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76위-


어찌된 일인지... 올블로그 top100에 선정되었네요...

많이 봐 주신 여러 블로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거 원, 부끄러워서..*-_-*

최근에는 바빠서 제대로 블로깅도 못했는데......^^;;;



역시 언젠가 제가 주장한 바 대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는 좋은 곳~*


-_-;;

네, 그렇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맨정신이 아니죠 -_-;;



아무튼, 오늘도, 내일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신감을 가지고...-_-



열심히 하겠습니다. *-_-*



물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부분 쓸데없는 포스팅일지 모르지만 -_-;;




감사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_-*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자리를 내주었던 영화 밀양(2007, 영제 : Secret Sunshine).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개인적으로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동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영화 참 맛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물론, 네가 영화에 대해서 얼마나 아느냐라는 질문에는 침묵하겠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의 특이점이라면, 동그란 노란 고무줄 처럼 늘어나지만 제자리 찾아가는 맛 때문에라도 2번이나 3번 보게 되지는 않는다. 클라이막스라는 것이 과연 언제 지나가버린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읊조리듯 영화가 전개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줄줄이 이어가는 고무줄 처럼 끝도없이 전개될 것 같은 영화는 어느덧 낡은 노란 고무줄 처럼 툭, 끊어져버려 끝이나니, 화끈한 카타르시스 기대하고 보기에는 영 젬병임은 물론이요, 2번째 보게되는 순간부터는 그다지 기대하지도 않게되는 문제 때문이리라.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나, 박하사탕도 같은 맥락으로 줄줄줄줄 이어지던 스토리는 줄줄이 이어가던 어떤 적당한(정말 어울리는 적당한 이라는 표현) 어느 순간에 알게 모르게 스르륵 끊어져 버린다.

대부분의 단순한 영화들이 그러하는데,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면서도 두 명의 배우만 혹사시키는 영화다.
예전의 오아시스에서는 다른 배우는 몰라도, 문소리와 설경구만 죽어나자빠지도록 어렵게 연기하지 않았나? 박하사탕도 역시 설경구와 문소리(문소리는 좀 편했다)만 혼자 지줄대던 영화. 이번 영화에서도 송강호와 전도연만 지지리죽죽 고생만한 영화가 아닐까. 다른 배우들은 도대체가 대사 몇줄...

단순무식한 저예산의 3류 싸구려 영화이거나 포르노 영화라면, 두 명만 힘든게 당연하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예산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하신 감독께서 쪽팔리게 저예산 포르노를 찍을 것도 아니면서 이게 무슨 악취미인가 싶을 때도 있다.

밀양이 아름다운 영화인 까닭은, 밀양이 그저 독한 한 여편네의 삶이 아니라 소외된, 고립된, 굳어버린 가슴으로 아픈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삶에 관한 진지한 고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어떤 영화든 그렇지 않은 적이 있겠냐마는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남들은 모르는 아픔 또는 남들은 모르는 갈등을 지닌 남녀가 나타난다. 남편의 죽음으로 버려진, 그래서 무시당하고 살고 싶지 않은 여자와 그 나이 먹도록 장가도 못가고 가족들에게 무시나 당하며 사는 그저그런 동네 양아치급의 카센터 주인.

사용자 삽입 이미지역시 연기 잘하는 배우, 송강호



영화는 아이의 죽음과 함께 용서의 문제로 다가간다.(이창동 감독은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기독교를 "까는" 내용을 간간히 집어넣는데, 난 이게 까는게 아니라고 본다. 후술한다.) 나는 용서하러 갔는데 이미 용서 받았다는 범인. 나도 용서 안했는데 용서 받았다는 그 사실에 일종의 종교적 배신감에 휩싸인 여자는 분노하며 타락의 길로 달려가고자 한다. 아니, 타락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초로물고기와 그 이전은 빼자 내가 그 놈들은 자세히 못봤다. 최근의 오아시스와 박하사탕만..)는 용서의 문제에 대해 상당히 심각한 접근을 한다. 과거에 대한 용서와 그를 극복하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 과거와의 화해.
오아시스에서도, 박하사탕에서도 과거의 문제에 대한 화해를 극복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과거의 문제를 용서하고 극복하여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과거의 문제는 새로운 한 존재의 존재를 깨닫게 됨으로서 실현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살인자의 딸. 고통받는 살인자의 딸이 머리를 자르는 그 순간을 박차고 나오지만, 여자는 다시 앉아 그 일을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 짖는다. 그가 시작한 꿈을 범인이 딸을 바르게 키우고자 했던 그것을 여자가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며 끝내 이루어간다. 화해인지 아닌지. 용서이거나 아니거나.

화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런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일을 격은 후에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그자를 용서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찾아가 너를 용서한다는 의식을 치루고 그를 용서해도 좋고, 그렇지 않는다고 뭐라 할 것인가?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람이니까.


용서의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에게 발생하지만, 많은 사람은 잊어버리려 하고 살아간다.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영화의 목사가 한 말처럼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성경에는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하지만, 누가 그렇게 사느냔 말이다. 인류 역사에서 누가 그렇게?

하지만, 시간은 우리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고 그것을 받았다고 즐겨하지도 않는다. 그냥 지나갈 뿐. 용서는 그렇게 시작되고 이루어진다.

용서의 의미와
과거와의 화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밀양의 은밀한 햇빛 속에서 그렇게 이어져 가는 것이리라.


* 덧, 밀양은, 은밀한 햇볕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密陽, 빽빽한 햇볕이라는 뜻이다.
** 덧,
이 영화 덕분에 기독교가 또 한번 욕먹고 또 한번 후딱 뒤집겠다고 했다는데....
기독교는 스스로를 용서의 종교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수 역시 자신은 싸움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할 정도였으니. 극중에, 범인이 자신이 이미 용서받았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여자는 말 그대로 돌아버린다. 과연 그는 용서받았는가. 30년 넘게 교회에 다니면서 배운 바로는 과연 이라는 답변만 해 줄 수 있을 뿐.
여호와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어떤 죄든,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죽음으로서 그 죄를 씻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기도하고 회개하니 용서?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기도하려 하던 중에 형제에게 욕한 것이 기억나거든, 형제와 화해하고 온 후에 기도하라고. 진짜 용서는 이런 화해로부터 시작한다. 용서란, 그냥 기도와 회개로 이루어지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지만, 사람의 법은 그렇지 않다. 모든 죄를 꼐량하여 형벌을 부여한다. 예수 이전의 회개 방식은 나 대신 무죄한 어린양이나 비둘기의 생명을 바친 후에야 그 죄값을 용서받았다. 이런 절차가 예수의 죽음으로 탕감받았을 뿐, 다른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이 용서해도, 하나님의 용서와 그것은 무관하다. 충분한 회개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말이다. 형제와의 화해가 그것이다. 이제 죄인은 비둘기를, 어린 양을 죽여 생명을 바치는 것은 필요없지만, 그냥 무릎꿇고 기도함으로서는 죄를 용서받지 못한다. 먼저, 사람으로부터 받은 죄값을 치루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그 다음에서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처럼 우리는 매번 회개하고 용서받았다는 듯이 굴고 있다. 왜일까? 한국 기독교의 왜곡된 기복신앙과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는, 과거 신사참배와 같은 그 못된 신앙의 발현일까.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롤러코스터 도로  (0) 2008.01.23
감사합니다- 올블로그 Top 100 선정  (16) 2008.01.17
진중권 입을 열다  (9) 2007.12.28
이명박의 당선에 대한 나의 코멘트  (1) 2007.12.20
정치적으로 울다  (1) 2007.12.18

진중권 입을 열다

Posted 2007. 12. 28. 13:37


< 시사in 까칠거칠 - 진중권 '부디 지난 5년보다 안녕하기를' >

한동안 침묵하던 진중권이 입을 열었다. 얼마전 디워 설전으로 잠시 문화계(?) 인사로 달리던 그가 정치에 대해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한편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연한 결말인 것같아서 덤덤하기도 하다.
스스로는 정치계에서 은퇴 했다고는 하지만 그도 역시 이런 상황에서 정계복귀(?)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미학자가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세상이라니.


이번 그의 글은 충격적인 부제로 시작했다. 아니 충격적이라기 보다도 자조적이었다.

이번 대선은 모든 면에서 퇴행했다. 황우석의 과학에 ‘합리성’이 필요 없었고, 심형래 영화에 ‘미학성’이 필요 없었듯 이명박 당선은 경제에 ‘도덕성’이 필요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수 국민이 선택한 세상을 겪을 차례다.

퇴행이라는 단어의 선택 역시 별로 그다지 좋은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는데다가, 도덕성이 필요없다는 정확한 지적은 대통령을 이명박으로 선택한 대다수의 국민(일각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겨우 30% 정도니 하면서 말이 많지만, 대다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어찌되었건 선거에 참여하여 권리를 행사한 유권자의 대략 절반은 이명박을 선택했다. 허경영이 아니라 이명박.)을 쪽팔리는 도덕불감증 환자로 규명한 것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 넘어가자.

논객으로서의 진중권은 노무현 정권에 대해 실패한 정권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성공한 정권이라고 평가 했다. 이 점에서는 나 역시 100% 동감하는 바이다. 그가 노 정권을 성공한 정권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나 기본 기조는 신자유주의적이며 결코 진보나 좌파가 아니라는 점에 기인한다. 사물의 시종을 꿰뚫는 안목에 있어서 진중권만한 인물은 동시대에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볼 때는, 이번 이명박에 대한 평가 역시 안봐도 정확하리라. 물론 내 생각이나 바램은 전혀 반영이 되질 않았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내가 미학자로서의 진중권보다, 논객으로서의 진중권에 대한 평가를 더 좋게 보는 이유는 이런 날카로움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잃지않는 조선시대 한량같은 해학(? 다른 단어가 생각이 안난다)도 물론이요, 진중권이 바라보는 삐딱한 하지만 올곧은 시선이 읽는 이로 하여금 얼마간의 카타르시스를 누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 글 역시 정치로 회귀한 진중권의 까칠한 매력을 느끼게 해 주니, 역시 진중권은 이명박 아래서도 잘 견뎌날 것 같다. 박정희 밑에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이명박을 선택한 국민, 그 가운데 똑같이 서 있는 진중권

부디,

안녕하시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정치적으로 울다

Posted 2007. 12. 18. 18:56


30년 넘게 살면서 정치적으로 울었다고 할만한 것이 모두 3번이다.

1997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철없는 대학 졸업반인 나는,

맥주잔 높이 치켜들며 울먹였다.

