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국의 최대 이슈는 역시 세종시다.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의 성격을 기업과 과학도시로 수정하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고 난 후 각계각층에서 이에 대한 논평이 바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내가 한마디 더한다고 해서 정부가 들을리도 없고 또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지만, 그래도 침묵하는 것 조차 찬성으로 해석되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자 적어본다.

세종시란 무엇인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말하려면 역시 세종시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야 겠다.
세종시의 정식명칭은 세종특별자치시(世宗特別自治市)로, 그 출발은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2004년 1월16일 제정)"에서 부터 출발한다.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공약했던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위하여 신행정수도를 지정, 충청권에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법을 제정하였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이라고 약칭되는 이 법은, 제1조에서 "국가 중추기능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고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기 위하여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방법 및 절차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행정수도법은, 2004년 12월 "관습헌법"이라는 초유의 유행어를 남기며 위헌판결을 받게된다. 이에 노무현은 신행정수도를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로 바꾸고 재추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다. 법률의 명칭에서 보듯이 신행정수도가 무산됨에 따른 후속대책의 마련을 통해 충남 연기군과 공주시 인근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그 기본 내용으로 하며, 법 제1조에서는 법률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제1조 (목적) 이 법은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기 위하여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는 방법 및 절차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목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법률 역시 전의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의 계승을 위해 제정되었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란, 그 명칭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행정"(단순히 administra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기본작용으로서의 행정을 의미한다)업무의 수행을 그 중심 기능으로 하고 그 외에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도시를 말한다. 이 법에 의하여 추진되던 행정중심복합도시는 2006년 12월에 그 명칭을 세종특별자치시로 하게 되고, 노무현정권의 국토균형발전 정책의 상징적인 이름이 되었다.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 어떤 내용인가

세종시가 어떤 것인지 알았으니, 이제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의 차이점을 살펴 봐야겠다. 세종시 원안의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은 당연히 행정기관의 이전이었다. 노무현정부에서는 12부 4처 2청의 이전을 확정하여 발표하게 된다(2005년 2월이다) 노무현의 세종시에는 이렇게 행정기관의 이전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의 건설을 주 목적으로 하였는데, 이명박정부에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성격을 행정중심이 아닌 기업 및 과학도시에 중점을 두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12부 4처 2청의 이전이 확정되었으나,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으로 인하여 이전대상 기관은 9부 2처 2청으로 변경된다. 그 대상 기관은 다음과 같다.
1. 기획재정부
2. 교육과학기술부
3. 농림수산식품부
4. 보건복지가족부
5. 문화체육관광부
6. 노동부
7. 지식경제부
8. 환경부
9. 국토해양부

10. 법제처
11. 국가보훈처

12. 국세청
13. 소방방재청

이명박정부에서는 이 행정기관들의 이전을 전면 백지화 한다. 즉, 행정기능은 완전히 결여된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하여 기업도시, 과학도시 등 여러 명칭을 부여하고 있으나, 이는 그냥 겉에 붙인 특화된 신도시의 성격일 뿐이며, 당연히 이 도시는 그냥 신도시일 뿐이다. 행정기관 이외에 기업이나 과학시설 등을 건설하는 것이 그다지 국가 전체적으로 보아 달리 행정상의 문제가 발생하거나 특별 기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그냥 신도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음 표는 국무총리실에서 발표한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의 차이에 관한 표이다.


국무총리실의 자료니 당연히 수정안이 좋게 나온 것이니 신경쓰지 말자.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세종시의 변경에 대해 반대할까? 오히려 자족기능(자족기능이라는 말과 위의 표에 있는 자족용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잠깐 설명을 하자면, 자족(自足)이란, 스스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자족기능이나 자족용지는 외부의 도움이나 교류없이 스스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기능이나 그 목적의 용지를 말한다. 즉, 생산과 소비 등등 경제적 측면에서 외부, 정부의 도움 없이 재정자립이 가능한 곳이라는 뜻이다.)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반대하는가

다시한번 세종시의 건립목적으로 되돌아가 보자. 세종시는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다. 수도권 과밀화 라고 하는 원인이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정기관이전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토의 균형적 발전의 도모. 이것이 세종시의 목적이다. 행정기관이 모두 수도권에 모여있어 각종의 정책의 수립과 집행 역시 수도권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도의 기능을 일부 옮기자는 것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수단이 고려될 수 있다. 기업의 이전, 특화 도시의 개발 등등이 가장 기본적으로 있을 것이다. 또한 수도권의 과밀화된 인구의 분산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수도권의 인구는 거의 전국민의 절반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수도권 인구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지만, 수도권을 넓게 보는 경우에 절반 수준이라는 것은 인정된다고 보여진다) 이에 따라 주택가격의 지속적 상승, 주택 수급의 부족현상 발생 등등의 문제점이 발견된다. 하지만, 왜 수도권에 사람이 몰릴까. 당연히 모든 것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기능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교육, 문화, 경제 등등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모든 것이(환경과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서울에 몰려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사람들을 지방에 가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방에 문화와 경제를 발전시켜 지방에서 살아도 서울과 같은 또는 거의 유사한 경제적 혜택, 문화적 혜택, 교육 혜택 등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교육받을 수 있고, 서울에 살지 않아도 영화나 각종 문화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고, 서울에 살지 않아도 서울에서 벌 수 있는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서울에 살 필요는 없다. 게다가 집값도 싸니(물론 그 정도로 지방의 수준이 올라가면 서울의 집값과 비슷해질 것이다)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환경적인 이점도 있다. 국토의 균형적발전의 목표는 전국 어디에서건 서울이나 그 밖에 잘 사는 동네 못지 않은 혜택과 복지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가? 다시말하면, 서울을 그냥 계속 발전시켜서 그냥 살면 안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생겨난다. 즉, 국토의 균형발전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간단하게 답을 내자면, 서울을 키워 먹고살자는 것은, 결국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리기 때문에 이건희를 사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슨 뜻이냐면, 서울을 계속 발전시키기만 하는 경우, 다른 곳은 계속 열악해지고 계속 서울과의 경차가 발생한다. 서울에 인구는 더 몰리고, 서울의 주택공급은 더욱 어려워진다. 즉, 집값이 더 올라간다. 천정부지로 말이다. 돈은 계속 서울로 몰리고, 지방에는 쓸만한 기업 하나 남아있지 못하게 된다. 결국 세금은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바닥을 칠것이고, 지방자치단체의 세금 수익은 줄어 중앙정부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지방 재정자립도가 떨어지고 망하는(?) 지역이 생기는가 하면, 서울의 인구과 더욱 과밀화 됨에 따라 서울 도심의 슬럼화 현상, 즉, 빈민가와 우범지대가 속속 생겨날 것이다.
그 외에도 국토를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물론 그걸 싫어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감히 밖으로 발설하지 못하는 것은 이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전제는 어느정도 합의된 것이니 반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산업화 초기의 개발도상국이라면 어느정도 수준이 있는 (경제적 수준에 도달한) 도시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의 서울과 수도권은 그런 정도를 넘어 폭발하기 직전이며, 우리나라가 그 정도의 개발도상국도 아니다. 게다가,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대한민국 돈의 대부분이 땅과 건물에 달랑달랑 걸려있으니 돈이 돌지도 않고 그나마 돌아도 서울에서만 돌 뿐이다. 즉,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경제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안될 뿐더러, 망조들기 쉽상이다.

그렇다면, 기업도시로, 과학기술도시로 변경하자는 수정안에 왜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일까?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하던 것은 세종시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혁신도시라는 것들. 혁신도시란, 지방의 몇개의 도시에서 과거의 서울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 코어를 형성해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도시를 말하는데, 원주, 김천, 나주, 대구, 울산, 전주가 지정되어 각각의 도시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중점적으로 발전시켜 지역경제제는 물론 그 주변지역까지 한번에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혁신도시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그리고,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기업을 유치하여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이름의 혁신도시급의 도시가 생기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내가 앞서 그냥 신도시 하나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보자면, 특히 혁신도시 입장에서 보자면 이게 참 무서운 일이다. 앞에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8.5조원의 국가보조, 3.5조원의 과학벨트 등 최소 12조원이 투자되는 새로운 신도시가 건설된다. 게다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 그렇다면, 다른 혁신도시에 입주하고자 했던 기업들은? 당연히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거나 세종시로의 입주를 희망할 것이다. 세종시가 특별한 이유는 행정기관이 입주한다는 이유였는데, 이제 다른 혁신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기업과 과학연구기관 등 일반적인 도시 기능을 갖추게 되니, 불가피하게 세종시와 경쟁해야 하는데, 덩치가 장난 아닌 놈이 온것이다. 마포구청장배 동네 씨름대회에 이만기와 강호동이 출전하는 격이라 할까.

