을 불문하고 모두 지는 것이 맞으나, 그 구성요소인 구체적 국방의 의무는 남자만이 부담한다. 이를 실현한 것이 병역법이다.

문제는 구체적 국방의 의무를 남자에게만 부여함으로써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를 비롯한 병역면제자들은 추상적 국방의 의무만을 이행하지만, 신체가 건강한 남자는 추상적 국방의 의무는 물론 구체적 국방의 의무까지 부담하며 질적, 양적인 불평등이 발생한다.

물론, 헌법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도 있다.

제34조 ①②(생략)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생략)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제36조 ①(생략)
②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물론, 여자와 장애인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모성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 역시 더 나은 동등한 대우를 위한 산술적 평등이 아닌 법적 평등을 위한 국가의 조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 국방의 의무는 별개의 문제이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는 면제자는 장애인이 아니기도 하고 여자가 아니기도 하다. 또한 국방의 의무가 가지는 신성성은 이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국방이 무너져 타국의 속국이 되어버린다면, 여성과 모성,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는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다. 비록 무관하다고 하긴 했지만, 이러한 국가의 의무와 국민의 권리는 국방의 의무가 성실히 수행되어 국가가 그만한 능력, 자국민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이를 위한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군대의 형성이라고 하는 구체적 의무를 2년여간 신체건강한 남자들이 이행함에 따른 보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이 군 가산점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군면제자들의 국방과 안보에 대한 무임승차나 일방적 수혜자로서의 지위를 향상시켜 군필자들과 동등한 국방의 신성성과 유사한 지위를 누리게 하는 방안.

이것이 군가산점 문제를 풀어내는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또 다시말하면, 군가산점은 군필자를 위한 혜택일뿐만 아니라, 군면제자들을 위한 혜택이기도 한 것이다.


군 가산점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고 싶어도 못가는 군대를 가지 못했다면 그 2년여의 기간동안 다른 일을 준비하여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군대를 가게 되면, 아무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군대는, 헌재의 표현대로 특별한 희생은 아닐지 몰라도, 희생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개별적 보상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모르나, 가산점이라는 제도가 면제자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제도가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짐승이하의 취급을 받고, 국방의 의무라고 하는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은 군바리라고 놀림받고 천대받는 사회에서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가산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2년여의 별수롭지 않은 희생이 사회의 어느곳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무 것도 아닌 그저 2년이 썩어문드러진 젊은 날의 초상으로 쓸쓸히 위축되는 것은 이 나라와 면제자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가슴에 언젠가는 칼이 될 것이다.



나는 전거성이라는 별명을 얻은 전원책 변호사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전원책이라고 하는 저 사람을 믿지도 않는다. 대표적인 보수적 포퓰리스트다. 과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 관한 법워의 판결에 대한 100분 토론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가관이다. 혼자 흥분하고 쌩쑈한다. 난 이 사람 별로다.
전원책 변호사가 난리다. KBS 시사토론에 나와 흥분하며 살짝 벗겨진 머리 휘날리면서, 침튀겨가면서 설파하신 공부 좀 하고 나오세요가 지금 난리다 -_-

군 가산점 문제는 지난 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결정된 (구)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제1항 관련 사건에서 부터 시작된다.
(舊)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第8條 (採用試驗의 加點) ①제7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취업보호실시기관이 그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시험을 실시할 경우에 제대군인이 그 채용시험에 응시한 때에는 필기시험의 각 과목별 득점에 각 과목별 만점의 5퍼센트의 범위 안에서 大統領令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산한다. 이 경우 취업보호실시기관이 필기시험을 실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에 갈음하여 실시하는 실기시험·서류전형 또는 면접시험의 득점에 이를 가산한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군가산점제도를 여성, 신체장애자 등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하였다. 당시 판결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 가. 제대군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 사회정책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다른 집단에게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할 균등한 기회 자체를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아니되는데, 가산점제도는 아무런 재정적 뒷받침없이 제대군인을 지원하려 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있으며, 각종 국제협약, 실질적 평등 및 사회적 법치국가를 표방하고 있는 우리 헌법과 이를 구체화하고 있는 전체 법체계 등에 비추어 우리 법체계내에 확고히 정립된 기본질서라고 할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와 보호'에도 저촉되므로 정책수단으로서의 적합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것이다.