김대중이 죽일 놈이건 살릴 놈이건, 수십년 이어져온 민주화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수없이 들었던 광주의 불편한 진실이 정의로 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혈기 왕성하고 정의가 아닌 것에 분노할 줄 알았던 20대의 나는 김대중의 당선으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울먹였다.




2002년.
대선에 노무현이 나왔다.
바보 노무현.
군복을 입고 있던 나는 그의 당선을 보며 또 울먹였다. 김대중이 못한 짓을 그 놈이 하게 될것이라고, 진짜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이불 뒤집어 쓰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못했던 군인은 또 그렇게 울먹였다. 20대의 마지막 선거에서 나의, 그리고 노무현의 승리를 보며 나는 믿었다. 이젠 울지 않을 것이라고.


2004년.
바보 노무현이 또 바보같이 일을 저질렀다. 탄핵.
이제 30이 되어버린 나는 또 울었다.
소주잔 아래로 향해 그 잔 위로 굵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아직도, 이 열정이 남았구나 하면서 촛불을 들 수 없었던 나는 울었다.
국민이 아닌 민중이 되기 위해 울었다.




2007년
내일

또 한번 울게 될지 모르겠다.

왜인지 모르겠다.
왜 내가 또 '정치적으로 울어야 하는지.

또 한명의 바보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인지, 아니면......


문국현은 2007년의 노무현이다.

물론,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지만, 2002년에 노무현이 있었다면, 2007년에는 문국현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사람도 많지 않으리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었고, 누구도 당선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고(문국현의 경우에는 뚜껑도 열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또 그러면서도 누구에게나 희망은 준 사람. 그 사람은 문국현이고 그런 사람을 우리는 2002년에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눈물 흘리는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년간, 우리는 노무현을 욕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때의 승리를 기억하며 그 때의 환희를 기억한다. 더욱이, 나는 아직도 그의 눈물을 기억한다.

그리고 또 기억한다.
수많은 그의 고뇌와 선택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왔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5년 후.

우리 앞에 문국현이 나타났다. 연봉을 10억이나 받는 유한킴벌리의 사장 그리고 킴벌리 클락이라는 거대자본의 동아시아 회장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라,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아직도 때묻지 않은 사람, 그리고 사람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그 사람 문국현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희망.....이었을까.

문국현이 보여준 희망 속에서 나는 노무현을 보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합당 발표 당시의 노무현


"나는 반대합니다."

김영삼과 노태우의 3당 야합에 맞서 홀로 손을 치켜들고 나는 반대합니다. 나는 반대합니다. 이렇게 외쳤던 노무현의 저 굳게 닫은 입술 처럼,

나는 노무현 속에서 문국현을 보았고, 문국현이 노무현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 처럼, 문국현은 우리를 위해 눈물을 흘려줄 것이라고 믿기도 했고, 현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정치사의 새로운 실험, 그리고 정화되어가는 그 길의 한 복판에 노무현과 문국현이, 나란히, 함께 서 있다고 믿었다.

문국현 같은 사람이 1000명, 아니 10명만 있어도 우리는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

그렇게 믿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불행하게도 나는 정동영을 지지하기로 했고, 그것이 부패와 반부패, 거짓과 진실의 싸움을 위해 내가 선택한 차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누가 나에게 왜 문국현을 바라보며 정동영을 지지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부끄럽게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 싸움이 정의를 위한 싸움이라면, 나는 문국현을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없이는 정의도 없다."


우리에겐 노무현이 두명, 아니 문국현이 두명이나 되는, 축복을 받았지만, 우리에겐 한나라당과 이회창, 그리고 이명박이라는 재앙도 주어졌다. 그들과 싸우는 것은 정의겠지만, 우리에게 정의는 너무 작다. 그들은 너무 강하다.

우리는 정의 이전에 진실로만 그들을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 서 있다.
문국현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과 수십년간의 천민자본주의 속에,
"경제"에 파 묻혀 버린 수단으로 전락했다. 경제에도 정의는 없고 힘만이 존재한다.

문국현님,

우리 시대가 낳은 불우한 영웅.

조조에 대해 누군가, "亂世의 奸雄이요, 治世의 能臣"이라 했던가.
우리 역사의 불행이 도 하나 있다면, 문국현이라는 사람을 치세에 만나지 못한 것이리라. 아니, 어쩌면 치세 였다면, 우리는 문국현의 존재를 끝까지 알지 못하는 불행한 역사를 짊어져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문국현의 미래에서 우리는 사람이 중심인 세상을 보았고, 그가 보여준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진실하긴 쉬울지 몰라도, 우리에게 아직 정의로움은 버거운 걸까.

정호승 시인은 그렇게 썼고, 김광석은 죽기전, 이렇게 노래했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강 바람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가라


대한민국이라는 큰 산을 입에 물고 나는 작은 새, 문국현.

당신의 눈물 이제 강물 되고,

당신의 사랑 이제 노래가 됩니다.

꽃잎처럼, 뒤돌아 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사람이 희망이라는 그 말씀.

이 땅에서 이루시기를.



정의롭지 못했던 정동영 후보 지지자에게도 문국현은 희망이다.
나에게 정의가 있다면, 그리고 이명박이 저 편에 서있지 않았더라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노래가 너무나도 잘어울리는 사람,

문국현.


누구를 찍을까.

4번이나 썼던 글을 지웠다. 아니, 4번이나 써 놓고는 한번도 완료 버튼을 누르지 못했으니, 한 번의 글도 써 보지 못했던 것인가.

대통령의 도덕성이니, 경제니 하며 이런 저런 많은 이유를 대 보지만, 어떤 기준으로 고른 대통령도 몇% 부족하다는 상념만이 글 속에 맴돌 뿐 정할 수가 없다.

정동영

"현실적으로는" 가장 적절한 대안일 수 밖에 없는 원내 제1당의 후보.

이명박

"현실적으로건, 이상적으로건" 결코 뽑을 수 없는 후보.

권영길

"현실적으로는" 적절한 대안일 수 있지만, "또 다른 현실에서는" 노동당의 뼈아픈 위치를 대변해 주는 후보.

문국현

"이상적으로는" 가장 최적의 대안일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겨우 1명의 국회의원과 정치 초년생의 한계

금민

"현실적인 면"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후보

이회창

"현실적으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후보.



현실과 이상속에 헤메이는 정치적 dreamer들이 어디 나 하나 뿐이겠냐마는,

보수와 진보

부패와 반부패

거짓과 진실


이 모든 것들의 後者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어찌되었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현실.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사실.

"현실적인 선택"이

나의 이상에 면죄부를 줄 수 있기를 빌어마지 않을 뿐.





이명박에게서 우리나라 경제민주화의 현실을 보고,
이회창으로부터 우리나라 보수의 시대착오를 보고,
문국현에게서는 우리나라의 바람직한 미래를 보고,
정동영에게서는 노무현까지 이어져온 현재를 보고,
권영길로부터는 죽지않고 살아남은 진보를 보았고,
금민에게서 노동당을 탈피해 성장하는 진보를 봤다.


우리에게 미래도 중요하고 과거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버리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를 선택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재가 그다지 절망적이진 않다.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치적으로 울다  (1) 2007.12.18
노빠가 문국현님에게 보내는 변명.  (27) 2007.12.18
박근혜의 착각 - 5년후에 그녀에게 기회가 올까?  (32) 2007.11.29
노망든 총학생회.  (8) 2007.11.28
내일부터 시작이다.  (1) 2007.11.26


1. 박근혜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 움직이는 박근혜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일부터 본격적인 이명박 후보의 지지유세에 나선다.

이번 박근혜의원의 지지는 이명박에게는 호재요, 다른 후보들에게는 악재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비록,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다 이겨놓고도 져버린 비운의 후보가 되어버린 박근혜지만, 이번 지지유세를 계기로 어떤 식으로든 이회창과의 차별성을 말할 수 있게 된 이명박은 이를 기화로 BBK는 물론 수 많은 악재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경선기간 내내 이명박의 국정수행능력과 BBK의혹에 대해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했던, 그리고 이명박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잘못 웃는 거다

도덕성이나 여러 자질에서 그의 대통령됨이 부족하다 주장하던 박근혜가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일까.
외면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정신적 지주(?)로서, 박정희 향수의 정수(?)로서 박근혜가 가지는 상징성은 한나라당이나 박근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기반이며 이 기반은 박근혜에게도 한나라당이 있어야만 효과가 있는 도구임이 확실하다.

그런데, 왜 자꾸 나는 박근혜가 불쌍해 지는 것일까?


2. 박근혜는 무엇을 노리는가?

박근혜는 이번이 두 번째 대선 도전이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이회창에게 밀려 나서지도 못했고(비록 탈당까지 하긴 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이명박에게 밀렸으니 답답할만은 하다. 누구는 3번, 4번씩 대선에 나오는데 자기는 한번도 못나온데다가, 부친인 박정희는 선거에 나왔다 하면 절대 떨어진 적이 없는(총맞은건 어쨌든 진건 아니니까. 부정선거가 있었냐 문제는 논외로 하고) 불패의 신화를 가진 장수 대통령이었으니 답답할만도 하다.

그런데, 지난 대선에서는 그녀가 이회창을 도운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다 할 방해를 한 것도 아니지만 도움을 직접적으로 준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경선에 승복하고 이명박을 돕는 속내는 무엇인가.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재오 의원을 보며 눈을 부라리던 그녀가.

총선?
내견 4월에 있을 총선에서 그녀는 원내 다수당 또는 여당의 당권을 장악하려는 의도일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고, 지금 시점에서 볼 때 가장 단기적인 박근혜의 노림수는 그것이 맞다. 또 다른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 계획을 위한 초석으로서 총선 후 당권의 장악은 박근혜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2번이나 대권에 도전하지도 못하고 중도에 눈물을 흘려야 했던 그녀에게 총선을 통한 당권의 장악은 현재 시점으로는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명박의 당선은 그러한 그녀의 계획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차라리 이회창이 당선된다면, 이명박 책임론에 편승해 한나라당을 장악하고 이회창과 통함으로서 한나라당의 다음 대권 주자로 올라서기가 간편해 지지만, 이명박이 당선되고 이재오 등 親이명박파가 당권에 대다수를 장악하게 될 시점에서 그녀의 역할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다음 대권 역시 어려워진다.

역시 대선이다.
2012년 대선이 바로 그녀가 노려야 할 최종 목적지일 수 있다.


3. 대선을 위한 박근혜의 노력,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렵다.

이번 대선이야 말로 그녀에게는 거의 마지막 기회였을지 모른다. 박근혜는 52년 생으로 올해 55세. 5년후에도 60세로 얼마든지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이긴 하다. 하지만, 박정희 향수에 상당부분 많이 기대고 있는 그녀에게는 이번 대선이 마지막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몇 가지만 들춰봐도 확실하다.