세종시가 지금까지 특별했던 이유는 충청도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라서가 아니었다. 물론, 덕분에 충청도가 발전하기는 하겠지만, 그 효과가 이명박 정부가 밝히는대로, 수정안의 기업도시보다 효과가 없다. 그건 맞다. 충청도는 그래도 많이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충청도는 어짜피 서울도 가까운 편이라 광역의 수도권이라 할만하고, 수도권과 충청권만을 발전시키려는 것이 아닌, 그 외의 다른 지역까지 함께 발전해 야 한단.ㄴ 노무현식의 국토균형발전에 따른다면 세종시는 행정기관의 이전이라는 상징적인 기능을 수행함으로서 다른 혁신도시와의 차별성을 누릴 수있고, 국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혁신도시에 비해 결코 뒤지지않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한민국에 10개의 대기업이 있고, 그 기업을 각각 한개의 도시에 뿌리내리게 한다면 서울을 포함한 10개의 대도시가 생기지만, 서울의 행정기능을 뚝 떼서 옮기면, 10개의 대도시와 1개의 행정중심도시가 생긴다. 행정중심도시는 당연히 다른 기업을 control하는 기능을 할 것이고 역시 함께 발전해갈 수밖에 없다. 기업에 충분한 투자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은 혁신도시에 주고, 행정기능은 행복도시로 옮기는 것이다. 서울은 그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고 해도 당연히 지금의 모습으로 유지될 것이다. 물론 인구가 줄어들면서 살기 편해지고 말이다. 집값은 당연히 떨어져 현실적인 주택가격을 형성하고 주택공급은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교통혼잡이나 환경오염, 그리고 도시빈민가는 축소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좋은, 이 훌륭한 세종시는 왜 수정되어야 한다는 걸까.

이명박정권이 수정안을 내놓으며 밝힌 이유는, 행정비효율과 자족기능 부족이다. 이 중에서 자족기능의 부족은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되는게, 사실, 행정기관이 들어가면 뭐 그다지 자곡할 만한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9부2처2청의 행정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대략 1만여명 정도로, 겨우 1만여명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자족기능이 필요할까. 1만명을 상대로 식당이 생겨나고, 11만명을 상대로 마트가 생겨나고.. 등등 그건 필요한 수준에서 어느정도 행정적으로 필요에 따라 조정이 가능한 문제다. 학교가 없는 것도 아니고(사실 대학이 들어선다는 건 좀 웃기는게, 대학 갈 나이면 다른 동네 있는 대학가고 그래도 기숙사니 하숙이니 하면서 혼자 살아가는 거다. 집에서 학교 가까워서 좋을 건 별로 없고 자족기능이니 뭐니 하는 문제는 전혀 아니다. 학교는 초중고등학교로 충분한데 그건 충분히 준비될 것이다) 살만한 시설 없는 것도 아닌데 자족기능이 문제될 건 없다고 본다. 물론 이명박의 수정안 처럼 기업이 들어서고 수십만의 인원이 정착하게 된다면 자족기능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될것이다. 결국 자족기능의 문제는 단순히 세종시 전체의 문제다 라고 할 것이 아니며, 세종시의 수정안이 가지고 온 문제라는 것이다. 결국 그 자족기능 부족의 문제는 세종시의 원안 추진으로 충분히 해결될 것이다.

두번째로 문제될 것이, 행정비효율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없는 것은 아니니 충분히 고려되고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노무현은 행정의 비효율성을 감안해 가면서까지 행정기능을 이전하려는 것이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행정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즉, 통신과 교통의 발전 노력이 결국은 행정도시와 서울간의 교통과 통신 등등 여러 문제점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구체화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충청권의 발전을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어려움은 있지만 이 또한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며 그 노력을 통한 발전이라는 반사적 이익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행정의 비효율이 주는 문제는 있지만, 그런 문제를 덮어버릴 수 있는 발전방향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행정의 비효율성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이러한 행정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우해서 모든 행정기관을 한 곳에 그냥 모아두어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기술적으로 그리고 행정절차의 개선을 통하여 그리고 공무원의 혁신을 통해 행정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에 수반되는 기술의 발전이나 재투자의 욕구가 행정의 비효율성이라고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다른 발전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착안한다면 우리가 행정의 비효율성 때문에 행정기능의 이전을 도외시 할 수는 없다.

행정비효율이 행정기관 이전의 필연적 문제라면, 이를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행정기관의 필연적 의무라고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공무원의 숫자를 지금보다 늘리고(이건 내가 전부터 주장하던 것이다) 필요하다면 화상회의나 관련 기술에 대한 집중투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행정기관의 이전과 공무원들의 이주를 통하여 국토의 균형발전을 통한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불편하지만 이전하는 선도적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지금 세종시에 대한 수정논의에 대해 반대할 수 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과연 국토의 균형발전에 대한 의지가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세종시가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 말한다. 그러나 왜 그런가 하는 물음에는 이렇다할 깨끗한 답변은 없다. 그냥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렇다 보니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정치적 이유 때문에 세종시를 죽이려 드는 이명박정부가 더 문제가 아닐까?

세종시의 탄생과 목적은 앞서 충분히 밝힌 바와 같다. 그런데, 앞의 내용에서 주목할 점은, 이것이 결코 충청도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충청도를 위한다면 기업이나 과학벨트 같이, 말그대로 돈 되는 것을 뿌려주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그런 것이 아닌 행정기관이 이주하는 것은 국토의 균형발전이 아닌 정치적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세종시를 통해 충청도 표를 집결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처음부터 지금의 수정안 처럼 기업과 대학, 과학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오히려 충청권의 표를 집결시키고 그 표를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어떤 바보가 좀더 확실하고 많은 표를 가진 경상도나 전라도를 포기하고 이 곳에 표를 얻고자 하겠는가?(충청권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구 국회의원 정도면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 같아도 차라리 이 곳에 쏟은 노력 1/3만 쏟아 경상도에 윙크 한번만 하면 충청도 표의 두배가 나올텐데 하며 포기했을 것이다. 사실 그렇제 않은가? 단순한 인구비례만 해도 말이다. 게다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충청지방 처럼 수도권과 맞물려 있다는 이점 아닌 이점으로 표도, 성향도 없는 곳도 드믈다. 제주도나 강원도야 워낙 푸대접 받는 곳이니 억울해서라도 집결할만 한데, 충청도는 그네들의 성격 처럼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넘어가던 동네고 여차하면 수도권에 묶여 그냥저냥 넘어가는 동네니 행정수도 이전한다고 집결하고 모이는 표도 아니다(이건 개인적인 분석이니 대충 읽고 넘어가자)

요약하자면, 세종시의 탄생은 정치적이지 않았지만, 이번 수정안으로 충분히 정치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무식하게도, 정치적이라고 해도 좋을 다른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등 타 지역의 이익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이렇게 되버린 것이다.
 
 
세종시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다보니, 생소한 법률 하나가 눈에 보인다. <임시행정수도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그것이다. 임시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은 박정희 정권의 파워가 최고조에 달하던 1977년에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률은 지가의 현저한 변동과 부동산의 투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각종 계획을 조정함으로써 임시행정수도건설의 원활한 추진을 기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신기하게도 여기에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개념만을 더하면 세종시법과 달라진 점이 전혀 없다. 박정희 정권 역시 서울의 비대화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여 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행정기능의 이전이라는 카드를 제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 시대와 같은 병영국가적(? 논란은 있겠지만) 상황에서도, 부동산 가격안정과 투기억제를 위해 세종시와 같은 행정중심의 도시가 필요했다면,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폭등해 버린 수도권을 위해서 더더욱 필요한 것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아닐까?


과연, 세종시를 단순한 "신도시"로 바꿔버려서 진짜 그들이 원하는 건 뭘까.