나. ...........................제대군인에 대한 이러한 혜택을 몇 번이고 아무런 제한없이 부여함으로써 한 사람의 제대군인을 위하여 몇 사람의 비(非)제대군인의 기회가 박탈당할 수 있게 하는 등 차별취급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입법목적의 비중에 비하여 차별로 인한 불평등의 효과가 극심하므로 가산점제도는 차별취급의 비례성을 상실하고 있다.

5. .............................제대군인 지원이라는 입법목적은 예외적으로 능력주의를 제한할 수 있는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산점제도는 능력주의에 기초하지 아니하고 성별, '현역복무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가 건강한가'와 같은 불합리한 기준으로 여성과 장애인 등의 공직취임권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으로서 헌법 제25조에 위배되고,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공무담임권이 침해된다.

(출처 : 제대군인지원에관한법률 제8조 제1항 등 위헌확인
             (전원재판부 1999. 12. 23. 98헌마363))
보는 바와 같이, 군 가산점이 위헌인 이유는 군대를 가지 않은 자를 부당하게 차별하여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차별일까, 아니면 차별이 아닐까?

우선 우리는 평등과 차별이 무엇인가에 관한 정확한 개념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국어사전에 보면, 평등이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이라고 한다.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함"이라고 한다.

즉, 평등이란,

"권리, 의무, 자격 등이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하지 않고 한결같음" 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국어사전의 정의는 마치 산술적 평등(또는 절대적 평등)을 이야기 하는 듯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이른바, 법적 평등을 정의하는 데에는 뭔가 불안하다. 예를 들면, 달리기를 하는데 있어서 절대적 평등을 위하여 5살짜리 꼬마와 20살 청년을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시켜야 하는가에 있어서 이 절대적 평등이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평등이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평등권에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바로 법적 평등이다. 이 법적 평등을 앞의 산술적 또는 절대적 평등과 비교하여 상대적 평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법적 평등이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헌법에서 평등권 조항은, 제11조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차별이란, 기본적으로 2이상의 집단을 자의적(恣意的)인 기준에 의해 부당하게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를 말하는데, 이러한 차별을 규정짓는 키워드는, 자의적 기준과 부당함이라는 단어이다. 즉, 둘 이상의 집단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러한 다른 기준이 자의적인 기준으로 부당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즉, 남자와 여자의 화장실을 무조건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또 그 숫자와 규모를 다르게 하는 것과 같이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두 개 이상의 집단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더욱 진화되고 합리적인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평등에 관한 좀 더 발전적인 개념정리를 전제로 한다면 군 가산점의 문제에 있어서 좀 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용이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개념에서 출발한다면, 군대를 다녀온 사람과 군복무를 하지않은 또는 하지 못한 사람을 동일한 출발점에서 경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 합리적 기준을 통해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군 가산점이 위헌인가?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국방의 의무는 헌법이 부여한 국민의 신성한 의무이므로 이러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특별한 희생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제를 두고 있다. ("헌법 제39조 제1항에서 국방의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는 이상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하여야 할 이른바 신성한 의무를 다 하는 것일 뿐,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인식은 매우 재미있는, 사실은 재미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군대에 2년 갔다온 것은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는 것인데, 그러한 의무를 이행한 사람이 특별한 희생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단순히 할 수 있다가 아니라, 그것은 맞다. 국민의 의무를 이행한다는 것을 특별한 희생이나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국방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으므로 이러한 인식은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혀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의무라면, 그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자의에 의하지 않은 것이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신성한 의무를 이행한 자들이 이루어낸 국방과 안보에 있어서 결론적으로는 무임승차하고 있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국방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것이 자의가 아닌 경우도 있다. 체력적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군대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떠한 것이든, 안보와 국방상황에 있어서 일방적인 수혜자가 되어버린 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 가산점은 그러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으로서 타인의 안보와 국방적 현실의 안정감을 도모해 준 자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방법을 통해 무임승차자와 2년여의 기간에 의해 뒤쳐진 부분을 보상할 수 있는 실질적 평등의 구현수단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오히려, 군 가산점 등(가산점 이외의 지원 정책에 관해서는 논외로 함) 지원이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실질적인 차별이 이루어지는 황당한 결론이 난다.