박정희 향수를 이용하기에는 박정희는 너무 늙었다. 아니, 박정희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닌, 박정희를 기억하는 자들이 너무 늙었다. 박정희가 죽은 것이 79년이니, 1970년대 초나 60년대 말에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박정희는 TV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봤던 기억이 전부다. 그 당시에 그들은 코찔찔이 어린이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향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노인네들의 박정희, 박정희 타령에 그저 그런가보다를 연발하는 유사향수꾼을 제외하면 박정희의 향수는 60년대 중후반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논리다. 게다가 그들의 부모들은 박정희의 은혜(?)를 톡톡히 받은 사람들이지만, 5년이 지난 후에 그들이 투표소에나 나올지 의문이다. 20~30대의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고는 있다지만, 젊은층에는 항상 정치세력의 중심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박정희 시대의 관료 출신으로서 일당백의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박정희의 아류작들은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버려 다음 대선은 기대하기도 어렵다. 조갑제가 언제까지 저렇게 팔팔하게 글을 써 줄런지 알 수 없다(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글이 힘을 잃은지도 오래다)

2002년 대선에 20대였던 나도, 5년이나 지난 지금은 30대로 접어들어 더이상 정치적 이상에만 치우쳐 살지도 않고 현실적 타협을 모색하는데, 전체적인 대한민국 사람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죽은지 30년이 지난 독재자에게는 관심 없을 시기가 바로 다음 대선이다. 얼굴도 못본, 독재자의 딸을 위해서 자신의 표를 향수뿌려 던질 30살짜리는 없다. 지금처럼 정치 무관심의 세대가 30이 된다고 박정희를 새로 공부해서 그녀에게 독재를 덮고 경제로 나가자고 울부짖을 유권자는 없다.
지금 아줌마 부대의 박정희 향수와 육영수 향수로 물들은 박근혜의 아줌마 파워도 환갑이 되어버린 2012년에는 선거는 있으되 골다공증 때문에 투표소에 오지도 않으실 분들이 많다는 점에선 그녀의 다음 대선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그녀의 위치를 간과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한명숙도 있다는 뻔한 대답과 민노당의 심상정이라는 강력한 대항마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


3.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를 밀어줄 것인가?

우선은, 이명박의 국정수행능력이 과연 다음 대선에서 잘했다는 평가와 함께 다음 대선에도 한나라당이라는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느냐는 문제인데, 이 점에서는 아직 당선은 커녕 지지세력의 실체도 의심스러운(이건 다분히 주관적 평가이다) 이명박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우습지만, 다른 면에서도 그렇지 않다는 답을 쉽게 끌어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팍팍, 밀어줄리가 없다.

이유는 노무현.
노무현이 아무리 욕을 먹고 있지만,(나는 그렇지 않지만) 노무현이 이루어낸 것은 하나는 있다. 그것은 농담처럼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평민화(?) 내지는 대통령 권위의 걸레화이다. 그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차치하고라도 노무현은 대통령의 권위따위는 저 아래로 내려보냈고 스스로이건 아니건 아무튼 술자리의 오징어 아래 있는 안주로 자리매김했다.

대통령의 권위가 없으니 이명박은 어떨까. 부동산 문제나 남북 문제 또 여러가지 대외/조세/국방/외교 문제에 있어서 이명박이 노무현 이상의 권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위장전입이나 위장 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이명박의 경박스러움 역시 노무현의 가벼움 못지않게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을 꿀먹은 벙어리 내지는 뒤뚱거리는 오리로 만들 것이 분명하다.

그 시점에서 다시 한나라당 또는 이명박 후광 업고 나와봤자 별거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한탄은 "모든 것이 이명박 때문"이라는 한탄으로 바뀌어 있을테고 거기에 더해져, 잃어버린 10년 찾게 해 줬더니 삽질하고 있다는 비아냥이나 더해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명박을 업고 대선에 출마하는 것은 자살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정동영을 봐도 뻔하지 않은가?


4. 박근혜는 뭘 삽질을 하고 있나?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나온다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이제와서 유세한다며 유세떠는 모양은 보기 좋지 않다. 박사모도 이회창을 지지하는 마당에 그녀의 외로운 이명박 지지는 별로 명분은 없어 보인다.
박근혜의 이명박 지지와 박사모의 이회창 지지에는 말이 많은데, 일각에서는 겉으로는 이명박을 지지하면서 속으로는 이회창을 지지한다는 표리부동이라는 설과, 실제 이회창의 정도 아닌 길을 가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는 멸사봉공설이 있다.

박근혜의 이번 대선에서의 선택은 5년후 그녀가 과연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의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빨리 냉수 먹고 속 차려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박정희의 복권(?)이나 군사독재의 정당화에 있어서도 당연하지만 그녀의 정치인생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이유에서 볼 때 이명박 지지라는 수를 생각해 낸 그녀는 한마디로 자살골을 넣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은 박정희라는 개발독재의 혜택을 한 몸에 받아 성장한 인물로서, 그에게 있어서 그 딸인 박근혜는 껄끄럽기 한이 없는 존재다. 이명박은 박정희의 은혜를 받았고 그것은 한때 영부인급의 지위에 올랐던 박근혜의 은혜나 다름 없다고 생각하는 (선거할 기회가 얼마 안남은) 노년층에게 박근혜를 키워 자신의 후계자로 삼는 모습을 보여봤자 배은망덕한 장사꾼이라는 소리 듣기 쉽상이니 이명박이 박근혜를 국정의 파트너로서, 다음 대선의 주자로서 키워줄리는 만무하다.


5. 박근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지금 박근혜의 선택은 구체적으로 봐도 몇가지가 나온다. 침묵을 지키거나, 이회창을 돕거나, 이명박을 돕거나 독자노선을 걷거나.

그러나 이회창이건 이명박이건 다음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돌아오는 것은 60넘은 미혼의 정치가로서의 이미지 뿐이며 더 이상 대권 도전의 기회는 박탈당할 것이라는 것이 내 예상이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박근혜가 지금 이명박 또는 이회창을 지원하느니, 차라리 허경영 후보와 결혼하여 청와대 입성을 기다리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안하지만, 더 현실적이다.

노망든 총학생회.

Posted 2007. 11. 28. 11:14
< 42개 대학 총학생회, 이명박 지지선언 >

이 기사가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최소 42개 대학의 총학생회는 누구의 말 처럼, 이미 노망에 든게 확실하다.


어느 누구보다, 어느 조직보다 더 이명박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 자들은 청년의 열정을 가진 대학생이어야 한다고 믿고 싶었다. 변절해 버린 386도 아니고, 썩어버린 시민사회단체도 아니고, 한총련이어야 했다.

그런 한총련에서 42개 대학, 이 정도면 다수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언젠가 주류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명박이라니.

차라리 허경영이라고 해라, 아니, 허경영이 아니라, 대선 따윈 관심없다고 해라.

지금은 바빠서 자세한 글을 쓸 수는 없지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42개 대학의 총학생회가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이 살아갈 이 나라의 미래도 없다.

더이상 청년의 열정따윈 이 나라에서 찾을 수 없는가.
그들이 원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덧붙여, 이와 관련한 글을 찾다가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 사실이 아니다 >

이 글이 사실이길 빌어본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Posted 2007. 11. 26. 15:53
공직선거법

제58조 (정의 등) ①이 법에서 "선거운동"이라 함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보지 아니한다. <개정 2000.2.16>
1.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2.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3.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
4. 통상적인 정당활동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59조 (선거운동기간) 선거운동은 후보자등록마감일의 다음날부터 선거일전일까지에 한하여 이를 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04.3.12, 2005.8.4>
1. 제60조의3(예비후보자 등의 선거운동)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예비후보자 등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2. 삭제 <2005.8.4>
3. 후보자,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가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


드디어 대선 레이스의 막이 오른다. 드디어 내일, 공직선거법 제58조에 의한 각종의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 공직선거법에 의한 선거운동은 오늘 밤 24시 즉, 내일 0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드디어,

공직선거법 제93조에 의해 막혀있던 블로거들의 모든 선거운동이 공식적으로 허용된다(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불법적인 선거운동이라고 인정된 행위가 모두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김연수씨가 올린 "대통령 이명박 과연 괜찮은가?"라는 글도 마음대로 올릴 수도, 퍼나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을 싫어하고 그를 낙선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봤을만한 자료이긴 하지만.

아무튼, 드디어 귀머거리,벙어리, 장님이었던 며느리 시대는 끝났다. 이제 시작이다.


한편, 지금 이 시간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에는 11명의 후보가 후보자로 등록했고, 곧 2명의 후보자가 더 등록할 예정이다.

등록한 후보는,

(1)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2) 한나라당 이명박
(3) 민주노동당 권영길
(4) 민주당 이인제
(5) 국민중심당 심대평
(6) 참주인연합 정근모
(7) 창조한국당 문국현(이상 국회 의석수 순. 단, 참사람연합과 창조한국당은 의석수 1개로 동률로 가나다 순)
(8) 경제공화당 허경영
(9)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10) 한국사회당 금민(이상 정당명 가나다 순)
(12) 무소속 이회창

등이며

추가적으로

(11) 화합과 도약의 국민연대 이수성
(13) 무소속 황종국

후보가 등록할 예정이다.(앞의 숫자는 후보자 기호-예상)

이로서 모두 13명의 후보가 이번 대선에 참여할 예정이며, 23일간의 선거운동에 돌입한다.
참고로 대통령 선거의 기탁금은 5억.
선거비용 상한액은 우리나라 인구 1인당 950원씩을 사용할 수 있으며 100만원 이하 단위는 100만원으로 올려 계산한다(공직선거법 제121조).

현재 선관위 홈페이지에 의한 우리나라 인구수는 49,198,310명이며 이중 유권자는 37,672,121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선거비용은 46,738,394,500원이며 100만원 이하 단위를 올리면 46,739,000,000원.