세종시의 자족기능이니 행정기능 이전의 나라절딴난다는 논리가 구라임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다. 아니, 구라는 아니더라도, 그 논리가 국토균형발전의 기존 논리에 대한 반박논리로서 세종시 수정안의 정당화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세종시가 수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개인적인 견해로, 그 출발은 뉴타운과 그 궤를 같이 한다고 보여진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부자들을 그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아니라고 할지도 몰라서 덧붙이자면, 부자들과 그 부자에 엉겨서 같이 부도덕하게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일부와 부도덕하진 않지만 부자가 되어서 그들 사이에 끼고 싶어하는, 정승같이 벌건 개같이 벌건 끝내는 부자가 된다면 그 결말이 부도덕해도 상관없는 사람들과 마치 자기가 부도덕한 부자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기타등등 부(富)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에 시달리는 사람들과 부(富)가 그 자체로서 도덕과 같은 개념이라고 착각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한꺼풀만 까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부자들이 지지기반이라면, 그 부자들의 기반은 바로 부동산이고, 그리고 수도권의 부동산이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세종시의 건설은 당연히 수도권 지가의 안정과 하락을 가져올 것이다. 겨우 1만명밖에 안되는 공무원의 이전이지만, 당연히 세종시는 그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특혜아닌 특혜가 있을 것이고,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세종시로의 돈의 유출은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집결한 곳이라면야. 더딜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인구의 이동 역시 큰 벨트를 형성해서 수도권 아닌 세종시로의 유입이 늘어날 수 밖에 없고, 수도권 개발의 필요성 역시 반감된다. 행정기관의 이전은 곧 국가 운영주체의 이전을 의미하고, 국가 운영주체의 이전은 (몇 단계를 거치긴 하겠지만) 국가 기반의 지역적 중심의 이동을 불러온다. 충청권의 행정중심도시의 필요성은 북위 38도선상에 위치하는 국가 기반 시설 및 국가 발전 중추의 이전을 가져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발전한 수도권과 양립할 수 있는 제2의 국가중심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이 된다.
즉, 수도권은 이제 뉴욕이나 도쿄가 아닌, 같은 한국의 다른 도시와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부동산 시장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경쟁은 가격하락을 불러온다. 그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들에게 세종시의 탄생은 지지기반의 물적 쇠락을 불러올 것이 뻔하며, 나아가 지지기반의 지속적 이탈을 가져온다. 뉴타운이나 세종시나 모두 그렇다.

세종시는 아마 이번 정권에서는 금번의 수정안에 따라 수정되어 추진될 것이지만, 당연히 다음 정권에서는 또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논의만으로도 세종시에 대한 이명박정권의 필요는 충족해 줬다. 노무현색깔을 지우고, 지지기반을 불합리한 논리로 집결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말도 안되는 논리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이유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먹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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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What a..

Posted 2010. 1. 12. 12:54


어딘가엔, 그런데가 있을 겁니다.
원더풀.
그정도라면,

enough.

여기일수도 있고 말이죠.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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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0년간 최고의 단어들 >

"구글(Google)"이 최근 10년간 최고의 단어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2009년의 단어는 트윗(Tweet).
'구글'은 "블로그(Blog)"와 막판까지 각출을 벌였으나, 블로그를 제치고 최고의 단어로 선정.

내 생각에도 최근 10년이라면 블로그가 더 유력할 듯한데, 놀랍다.
게다가, 인터넷 관련 단어가 10년간 3개라는 것도 고무적인데,

911이나 악의축 등등 국제정세와 전쟁 등등 어두운 단어가 더 많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반영한 단어까지 포함한다면,
구글, 블로그, 트윗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둔 단어들.

2010년의 단어는 좀 멋진 단어가 선정되길.
정초부터 내린 눈 때문에 아침마다 출근 전쟁이고(그런데도 오늘 아침에는 운 좋게도 앉아서 왔다), 쌓인 눈은 언제 녹을지 몰라 걱정인데, 지난 6일, 스리슬쩍 한 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놀랄만한 일이지만 놀라지 않았고, 웃기는 소리지만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소식이었다.

< 노 전 대통령 피의사실 공표했지만 죄 안되 불기소>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하게끔 몰아넣었던 방아쇠가 되었던 검찰의 수사 관행 및 행태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방아쇠가 된 것은 역시 검찰의 시시콜콜한 피의사실 홍보(?)였다. 시계를 논두렁에 어쨌다는 둥 하는 식의 사생활 보도가 마치 황색언론의 기사처럼 이어졌고, 마치 노무현 대통령은 그냥 필부에 지나지 않은 스크루지 처럼 묘사되었다.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번 불기소 결정은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만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공표된 피의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기소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에 규정된 일반범죄다. 형법 제126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제126조 (피의사실공표)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공무원 중에서도 검찰, 경찰 또는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 감독, 보조자만이 범할 수 있는 범죄로, 자격범에 해당한다. 즉, 일정한 자격을 지닌 자만 그 범죄의 범인이 될 수 있는 범죄다. 나 같은 사람이 아무리 여러분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떠들어도, 나는 피의사실공표죄를 저지를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 범죄는 형법의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범죄에 대한 제7장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뇌물,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과 함께 규정되어있다.

내가 이상하게 느낀 것은 검찰에서 불기소의 이유로 밝힌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공표된 피의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점에 대한 것이었다.

형법 제7장은 제122조부터 제135조까지 꽤 다양한 범죄 유형을 두고 있는데, 특징적인 것이, 그 중에서 마지막 조문인 135조에서는 "형의 가중"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다. 즉, 가중처벌을 하고 있다.

제135조 (공무원의 직무상 범죄에 대한 형의 가중) 공무원이 직권을 이용하여 본장이외의 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한다. 단 공무원의 신분에 의하여 특별히 형이 규정된 때에는 예외로 한다.

직권남용이나 뇌물죄 등, 이 장에서 정한 범죄는 아니지만, 다른 범죄를 공무원 신분을 이용해서 저지른다면, 즉, 공무원의 신분을 이용해 여성을 강간하거나, 공무원 신분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사기를 치는 경우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50%가 가산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무원으로서 그 신분을 망각한 행위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처벌을 함으로써 공무원의 의무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공무원 신분의 중요성과 그 파급효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는 조문이라 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공무원 관련 범죄를 규정한 제7장에서는 형의 감면사유에 대한 규정을 하나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형의 감면사유란, 특별한 사정에 의하여 형벌(처벌)을 적게하거나 면제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에서 "조각사유"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기도 한데(엄밀하게는 감면사유와 조각사유는 다른 것이다) 당사자(피의자)에게 또는 당시의 사정상 다른 경우와 똑같이 처벌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이를 참작하는 것을 말한다.

형의 감면사유는 필요적 감면사유와 임의적 감면사유로 나뉘어지는데, 필요적 감면사유란, 재판을 할 때 판사가 반드시 그러한 정상을 참작하여 형을 감면하여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필요적 감면사유가 있는 경우에 이를 고려하지 않고 판결을 한 경우 그 재판은 위법이 되고 이는 항소 또는 상고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임의적 감면사유는 그 사정에 따라 판사가 이를 고려할 수도 있고,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으로 그 판단은 판사의 자유로운 판단에 따른다. 일반적으로 형법에서는 필요적 감면사유는 "~감경 또는 면제한다(감면한다)"라고 표현하고, 임의적 감경사유는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감면할 수 있다)"라고 표현된다.

필요적 감면은 심신미약, 농아자(이에 대해서는 현대 형법학에서 논란이 있긴 하다), 종범(흔히 공범이라고 부른 것중 從的 위치에 있는 자를 말한다), 중지미수(행위자가 임의로 행위를 중단하거나 결과의 발생을 억제하여 범죄가 미수에 그친 경우) 등이 있고, 임의적 감면사유로는 장애미수(외부의 사정으로 인하여 범죄가 미수에 그친 경우), 불능미수(결과의 발생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범죄행위. 예를 들면 설탕을 많이 먹으면 죽는다고 생각하여 설탕을 많이 먹게하는 행위), 자수, 외국에서 이미 처벌을 받은 범죄행위, 과잉방위, 과잉피난, 과잉자구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감면사유를 또 모두 합하여 일반적 감면사유라고 하는데, 일반적 감면사유란, 모든 범죄에 대하여 적용되는 감면사유를 말한다. 이에 대조되는 것으로 특수적 감면사유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는 내란죄에 있어서의 자수 등과 같이 특정한 범죄에 대하여 형법에서 감면의 사유를 정해 그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는 감면사유를 말한다.(감면사유라고 쓰고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감경사유라고 부르는 경우가 덤 낳긴 하다. 뭐 내용적으로 같으니 넘어가자)

뜬금없이 감면사유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은, 검찰이 밝힌 불기소 이유가 어디서 많이 본 것이라서다.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만 그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공표된 피의사실이 진실이라는 증명이 있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기소하지 않았다" 밑줄친 표현이 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흔하게 듣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제310조 (위법성의 조각) 제307조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이 조문은 형법상 명예훼손에 관한 것인데, 여기서도 "공공의 이익"이라는 말이 나온다. 즉 범죄행위에 해당하지만,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에는 그 정당성이 인정되니 처벌을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웃기는 하지만 강력한 단어를 하나 만나게 된다. "오로지"

오로지
[부사]오직 한 곬으로. ≒전혀(傳―).
오로지 너만 믿는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오로지 나룻배뿐이었다.
들몰댁은 풀려나는 그 순간까지 사흘 동안 오로지 살고 싶다는 생각만을 수없이 되풀이했다.≪조정래, 태백산맥≫

"오로지 공공의 이익" 단 한가지 만을 이유로 한 명예훼손만이 처벌을 면제 받는다는 말이다. 이에 대한 해석과 비판은 끝이 없지만, 그렇다는 것만 알면되니 그렇게 이해하자.