현재의 논리에 따르자면,

가산점을 주면 여성과 장애인 등 군미필자를 차별하는 것이지만,
가산점을 안주면 군필자를 차별하는 웃기는 결론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다수의(어느정도 다수인지 모르지만)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모순된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2편에서 계속 -

-_- 퇴근해야지 -_-

18대 국회에서 개헌안 처리

Posted 2007. 4. 11. 10:24
< 18대 국회에서 개헌안 처리 >

현재 국회는 17대 국회.
18대 국회에서 개헌안 처리 하겠다는 저 한심하고 속 들여다 보이는 개소리.

노동당의 의도와 의중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지만,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속내는 안 봐도 뻔 하다.
민주당도 마찬가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정치적 역량의 강화를 위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뺏어 먹겠다는 저 치졸한 작태에 놀아나 버린 노동당의 꼴통들만 바보가 되어버린 불쌍한 정치 쇼.

재선의 가능성이 다른 당에 비해 열악한 노동당의 현 지지율로서는 도대체 저게 왠 기성정당에 뒤지지 않는 도마뱀 같은 짓인지 모르겠다. 꼬리라도 떼어 도망가려는가.

17대 국회의 임기는 2008년에 끝난다.
현 대통령의 임기 역시 2008년 2월 25일에 끝.

이번 개헌안은 20년만에 두개의 선거를 일치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개헌안을 18대 국회에서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음 대통령은 2008년 ~ 2013년
다음 국회의원(18대)은 2008년 ~ 2012년.

자, 국회의원이 1년 일찍 끝난다. 다시 말해서, 개헌을 통해 새로운 국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단축하여 국회의원과 같이 선거를 하거나, 국회의 구성 없이 1년을 지내거나, 국회의원의 임기를 1년 연장 하면 된다.


그들은 이미 계산이 끝났겠지.

임기가 오랠 수록 재선의 가능성은 높아만지고, 기득권은 충분히 보호되며, 당내 위치와 정치적(아니 오히려 정략적) 야욕은 더 활활 불타오른다.


오늘의 정치적 야합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 볼 일이다.

오늘의 6당합의를 나는 기억하고 있을테다.

< 헌법 개정시안 발표 >


총6개 항목의 개헌 시안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대통령 임기는 4년으로 하되,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 한해 1차 연임 허용.
2. 대통령 궐위시 후임자 임기는 전임 대통령 임기의 남은 기간으로 하되,
   대통령 궐위시 후임자 선출 방식은 남은 임기가 1년 이상인 경우 직선.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시 총리가 대행.
3. 대통령 궐위 여부의 판단을 위해 궐위확인 절차와 주체를 명문화
    - 국무회의의 의결 후, 헌법재판소가 궐위 확인
4. 현 노무현의 임기를 2008년 2월24일로 명문화
5. 국회의원/대통령 선거의 실시방안.
    제1안 : 12년2월 대선과 총선을 동시선거. 대통령은 12년3월31일, 국회의원은 2012년2월28일 임기시작.
    제2안 : 12년 1월에 대선, 2월에 총선 실시. 임기는 1안과 같음
    제3안 : 08년 2월 동시선거. 임기는 2월25일 동시에 시작.
6. 공표후 즉시 시행
======================================================================


1. 연임제 시행

- 현재의 우리나라 정치체제는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 중에서 어떤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학자간의 의견차이가 많다. 따라서 어떤 것이 좋은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대통령의 책임정치가 오히려 정국의 안정을 이끌어 내기 쉽다는 장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 처럼 양당제가 확고하지 못하고 허구헌날 여당이건, 야당이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현실에서는 군소정당의 난립에 따른 정치적 혼란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연립내각의 가능성과 국회 해산, 총리(또는 내각의 수반)의 직무 정지가 빈번할 수 있는 의원내각제 보다는 대통령중심제가 좋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시스템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는 탄핵 등의 절차를 거쳐 행정 각부의 장관과 국무위원을 불신임할 수 있으나, 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이 없다. (이에 따라 야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 부재가 문제되기도 한다)

문제는 대통령의 연님 또는 중임의 가능성을 인정할 것인다의 문제.