467억 39백만원이다. -ㅁ-;;;
< 속보- 삼성특검법안 소위 통과 >

삼성특검법안(원래의 명칭은,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관리 및 뇌물공여 의혹사건과 불법상속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거나,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사건과 비자금의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 자금 제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와방 길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그 동안 통합신당 및 민노당 등 이른바 범여권(민노당을 범여권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만,)이 제출한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조성·관리 및 뇌물공여 의혹사건과 불법상속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과 한나라당이 제출한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사건과 비자금의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 자금 제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법안심사 소위가 드디어 타결되었다는 뜻이다. 새로 정해진 명칭은 "삼성 비자금 관련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번에 소위를 통과된 법안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1. 특별검사의 수사범위

-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및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 발행, 증거조작, 증거 인멸 교사 등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에 관한 불법 상속 의혹
- 1997년부터 삼성 비자금 조성 및 사용처,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 제공 의혹과 사회 각 계층에 포괄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의혹
 - 비자금 조성을 위해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은행 차명계좌를 이용했다는 의혹 등

2. 특별검사의 추천
- 대한변호사회가 추천한 3인

3. 수사기간
- 준비기간 20일
- 수사기간 60일, 1차연장 30일, 2차연장 15일


우선은, 분명히 삼성 특검법의 통과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아직 본회의가 남아있고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도 예상되고 있으나 아무튼 특검을 향한 첫단추는 적당하게 잘 맞춰진 듯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직 정의는 살아있다.

정의는 아직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명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번 특검에서 양 측이 제출했던 법안을 보면 이번 통과된 법안은 참 정치공학적으로 잘 끼워맞춘 티가 난다.

오래간만에 양 진영이 적절한 수준에서 합의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흐믓한 평가가 나올 법도 같다. 그들이야 나름대로 아쉬운 것도 있으리라 예상되지만, 이 정도라면 첫 단추 치고는 꽤 적절한 수준이 아닐까.

애초에 양 당에서 제출한 내용을 보면 특검의 수사범위가 매우, 너무나 상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내용을 잠깐 보자


통합신당/민노당 등의 법률안에서의 특별검사 수사범위
  1.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증거조작, 증거인멸교사 등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상속 의혹사건과 관련된 사건
  2. 199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조성된 삼성그룹 불법 비자금과 관련해 조성을 지시한 주체·조성방법·규모 및 사용처, 삼성그룹 불법 비자금을 이용해 정치인과 법조인·공무원·언론계·학계 등 사회 각 계층에 포괄적 뇌물을 제공한 것과 관련해 지시주체·로비지침·로비방법 등과 임직원의 임의 사용여부 등에 관한 사건
  3. 삼성그룹이 비자금의 조성 및 사용행위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현직 삼성그룹의 임직원의 은행 차명계좌를 이용했다는 것과 관련된 의혹사건
  4. 제1호부터 제3호까지의 사건과 관련한 진정·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사건 등과 관련된 사건


한나라당의 법률안에서의 특별검사 수사범위

  1. 김용철 변호사가 제기한 삼성그룹이 조성했다는 비자금의 존재 의혹 및 그 조성경위, 사용처에 관련된 의혹
  2. 비자금이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 권력층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의혹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통과된 안은 범여권안의 1번, 3번이 들어가 있고, 한나라당안의 2번이 포함되어 있다. (범여권의 4번도 포함되었지만 이는 관련 사건을 포함시킨다는 의미일 뿐이니 그다지 중요하진 않다)

한나라당의 특검법안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급조된 티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보좌관 한 두명이 밤새서 술 한잔 하고 썼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한다. 정작 김용철 변호사가 말한 차명계좌의 존재와 이에 따른 금융실명제법 위반 사항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게다가 김용철 변호사의 주된 주장(차명계좌를 통한 뇌물자금 관리와 각종 편법, 불법을 통한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중에서 삼성그룹의 불법적 경영권 승계 사건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법안에서는 2번, 즉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 따위의 그저 붙잡고 늘어질 건덕지를 어떻게든 꼬아서 버티기 하겠다는 의도밖에 없어보인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이런 초보적인 애들 투정같은 법안을 놓고 협상을 했던 통합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노회찬의원이 대견하기 그지없을 정도다.

한나라당의 의도가 어떠하든, 이로서 특검법은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후보는 삼성특검이 대선에 악용될 수 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어짜피 대선 전에는 어떠한 결론도 나올 수 없다는 것(대략 통과하는데 10일이 걸린다고 해도 준비기간 20일을 채우면 이미 하늘에 태양은 두개가 뜬다)을 예상한 것이겠지만, 정권에 대한 로비 의혹이 나오는 것에 왜 한나라당이 더 조심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현 정권에 대한 로비로만 한정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대선에 악용될 것이라는 한나라당 후보의 발언은 마치 자신에게 불리하니 반대한다는 뉘앙스. 도대체 뭐가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삼성 특검법은 통과되게 되었다. 이번 특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만한 사실이다. 모쪼론 이번 특검법안을 통해 삼성이 위나라의 경제에 미친 영향만큼 삼성에게 우리나라의 경제민주화에 미친 영향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빈다.

'Dail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망든 총학생회.  (8) 2007.11.28
내일부터 시작이다.  (1) 2007.11.26
삼성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이유  (10) 2007.11.20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관하여  (1) 2007.11.16
시위=교통체증의 공식에 대한 변명  (24) 2007.11.12
요즘 가장 뜨거운 것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이명박(아니, 어쩌면 김경준과 BBK)과 삼성이라고 답하겠다.

이명박의 BBK사건은 이제 초읽기로 들어간 듯하다. 내일은 에리카김이 이명박과 김경준의 관계를 밝혀줄 이면계약서를 공개한다고 했고, 이명박은 계속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비록 검찰은 26일까지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는 입장이지만, 26일 이전이라면 이명박의 낙마가 예상되고, 그 이후라면 낙선이 유력하니 이래저래 한나라당으로서는 답답하고 짜증나는 시기가 아닐까(26일 이후 발표되어 이명박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그때가서는 대선후보를 교체할 수도 없는, '퐝당'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시츄에이션이 발생한다. 26일 이전이라면, 박근혜로 교체할 가능성이라도 남아있지만... 부디 근혜씨는 공직선거법 제49조에서 정한 후보자 등록 서류를 준비하고 기다릴찌니, 다행히도 근혜씨는 가족이 없고 여자라서 발급받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다음으로 드거운 것은 역시 삼성.
자칫 김경준이라는 핵폭탄급 인물의 귀국에 밀려 차갑게 식어버리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다행(?)하게도 청와대의 비호아래 그 뜨거움은 여전히 활활 유지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용철씨가 공개한 삼성의 뇌물 사진



사진찍는 것을 취미로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웬만하면 해상도가 좋은 라이카나 carl zeiss 렌즈로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 구도와 색감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신정아 누드사진과 함께 엄청난 파괴력을 갖춘 사진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로서 삼성은 불행하게도 변명도 제대로 못하고 꼼짝없이 딱걸린 상황이 되어버렸다.

삼성은 그동안 김용철변호사의 삼성 떡값(뇌물인지...) 관련 폭로를 모르쇠 내지는 철저한 부정으로 일관해 왔다. 웃긴 것은, 추미애가 돈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얼마나 중요하면 몇달간의 업무지시내용을 종합하는 '회장님의 방침'에 들어갈 정도였냐는, 로비와 뇌물 전달이 중요한 업무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말게 되는 황당한 역인정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아무튼, 삼성은, 이병철부터 이어오던 정경유착의 이미지를 단숨에 떡방아간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동안 누구도 비틀지 못했던 삼성의 철옹성은, 두 용철이 때문에 무너지게 생겼으니 건희씨와 재용씨는 용철이란 이름만 들어도 지금쯤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를 갈지 않을까?


그런데,
그 와중에 대행인지 불행인지 이병철 전 회장의 타계 20주년을 맞이하여 故 이병철씨의 생가가 일반에 공개 되었다고 한다. 어제 시사투나잇(야밤에 하는 light한 시사트로그램이라 즐겨 본다) 에서는 이를 취재하며 그 지역의 사람들과 삼성의 수사를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짤막한 충돌을 소개 했다.

가끔, 아니 우리 사회에서 자주 나오는 사례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며 천민자본주의의 천국이 되어버린 우리나라의 상황을 너무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주민들은,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통한 관광객의 유치를 기원하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런 훌륭한 분이 우리 고장 출신이라는 것에 기뻐'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가 절대 현재 천민자본주의에 지지부진한 사상적 토대에 세워져있다는 강력한 물증이 아닐까 한다.



이병철이 어떤 인물이며, 삼성은 어떤 기업인가?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보아도, 그가 과연 성공한 기업인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은 물론, 지금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이건희-이재용으로 이어지는 편법적인 경영권승계 과정을 보아도 삼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되어서도 안되고 그럴 자격도 없다.


어제의 시사투나잇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병철이, 이건희가 존경받는 것은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 삼성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그러나 삼성의 성장이나 지금의 최고의 위치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그리고 삼성의 이건희가 존경받는 모습은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심각한 정경유착도, 극심한 노동탄압도 불사한 파렴치하고 치졸한 작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비웃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도 안되는 행위로 국제사회가 인정한 양심수를 만들어낸 기업, 8천억 사회환원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기업.

지금까지 두어차례 삼성에 관한 포스팅을 했지만, 삼성은 '그들이 단지 돈을 많이 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민에게 존경을 받고 있고, 누구나 삼성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그들이 사업을 어떻게 경영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는 논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삼성의 비자금 사건이 터진 지금 이 순간에도 언론은 삼성의 신화아닌 신화에 불을 밝히기를 주저하지 않고(관련기사)있고, 이병철 생가 주변의 주민들은 마치 위인전에나 나올법한 위인의 탄생과 삶을 신격화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천민자본주의를 이끌어온 삼성 그리고 이건희, 이재용, 이병철.

지금도 삼성 특검법은 청와대의 반대와 한나라당의 엄한 물타기로 언제 처리될지 계속 표류하고 있다(내년총선을 거치며 법안 자체가 폐기될지도 모른다). 심지어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면 삼성의 이번 행위는 유야무야 넘어갈 공산이 크다.

재벌경제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규정지워지는 지금의 한국경제가 좀 더 정의롭고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는, 삼성이 없어져야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삼성이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이유 따위는 없다.
단지, 없어져야 할 이유는 있을지 모르지만.

참고기사 -아직도 삼성이 이재용에게, 아들에게 재산을 주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사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관하여

Posted 2007. 11. 16. 17:43
지난 10월 2일,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이라는 이름의 법률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넘고서야 우리는 겨우 사회적 소수자의 차별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법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헌법은 일체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헌법은 다소간 추상적 금지규범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결국은 최초의 법률이나 다름 없다.


우리나라에서 법률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경우는, 현재로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법률에서 이른바 평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는, 가족의 구선과 생활에 있어서의 양성평등, 교육기회의 평등, 여성정책과 장애인 정책에 있어서의 평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차별과 평등에 관한 규정은 전무한 상태였다.