또 하나 "상당한 사유"라는 것에 대해서도 자주 형법에선 볼 수 있는데, 다음의 3개 조문이다.

제21조 (정당방위)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22조 (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③전조 제2항과 제3항의 규정은 본조에 준용한다.

제23조 (자구행위) ①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전항의 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모두 위법성조각사유에 대한 조문이다. 침해, 위난, 청구권의 보전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번 검찰의 발표를 보고, 그리고 검찰의 불기소 사유를 보고 생각해 보았다. 과연 이것이 공공의 이익이라고 하는 것과 상당한 사유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피의사실의 단순한 발표(피의사실의 공표라고 한다면 범죄가 되므로 발표한 것이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검찰의 입장에서 말이다) 전직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기소여부의 결정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며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음에도 그렇지 못하였다는 점과 여러가지 사실에 비추어 그 정황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 사실을 검찰의 표현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공표했다는 것은 오히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검찰이 자기 입으로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했으므로 이는 범죄행위가 맞다. 형법 이론에 따르더라
도, 이러한 행위는 피의 사실의 공표에 해당하므로 범죄의 성립에는 하등 문제가 없다. 즉, 처벌의 여부는 재판에서 가릴 사안이라고 할 것이나, 그 범죄의 성립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범죄행위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 행위로 인하여 전직 댙통령이 자살까지 하고, 그 행위의 전제가 되었던 피의사실들이 사실이 아님이 확실시 되고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검찰의 오만한 자기평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법률상, 그리고 당연한 상식으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목적행위와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라고 하는 배경은 범죄의 성립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즉, 검찰은 그 행위가 피의사실의 공표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당연히 범죄행위임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재판하도록 할 것인가의 여부와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나중에 다투어질 문제이나, 행위의 구성요건해당성을 인정하고 위법성 조각사유나 처벌 조각사유는 물론 감경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 명백한 경우임에도 "혐의없음"의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분이다.

피의사실의 공표행위에 있어서 피의 사실은 본질적으로 "공익적 목적" 또는 "공공의 이익"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피의사실이라는 것이 법률을 위반한 범죄 행위가 의심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당연히 그 법률은 공익,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정된 법률을 말한다. 다시 말해, 피의사실이 있다는 것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훼손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며, 모든 피의사실의 공표행위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행위인 것이다. 다시말해, 피의사실의 공표행위는 모두 당연히 공공의 이익을 위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외에 개인의 이익이 첨가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공공의 이익이 없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형법에서 그러한 피의사실의 공표행위를 처벌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직 범죄사실로 무르익지 않은 피의 사실에 불과한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그 공표로 달성되는 공공의 이익이 피의자의 보호를 위한 법률의 소임을 해칠 수 있기에 이를 처벌하는 것이다. 즉, 피의 사실의 공표는 그 피의사실이 범죄사실로 확정된 후에 밝혀지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데 충분하기 때문에 우리 형법은 그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찰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공표하였다고 하지만, 형법은 원래 공공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범죄의 수사 과정의 비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처벌한다. 검찰이 제시한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유는 피의사실이라고 하는 개념의 구성요소이며 그 내용에 해당하는 것이지, 그것이 그 사실을 공표하는 것을 정당하게 해 주는 요소는 아닌 것이다.

상당한 이유라는 것도 피의 사실의 공표를 정당화 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상당한 이유가 바로 피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에서 "피의(被疑)"란, 혐의나 의심을 받는다는 뜻으로, 근거없는 의심이나 추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있는 의심을 말한다.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는 그것 역시 피의사실을 구성하는 요소이지, 그것이 피의사실 공표를 정당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검찰은 친절하게도(?) 피의사실 공표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려는 듯 범죄가 왜 범죄가 되지 않는지를 설명하려 한 모양이다.


이 불기소 처분에 대해서 다시 재론의 여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서는 기소여부는 이른바 기소독점주의라 하여 검찰이 독점하고 있고, 기소행위 또한 이른바 "기소편의주의"라 하여 검사가 기소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이니, 상당한 이유라는 검찰의 발표는 이해도 안되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이 불기소처분에 대한 재론의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어쩌면 애초에 검찰로부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기대한 것이 허황된 꿈이었는지 모른다.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건 머리를 깎고 싶어하는 중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에게 주기도문을 외우라고 했었으니, 그게 될리가 있나.

하지만, 아무리 그랬어도, 주기도문 외우라고 했으면 성경책은 한번 들여다 봐야 했을 텐데, 우리나라 검찰은 아마 불경 읽으며 주기도문 찾고 있었던 듯 싶어 씁쓸하기만 하다.

손문상의 그림세상(프레시안)

500번째 포스트, 감사합니다.

Posted 2010. 1. 7. 14:52


그러고 보니,

아래 글로 500번째 포스트가 등록되었군요.
단순히 기록용으로 올려놓거나 쓰다가 시간이 지나 마무리를 못해 어쩔 수 없이 비공개 되어있는 글까지 모두 포함해서니 아직 실제로 눈에 보이는 포스트는 500개에서 7~8개 빌겁니다만, 기록상으로는 아래 글이 500번째네요.

2007년 1월에 개설했으니, 만 3년이 꽉차네요. 작년 한해는 관리에 소홀한데다, 의도적으로도, 또 능력의 한계로 방문자가 급감해서 주춤했습니다만, 방문자도 50만이 벌써 넘었네요. (대선 기간 중에 박근혜씨 관련 포스트 한 번 올렸다가 하루에 3만명이 넘게 방문했던 때가 있었;;)

별로 볼 것도 없고, 편협한 포스트에 허접한 사진들 많이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는 좀 더 열심히 해 봅지요;;;;;
그런데,



겨우 500개 밖에 안된건가 하는 생각이 더 드네요 -_-

(수정 : 이제 다시 살펴보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469개의 포스트만 보이는군요. 사진 몇개와 저작권 때문에 블라인드 처리한 포스트 때문에 그렇네요. -_-;  거기에 공지가 3개니까 총504개의 글이 있고, 그 중에 472개(공지 포함)의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커피 한잔

Posted 2010. 1. 7. 13:35

새해 맞이 커피 한잔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도 올 한해 행복
나도 행복
내 아내는 두배로 행복
그리고 건강하세요.

minolta @-9 / 50mm f1.4 / reala /f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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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거의 대부분의 신문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기사가 있다. "새해에 바뀌는 제도"에 관한 것으로, 어떤 항목에서 세금혜택이 생긴다거나 없어진다는, 또는 물가는 어떻게 오르내리고,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많은 이슈들에 대해 새해 들어서 변화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생할 섹션의 기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리만큼 그런 기사가 눈에 띄질 않는다. 그다지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때문일 수 있고, 한편으로는 폭설이나 김혜수-유혜진(내가 무척 싫어하는 류의 기사긴 하지만)의 연애에 관한 뉴스 또는 그 외의 많은 이슈들이 있어서 밀려난 것인지 모르지만, 신문 한 구석에라도 실렸을 기사가 없어진 것은 좀 이상하다. 신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 나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좀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을 일일히 찾아봐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으니 말이다(물론 어느 신문에선가는 기사가 나왔겠지만, 내가 못봤으니 중요하진 않다. -_-;;)