과저 우리나라의 대통령직에 있었던 자들이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던 시기의 역사적 경험 때문에 현행의 헌법에서는 5년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같은 작자들의 장난에 놀란 국민들의 염원이었을 뿐 장기집권의 방지를 위한 단임제가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과거 독재정권에 대한 우려를 제외하면 대통령 연임제 채택을 반대할 이유가 거의 없다고 본다.

연임의 횟수를 1회에 한정하고는 있지만, 이에 따라 대통령 임기말의 레임덕(lame duck)을 방지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의 경우 연임을 위하여 임기말 방만한 통치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단임제에 비하여 정국의 안정은 더 확보할 수 있다.

연임제 찬성. 다만 1회의 연임에 관해서는 좀더 고려해 봐야 할 듯.

과저 전두환 당시 7년의 단임제에 비해 1회의 연임시 겨우 1년 늘어난 8년이기 때문에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미지수 라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반면에 2회의 연임을 인정하는 경우 12년의 장기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제될 수 있다. 대략 대통령 당선자가 50대 후반 ~ 60대 또는 70대 까지 당선되기도 하기 때문인데, 2회의 연임을 인정하는 경우 권력의 중앙집중이 심해지거나 불의의 사고에 의한 대통령 궐위를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 좀 더 연구를 요함이다.

현행 헌법

  • 제70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2. 대통령 궐위

- 현행 헌법은 다음 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71조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

제68조 ①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만료 70일 내지 40일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②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 궐위시 차기 대통령 또는 권한대행자의 임기와 권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에 따라 탄핵정국시 고건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가 문제되었던 적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신설될 필요가 있다.


가. 1년 이상/이하의 잔여임기에 대해.
-- 생각건대, 1년 미만의 잔여임기 인가의 여부는 아래 설명할 궐위의 확인이 있는 시점부터 이거나, 궐위의 확인시 그 시점(xxxx년 xx월 xx일 부터 궐위인 것으로 본다)을 명시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세부 절차는 헌법재판소법에서 결정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헌법에서 1년을 기한으로 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변경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예컨대, 1년 1일, 1년 1주일 등 궐위에 의한 잔여임기가 1년 이하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경우에 선거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이는 헌법사항으로 하지 아니하고 법률사항으로 헌법재판소법 또는 (가칭)대통령의 궐위 확인에 관한 법률 등의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즉, 1년 이하의 잔여임기의 경우 총리가 이를 대행하게 하고 법률 또는 헌법에서 대강의 권한 대행 범위를 한정하고, 1년이상의 잔여임기의 경우 필요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잔여임기에 따른 선거 실시여부에 대해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정리하자면,

a. 잔여임기가 1년 이하인 경우에는 무조건 총리가 이를 대행하게 함
b. 잔여임기가 1년 이상이더라도 , 잔여임기가 지나치게 단기이거나
   선거를 치를 수 없는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가 이를 판단하게 함.


한가지 추가 하자면, 잔여임기가 1년 이하라고 하더라도, 대통령과 총리가 동시에 궐위될 경우를 대비하여 이 경우 선거를 반드시 실시토록 하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한다. (예컨대, 버마 아웅산테러 사건과 같은 사건으로 인해 동시에 궐위될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3. 대통령 궐위여부의 판단

- 3권분립에 따른 권한 배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국회 또는 법원이 이를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경우 단순 사실만으로도 국회는 궐위를 확정할 수 있으므로 지나치게 정치적 성향이 강한 국회에 맡긴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본다. 대법원이 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별개의 헌법재판 수행기관이 없이 대법원이 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미국이라면 그렇게 하겠지) 하지만, 법률적 심사기관인 대법원은 법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으므로 정치적인 판단을 함께 하여야 하는 문제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사법부가 담당한다면 지나치게 경직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재판소가 존재하고 위헌법률 심판 이외에도 헌법소원, 탄핵, 권한쟁의, 위헌정당심판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그 성격 역시 정치적인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러한 임무를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현행헌법에서는 궐위여부의 판단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4. 노무현 대통령 임기 제한
- 이건 당연한 것이니 패스

5. 대통령/국회의원선거의 시기와 임기
- 이 문제는 어떻게 되든 상간 없다고 생각한다. 노 코멘트. 단순 입법기술상의 문제 또는 정치적 합의의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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