헌법에서는 두개의 조문을 두어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를 설파하고 있다. (평등이라는 단어는 4번 들어가는데, 이 중 2번은 선거에서 평등선거에 관한 내용이니 제외한다)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제36조 ①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②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③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36조의 경우, 가족간의 평등을 이야기 하는 것이니 논외로 친다면, 우리 헌법에는 단 한개의 조문만이 평등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헌법이 평등을 외면하고 있다는 의미로는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단 한개의 조문,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한다"는 단 한 줄의 선언이야말로 헌법이 고귀해지는, 헌법의 가치를 급상승 시켜주는 순결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

이번 차별금지법안을 보면 매우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특히 각 분야의 소수자들을 향한 보호의 내용이 그 주를 이룬다.
법무부에서 입법예고한 차별금지법안의 주요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제안이유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學歷),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예방하며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구제조치를 규정한 기본법을 제정함으로써,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

2. 주요내용

  가. 차별의 금지

    (1)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성적 지향, 학력(學歷),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고용, 재화·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법령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함.

    (2) 외견상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에 따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 이른바 간접차별을 차별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함.

    (3) 성별, 장애, 인종, 출신국가, 출신민족, 피부색,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괴롭힘을 차별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함.

    (4)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나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를 차별로 간주하고 이를 금지함.

    (5)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질상 불가피한 경우와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 및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은 예외로 함.

  나. 차별시정기본계획의 수립

    (1) 대통령은 차별시정기본계획을 5년 마다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함.

    (2)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시정기본계획 권고안을 마련하여 차별시정기본계획 시행 1년 이전까지 대통령에게 제출하여야 함.

    (3) 중앙행정기관의 장,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자치구에 한한다) 및 시·도교육감은 차별시정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세부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상 조치를 취하여야 함.

  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1)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이 법에 반하는 기존의 법령, 조례와 규칙, 각종 제도 및 정책을 조사·연구하여 이 법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시정하여야 함.

    (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위하여 사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을 들어야 함.

  라. 고용상의 차별금지

    (1) 성별 등을 이유로 한 모집·채용의 기회를 배제 또는 제한, 이를 표현한 모집·채용 광고, 성별 등을 기준으로 한 평가, 특정 직무의 성질상 불가피하지 않은 채용 이전의 건강진단 또는 건강진단 자료제출 요구를 금지함.

    (2) 성별 등을 이유로 한 임금 및 금품의 차등지급이나 호봉의 차등산정을 금지함.

    (3) 성별 등을 이유로 한 교육·훈련에서의 배제·구별, 직무와 무관한 교육·훈련 강요를 금지함.

    (4) 성별 등을 이유로 한 특정 직무나 직군 배제 또는 편중 배치, 특정 보직 배제, 근무지 부당변경을 금지함.

    (5) 성별 등을 이유로 한 승진 배제나 승진조건·절차의 차등 적용을 금지함.

    (6) 성별 등을 이유로 한 해고 등 불이익 처분을 금지함.

  마. 재화·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상의 차별금지

    (1) 성별 등을 이유로 한 금융기관의 대출, 신용카드 발급, 보험가입, 기타 금융서비스의 공급·이용에 있어서의 불리한 대우나 제한을 금지함.

    (2) 성별 등을 이유로 한 교통수단의 이용 제한·거부, 상업시설의 사용·임대·매매 거부를 금지함.

    (3) 성별 등을 이유로 한 토지 또는 주거시설의 공급·이용에서의 배제·제한을 금지함.

    (4) 성별 등을 이유로 한 진료 거부 또는 조건부 진료행위를 금지함.

    (5) 성별 등을 이유로 한 문화·체육·오락 기타 재화·용역의 공급·이용에 있어서 배제·제한을 금지함.

  바. 교육기관의 교육·직업훈련상의 차별금지

    (1) 성별 등을 이유로 한 교육기관에의 지원·입학·편입 제한·금지 또는 교육활동에 대한 차등지원이나 불이익을 금지함.

    (2) 성별 등을 이유로 한 전학·자퇴 강요나 퇴학조치 등 불이익 처분을 금지함.

    (3)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을 포함한 교육목표·교육내용·생활지도 기준, 성별 등에 따른 교육내용 및 교과과정의 차등 편성,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와 편견을 포함한 교육내용이나 교육을 금지함.

  사. 차별예방을 위한 조치

    (1)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성별 등을 이유로 한 참정권 행사와 행정서비스 이용에 있어서 차별의 예방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 제공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함.

    (2) 수사 및 재판 관련 기관은 성별 등을 이유로 수사·재판 절차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함.

    (3) 사용자는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없는 한 장애인 및 특정 신체조건을 가진 자가 근로조건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함.

    (4) 교육기관의 장은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없는 한 피교육자가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함.

  아.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진정

    차별의 피해자 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조사와 구제에 관한 사항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함.

  자. 법원의 구제조치

    (1) 법원은 차별에 관한 소송 제기 전 또는 소송 제기 중에 피해자의 신청으로 차별이 소명되는 경우 본안 판결 전까지 차별의 중지 등 적절한 임시조치를 명할 수 있음.

    (2)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따라 차별의 중지, 임금 기타 근로조건의 개선, 그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및 손해배상 등의 판결을 할 수 있음.

  차. 손해배상 및 입증책임

    (1) 이 법의 규정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피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음.

    (2) 고의 또는 과실의 입증책임은 차별행위자가 부담함.

    (3) 차별행위 피해자가 재산상 손해를 입증할 수 없는 경우 차별행위자가 차별행위로 인하여 얻는 재산상 이익을 피해자가 입은 재산상 손해로 추정함.

    (4) 차별행위 피해자가 입은 재산상 손해액을 입증하기 위한 필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성질상 곤란한 경우 변론전체의 취지와 증거조사의 결과를 기초로 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음.

    (5) 차별이 있었다는 사실의 입증책임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가, 이 법에서 금지한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의 입증책임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이 부담함.

  카. 사용자의 정보공개 의무

    고용 관련 차별의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는 사용자에게 그 기준 등에 대하여 문서로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고, 사용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30일 이내에 그 내역을 문서로 공개하여야 함.

  타. 불이익 조치의 금지 및 벌칙

    (1) 이 법에서 정한 구제절차의 준비 및 진행 과정에서 위원회에 진정, 진술, 증언, 자료 등의 제출 또는 답변을 이유로 한 사용자, 교육기관의 장의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 및 그 관계자에 대한 해고, 전보, 징계, 퇴학 그 밖에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하여 불이익 조치를 금지하고 이를 무효로 함.

    (2) 불이익 조치 금지를 위반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

invalid-file

(차별금지법안 다운 받기) -그다지 내용은 길지 않다 읽어봐도 좋을 듯





이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요즘 말이 많은 듯 하다. 일부 기독교 단체와 보수단체에서는 동성애의 차별금지에 대해서는 이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관련기사) , 결국에 7가지의 차별금지 대상이 삭제된다는 소식까지 나오게 되었다.(관련기사) 도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또다시 반발.


차별금지법안에서는 차별금지대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즉, 이러한 사람들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차별의 기준이 되는 것들을 나열하고 있다.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성적 지향, 학력(學歷), 사회적 신분

이 중에서 삭제가 예상되고 있는 7개를 보면,
성적 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출신국가
병력
언어
범죄 전력
보호처분 전력

 등이다.

문제는 이러한 삭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관한 것이다. 즉, 이러한 것들을 삭제하였을 때, 이러한 차이를 이유로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을 의미하는가의 문제이다.



법률에 필요한 사항을 나열하게 되는 경우, 이것이 예시인가 아니면 열거인가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법률적으로 의미있는 사항을 나열하는 경우,  그것이 예시를 의미하는 경우네는 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이를 배제할 수 없다.

즉, 여러 행위유형 가운데, 법이 예상치 못한 행위유형이 나오더라도, 이를 기존에 인지된 행위유형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동일한 취급을 하여야 하는 것이 예시형이다.
그러나, 이를 열거라고 하는 경우에는 법이 예상한 행위 이외의 행위유형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법률적 취급을 달리할 수 있다.

예시형은 주로 수익적 행정행위이거나 민사상의 행위에 주로 사용되며 엄격한 법해석이 필요한 침익적 행정행위와 형사상의 행위유형에는 주로 열거형의 법규방식이 사용된다.

이번 차별금지법의 경우 차별금지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 손해배상과 나아가 범죄로서 처벌받게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는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법적 안정성 및 국민의 예측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당연히 열거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본다.(이러한 점에서 헌법 제37조제1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규정은 매우 진보적이고 멋진 조항이다)

다시말하면, 위의 7가지 차별기준이 삭제되는 경우 그러한 기준을 이유로한 차별은 가능하며 이 기준을 들어 한 차별은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는 분명 의문은 존재한다. 차별이 불법행위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고, 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비합리적인 차별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손해배상이 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고 본다. 전체적인(헌법을 포함한) 법질서의 관점에서 바라본 불법성의 판단이라면 손해배상과 불법행위의 성립은 가능하다고 본다)

손해배상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차별시정을 위한 노력과, 국가인권위원회 및 법원에 의한 구제를 요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손해배상보다 법률의 규정에 따른 정당한 피해구제절차의 존재여부에 관한 심각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소수자의 차별금지 일부 삭제 정당한가?(동성애를 중심으로)

소수자 그리고 그러한 자들이 모인 소수자들에 대한 보호와 인권증진은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에 기여한다.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보호하여야 하고, 우리가 그들보다 우월할 만큼의 수(數)적 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여야 한다.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 그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사회의 다양한 발전을 해하고, 우리의 생각을 획일화 하고, 미움과 질투 그리고 억압과 폭력에 굴하게 된 소수자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성장의 척도다.

우리의 소수자중에는 물론, 우리와 아무 상관 없지만, 단순히 보기 싫기도 하고 전혀 이해해 줄 수 없는 소수자들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최근에 많이 논의되었던 동성애자들이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동성애자를 우리 사회의 공통된, 또는 합의된 그리고 보편화된 합의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보호하여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가 용납할 수 있는 범위 그리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더 한층 강화된 보호의 장막을 그들에세 선사해야 할까. 우리가 합의하고 우리가 용납할 수 있는 그 수준까지만 인정하면 되지 않을까?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도록 인정된 최소한의 범위를 그들에게 사회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가?

우리가 합의한, 우리 다수자들이 합의한 그 곳에 들어온 소수자들은 그 합의의 범위안에서 이미 소수자가 아니다. 그런 것은 강요된, 극단에 치우친 이미 다수의 반열에 들어선 "유사 소수자"일 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가 인정할 수 없는 보호와 똘레랑스를 보여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을 소수자로서 보호하고자 함이지, 우리가 받아들인 또다른 이름의 다수자를 보호하기 위함은 아닌 것이다.
다수란 이름의 권력이 선을 그은 바로 그곳에서만 생활하도록 사육된 소수자를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들은 다수와 타협한 다수의 한쪽 끝 방어선에 불과하다. 우리가 다수자임을 안심시켜줄 시금석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들을 다수라는 권력으로 길들여버린 이미 사회와 함께 늙어버린 어린왕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사회는 인정하고 받아들인 자들에게 소수자란 이름을 허하지는 않는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보호받아야 하고,

나와 다른 점이 보호 받아야 하고,

나는 그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보호는 나의 상상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래에 우리를 지켜줄, 소수자가 지배하는 세상의 다수자에게 내려진 반사적 은혜일 것이다.