새해가 밝으면서 바뀐 것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여러 사람의 관심사이지만 많이 오르내리지 못했고, 덩달아, 나와는 거의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묻혀버린 듯해 안타까운 내용이 있었다. 바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기사였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이 2011년부터 적용되는 것이니 2010년에 바뀌는 제도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2011년부터 적용될 문제니 얼마 안남은 문제이기도 하고, 한번 바뀌고 매년 바뀌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명박 정권의 교육대책의 근간을 형성하는 것이고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2012년 정권말 까지 이 제도가 이어질 것이 분명할 것이므로 2010년 벽두에 화두가 될만한 문제임에도 그다지 오르내리지 않으니 의아할 뿐이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은 12월 17일에 개정된 것으로 벌써 20여일이 지났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평가가 이루어졌는데도 내가 보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그다지 신문에 많은 기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다른 이슈에 밀려 홀대당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종시나 용산참사 등 여러 문제가 있는데다가 최근에 원전 수주에 관한 문제까지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니 국민의 대다수가 목을 메고 있는 교육문제도 그냥 그저그런 문제로 밀렸을 것이니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닐 수 있다.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항은 국사 과목이 선택과목화 된다는 것었다. (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그 외에도 도덕과목이나 기술 과목도 선택이 되었다. 굳이 말 안해도 모두 알만한 사항이지만, 국사가 선택과목이 된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놀라고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사설에서도 국사과목의 선택과목으로의 추락을 걱정하고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사설1, 사설2)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된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나,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가볍게 비웃어주시는 우리 대통령께서, 그리고 그 심복들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면 그다지 이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도덕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외줄타기로 힘겹게 버티시는 여러 고관대작들과 그 자제분들을 위해 도덕과목도 같이 추락했다는 것이고, 이해하기 진짜 어려운 문제는 지방대 나오면 기술이나 배우시라는 대통령님의 교시가 있었음에도 기술과목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라간 것이다.

나름 보수적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스스로는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실제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이명박정부가 국사교육을 국영수나 그 외의 다른 필수과목과는 다른 선택과목으로 한다는 점이 현 정부의 행태에 비춰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했지만,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각의 보수주의자들의 침묵이다. 전후 수십년간 보수주의적 정권이 유지되어왔고 소위 그들이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집권기 동안 국가의 정체성논란에 심혈을 기울였던 뉴라이트와 그 유사세력이 왜 이번 국사교육 추락사건(내가 이름 붙이지만 잘 붙였다. 추락. 추락한다고 해서 꼭 날개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는 좀 이해할 수 없다. 언젠가 어떤 신문의 만평에서 다른 일에 대해 논평한 것처럼, 얻어먹었거나 얻어맞았다는 것 이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해 보인다.

보수주의의 사전적 정의에서 보는 것과 같이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태도라고 한다면 이해가 어려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저자가 쓴 설명대로, "종교나 문화 및 민족의 기존 가치관 유지를 주장하는 정치이념"이라고 한다면 보수주의자 입장에서는 국사교육이란 민족의 기존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지키는 가장 유용하고 효율적인, 그리고 기본적인 수단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자 어느 누구도 국사 교육의 추락을 논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두가지로 밖에는 해석이 안된다.
그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실제로는 보수주의자가 아니거나.

국사 교육이 선택과목으로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내 입장에서나 진보주의자들 입장에서는 별로 탓할 것은 아니로되, 이명박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글이나 다른 글을 통해서 알게 된다면 이명박 정부가 그다지 반길 일은 아닐 것이니 앞으로도 계속 몰라주길 바랄 뿐이리라. 하지만, 그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다면 그 보수주의자라 참칭하는 세력의 정체성은 갑자기 보호해 질 뿐이다. 보수주의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니 보수주의라 할 수 없고 백번양보해서 우파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우파의 정신적, 사상적 기초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정체성 논란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 주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보수주의는 없고 그냥 우익 수구세력(이라고 쓰고 그냥 기득권 세력이라고 읽는다)만 존재한다고 본다면 구갓 교육 따위야 어떻게 되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내 후손이 그저 첨예한 경쟁속에서도 살아남는 서바이벌 마스터로 성장해 주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나의 재산상, 권력상의 이득으로 작용하기만 한다면 별 문제는 없다. 게다가 멜서스의 「인구론」 처럼 말하지 못하는 내심의 폭언을 기쁘게 그러나 불가피하게 주장하는 내용의 한 발현이라고 본다면 국사교육 추락사건은 반가운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별 근거없는 과거의 호주제도나, 경제발전을 위한 민주주의의 유예라고 하는 한국 보수주의의 논쟁이 필요없는 가치들에 대하여 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끊임없이 제기되는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는 것은 물론이요, 친일파니 미군정이니 하는 껄끄러운 문제나 임시정부와 광복 혹은 건국이라고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 떳떳하지 못한 한국의 기득권세력이 국사교육에 그다지 열성적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E.H. Carr는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대화 없는 과거의 사실의 전달에만 치우칠 보수주의자들의 국사교육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그들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한편으로는 국사교육을 바로잡는다는 미명하에 국사교과서의 대안교과서까지 편찬한 자들이 책값 떨어지게 뭐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다)

이미 어쩔 수 없이 (물론 개선의 여지는 있지만) 국사과목의 선택ㄱ과목화는 피할 수 없어보인다. 교육부가 그다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애써 끊으려 한다는 점도 그렇고(이상하게도 논평이 거의 없다) 하지만 단순히 국사교과를 선택화 한다고 해서 부수주의자들의 안심(역사적 정통성과 정당성에 대한 피하고 싶은 논쟁들)을 가져오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내가 국사교육의 이런 추락에도 별로 당황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고등학교는 쉬운(상대적으로) 국사 시간을 줄이지도, 없애지도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도 있고, 지속적으로 국사교육은 그래도 이뤄질 것이라는 점, 그리고 박근혜를 비롯한 소위 정통보수라는 자들은 언젠간 울며겨자먹기로 다시 국사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말했듯이 보수라는 글자는 어쩔 수 없이 민족의 그리고 국가의 정통성을 논해야지만 자신이 생존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형식적이건 실질적이건 아니, 완전 형해화되더라도 국사교을 포기할 수 없다. 자신들이 목숨바쳐서 지켜왔다는 바로 그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말하는데 국사교육이 빠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도 박정희가 누구인지 말하기 위해 영어교과서 둘러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것이냐는 좀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국사가 없어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말이 이리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좀 많이 뻘 소리 같이 글을썼지만,


그다지 걱정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덥잖은 정책이나 시행하고 그 시행착오를 바로잡기 위해(게다가 눈에 보이는 뻔한 시행착오) 공무원들 월급이니, 귀중한 시간 빼앗기는게 좀 안타깝긴 하다.

교육부가 무슨 죄겠냐.

그냥 눈빛 보며 발맞춰 가려는 영혼 없는 관료들이 문제겠지.

다짐

Posted 2009. 12. 17. 15:44
올해는 여러가지 이유로(?) 연말들어 블로그가 뜸했다.
내년에는 열심히, 라고 헛된 다짐을 한다.

Rail Road

Posted 2009. 11. 2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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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파시즘의 악몽

Posted 2009. 9. 7. 16:44



조지 오웰이 쓴 <1984>의 말미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옛날 전제군주의 명령은 '너는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였고, 전체주의 시대의 전체주의자의 명령은 '너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였다면, 우리 시대의 명령은 '너는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것이네."
전제군주의 명령이 전제군주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휘두르기 위하여 금지의 명령이 지배하던 시기 였다면, 전체주의시대로 넘어온 후에는 사회의 통합적 통제를 위하여 일관된 행동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의 방향성을 설정하여 사상과 표현의 이탈을 방지하는 사회였다는 것이며, 우리 시대의 사회는 디지털과 판옵티콘으로 특징지어지는 행위적 예견성에 따른 미래통제의 경향이라는 것.

조지 오웰의 1984년은 대한민국에서는 2009년 이후의 이야기다.

조지 오웰은 1984년에 이런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했지만, 불행히도(?) 그 사회는 너무 늦게 지금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하지만, 더 불행한 것은, 우리 사회의 1984 이전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아직 남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주의는 '이렇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명령이라 한다면,
행위의 방향성을 행위의 당위성(當爲性)으로 전환해 버리는 규범의 지배를 말할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당위성'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면 그것 어떻게 될 것인가.

전체주의자의 명령은 행위의 지정에서 진화(진화라고 쓰고 변화라고 읽는다)하여, 행위가 아닌 현상의 지정, 현상의 당위로 나아간다.
즉,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에서 행동의 의미가 탈락되고, 모든 현상과 행위를 포함하는 개념이 그 위치를 차지하여 마침내는 그 모든 것은 사라지고 한가지 명령만이 남게 된다.

'너는 이래야만 한다.'

불행한 것은 이러한 명령이 행동과 의식이라는 나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모듯 것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여 끝내는, 우리의 일상적인 외관에 대한 통제로까지 넘어간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인종과 혈통이라고 하는 보편적인 사고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상황이 그 통제의 대상이 되어버리게 될 것이다라는 것.