(이 글은 지난 "외롭다는 그 즐거움"에서 다시 발췌하였다)


성적 지향을 비롯한 차별금지법의 7개조항 삭제에 반대한다.


관련글
 - 외롭다는 그 즐거움
 - 파시즘을 향한 변명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주말 내내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는 서울은, 월요일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을 되찾았다. 항상 그렇지만. 주말에 외출했던 시민들은 불편했다고 한다. 시위 때문에. 휴일은 시위로 몸살을 앓고, 교통은 막히고....

언제나 그랬지만 시민들은 분노 했다. 시위 때문에 교통이 막힌다고.

시위를 왜 하냐, 시위를 좀 조용히 하면 안되겠느냐, 불법시위 근절하라. 건전한 시위문화의 정착..... 언제나 언론과 공권력이 이야기 하는 것이고 우리(나는 빼고)들도 원하는 것이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왜일까. 시위는 왜 하는 것이고, 데모 때문에 불편한 이 생활은 언제까지 해야 할까.

시위란 뭘까.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검색해 봤다. 시위라는 항목에는 없고, 데먼스트레이션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데먼스트레이션(demonstration)

요약 : 특정한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다수인이 벌이는 집단행동

본문 :
약칭하여 데모라고도 하며, 시위 ·시위운동 ·시위행동이라고 번역한다. 개인이나 조직의 위력을 보이는 모든 시위행동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지만 시위를 위한 행진 자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요구사항을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슬로건을 외치면서 공개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위력을 지배자에게 과시하는 한편, 여론에 호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행해진다. 요컨대, 데모는 집단의사의 형성과 표현 및 그것의 전달과 실현 등의 기능을 지닌다.


시위는 개인 또는 조직이 위력으로서 자신의 입장과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행위로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시위가 타인의 교통 또는 생활을 방해한다는데에 있다.


왜 시위는 우리를 방해하는가?

현대사회의 발전에 따라 개인과 집단의 국가권력에 대한 요구와 투쟁은 증가한다. 그러한 요구가 정형화 된 것이 바로 민원이다. 이러한 민원은 단순한 증명서 등의 발급부터 각종 인허가의 요청 등으로 세분화되고 이러한 민원은 일정한 법률행위 또는 사실행위로 표현되어서 행정청에 전달되고 행정청의 행정행위에 따라 그 신청 또는 신고에 대한 일정한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각종 민원의 처리에 대해 불만을 가지거나 민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 정치적 의사의 요구 또는 주장 그리고 일반적 또는 특정의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의 의사표시 등에 관하여는 행정청의 민원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의사표시의 표출방법과 그 요구의 주장방법이 바로 시위이다.

시위는 타인으로 하여금 위력을, 세력을 과시함으로서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관철시키는데에 그 목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인의 위력 또는 세력보다는 다수, 군중의 위력으로서 이를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은 시위의 기본적인 속성에 속한다. 특히 사회의 기득권층이 아닌 소외계층 또는 소수자들의 경우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하여 그들의 주장을 표시함으로서 다수의 권력을 가진 집권세력 또는 기득권으로 하여금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인정케 하여 이를 관철시키는 것은 시위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며 목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아일보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시위를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의 몇가지라고 할 수 있다.

1. 정당한 주장과 목적
2. 최대 다수의 동원
3. 집권층 또는 권력층에 대한 최대한의 위협
4. 주장되는 의견과 정책의 현실반영

이 4가지 는 시위의 목적이며 수단 또 동시에 목적으로서 기능한다.

이 중에서 2번의 경우 자신의 위력을 보임을 목적으로 하고, 3번의 경우 이 위협의 효율적인 작용을 목적으로 한다. 문제는 이른바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통의 혼잡 등 여러 타인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찌보면 필수불가결한 시위의 목적이 된다.

앞서 정리한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면 다수의 위력으로서 권력에 대한 최대한의 위협을 이끌어내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시위의 계속이 사회혼란과 국론 분열로 연결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권력의 자각을 요구한다.

권력의 자각. 즉 시위대의 주장과 요구가 소수로서의 주장과 요구가 아닌 듣고 이를 반영할 가치있는 주장이라는 사실을 자각케 하여 기득권의 불편을 감수하고 이를 반영해야할 현실적 필요를 깨닫게 하는 것이 시위의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위는 그 요구 관철의 수단으로서 반드시 타인의 불편을 전제로 한다.


즉, 시위란, 타인을 불편하게 하여 그 불편한 상태를 지속시킴으로서 일반대중 및 권력으로 하여금 이 시위의 정당성 및 시위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이를 위하여 타인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을 그 수단으로 한다. 현대 사회에서 교통과 물류의 정지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즉, 시위는 당연히 시민의 불편을 초래한다.

시위에 있어 시민의 불편은 당연하고, 이는 시위가 가져야할 당연한 수단이며, 시위의 목적 또한 이러한 불편을 담보로 한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하는 시위는 아이러니 하지만, 현재의 불편을 담보하여야 한다.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 시위는 수단을 상실한 목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1인 시위 등 시민의 불편을 최대한 적게하는 시위도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가장 유용한 수단은 시위대가 시민들로 하여금 그 시위를 통한 불편을 느끼도록 하고 이를 통하여 시위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다.


시위를 통한 교통불편을 강조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그 시위의 내용과 목적으로부터 괴리되게 하고 단지 불편을 주기위한 악의적인 행위로 매도하여 시위대의 주장따위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민주적이지 못한 시민들을 만들어낸 지금의 시위문화를 만들어낸 권력과 언론이 과연 우리에게 건전한 시위문화를 위하여 붑법시위를 엄단한다는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시위대의 악의적 행동은 물론 시민들의 반발을 일으킨다. 그러나, 시위대의 시위 목적의 관철을 위한 시위 본질적 행위인 교통불편의 초래를 악의적으로 보도하여 시위대와 시민을 분리, 이간시키는 권력과 언론은 시위문화의 건전화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한다.

시위는 발전한다.

그러나 시위에 의한 불편은 발전하지 않는다. 아니, 발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위에 의한 불편은 시위의 목적달성을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다. 시위는 당연히 우리의 불편을 수단으로 하고 그것이야 말로 시위의 가장 큰 힘이다.


시위때문에 불편하다면,

왜 그 시위가 일어났는지를 생각하여 그것이 옳은 주장인지, 그렇지 않은 주장인지를 따지고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어떠한 수단이 존재하는지를 고려하여 현재의 시위상태가 올바른 요구의 주장방법인지가 시위의 불법성을 따지는 근거가 되어야 하며, 이 시위가 주는 불편은 시민이 짊어져야 할 당연한 민주주의의 대가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에게 부과된 민주주의를 향한 숙제는 그들의 피가 아니라, 그들의 인내와 참여다.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피를 요구하지만, 그건 우리 같은 민초 또는 시민들에게는 과분한 영웅의 칭호일 뿐이다. 우리에게 지워진 숙제는, 누군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릴 때 이를 인내하고 바라보며 우리의 불편이 민주주의를 향한 피의 길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이번 주말동안 언론은 역시, 주말내내 이어진 시위에 대한 불평불만의 성토장이었다.

시위는 당신에게 불편을 요구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건전한 시위문화에는 원활한 교통정책 따위는 없다.


시위하고 데모하라.

좌파정권에 산다

Posted 2007. 11. 7. 16:47
< 이회창 출마선언 >

드디어 이회창이 출마선언을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놀랬어?

며칠 전 부터 불안불안 하더니 끝내 출마선언을 해 버렸다. 이명박에게는 화살, 아니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고, 다른 후보한테는 등수 하나 더 내려가는 소리(사실 2등 부터는 별 의미 없긴 하다만...)니 실로 엄청난 지각변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무튼, 현 후보군들 중에는 결단코 이를 반기는 사람이 없다. 사실, 현직 정치인 가운데 이거 반가워할 만한 사람은 이회창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이외에는 없다. 다른 당의 입장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도 어디 줄을 서야 할지 모르니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니 얼마나 난감할까.

이회창씨가 밝힌 출마이유는, "한나라당의 현재 후보는 뭔가 아리까리한게 좀 불안해요"다.

그가 직접 읽은 그의 출마선언에서 이회창은 직접적으로 이명박의 대북관을 비판하며 국가의 기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운운 하며 출마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노무현 정권이 좌파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한나라당 출신이면 빼먹지 않는 레퍼토리니 뭐 새로울 것도 없다.). 잃어버린 10년 따위의 이상한(난 다 기억하는데, 잃어버렸댄다) 논리를 들고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요, 무소속이라고 하지만, 한나라당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에 청와대의 즉각적인 반응은 당연히, "꼴값하시네."

청와대는, 이회창의 출마는 국민을 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참여정부가 좌파면 도대체 얼마나 더 극우적 정권으로 가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노무현이 좌파?
노무현 정권이 좌파?

이 나라에 한번이라도 좌파정권이 들어선 적이 있단 말인가?

좌파 정권이 FTA를 체결한다고?
좌파 정권이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하고, 파병을 연장해?

사실, 이 두가지의 사실만으로도, 노무현 정권은 (아쉽게도) 우파정권이다.
한나라당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노무현 정권은 대략 우파일 뿐이고, 한나라당은 극우파일 뿐이다.

그 극우파는 우리가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왠지 가장 맘에 드는 이번 사태 만평(경기일보)





나는 이회창이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서 거의 찾아볼 수없을 만큼 깨끗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사실, 그것은 믿을만한 진실이다. 이회창씨는 개인적인 비리는 없다. 하나 있는 것이 바로 그 병역 문제였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
문제는 그가 깨끗한 생활을 하고, 비리가 없다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머리속에 두고 있는 생각이 문제인 것이다. 이 정권을 좌파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나라당으로 부터 시작된 인식불능의 자폐적 환상증에 휩싸여 버린 늙은이에 불과한 청렴한 구시대의 관리가 문제인 것이다.

이회창씨는 출마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저 이회창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잃어버린 10년의 시대를 반드시 끝낼 것입니다.
더 나아가 1987년 이후 지속된 20년 체제를 넘어, 최소한 향후 50년 이상은 지속될 수 있는 국가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할 것입니다.
헌법개정을 포함한 과감한 정치개혁과 권력구조 개편도 그 대상이 될 것입니다.

대북정책 및 외교정책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할 것입니다.

무너진 한미동맹을 복원하여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동맹으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땅에 떨어진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는 법치혁명을 이루어낼 것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도심의 도로를 점령하여 교통마비를 가져오는 일은 저 이회창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군인들을 공격하거나, 젊은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자들은 공공의 적으로 법에 따라 엄단하겠습니다.


잃어버린 10년, 1987년, 정치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국가기강, 점거, 교통마비,군인,전경..

이 단어들이 극우 파쇼와 만났을 때 일어날
끔찍한 피의 향연이 일어나지 않기를 빈다.


대한민국에 좌파정권이 들어선 적이 있는가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작 대한민국을 사수해야 할 사람은, 저 파쇼 극우주의자들에 대항하는 민중들이다


삼성, 자랑스러운 이름, 삼성?

Posted 2007. 11. 6. 13:52
드디어 터졌다. 삼성.

어쩌면 대한민국의 상당수가 예상하고 있던 사건이기도 하고, 알 수 있는 사건 이기도 하고. 아무튼 드디어 터진 것이다. 삼성이라는 우리나라 최대의 대기업과 비자금이라고 하는 도대체 떼어낼 수 없는 고리가 드디어 수면위로 올라왔다. 어쩌면 내가 평생 그 실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그 사슬이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몇가지 의문이 생기는 것들을 정리해 보자.

우리나라가 생긴 이래 가장 큰 기업인 삼성. 그리고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 삼성(물론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대학생이 더 많다 -_-;) 이해할 수는 없지만 가장 존경받는 기업 삼성.

1. 삼성의 비자금, 사실일까?

우선, 나는 이번 삼성의 이번 비자금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기억속에서는 잊혀졌지만, 지난 5공비리 국회 청문회에서 여러 기업들의 비자금 상납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고, 제대로 된 처벌이나 진상조사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 관행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옛부터, 관행위엔 범행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당시 청문회에서 전두환에게 비자금을 뿌렸던 정주영은 이렇게 말했다. "안주면 다칠 것 같아서" 라고. 삼성의 가장 크게 성장했던 전두환 정권 당시 삼성이 정권에 얼마를 뿌렸을까? 그리고 김영삼 정권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삼성은 그 당시의 전방위 로비를 하지 않았을까?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불법적 증여 부터 시작되는 그 수 많은 눈에 보이는 작업들이 어떤 로비와 비자금의 조성도 없이 이루어 졌다고 본다면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다시 이 질문을 정리하자면, 삼성은, 과연 깨끗한 기업인가?
삼성이라는 우리나라 대표기업은, 과연 제대로 된 소유구조와 정당한 방법으로 그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물론 삼성이 그 많은 돈을 부당한 방법으로 벌어들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충만 봐도 상당부분은 정당한 경영과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라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 부(富)를 유지하고 사업을 경영하며 수없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르는 로비와 편법적인 경영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무노조 경영이라는 노동법적 시각에서는 황당한 경영방식도 문제다(우리나라의 노동구조와 노조 활동이 무참하게 외곡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삼성의 매판자본이라고 한번에 매도하는 것 역시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삼성의 모든 행위를 삼성이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이라는 이유로 옹호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떠내려 오는 삼성의 구린 경영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을수도 없지만, 그 모든 사실을 소문으로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간단하게는 이재용 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삼성의 비자금은 사실이냐 아니냐에 관한 문제는 어쩌면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 일 수 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비자금의 규모가 얼마이며 그 돈이 어떠한 목적으로 누구에ㅔ 쓰여졌는가의 문제일 뿐일 수 있다. 즉, 삼성의 비자금의 존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가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2. 삼성의 반박, 믿을만 한가?
위의 파일은 삼성의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 삼성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뻔한 변명들 처럼 이 반박 역시 믿을만 한 것은 별로 없다는 불행한 현실이다.

이례적으로 이런 문건까지 만들었다만,  삼성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할 증거도 별로 없으려니와, 그 내용 또한 더 의문이 많다. 다음 기사의 내용을 봐도 그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28페이지나 되는 삼성의 반박 자료를 읽고 싶지 않.......은가?)

< 두꺼워서 읽기싫은 삼성의 자료 >

기사 요약

- 차명계좌 자금 총액과 현재 남아있는 돈, 사용처까지 알고 있다면서 '조사하면 비자금이 아니라는 게 입증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프라이버시 문제를 들어 차명계좌를 만는 재무팀 임원이 누구인지, 누구 돈을 회사 몰래 굴렸다는 건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 그러나 삼성그룹이 내부문건임을 시인한 그 폭로자료에는 이 회장의 발언내용과 관련해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등)에게 주면 부담없지 않을까?"로 적혀있다. 이 대목에서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선 '추미애 등'이 돈을 안 받는 사람인지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점이다. 돈을 주려고 시도해 봤지 않았나 하는 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또 '돈 안 받는 사람'이라는 별도의 그룹을 설정한 상황 자체가 돈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이 대목은 삼성이 주는 돈을 안받는 사람이 간혹 있긴 했지만 드물었다는 정황증거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 그러나 김 변호사가 '미행과 납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수차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친구와 함께 사제단 신부를 만나고 온 것을 놀랍게도 삼성이 다 알고 있었다'는 대목 등에서다. 이는 사제단 신부들도 '김 변호사를 만난 직후 김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온 것을 삼성이 알고 주변 인사들이 전화를 해 김 변호사에 대한 비난을 하더라'고 증언하는 부분과 일치한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지금 삼성의 선택은 자칫 더 큰 지뢰를 터트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문제가 있다. 김변호사의 주장 역시 미진하고 신빙성이 떨어지는 감이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삼성의 대응은 갑작스레 왼손을 뻗어 가드를 내려 버린, 아웃복서 앞의 인파이터 꼴이니 답답하기까지 하다(나는 삼성 편이 아님에도 그렇다)

어느 블로거의 주장처럼, 우리나라의 기업환경이 쓰레기 처럼 더러워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기업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서 잘못을 시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3. 삼성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내가 여러 해 전부터 주장해 온 것이 있다. 물론, 전혀 정리되지 않은 의견이고, 주로 술자리에서 주장되는 것이다 보니, 별로 그 뒷받침할 만한 논리 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긴 하지만, 한번쯤은 하고 싶은 이야기다.

대한민국 건국이 벌써 반세기가 넘었지만, 과연, 우리가 제대로된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해 본 벅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의 자본주의는 매판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매도당했고, 재벌자본주의 라는 이름으로 농락 당했다.

대한민국에는 제대로 된 자본주의가 없었다.
삼성의 잘못된 경영과 기업윤리로서 대한민국이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번쯤은 대한민국이 up side down 되어도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된 자본주의 정당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정치적, 경제적 민주주의까지 확립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면, 대한민국의 가장 큰 기업, 삼성 하나쯤은 희생시켜도 된다고 본다.

현대가, 대우가, 엘지가, 삼성이 그렇게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되, 그로인해 대한민국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이것도 웃긴 현상이지만, 그건 논점을 벗어난 이야기니 다음 기회에)가 좀먹고 있다면 그들이 없는 세상도 살만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말 그 기업의 생존보다 중요한 것이라면,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삼성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나는 삼성의 물건을 쓰지 않는다(물론 내가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중국산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삼성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4. 삼성맨, 그 자랑스런 이름.


삼성의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삼성, 돈 많이 주니까 좋은 회사이거나, 돈만 많이주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 없는 것이거나.

< 법명 받았다 >
< 진짜 법명 받았다 >
< 확실히 법명을 받았다 >

< 근데, 안받았다 >


1. - 술은 마시고 운전 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
2. - 내 집사람이 법명을 받았지만, 내 아내는 법명을 받지 않았다. -
3. - 포스트는 올렸지만, 블로그는 하지 않았다-
4. - 이명박을 비판하고 있지만, 선거법위반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4번이 제일 설득력 있다.






덤;

나 완전 미친건 아닐까 -_-

< 그 어둡고 긴 터널 >

10년의 시간,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 사이, 사형수 였던 사람이 대통령도 했고,

또 다른 살인 사건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절반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10년간 사형집행 없음.

http://zeiss.tistory.com/241

아직도 갈 길은 있다.

사형제 폐지 그 완전한 완성을 기다림.



최근 100만명의 외국인 시대가 열리면서, 그와 함께 외국인 범죄 역시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특히 위의 방송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안산시의 경우 도대체 어느나라인지도 확실 하지 않을 정도로 외국인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지하철을 타고 안산에 내리면, 외국인 노동자를 너무 흔하게 볼 수 있고,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그 중에서 합법적인 체류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외국인의 입국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외국인 범죄가 늘어나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정도의 상태가 되었고 이에 따른 대비책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제기되는 것이 위 동영상의 말미에도 나오고 있는 바와 같이, 입국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이다. 현재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이를 시행하고 있고, (일본의 외국인 지문날인의 경우, 과거 우리나라가 매우 많이 반대했던, 지문날인제도이다) 우리나라도 도입할 움직임과 목소리가 적지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지문날인 제도에 대해서 이를 인권침해라 하여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그 중심에는 지문날인반대연대(http://finger.jinbo.net/)가 있다) 외국입ㄴ에 대한 지문날인이 인권침해라 하여 반대하고 있는데, 이를 반대하는 것은, 지문을 강제적으로 날인하게 함으로서 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간주하고 통제하게 된다는 점을 이유로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보편적인 인권침해의 양상으로 이해할 문제인가에는 의문이 있다.

이미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 지문날인을 강요받고 있다. 우리 주민등록증에는 지문날인이 필수적인 사항으로 되어 있으며 이 날인된 지문은 행정자치부에서 주민등록증을 관리하는 행정자치부 주민과가 아닌 경찰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즉, 우리가 날인한 지문은 행자부가 아닌(경찰청도 행자부 산하이긴 하지만, 외청이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이 담당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 역시 모두 예비적 범죄자취급을 받고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지문날인 하는 것이 인권침해냐 여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본다면,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해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이른바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로서 인권침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 국민에 대한 지문채취의 문제는 다시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외국인에 대해 지문날인을 하고 내국인에 대해서는 지문채취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인권침해의 문제여부를 바로 따지는 것이 가능할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있어서 인권문제를 논하고자 한다면 내 주민등록증에 있는 지문이 채취댄 경위와 목적에 관하여, 그리고 그 인권침해여부에 대해 투명해져야 할 것이다.