그렇게 고통받았던 우리의 전체주의는 파시즘가 나치즘으로 표현되어 한 시대의 명령으로 사회를 지배했다.

모든 사람은 아리아족이어야 한다.
모든 흑인은 노예여야 한다.
모든 유태인들은 죽여야 한다.
모든 동양인은 열등한 존재이다.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출생의 비밀은 우리를 옥죄는 금언의 장벽이 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는 극심한 혼동과 파멸의 시대를 지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통제불가능한 우리의 피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전체주의의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나게 했다....

..... 하지만, 의문인 것은, 우리가 아직 그 터널의 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 인종차별 발언에 첫 모욕죄 적용 >

오늘 각 일간지를 장식한 이 기사에서 하나 놀라운 것은, 그 피의자가, 31세의 히사원이라는 점이었다. 나보다 어린 31세의 회사원. 아마도 그는 대학을 나왔을 것이고, 적당한 교양을 갖춘 자로 평범한 직장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를 사는, 전체주의를 맛보지 못했을, 박정희 이후의 출생 세대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종주의의 차가운 손길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는 않은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리나라는 그간 5,000년이라는 역사속에 단일민족 국가라고 하는 거짓된 상념에 잡혀있었다. 이미 단군 시대로부터, 위만조선을 시작으로 하는 이민족과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이라는 곰 같은 미련함으로 타 민족의 차별을 인정해 온 것이 무엇보다 패착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이 점에서는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후기 전체주의사회가 단일민족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을 도입하여 사회 통제의 뿌리로 삼았다는 불행한 과거를 결코 묵과할 수 없지만, 아직도 남은 우리의 단일민족이라는 정신적 세뇌상태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이 현실이 더 개탄스러운 것이다.

백인가 유색인종이라는 이분법적 인종주의에서, 흑인과 동남아로 분류되는 저급한 인종주의의 막장까지, 거기에 더해진 백인에 대한 치사한 사대주의마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미 여러번의 언론과 사회의 경험에서 우리는 백인과 미국에 대한 불우한 사대주의자의 길을 걷고 있음이 드러난 것은 물론, 동남아와 불법체류자로 대표되는 더러운 인종주의의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
심지어는 2007년 입법예고된 차별금지법은  국회의 논의조차 제대로 되었는지가 의심될 정도로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가 17대 국회의 임기만료로 폐기되었고, 20세기 초에 이미 확립된 평등사상 따위는 웃어버리기라도 하듯 하고 있으니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자세한 사항은 이전 글 참조 - 2007/11/16 - [Daily] -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관하여 )

동남아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언어적 테러행위의 포화상태는 물론이요, 중국에서 온

그들이 왜 "불법"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있는가?

조선족에 대한 인종적, 언어적인 차별이 마치 국내 범죄율의 하락과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치안 상황의 획기적 향상을 위해서라는 듯 포장된 허위의 목소리는 여전하고, TV의 동남아 비하적 행태 역시 여전한 상태에서 이번 검찰의 기소가 매우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인종의 귀천이 뿌리깊은 이 사회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지는 의문이다.(2007/07/09 - [Daily] - 파시즘을 향한 변명)
왜 우리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불법체류를 할 수 밖에 없는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추방했을 때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의 의무는 망각한 채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의 사실에 휘말려 그들을 심판하고 있는 작태가 한심스럽다.


인권에 문외한인 자의 인권위원장 발탁이 인권위가 할 많은 일들을 발목잡고 있는 이 시대에 더욱 안타까운 이야기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인종차별금지법을 발의한다고 한다. 쇼로 끝나지 않기를 빈다.

< ▶◀ 김대중 前 대통령 서거 >

혹자는, 그를 늙은 도둑이라고 불렀고,
또 어떤 자들은 그를 빨갱이라 욕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를 음흉한 정치꾼 협잡 모리배라 불렀다.

하지만, 나에게는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을 만들어낸 사람.

노무현을 정치판에 끌고온 사람은 김영삼이었지만, 그를 투사로, 그를 지도자로 만든 것은 김대중이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자,
북한과 정상회담을 했던 첫 대통령이자,
IMF를 이겨낸 대통령

지금도 일각에서는 그의 비자금이 수조원에 달한다는둥,
그가 북한에 퍼준 결과가 핵실험이었다는 비난과 근거없는 모함이 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시대의 민주화와 통일의 상징이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었다.




故 김대중 前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못 다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 계속 이어나가시길 빕니다.



대한민국의 불결한 독재와 자본주의가 낳은 불운한 천재.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난세의 영조처럼 살다간 대통령.

명복을 빕니다.


이제 아쉬운 것은,

내가 '대통령' 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다는 것.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대통령이었던 자는 모두 사망했다.
윤보선, 김대중, 노무현.

대한민국의 단 3명 뿐인 헌법상의 대통령 그리고 국민의 대통령.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윤동주 / 편지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이 어울렸던,
대한민국의 제15대 대통령, 참 훌륭했던 대통령.

김 대 중

변희재씨의 기준에 따른 글쓰기

Posted 2009. 8. 17. 19:00

요즘 변희재씨의 기준에 따른 지적수준이 화두다. 그가 실로 엄청난 기준(?)으로 우리의 글쓰기를 제한하고 있다는 건 신문을 봐서 모두 알고 있으니 여기서 쓸 건 아니다만,

가만 보고 있자니, 매우 재미있길래.

박중훈, 김민선, 정진영 등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다면, 최소한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인문과학서 책을 읽고, 매일 신문과 잡지의 글을 최소 3시간 이상 읽고,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보고서도 주마다 서너 편씩 읽어라. 이것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블로그나 트위터에 글을 못 쓸 것이야 없지만, 김민선처럼 천문학적인 액수의 손해배상 소송의 위협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충고해주는 것이다. 참고로 나의 경우는 수많은 공격적 글을 쓰지만, 10년 간 오직 단 한번 소송에 걸렸으나 법적 책임을 물은 바 없고, 언론중재위에서 정정보도 판결도 받은 바 없다. 아무리 공격적인 글이라 하더라도 법적 선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노력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해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공적 글이다.

(출처 : http://www.independent.co.kr/news/article.html?no=33541 (인터넷 독립신문)

충분한 수준의 지적수준(!!)의 기준에 도달하려면,

  1. 1주일에 2~3권 이상의 사회과학서, 또는 인문과학서
  2. 매일 신문과 잡지 글을 3시간 이상
  3. 정부 정책 등에 관한 보고서를 주마다 서너편씩

간단(?)하게 3가지의 기준을 제시하셨는데, 이렇게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나잖아!!!"
순전히 직업적 동기(-_-;) 때문에 매주 저렇게 생활하는 나로서는 졸지에 매우 충분한 수준의 지적 수준에 도달해 버린 쾌거를 이룩해서 업겹결에 감사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그래서 변희재를 검색하다가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 매주 저정도의 글을 읽고 있는데도 굳이 변희재씨를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은, 이 분야, 그러니까 인문사회계와 사회과학계 그리고 정부정책계에서 그다지 쓸만한 컨텐츠를 못만들어내 주시는 지나친 지적 수준의 변희재씨의 글을 꼭 읽어보고 비판해야 할 것 같아서다. 불행히도, 광우병에 관한 사항은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이 아닌 자연과학계의 글들이라 많이 읽어보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긴 해도, 최소한 사회과학과 인문과학계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는 나 같은 석사 이상의 (물론 그의 말대로 학력이 중요하겠냐만 ㅋ) 업자(-_- 다문히 자학적이다)들을 위한 글도 좀 써 주시면 그분의 지적 수준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부탁이다 제발)

< 기사 읽기 : 빅뉴스 : 필리핀의 여신 산다라박, 대한민국 강타 >


내가 이래뵈도, 이 정도의 지적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1998년부터 천리안(반갑도다;;;)의 허영란 팬클럽(그 유명한 허간호사 시절이다)의 최고령(!! 당시 나는 대학원생이었을 뿐이다 -_-) 회원이었으며, 지금은 모두 예상하다시피(-_-;) 30대 소시빠 중 한명으로서 -_-

변희재씨가,

과연

우리나라 여성 댄스 가수를 논할 수 있는 지적 수준과 버라이어티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나처럼, 아니 나는 요즘 팬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채 바쁜 삶을 살고 있으나,

우리 저명하신 -_-;;;; 30대 소시 삼촌들께서 매일 DC에서  하고 계신 바와 같이, 매일 그녀들의 뮤비를 보며, 그녀들에게 하악대고 있는 30대 소시빠들이 인터넷 세상을 점령하다 못해 아주 그냥 거시기 하고 계신데,

과연 변희재 정도의 연예감각과 오덕적 감각을 가지신 수준의 지적...아니, 예능적수준이 떨어지시는 분들께서
자꾸 이런 글을 쓰시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자꾸 이러시면,
초중딩의 2ne1 팬들과 산다라박의 팬클럽이 그에게 어떤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다. 산다라박의 '어설픈' 가창력 이라고 하시다니 -_-
메탈리카 정도의 그룹을 듣보잡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이런 충격적 표현을 쓰다니, 정말 강심장이로세;;;;
불행히도 초중딩 아해들은 그가 원하는 지적 수준에 아직 도달하기에는 너무나 먼 입시의 길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아직은 떨어지는 지적 수준의 행위를 그에게 퍼부어 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것은 명예훼손적 글이 아니라, 그의 생존을 걱정하는,

적절한 지적 수준에 도달한 한 할 일 없는 30대 듣보잡의 글이니 명예훼손이니 하는 글이 올라오진 않으리라 본다.