외국인 범죄를 억제하고 방지하는 것에 지문날인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불법체류 외국인의 경우에는 더욱더). 하지만 최소한 그것이 어느정도의 효과를 발휘한다면, 이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검토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미국과 일본의 외국인 지문날인과 비교할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더 필요한 것은 우리의 지문날인 현상에 대한 무감각해져버린 인권수준일지 모른다.

외국인의 인권도 중요하고 우리의 인권도 중요하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외국인의 범죄를 줄이기 위하여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면 우리가 그들을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자하는가의 문제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건대 지금 현재의 상태로서라면,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이 인권침해적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한다는 점에서는 이를 인권침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뿐더러, 이를 반대할 명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참고로,
헌법재판소 2005. 5. 26. 자 99헌마513,2004헌마190(병합) 전원재판부 【주민등록법제17조의8등위헌확인등】 판결에 따르면, 지문날인제도 자체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헌법재판소는 판단했다.




이명박號가 출범했다. 이번 대선을 위한 이명박 호의 주요 멤버를 보면, 이명박의 선호인물에 대한 확연한 밑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확실하다. 철저하게 방계의 인사들을 배제했고, 자신의 측근들만으로 구성한 것만 봐도, 이명박씨가 얼마나 인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알 것 같다(기사보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준하처럼 귀여운 척 하는 이씨


이번 인사들은, 정두언 의원, 이태규씨, 곽승준 교수, 정태근, 진성호, 지승림 씨 등등이 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는 이들중 정두언 의원이 이슈메이커로 등장해서 명박씨에게 돌아갈 화살을 한 번씩 걸러주고 있다는데,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아주 황당하기도 하고, 우리나라 정치가 역시 3류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최근에 정두언 의원에 관해 올라온 블로거들의 반응은 아주 회의적이다.

< 정두언 의원에게 묻고싶군요 >
< 블로거는 예비범죄자 >
< 선거에 대해 아무말도 못하는 나라 >

(그 외에도 너무 많은데, 나머지는 위의 링크에서 트랙백을 따라 가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정두언 의원은 과연 누구고, 또 어떤 말을 했길래 블로거들이, 인터넷이 이렇게 난리인 것일까? 또 그 생각은 얼마나 잘못된 것이기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씨가 서울 시장을 해먹을 때 부터 그를 보좌해온 인물로 유명하다(워낙에 악의가 있다보니 사용하는 용어도 이렇다. 서울시장을 "해먹을 때"라니..-_-; 사실, 해" 쳐"먹을 때가 아닌게 어디냐....)

정두언 의원이 선거와 관련해 욕을 먹은 것은 국정감사를 맞이하여 선관위에 대하여 그가 질의한 내용 때문이다. 더 따져 볼 것도 없이 그의 홈페이지에서 그가 직접 올린 내용을 보자.
■ 뛰는 선관위 감시 위에 나는 사이버선거법위반!!
- 17대 대통령 선거관련 사이버선거법위반 단속 실적 25,135건
- 25,135건중 고발, 수사의뢰, 경고 등 실제적인 제재조치는 0.08%에 불과!
- 메타 블로그를 통해 외국 사이트에 개설한 블로그를 활용한 신종 사이버선거법위반 성행! 선관위 무대책으로 일관! < 출처 : 정두언 의원 홈페이지 >

(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사람은 정두언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시라 )


그 중에서 특히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3. 블로그 감시 철저

현재 가장 많은 사이버선거법위반을 저지르는 것은 각 홈페이지가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퍼지는 블로그임. 특히 올블로그 처럼 블러그를 링크시키는 메타블로그 싸이트가 가장 큰 문제임. 

이는 현재 한나라당 후보의 네거티브 유포의 진원지로 활동하고 있음. 언론도 아닌 것이 블로그의 포털로 기능하면서 싸이버 테러에 가까운  사이버선거법위반을 저지르고 있음. 특히 블로그가 국내 블로그 사이트가 아닌 미국의 등 외국 사이트를 이용 블로그를 개설하여, 신원사항을 감추고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음으로 인해 선관위나 사이버수사대의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음.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의 경우 불공정한 보도나, 게시글은 선관위나 각 캠프의 모니터링으로 공정하게 노출 될 수 있도록 조정되고 있으나 메타블로그의 경우 이러한 조치를 전혀 못하고 있는 실정임.

선관위는 사이버부정선거감시단과 사이버자동검색시스템운영에 있어서 새로운 네거티브 방식인 메타블로그 감시활동에 더욱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임.

정두언 의원의 지적대로,  선거법 위반 사례의 대부분은 개인 블로그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법의 운용상의 문제인가 아니면 선관위의 바보같은 단속능력 부족에 기인한 것인가의 문제는 제대로 대가리를 굴려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문제다.
(일부 블로거는 올블로그의 광고를 위해 한 몸 초개와 같이 바친 정두언 의원을 고마와하고 있기도;;;)

게다가 외국의 블로그 사이트에서 "교묘하게" 선거법 위반을 저지르고 있는 일부(가 아닌 다수일지도) 블로거들이 신원을 감추고 있어 한나라당은 환장하고 계시다.



정두언 의원께서는 할일 없이 그 수많은 이명박 후보 네거티브 관련 글을 다 읽어보셨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해드 스핀은 안하신 것 같다(브레인 스핀인가?).

첫째로, 올블로그와 같이 메타블로그에 등록되어 피딩 되고 있는 블로거들은 대다수가 정의원께서 사랑해 마지않는 네이버나 다음, 티스토리, 이글루스 등과 같은 국내 사이트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혹시나 영어로 된 사이트를 보셔서 그런 말씀 하시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글루스나 티스토리가 영어라고 해서 외국 사이트는 아니다. 영어가 짧은 것은 죄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이명박씨께서 정두언 의원 같은 학습능력 떨어지는 분들을 위해 국어와 국사까지도 영어로 가르치겠다고 했으니 이명박씨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어 다시 고등학교 들어가셔도 된다. 주의할 점은, 재수없게 마이스터 고등학교 가면 영어 못배울 수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학교 들어가야 한다.

두번째로, 메타블로그에서 사이버 선거부정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없어 문제라고 하셨는데, 이 양반에게 인터넷 강의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도 좀 든다. 메타블로그가 왜 메타블로그인지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말이다. 메타블로그라는 것이 뭘까?

개별 블로그를 하나로 묶기 위한 일종의 블로그 포털사이트로 여러 블로그에 흩어져 있는 글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블로그들의 블로그입니다.
블로거가 글 연결 주소(RSS)를 등록하면 블로그에 새 글을 작성할 때마다 메타블로그에 새글 목록으로 추가되는 형태로, 특정 블로그를 알지 못해도 여러 블로그의 글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메타블로그는 정보의 양이 아니라 질이고 그걸 담보하는 건 사용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생각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국내에서는 한 대학생이 운영하고 있는 `올블로그'가 대표적인 메타블로그로 꼽히고 있습니다.

(디지털 타임즈,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07101702012269704002 )

메타블로그는 단지 블로거들의 글을 모아두는 기능을 하는 사이트일 뿐이다. 어떤 목적이나 이슈를 지정하여 운영된다면 이는 메타 블로그가 아니라, 다음이 운영하는 블로거뉴스와 같은 뉴스포털일 뿐인 것이다.

게다가 "한" 대학생이 운영하는 올블로그에서 뭘 어떻게 하란 말이냐 24시간 끊임없이 블로거들이 글을 올리고 피딩을 하는데 "한"대학생 보고 잠도 자지말고 감시해야 한다는 말이냐? 무료로 운영되는 올블로그에서 뭘 바라는 게냐? 자금을 지원해 주던가 말이다.(사실은 한 대학생이 아닌 팀이 이를 운영하고 있는 정식 회사이긴 하다. 근데 http://blog.blogcocktail.com/?page_id=2 겨우 요만하다)


한가지 더 중요한 이야기를 첨언 하자면, 몇달전에 내가 썼던 글을 외람되지만 한번 읽어주길 바란다고 해 주고 싶다.  http://zeiss.tistory.com/22 아는지 모르겠지만 클릭하면 열린다.
혹시 불편해 할까봐 요약해 주자면, "'전통적' 언론인이 아닌 블로거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되었다는 것. 즉 개인 미디어의 언론화를 뜻한다. 제도권에서도 진정한 언론으로서 개인 미디어가 자리잡은 것. "이라는 주제다. 즉, 개인블로거가 더이상 단순한 개인의 신변잡기적 수준의 잡동사니가 아닌 이젠 언론이라는 것.

어떤 블로거든, 자신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의견을 블로그에 글로서 포스팅하고 이를 일반 공중에게 소개하고 있다면 그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즉 정두언의원이 굳이 블로거들의 이런 글쓰기를 제한하고자 한다면, 이는 21세기적인 의미에서는 언론 탄압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기자실 통폐합에 대항하며 대한민국의 개뿔같이 소중한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 중이신 조중동과 이명박 후보를 대신해서 정두언 의원께서 초를 치는 일은 없기 바란다.



정두언 의원은 이 사이버 선거"부정"사례들과 함께 여러 문제점을 들어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으시다. 하지만 전에도 밝혔듯이, 지금의 공직선거법은 본인의 입장으로는 명백하게 위헌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혹시 모르시는 모양 같아서 하는 말인데, 나는 위헌인 법률을 지키고자 하는 허황된 생각은 없다. 위헌은 위헌이며 헌법에 위배된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나는 믿으니까.

아마도 그가 좋아할만한 말인, "그 범죄가 설사 헌법을 파괴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고도의 인간적인 도덕성의 표출일 수가 있다."고 한 박정희 빠돌이 이인화씨의 말을 인용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자면, 고도의 인간적 도덕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바에 대해 입을 쳐 닫느니, 공직선거법은 위반할 수 있다는게 내 생각이기도 하다.


블로거가 말하는 것을 닥치게 하고 싶다면 그가 먼져 닥치는 것도 좋은 전략인데, 확실한건,
블로거들은 안 닥친다.


추가로, 정두언씨에 관한 뉴스를 검색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봤는데, 자신의 과거를 뒤돌아보는 의미에서 한번쯤 다시 읽어보시길 빈다.

< 여기자와의 거시기 >
< 당당하게 1번의 자리를 차지한 정두언 의원 >


재미로 한개 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두언 의원 홈페이지 관리자가 '디카 패러디 세상'이라는 게시판에 올린 개 사진. 거기 가보면 알겠지만, 유독 개 사진이 많다. 분명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인 듯하다. 완전 개판이다. 개가 주인인가 싶을 정도다.
진짜 개가 주인일까?
« PREV : 1 : ··· : 4 : 5 : 6 : 7 : 8 : 9 : 10 : ··· : 12 : NEXT »