( 독립신문의 글에 나와있는 연예산업 개혁입법이 뭐 산다라박의 성공과 가창력에 큰 도움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6년째 인터넷과 정보통신 관련 그리고 문화 관련 개혁입법에 관한 일을 해 온 사람으로서 그에게 충고하고 싶지만, 나는 겨우 듣보잡인걸...)

한가지 더 뻘소리를 해 보자면,
1974년 생이신 변희재씨 보다는 그보다 10년은 더 살아오신 정진영씨(1964년 생이다)가,
"이 빌어먹을 놈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서 더 지적이건 경험적이건 수준이나 경험이 많아보이는건 단순히 그 숫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못 나와서 변희재씨께 죄송하다. -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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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미디어법의 통과를 두고 할말 안할 말을 오프라인에서 다 떠들어댔더니, 사실 온라인에 쓸 말이 그다지 많지가 않다. 게다가 준엄하신 저작권법님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눈깔 덕분에 할 말도 다 해선 안되는 것이겠거니 하는 마음도 있고.

최근 미디어법 뿐만이 아니라, 사실은 MB정권이 출현한 이후,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여기저기에서 있어왔다. 나 역시 이런 선거의 실패(? 실패는 무슨.. 모두가 뜻한바 대로 투표해 놓고는 말이다)가 왜 우리를 옭죄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아니한 바는 아니다. 이 문제의 결론을 부동산에 투표한 대한국민들이라고 조소했던 나로서는 계속 이런 망연자실한 실소로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마는, 어찌되었건, 우리의 치질과 변비는 우리를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의 정확한 파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몇가지 알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자.

우리 회사에는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꽤 잘 완비되어있을 정도의 좋은 회사에 다니니 이걸 감사해야 할까? -_-
우리 회사 화장실에는 비데도 설치되어 있다. 사원 복지가 회사의 매출이나 실적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나 같은 단순한 사회민주주의 내지는 복지우선론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물론 우리회사가 처음부터 모든 변기에 비데를 설치한 것은 아니었다. 3칸의 해방공간(?)중에 먼저 각 1칸(층별로)에 훌륭한 비데가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사이에서는 불길한 파라독스가 성립되기 시작했다. 내용인즉슨,

비데의 설치로 인하여 변비와 치질 환자는 증가한다.

는, 실로 현대의학과 생활상식을 뛰어넘는 궤변이 등장한 것이다. 일견 말도 안되는 헛소리인 것 같은 이 논리가 점차 퍼지면서 그 논리적 뒷받침이 될 근거들이 설득력있게 제기되었다.


3개중 1개의 변기에 대한 비데의 설치 --> 비데 사용자의 증가(최소한 화장실 이용자의 1/3(화장실 가서 똥은 안싸고 오줌을 누거나 딴 짓을 하는 자식들은 제외한다. -_- 다만, 여자는 제외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본지가 30여년이 넘다보니 여성들의 화장실 이용행태는 모르겠다 -_-) --> 非비데 설치 화장실의 기피현상 발생 --> 모두가 비데 똥간으로! --> 비데화장실의 수요증가와 함께 변기 입구 병목현상 발생 --> 비데가 아니면 쌀 수 없는  신인류 탄생 --> 신인류, 비데 병목현상으로 인한 변비 증상 심화 --> 신인류중 각성자 일부, 기존의 휴지 화장실로 퇴출 --> 비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청량함의 상실을 우려하며 지나친 청결화작업으로 항문 마찰 증가 --> 치질 증세 등장 및 심화.....


유치한 논리적 전개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이유로 3개의 변기에 1개의 비데만을 설치했을 때,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는 오히려 복지수준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문제는 이 냄새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여기 두 가지의 해결방안이 경영진에게 주어졌다.


하나는, 예산을 좀 더 투입하여 나머지 2개의 변기에도 비데를 설치하는 것이다. 물론 예산의 투입이라는 난제가 있으나, 회사 전체의 생산성 향상과 사원 복지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이 정도 투자라면 충분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회사의 입장에서 비데설치에 따른 추가 투자는 그다지 큰 손실이 아니다.

다른 하나는, 비데가 없는 화장실에서의 배변을 촉구하는 것이다. 약간의 홍보로 가능하며 추가적인 금전의 투입은 없다. 기존의 변기에서 상당기간동안 잘 싸왔던 우리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의 도래로 배변활동의 민주화를 이룩하였으되, 기존의 휴지와의 마찰을 통한 배변 사후처리시대에도 충분한 위생환경을 이룩해 살던 사람들에게 못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데로 인해 창달했던 위생수준의 획기적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는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아니, 상식적인 회사라면, 비데 구입과 설치를 위한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두 번째 방식을 잠정적으로 시행하고 비데 예산의 확보와 함께 회사의 모든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는 수준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웬만큼 큰 회사라면, 비데 예산 정도의 확보가 어려운 문제는 아니므로 곧바로 첫번째 방식의 솔루션이 시행될 터다.


하지만, 여기까지.

우리 MB 정부의 문제해결방식은 그렇지 못하고 있고,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 우리에게 끝없는 변비와 치질의 고통을 배가 시킨다.
MB 정부의 최대 문제중에 하나는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독창적(?)이라는 점에서 시작한다.

미디어법의 이번 날치기 무효통과(뭔가 용어가 매우 거시기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이번 법 개정을 인정안하기로 했고, 따라서 그거 무효라는 말이니까 그냥 넘어가자)에서 보는 것과 같이, MB 정부는 미디어법의 개정이유는 그저 일자리 창출에 있다. 미디어가 가지는 의미와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해 따지기 보다는 그들은 일자리 2만개 창출할 수 없는 미디어법의 민생적 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최대 신문 그래서 최악 신문 조선일보의 시장점유율이 10%대를 겨우 넘는 상황에 20%의 제한을 두고는 제한을 뒀으니 괜찮다고 하는 수준이니 뭐 이상할 것도 없지만(이건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에 3학년들 모아두고  100m 달리기 해서 세계신기록 내는 놈은 과자 사준다고 하는 꼴이다) 미디어와 신문 그리고 방송이 왜 우리 사회에 존재하여야 하는가에는 관심이 없거나 자칫하면 속내를 들킬까봐 애써 외면하고 있는 꼴이다.


비데를 안써서 치질이 우려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기의 민주적 비데통일 장착이다. 하지만, 비데를 설치했더니 치질과 변비환자가 증가하여 민생을 위해 비데를 치워버리는 것이 사원 복지에 최전선이라고 주장하시는 우리 싸장님 MB.

딱 그꼴인거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저작권법을 피해 한 블로거가 쓴 글을 소개한다. 아돌군님의 글을 보자.
장애인은 낙태해도 된다고 하시던 MB의 정부께서 낙태되지 못하고 이 땅에 태어난 장애인들을 다루는 솜씨를 보라.


할말은 많은데, 할 말이 없을 정도인 우리 대통령.
젠장, 정말 국민 노릇 못해먹겠다.

MB 미디어법 국회 통과

Posted 2009. 7. 22. 17:42



드디어, 또는 마침내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 했다.

그것이 정당한 절차이건 아니건 그것은 이미 논의의 대상이 아니란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역대 어떤 정권에서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불법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항상 있엇지만, 날치기이건, 직권상정이건 항상 그 법들은 유효하게 작용했다) 오늘따라 지구는 암흑에 잠겼고, 개기일식의 범위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은 더더욱 우울했다.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박근혜의 뜬금없는 반대는 "훼이크다, 이 XX들아"는 인터넷 유행어 처럼 위장전술이었던 것 같고, 결국 그녀는 또 국민을 팔아먹었다.

민주당이 과연 의원 총사태를 할 것인가는 일부 언론과 피상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미 정치적 쇼로 전락해 버릴 것이며,

우리는 내일부터도 또 독같은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이가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함께 질렀던 인사말이 떠오른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5년,
국민 여러분,

안녕하시렵니까?


덧)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것 같은가? 진정 그렇게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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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에 함부로 글쓰기가 겁난다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어쩌랴, 남자는 고백의 동물이요, 어쩔 수 없이 지껄이는 것을 업보로 살아온 블로거들이 침묵하는 것도 그 모냥이 빠지는 것을.

요즘 우리나라 좋은나라 돌아가는 꼴 보니 가관이다. 혹자는 김대중이 아직도 죽지 않고 떠들어대는 꼴이 보기 싫다고 하더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죽을 수가 없는거다.

나라꼴 아작나는 꼬락서니 보면서 우향우를 하다못해 팽그르 돌아버리는 내 나라 보면서, 노무현도 떠난 마당에, 유시민과 한명숙은 약해 빠졌고, 이해찬은 와불이 되어버리는 이 상황에 그 노구를 이끌고 가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으신 거겠지.


이 와중에 신문을 보면 이상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건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또 안돌아가는 머리로 생각해 보니,
이건 충분히, 한나라당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더란 말이다.


1.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의혹이 꼬리를 물다못해 아주 줄줄이 비엔나 같은 꼴인데, 그들도 알 거다. 부적절한 인사인 것을 하지만 대안이 없는게 그들 탓이랴. 그 동네에서 아무리 잘 뽑아봤자 청렴한 강직한 대쪽이 나올리도 없고 설사 나온다고 해 봤자 도움 안된다는거 아니까, "그동안의 공직생활 동안 별로 벌어두질 못해서 14억"인 재산을 둔 그를 버릴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리라. 리스차량이 뭐 대수고 28억 아파트가 대수겠는가. 국세청장 후보자는 말하고 싶지도 않고, 알지만 어쩔 수없는 내 마음 나도 몰라

2. 미디어법 통과 시킨다고 바로바로 조선일보가 치고들어올 수도 없고, (언젠간 들어오겠지만) 그렇다고 이 언론이라는 바닥에서 자존심으로 뭉친 언론인들이 고분해 질리도 없다는거. 그들도 안다 한나라당도 안다. 다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돌아서니 조중동이요 앞서자니 노종면인데. 30년 절친 조중동이랑 싸우고 돌아서서 SBS 절친노트 출연을 약속하느니 김구라 상판 보는 것이 그보다 더 괴로울리 없고, 2만개 일자리는 커녕 MBC앞에 포장마차도 중소기업 사장님이니 한두자리 빼먹으니 괜찮을 것 같고... 알기는 아는데 물러서자니 청기와집 창고에 쥐새끼 한마리가 곳간을 다 비워 남겨줄게 없다하니 답답하기도 하겠지. 잡지도 못할, 아니, 당장은 잡지도 못할 언론 길들이기 보다는 대충 얼기설기 묶어 가는게 한 3년은 나을 것도 같은데, 뒤에 청기와 들어가실 독재자의 따님께서 눈알을 부라리니 당장 못끝내면 다음 국회는 남의 잔치라.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내마음 당신 곁으로

4. 때마침 장마인지 집중호우인지는 4대강을 정비하여 홍수를 예방해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은데, 물에 잠기니까 잠수교니, 안잠기면 그게 잠수교냐 하는 말도 안되는 말장난 부터, 이미 자전거길이라고 광고까지 다 해놨는데, 잠겨버린 자전거길은 또 뭔지. 하나라당 애들도 알고 있을거다. 4대강이고 나발이고 그다지 몇년 도움 안될거라는 사실을 그런데 어쩌겠냐. 사는게 삽질이요 먹는게 토목인데, 안할 수도 없고. 그러니 별수 있겠냐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하는 노래보다 더 무서운 강변에 땅사자를 몸소 실천한지 어언 몇년이던가.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고 대선공약이 恐藥이 될 때까지 밀어붙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하회마을 휘휘돌아가는 강물에 논개처럼 뛰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그나마 살아갈 희망인데, 강을 뚫든, 강물을 마시건 결국 물먹는건 매한가지니 서해페리 강물에 띄우기 전에 어쩔 수없이 나라를 아작내야 하는 심정이야 말해 뭣하겠냔 말이다. 환경이 죽어자빠지고 도마뱀이 언제 또 소송을 걸어올지 모르지만 아무튼 알지만 어쩔 수 없는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사실 그 친구들도 다 알고는 있을 것이다.

차마 말을 못해서 그렇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아직 못다한 노래들.



이쯤에서 들어보자.

한나라당이 손담비와 함께 부릅니다.

"미쳤어"


지엄하신 저작권님 덕분에 니들이 직접 찾아 들으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땡큐



덧) 3번이 빠졌다는 사실, 한나라당도 알 수 있을 법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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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는 빛

Posted 2009. 6. 29. 12:10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붉직한 핏덩이 하나 내 뱉는 바다에
화룡정점처럼 작은 배 하나 찍고 가오지마는

나는 뭘 찍고 온건지
해가 떠도 春來不似春이 애렵지 않더마요는

저 놈이야 뜨는대로 가것지마는
내캉 가는 니도 매양 애렵지마심







minolta XD 85mm f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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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백범 김구 선생께서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하신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세계 팦의 황제, Michael (Joseph) Jackson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중략)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상황윤리와 조직윤리

Posted 2009. 6. 23. 18:30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니던 언제쯤에 이른바 "좋은 거짓말"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되었고(white lie라는 영어단어를 알게 된 건 한참 후일 것이다) 중고등학교 언제쯤인가 이른바 '상황윤리'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도둑과의 약속이라는 문제에 대한 시험문제를 틀려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나중에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상황윤리라는 것 보다는, 위법성조각사유 또는 책임조각 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것을 공부했었고, 그런식으로 개념이나 가치관을 정돈해 갔다.

중고등학교 때 고민했던 도둑과의 약속(정확하게는 강도와의 약속인 것 같다)의 내용은, 이렇다.

어떤 강도가 집에 들어와 칼로 협박하며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나는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내일 그 강도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고 강도를 보낸다. 나는 과연 내일 약속대로 강도에게 돈을 줘야 할까?

정답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강제로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지킬 필요 없음' 이었다.(나는 강도와의 약속도 약속이고, 사소한 약속을 안지키면 바늘도둑이 소도둑된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작은 약속을 안지키다 보면 언젠가는 큰 약속도 양심의 가책없이 안지키게 된다는 논리로 답을 썼다가..... 틀렸다. -_- 어쩌면 그 때의 충격 때문에 약속따위(?) 잘 안지키는 나쁜 어른이 된건지도 모르겠다)

못생긴 신부(新婦)에게 예쁘다고 하는 것, 약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약이 아니라고 하며 약을 먹게 하는 것 등등 이른바 white lie도 넓은 의미에서 상황윤리로 면죄(?)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 때 제대로 배웠던 것 같다.

상황윤리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범위에서의 상황윤리가 어느정도는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좋건 싫건 용인하는 입장으로서 이건 그다지 고민되지는 않는 문제인데,

최근 이른바 '조직윤리' 라는 개념도 비슷한 범주에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회 전체의 가치라고 하는 기준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비윤리적이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성과, 유지 등을 위하여, 즉, 조직을 위하여 해야 하는 것.

그것이 과연 옳은가.

조직의 현상유지 또는 발전을 위하여 사회 전체의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필요한가.
나아가서는, 내가 속한 조직이 사회 전체의 윤리와 안전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조직의 이익과 사회 전체 또는 국가의 이익이 상충될 때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이른바 내부고발자의 문제로까지 귀결되겠으나, 이는 단순히 비윤리적인 사안에 관한 것이 아닌 조직의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므로 선택이 단조로울 수 있다. 단순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윤리적 문제 또는 신념의 문제에 관한 사항이라면, 조직을 위하는 행위가 어떤것인가를 말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전쟁인 이라크戰에 파병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는 사실이 명확하다는 판단을 했던 노무현도 같은 고민을 했을지 모른다면 오바일까.


아무튼,

조직윤리의 내부적 승화.

고민을 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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